08.
윤기 : 남준 = 1 : 0
카페 마감 시간이 다 될 때 까지 이웃집 남자는 타르트를 먹는 듯 마는 듯 했다. 비가 내리는 밖을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보다가.
두 일을 반복하더니 내가 퇴근할 준비를 하자 빈 접시를- 타르트를 언제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 트레이와 함께 카운터로 가져왔다.
“잘 먹었어요.”
“맛은 괜찮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라, 너무 막 준 것 같기도 했거든요.”
“맛있었어요. 저도 오렌지 좋아하거든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이제 퇴근하시죠?”
“네.”
“같이 가실래요?”
“아. 그래요! 저 우산 있어요. 같이 쓰고 가면되겠다.”
이웃집 남자가 가져온 빈 그릇은 사장님께 설거지를 하라고 시키면서 주방 안으로 보내버렸다.
사장님 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같이 집에 가기로 결정을 하고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남자에게 우산을 맡기고 퇴근을 한다는 말을 사장님에게 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사장님! 저 퇴근해요!”
“…우산은?”
“있어요!”
“밖에 어두우니까 조심해서 가.”
“네! 오늘도 수고 하셨어요!”
설거지를 하는 사장님의 등을 대고 소리치니, 돌아보며 내게 물어온다. 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모습이 사장님의 큰 키에 맞지 않게 귀여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산이 없다고 하면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우산을 쥐어줄 것 같은 기세다. 또 어떤 잔소리가 들려오면 대화가 길어질 게 뻔하기에,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뒤에서 사장님이 뭐라고 하는지 사장님의 외침이 들려와 멈칫하다, 별 말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운터에서 가방을 챙겨 매고, 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이웃집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비가 많이 그쳤네요.”
“그러네요.”
1인용 우산이 성인 남녀가 같이 쓰기에는 작은 크기인 건 알긴 했는데… 막상 좁은 우산 아래 꼭 붙어 쓰고 있으니 괜히 어색해진다. 헛기침을 하면서 목 근처를 손가락으로 살짝 긁었다. 이웃집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지 우산을 다시 고쳐 잡더니 우산 밖으로 시선을 두며 대화를 시도한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 보니,
나 이 남자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근데, 이름이 뭐에요?”
“민윤기에요.”
“아, 이름 되게 예쁘네요.”
“그런 소리 꽤 들었어요.”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입 꼬리에 그와 동시에 팔자주름이 깊게 그려진다. 길게 퍼지는 입 꼬리 덕에, 그 끝 부분에는 동굴같이 텅 빈 공간이 생긴다. 남자의 이름을 듣고 입 안에서 슬쩍 발음을 해 보았다. 센 발음 없이 둥글하게 발음이 되는 이름이, 제 주인의 웃음과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와서 눅눅한 날씨와는 정반대로 몽실몽실해지는 기분이다.
“제 이름은 안 물어보세요?”
“알아서 말해 주실 것 같아서요.”
“아…”
“이름이 뭐에요?”
“ 김여주가에요.”
“ 김여주. 이름 되게 예쁘네요.”
“그런 소리 꽤 들었어요.”
나와 똑같이 반응을 해주는 남자의 말에, 나도 웃음을 지으며 장난에 응해주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입구로 나올 때 까지 우산은 이웃집 남자가 들고 있었다. 연보라색 우산 위로 작게 맺혀 있는 빗방울이 남자의 청바지 색을 짙게 만들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역 입구에서 나왔을 때는 비가 그쳐 있어 아까처럼 가까이 붙어 있지 않아도 되었다. 조금의 거리를 둔 채, 남자와 발을 맞추며 빌라로 향했다.
“나이는 몇 살이에요?”
“남자한테 나이 물으면 실례 아닌가?”
“에이, 별로 안 많으면서.”
“그걸 어떻게 장담해요?”
“그냥 딱! 보면 대학생처럼 보이는데요?”
“오, 그렇게 젊게 보여요?”
“그러니까 몇 살인데요?”
“ 여주씨 보다는 많아요.”
통성명의 효과인가. 젖은 길을 걸을 때 마다 찰박 찰박, 하며 아스팔트길과 신발과의 마찰음이 가끔씩 들릴 정도로 남자와 나는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갔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장난을 치며, 낮게 웃을 때 마다 신기함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람 인상이 웃는 걸로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더 친해져야겠네. 나이 알려면.”
“노력해 봐요.”
“지금부터 노력해야겠네요. 음…. 아, 어떤 소설 써요?”
“검색창에 치면 바로 나오는 건데. 친해지려는 정성이 안 보이네.”
“에? 그건 아니죠! 직!접! 듣는 게 더 정성이 있는 거죠. 모든 궁금증을 그렇게 해결하려고 하는 거 좋지 않아요.”
