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한가운데 핀 모란 (부제 : 꽃이 피고 지듯이)
pro.
“화중왕. 모란이라.”
“…”
“그대의 이름이 모란이라고.”
길고도 지루하며 복잡하기가 이를 데 없던 가례는 해가 뜰 때 시작하여 해가 질 때가 되어 서야 끝이 났다. 하루 종일 무거운 가채를 쓰고 불편한 혼례복을 입고 가례를 올리던 모란은 피곤하였지만 그녀의 처소로 자신의지아비가 들어오자 그런 마음이 싹 달아났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지아비를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숙였다. 평생 밖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흰 피부. 남자다운어깨. 날카롭고 서늘한 눈. 작은 얼굴에 옹골종골하게 들어찬 이목구비. 참으로 잘난 사내이다.
모란의 앞에 앉아 있는 이 자는 그녀의 지아비 되시는 자임은 분명하다. 이자라고 칭해서는 안 되는 화국의 황제이나 이렇게 취해 있으니 뭐라고 불러도 모를 듯 하다. 황제는 처음이라고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란을 힐끗 보고는 거만하게 앉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다. 황제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리 보니 알만하다. 모란. 황제가모란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낮은 저음으로 뱉는 그녀의 이름이 처소에 울리자 살면서 평생을 들어 왔던모란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처음으로 낯 설게 느껴졌다. 모란이 살짝 고개를 들자 그는 여전히 거만하게앉아 모란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대와… 퍽. 어울리지 않는 군.”
황제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모란을 쳐다보고 말하였다. 그녀의 얼굴은수치심에 벌개졌다. 그는 모란의 얼굴이 벌개지던 말던 그녀를 앞에 두고 술만 연거푸 들이켰다.
"저렇게 발발 떠니.. 아직 애구나."
"..."
"초경은 하였느냐?"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에는 술잔을 놓지 않은 채 물었다. 황제의 시선이 모란의 몸의 위 아래를 훑는다. 그 시선을 느낀 모란은 두려움에 몸을 더욱 벌벌 떨며 고개를 저었다.
"저리.. 사시나무 떨듯 떨기만 하니.. 어디 죄책감이라도 들어 잡아먹기라도 하겠느냐?"
황제는 한숨을 쉬고는 술병을 챙겨 일어섰다. 혼자 남겨진 모란을 뒤로 하고 황제는 그가 아끼는 다른 여인의 처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