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억울해애, 낮까지만 해도, 만나자고 조르던 새끼가!"
"원래 그런 남자들 많다. 그 새끼 얼마 안 있어서 후폭풍 올 거야."
"제발 후회했으면 좋겠다. 나쁜 새끼...!"
"그만 마셔! 어디 병나발을 불ㄱ...."
"우욱, 웁."
"미친아, 화장실 저기!"
4병째 소주를 병나발로 불다 결국 밀려오는 구역질에 화장실을 찾아 달려갔다. 하지만 달리는 건 내 상상속에서만이었는지 몇 걸음 못 가 근처 테이블에서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우웩-."
"악, 저거 저럴 줄 알았어. 죄송해요, 어떡해. 너 빨리 일어나!"
"어...? 김여주 씨?"
"여주 아세요?"
"회사 동료입니다. 이런 데서 뵙네요."
"그럼 나중에 얘한테 꼭 세탁비 받으세요. 지금은 보다시피 상황이..."
"괜찮습니다. 택시 잡아 드릴게요. 데리고 가세요."
"앗,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감사합니다."
"김태형 개새끼. 흑, 서현아아."
"어우, 입부터 좀 닦자. 울지 말고!"
"끅... 김태형 말이야, 진짜 나쁘다."
"그만 말하고 나가자, 좀."
"제가 잡아 드릴게요. 택시 큰 길에 있을 테니까 나갑시다."
"죄송해요, 옷은 어떻게... 많이 더러워지셨어요?"
"겉옷에 조금 묻은 게 다예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죄송합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핑핑 도는 세상에, 주제할 수 없는 몸을 옆에 있는 무언가에 기댄 채 엉엉 울며 어딘가로 끌려 간 것은 기억이 나는데, 왜 눈을 감았다 뜨니 대낮인 건지.
문을 열고 나와 부엌으로 가니 우리 집에서 잔 건지 서현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문서현, 어떻게 된 거야?"
"일어났냐? 너 월요일에 아주 회사 가기 싫을 거다."
"갑자기 웬 회사? 나 필름 잘 안 끊기는데 집에 온 게 기억이 안 나냐, 왜."
"푹 주무셨으니까 기억이 안 나지! 술집에서 토도 거하게 하시고."
"토? 알바생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너 나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겠다."
"미안할 것도, 고생한 것도 다 민윤기 씨지. 너 밥이라도 사야겠다."
"민윤기 씨를 네가 어떻게 알아? 그 사람이 왜 고생을 해?"
"일단 이거 처먹으면서 얘기해. 먹다가 쪽팔리다고 뛰어내리진 마라."
그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일 뿐인 민윤기 씨 얘기가 왜 나오는 건지. 그 사람과 접점이라곤 같은 회사란 것밖에 없고 부서도 다른데.
곧 서현이에게 들은 이야기에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나 미친 걸까. 나 어떻게 회사 가? 자살이라도 할까?"
"그럴 줄 알았다. 근데 그 사람 되게 잘생겼더라. 목소리도 좋고, 매너도 있고."
"그게 중요해, 이 얼빠야? 나 회사에서 되게 점잖은 척한단 말야."
"애인은 있대? 나 소개 좀."
"악, 내가 너랑 무슨 얘기를 하겠냐. 빨리 집이나 가."
뭐라고 사과해야 하지. 번호도 없는데 포스트잇에 남길까. 민윤기 씨, 어제 얘기 들었습니다. 제가 실례를 한 것 같은데 세탁비 청구해 주세요. 아니야, 아니야. 그냥 얼굴 보고 말해? 아냐, 그게 더 힘들겠다. 아, 원래 술 먹어도 일 안 저지르는데, 이게 다 김태형... 그 개새끼...... 잠시 잊고 있었던 김태형이 떠올라 버렸다. 어제 김태형에게 삐쳐 있던 나는 종일 김태형에게 단답만을 했고, 만나자는 말에도 약속이 있다며 거절을 했었다. 그래도 김태형은 계속 보고 싶다며 잠시만 보자 졸랐었지. 4번째 부재중을 남겼을 때 이제 슬슬 용서해 줄까 하는 생각으로 뭐 하냐며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고는 한 시간 넘게 답이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도착한 메시지는 '헤어지자' 한 마디. 당황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미안해서 목소리 못 듣겠다며 끊어 버리고는 메시지로 장문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