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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花樣年華)  

- 잡아줘 (Hold Me Tight) 

  

 

  

18살 그리고 27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너와 함께 했던 9년의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고 대답할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주일 전에 헤어졌지만 네 말대로 우리는 예쁘게 헤어졌다. 

너의 눈물맺힌 얼굴도 예뻤으니까. 물기 어린 목소리도 청아했으니까. 

치마를 입은 너의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새로웠다.  

분명 내 기억엔 어깨에 머물렀던 머리가 어느새 길어져 뒷모습이 예뻤다. 

하필 헤어지는 날에. 

  

정말 .. 하필 헤어지는 날에. 

  

- 

  

" 야 김석진. 마셔. " 

" 어어, 안돼. 이 새끼 어제도 진탕 마셨어. " 

" .. 병신. " 

  

친구가 건내다가 만 술잔을 받아 한번에 들이켰다. 

헤어지고 한 번도 쉬지않고 들이켰던 술 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씁쓸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면 바로 니가 보여서 그런가 보다. 시끄러운 곳을 싫어해서 이런 술집도 안 오던 네가 이 곳에 있어서 그런가 보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밝게 웃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래, 나도 알아. 나 존나 병신인거. 

  

" 그만 마셔. 너 몸 생각 좀 해라 제발. " 

" 야. 우리가 네 눈치를 봐야겠냐? 그리고, 성이름 그만 쳐다봐 새끼야. 너때문에 동창회 분위기 거지같아. " 

" 아 좀 조용히 좀 해. 그니까 내가 안 나온다고 했지. " 

 " 성이름이는 나온다니까 너도 좀 나오라고 한거지. 네가 피할 이유가 뭐있냐? " 

  

나오지 않겠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 나한테 뭐라하는 친구놈들이 괘씸했다. 

이럴거면 집에서 잠이나 더 자게 내버려 두던가. 

너를 따라 조용한 곳만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시끄러운 곳이 싫어졌다. 안그래도 네가 신경쓰여서 피곤한데.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는 순간 너와 눈이 잠시 마주친 시선에 네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친구들과 웃으며 얘기한다. 

몇일만에 마주친 너의 눈일까. 아주 잠깐이였지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였다.  

  

" 성이름 좀 그만 봐. 미친놈아. " 

" .. 맞아. 미친놈. " 

" 그래. 이 미친새끼야. 성이름이는 저렇게 웃는데 넌 뭐냐? 이젠 정신 좀 차려라. "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난 뭐냐. 이름아 넌 어떻게 그렇게 내 앞에서 웃냐. 

그렇게 보고싶었던 너의 얼굴인데 왜 이렇게 힘드냐. 널 보고만 있어도 힘들까. 왜. 

  

" 야. 나 그냥 간다. " 

" .. 어휴. 그래 차라리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는 민윤기에게 휘휘 손을 저으며 일어섰다. 

이 곳에서 나갈려면 너의 옆을 지나가야 한다. 자연스럽게 가자. 그래, 이미 넌 나한테 신경도 안 쓰는데 나 혼자 뭐하는거냐. 

찌질하게, 헤어질 때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쿨한 척 하고 성이름이한테 상처 줄거 다 줬으면서 이제와서 너한테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 어? 김석진 벌써 가? " 

" 아.. 약속 있어. 지금 좀 늦어서 가야 돼. " 

  

자연스럽게 나가려는 나의 생각은 너의 친구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너는 그저 고개를 푹 숙여서 나를 대놓고 피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약속있어서 나가는거 아닌데. 속으로 자조적인 웃음 지었다. 

대충 간다고 인사를 한 뒤 뛰어가듯 걸어 나왔다. 겨울이라는걸 광고하기로 하는 듯 매서운 칼바람이 내 얼굴을 베어가며 불었다. 

  

" 아 .. 담배. "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담배를 놓고온걸 깨달아서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네가 문을 열고 나왔다. 

  

" 석진아! " 

  

아, 멀다. 네가 멀게 느껴졌다. 헤어지기 전에 하루도 빠짐 없이 들었던 네 목소리가 섞인 내 이름이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네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손에는 내 담배곽을 들고 나에게로 걸어왔다. 

머리가 터질것같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건 헤어지는 날 이후로 처음인데. 너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건가. 

  

" 이거 떨어져서 .. " 

  

담배곽을 건내는 너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던 너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어딘가 헬쓱한 얼굴과 튼 입술. 푸석한 손. 

아, 너도 힘들구나. 우리의 8년을 지우기엔 너도나도 아직 멀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네가 괜찮았으면, 그랬으면 나도 쉽게  널 지울 수 있을텐데. 

  

" 담배 .. 다시 피는거야? " 

" 아.. 어. 왜 나왔어. 내가 가지러 갈려고 했는데. "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떨리는 손을 감추며 네가 건낸 담배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더 할 말은 없겠지 싶어서 그때처럼 뒤 돌아 걸어갈려했다.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감춘 그 날 처럼. 

  

" 석진아. " 

" ... " 

" 나 아직 많이 불편하지?" 

" 아, 뭐.. 별로. 우리 네 말대로 천천히 친구 하기로 했잖아. " 

  

병신. 친구는 지랄. 

