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주 학생, 도울고등학교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예비소집일은 2월 17일 오전 10시입니다. 반 배정 및 학교생활에 대한 안내가 있을 예정입니다. 반드시 참석해 주세요.]
하도 읽다 보니 문자메시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모조리 외워버릴 지경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울고등학교.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등학교였다. 공부를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면접에서 가차없이 잘라내는 것으로 유명해서 솔직히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가차없이 말아먹은 면접 때문에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오히려 붙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쳤다. 미쳤다. 미쳤어어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들을 마구 뱉어냈다. 도울고등학교 합격. 합격이라니… 내가 합격이라니!
“그렇게 좋아?”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이모가 넌지시 물었다. 응, 엄청 좋아. 진짜진짜 행복해요. 즉각적인 내 대답에 이모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이모는 조금 걱정된다, 야. 지하철 타고 2시간 걸리는 거리잖아. 등교시간은 8시라며. 기숙사 떨어지면 그 먼 길을 힘들게 통학하거나 자취하는 수밖에 없잖니.”
“서울권 아니면 기숙사 백 퍼 붙는대. 그리고 도울고등학굔데, 뭐. 기숙사 떨어져도 상관 없어요.”
“그래도… 그냥 가까운 데 가지. 너 가면 우리가 같이 있어주지도 못하고,”
“어차피 아빤 맨날 출장 나가잖아. 이모도 이 참에 그냥 쭉 아빠랑 같이 다녀요. 외국은 19살이면 독립한대. 나는 진보적인 집안에서 2년 일찍 독립한다 치지, 뭐.”
“진보적인 게 아니라 방임적인 거겠지. 자꾸 우리 여주가 아픈 델 찌르네.”
“진짜 괜찮아요, 나는.”
소파 위에 누워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양 옆으로 훽훽 돌렸다. 김여주 학생, 도울고등학교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합격. 축하합니다. 베싯 웃음이 나왔다.
*
나는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부터, 도울고등학교 입학이 내 삶의 목표인 것처럼 살아왔다.
도울고등학교는 공부를 잘하고 똑똑한 학생들이 많은 걸로 유명한 학교다. 대한민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말 그대로 명문고등학교였다. 외고나 과학고가 아니라는 점도 좋았다. 자사고이면서도 재단이 빵빵해 웬만한 공립 고등학교만큼 학비가 싸다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 아주 큰 메리트였다. 통학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숙사가 있었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심지어 기숙사비도 쌌다. 한 달에 10만 원. 이거 솔직히 완전 거저 주는 거 아닌가. 가정형편은 그럭저럭이지만 공부에 욕심도 있고, 잘하는 중학생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을 고등학교였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도울고등학교 입학을 내 삶의 유일한 목표로 꿈꿔왔던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회의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은….
“초상 났냐?”
“…쓸데없는 말 할 기분 아니거든.”
조금 후회스러워지려고 한다. 붙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기숙사에 떨어졌다. 제주도에서만 20명이 합격했단다. 그리고 강원도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쪽에서는 150명 가까이 합격. …거리순으로 뽑는 기숙사생 220명 안에 설마 내가 들 수 없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참고로 도울고등학교의 신입생 수는 360명이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취는 절대 안 돼. 알아보지 마.”
“어차피 못 해..”
햇반 껍데기를 뜯다 말고 고개를 튼 아빠가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나와 눈을 맞추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몸만큼이나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숙사 불합격 통보를 받고 절망에 빠져 있었던 나는 마음을 추스리고 다방 어플로 서울 초록동 근처의 방을 알아봤다. 그리고 기함했다. 미친. 부동산 거품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저 망할 놈의… 망할 놈의 집값…. 결국 방을 몇 개 둘러보지도 않고 어플을 껐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어플 삭제. 이것이 불과 10분 전에 휘몰아쳤던 일들이다.
그래. 엄마 사망 보험금을 보태서 집도 사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우리 가족 형편에 자취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래. 당연히 못 하지, 딸.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데.”