고개를 저어가며 남자에게 핀잔을 늘어놓자 남자가 입 꼬리를 올리고는, 전과 다르게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또다시 바뀌는 인상과 길게 퍼지는 입 꼬리를 나도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았다.
“로맨스 소설 써요. 답지 않게.”
“오…. 좀 안 어울리긴 하네요.”
남자를 놀리듯 답을 해 주었다. 때마침 빌라에 도착했고, 얕은 대화들을 이어가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오늘 우산 빌려 주고 같이 와 줘서 고맙다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남자에 나도 그렇다며 답을 해주었다.
“잘 가요. 아, 로맨스 소설 잘 어울려요. 아깐 장난이었고. 달달할 것 같아요. 나중에 읽어 볼게요.”
“장난일 것 같았어요. 고마워요. 칭찬해줘서. 친해지고 싶으면 나중이 아니라 내일 당장 읽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알겠습니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서점에 달려가서 읽도록 할게요! 사인 해 주실 거죠? 민 작가님?”
“고민 좀 해 볼게요. 얼른 들어가요.”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며 나와 인사를 나누는 남자이다. 꾸벅 인사하는 건, 정 없어 보일 것 같아 손을 흔들며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엘리베이터를 등 뒤에 두고 문 앞에 서자, 그제야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어떤 로맨스 소설일지 기대를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윤기 : 남준 = 2 : 0.5
+)
홉씨앗이에요!!!
이번에 좀...많이 늦었죠ㅠㅠㅠㅠ
저번화 답글도 안 달고...
그제랑 어제 컨포 떠서ㅠㅠㅠㅠ 사진 줍고..금손님들 보정본 받고..하다 보니 막 새벽 세시가 되구..
지금 글을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네여ㅠㅠㅠㅠ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하구 사랑합니다♥♥
♥우리 알바생들♥ |
땅위 / 유딩/ 주니 / 인삼홍삼 / 베네 / 쫑냥 / 청포도 / 민솔트 / 단짠단짠 / 본드 / 푸른 / 너만보여 / 그때쯤이면 / 토토오 / 동태양 / 바다코끼리 / 뿌쾅 / 몽마르뜨 /또비또비 암호닉 이렇게나 많이 늘었어여ㅠㅠㅠㅠㅠㅠ 사랑합니당♥ |
보너스 (a.k.a. 차기작..?) |
수능이 끝나고 허무함이 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능 후, 터뜨리고 싶었던 울음은 홀가분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그 의미가 변질된 채 나타나고 있을 뿐이었다.
“답이 없어.”
성적표를 본 후 나오는 말은 한마디로 충분했다. 이 성적으로 목표로 했던 곳에 지원이라도 해 볼 수 있을까. 수능이 다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수능 성적이었다.
종이 쪼가리 하나를 손에 구겨진 채로 들고 학교에서 나와 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땅만 보고 걷다가 발로 차기 좋은 돌멩이 하나가 보이길래 무심코 툭 하고 신발 앞 코로 건드렸다.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꽤 멀리 굴러갔다. 그 돌멩이를 따라 계속 차기를 두 세번. 한 번만 더 차고 집에 가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발로 차려고 하자,
“야.”
라고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부르는 건가? 땅에 고정시켰던 시선을 소리의 근원으로 돌리니 “어, 봤다.”
처음 보는 남잔데. 왜 아는 척이지.
다시 고개를 땅으로 고정시켜 남자에게 등을 보인 채로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벗어난 게 아니다. 벗어나’려고 했다’ 이다.
“어디가. 너 부른 건데.”
가방 때문에 잡히고 말았다. 진지하게 가방을 버리고 도망갈까 생각을 했다. 어차피 수능도 끝난 거, 필요도 없지 않을까 왼팔을 슬쩍 빼려고 어깨를 들자 가방 끈이 팔로 흘러내린다. 남자는 또 한번 피식 웃더니 내 가방 끈을 어깨에 다시 매어 주는 친절을 베푼다.
“왜요?” “우리 손님이 되실 분 같아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니 자켓 안 쪽에서 무얼 꺼내려고 한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설마 장기매매? 아니, 이건 너무 갔나. 근데 손님 이라니? 지금 이게 호객행위 하는 거야?
“눈 그만 굴리고. 네가 생각하는 거 다 아니니까 이거 받고 잘 생각해 봐.”
내 얼굴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났는지 남자는 또 한번 웃어 보이더니 자켓 안에서 꺼낸 지갑을 열고는 명함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준다.
[노답 컴퍼니 ; 답이 없는 당신의 인생에 답을 찾아드립니다.]
앞 쪽에는 회사 이름과 카피가, 뒤 쪽에는 전화 번호만 달랑 적혀있었다.
내 인생에 답이 없는 건 맞는데, 어떻게 답을 찾아 주겠다는 건지..? 아, 이건 연락하면 풀리는 궁금증인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