  

" 아 .. 그렇지. 친구. " 

  

내 스스로 나를 후벼파는 말을 해버렸다. 

네가 나한테 상처를 주기 전에 내가 너한테 먼저 상처를 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한테도 상처를 줬다. 

그래야 네가 날 더 쉽게 잊을것 같아서. 이렇게 너나나나 미련 남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안되니까. 

그래 그러면 안되는걸 알 면서 난 자꾸 이렇게 된다. 

  

너는 애써 웃었다. 

그래서 나도 널 따라 웃었다. 

  

18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11월의 초. 그때의 우린 이렇게 애써 웃지 않아도 웃음이 나왔는데, 

이제 다시는 그 때처럼 웃을 수 없다. 서로 그걸 알고 있음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마주보며 말 없이 서있다. 

남들은 말했다. 9년 동안 사겼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바로 어제 사귄 사이처럼 지낼 수 있냐고. 

정말 그랬나. 우린 그렇게 힘들었는데 남들이 볼 때는 우리 행복해보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석진아. 우리의 헤어짐은 예뻤으면 좋겠어. ' 

' 그게 말이 되냐. ' 

' 그래도 9년 동안 행복했잖아. 그 기억만 안고 가자. ' 

' ... 그래. ' 

' 너 나랑 헤어졌다고 해서 다시 담배 피고 그러면 안된다? ' 

' 응. ' 

' 대답만 하지 말고. 또 술 많이 마시지 마. 회식할 때는 2차 까지만 가고.' 

' 울지마. ' 

' 안 울어. 안 울거야. 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 

' ... ' 

' 우리 친구하자. 솔직히 니가 없는 나는 아직 상상이 안되거든. 그러니까 우리 천천히. ' 

' ... ' 

' 천천히 ... 친구로 돌아가자. ' 

  

  

  

  

내 앞에서 서있는 너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의 마지막이 생각이 났다. 

미친듯이 울었으면서 안 운다고 하는 너를, 나는 안아줄 수도 없었다. 

  

  

  

  

' 나 솔직히 걱정 돼.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잖아. 옆에 챙겨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 

' 성이름. 나 못 달래줘. 울지마.  ' 

' 그니까, 우리 진짜 친구로 돌아가면 그때 나보다 더 좋은 여자만나서 결혼도 하고. ' 

' ... ' 

' .. 아. 너도 나한테 하고 싶은 말 해. 나만 이렇게 말하니까 .. 좀 민망하네. ' 

' ... 이름아. ' 

' 나한테 할 말 없어? 그건 좀 서운한데 ' 

' 성이름. 제발 그만 울어라. ' 

' ... 아. ' 

' 응? 제발. 누가보면 네가 실연당한 줄 알겠다. 네가 예쁘게 헤어지자 해놓고 그렇게 우냐. ' 

' .. 미안.' 

' 알잖아. 나 너 울면 아무것도 못해주는거. 이제 진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이인데 네가 이렇게 울면, ' 

' ... ' 

' 내가 그냥 네 말대로 그래. 친구하자. 이 말이 나올거같아? 너 나 몰라? ' 

' 친구 .. 해주라. 마지막이잖아. 내 소원이야. ' 

' 하.. 그래. 네 말대로 해줄게. 천천히 친구 하자. ' 

  

  

  

그래. 그때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말에 욱해서 그러면 안되는거였다. 

아니, 이제 와서 뭘 어떡해. 다 끝났는데. 

  

다 끝인데. 

  

" 들어가. 춥다. 너 감기걸리면 일주일 내내 고생해. " 

" 석진아. " 

  

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그 때 생각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코끝이 빨개지고 눈가가 젖어 올라오는 너를 안아줄 수 없으니 너는 보내야만 한다. 

네가 나를 계속 붙잡아도.너는 또 나 때문에, 나는 또 너 때문에 힘들어 질테니 천천히 친구로 돌아가야만 한다. 

  

" 이름은 이제 그만 부르고, 들어가. 너 들어가는거 보고 갈게. " 

" .. 아니야. 너 먼저, " 

" 고집 부리지 말고. 들어가. " 

  

너의 뒷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나는 자꾸 너를 보낸다. 보내기 싫어도 보낼 수 밖에 없는 사이라서. 

  

" .. 응. 들어갈게. 조심히 가. " 

" 그래. 연락하고.. 우리 친구잖아. " 

  

너는 고개를 끄덕이고 뒤 돌아 걸어 갔다. 그리고 나는 그 뒷모습을 하나하나 새겼다. 

다시 어깨선으로 올라간 머리와, 마지막과는 다르게 내가 좋아하는 청바지를 입은 너의 모습. 

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나는 계속 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연락은 평생 못할것같다고. 

  

  

  

  

  

  

  

*** 

  

새벽에 삘 받아서 노트북 키고 부랴부랴 쓴 글입니다.. 따끈따끈해요 ㅋ.ㅋ 

노트북이라서 사진이 없네요 ㅜㅜ 죄송합니당.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십사.. 하는 바램 ... 

결말은 열린 결말 입니다. ㅎㅎ 

감성 젖은 새벽 되시길 바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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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96.9
흐헝... 석진이와 여주 둘 모두 서로를 잊지 못 한거같은데 너무 안타깝고 슬프네요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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