“…아님 차라리 룸메이트를 구할까?”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 예…”
아빠가 햇반을 식탁 위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식탁과의 마찰음이 꽤 컸다. 나는 살짝 쫄았지만 쫄지 않은 척 일부러 더 건성건성 대답했다. 경기도 지역이면 백 퍼센트 기숙사 합격이니 걱정 말라고 아주 호언장담을 하며 지식인에 답글 달았던 사람은 누굴까. 도울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선배일 텐데…. 찾아가서 한번 일갈해 주고 싶었다. 그 말 틀린 말이니 알아서 자삭하라고.
“아빠가 알아볼게. 넌 신경 쓰지 말고 너 좋아하는 공부나 열심히 해.”
“응.”
아빠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터덜터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보 같은 아빠는 알지 못한다.
나는 사실, 공부를 싫어한다는 걸.
*
세상이 까맣다. 두 눈을 여러 번 꿈뻑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상은 까맣다. 혹시 내 눈이 멀어버린 건 아닐까, 문득 두려워졌다. 그럼 공부는 어떻게 하지? ……여태까지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데, 어떤 마음으로 버텨왔는데… 가슴이 턱 막혀왔다.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숨을 쉴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섞인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양손으로 내 목을 감쌌다. 소름이 돋을 만큼 시리고 차갑다. 그리고 양 엄지손가락으로 꾹, 목젖을 눌렀다. 남은 네 손가락으로는 뒷목을 꾹 눌렀다. 아프지는 않았고, 그저 숨이 막혔다. 꽉 힘을 준 손 때문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대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있는 힘껏 남은 힘을 쥐어짜내려고 다짐한 순간,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떨리는 내 두 팔목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여전히 세상은 새카맸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엄마였다.
“….”
나를 붙잡은 엄마의 손도 내 팔만큼이나 떨리고 있었다. 온몸에 탁, 힘이 풀렸다. 꿈이구나.
“…깨고 싶지 않은데.”
나는 또 꿈에서 깨겠구나.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이 뜨였다. 새벽빛으로 물들은 내 방 천장이 보였다. 엄마랑 더 있고 싶었는데… 꿈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울음이 터졌다. 옆 방에 들릴세라 재빠르게 몸을 뒤집어 베개 위에 얼굴을 묻었다. 새벽이 길어질 것 같았다.
*
안전벨트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 놓아둔 캐리어를 꺼내려는데, 잰걸음으로 나를 앞서 간 이모가 내 캐리어를 꺼내주었다. 나는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아 당기며 감사의 표현으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이모.”
“집 안도 같이 둘러보고 하면 좋을 텐데….”
“여기까지 같이 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요, 뭘. 어서 가요. 늦겠어요.”
“아이구,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착하구 예쁘냐. 처음이라서 많이 낯설겠지만, 우리 여주는 예쁘고 싹싹하니까 적응 잘 할 거라고 믿어.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알았지?”
“네.”
내 머리를 톡톡 두어 번 쓰다듬은 이모가 휙휙 손을 흔들며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모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가려고 했지만, 이모는 내가 먼저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듯 시동만 건 채 차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먼저 출발하라는 뜻으로 썬팅된 자동차 창문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모가 갈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을 심산이었다.
“이모 늦어서 먼저 간다! 힘들면 연락해! 알았지? 안 힘들어도 연락하고! 안부 카톡 매일매일 보내라!”
창문을 열고 할 말을 따박따박 내뱉은 이모가 차를 몰고 꽤 빠른 속도로 길목을 벗어났다. 이모의 자동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캐리어를 고쳐 쥐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나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도울고 신입생?”
“…아, 네.”
눈도 크고 키도 큰, 동그랗게 생겼지만 왠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앞으로 머물게 될 집에 도울고에 합격한 나랑 동갑인 남자애가 있다고 했는데, 그 남자애가 쟨가 보다.
“….”
“….”
…숨 막히게 어색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던 차였다. 어느새 성큼성큼 내 앞까지 걸어온 남자애가 내 캐리어를 한 손으로 들었다. 나는 얼떨결에 캐리어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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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안녕하세요! 여러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행복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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