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그건 유독 태용에게만 모순적인 악기였다. 때로는 절망 끝에 몰린 태용에게 주어진 한 가닥 동아줄이 되었고, 또 때로는 기껏 삶의 희망 끈을 부여잡고 일어선 그를 캄캄한 절벽 끝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 내몰린 태용에게는 피아노 건반 외에 잡고 버틸 것이 없었고, 그는 매번 속아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감정의 상하향 곡선을 그려야만 했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태용은 점점 더 외로워졌고, 지쳐 갔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성숙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의 태용은, 다 곪아 버린 불안감을 억지로 감추며 살아가던 태용은, 사실은 누구보다 서투르고 미숙한 소년이었는데도.
음이나 색, 향을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화려하다. 무대에 섰을 때의 작위적인 화려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삶 또한 나름대로 다채롭다는 뜻이다. 그리고 재현은 그것이 예술가들이 조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 저 음악은 잘 몰라요." 조화로움, 태용은 재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내린 정의가 꽤 마음에 들었다. 제 감정을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태용은 타인의 감정 또한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는 곧 연초에 억지로 이어 붙인 관계의 균열로 이어졌다. 마침내 태용이 흑백의 건반에서 눈을 뗐을 때는 오직 재현만이 남아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굳이 손을 뻗어 잡으려 하지 않아도 늘 태용의 느리고 위태로운 발걸음을 살펴 주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재현은 태용의 뮤즈였으며, 동시에 조화의 상징이었다. 온통 흑과 백만이 가득하던 세상에 싹이 트듯 색이 번지는 것을 느낀 태용은, 비로소 스스로의 삶이 예술적이라고 믿게 되었다.
다른 학년의, 그리고 상반된 성격의 둘이 붙어 다닌다는 사실은 쉽게 가십거리가 되었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학교가 작은 것도 한몫했다. 소문을 내는 것은 주로 재현의 친구들이었는데, 재현이 갑자기 우울한 분위기의 태용만을 챙긴다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괴소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신기하게도 재현이었다. 평생 남의 일에 나서 본 적이 없는 태용은 그런 재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혼자 하는 고민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었고, 당장 자신의 마음 하나 종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태용은 재현에게 답을 요구할 정도로 뻔뻔하지 않았다. 그래서 태용은 그냥 눈을 감고, 더 이상은 쓸데없는 일들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방관자의 탈을 쓰고 인내의 시간을 거치자 모든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태용은 스스로의 변화를 일찍 알아챘다. 그는 분명히 더 예술적인, 그리고 덜 폐쇄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그가 단조로운 흑백의 삶을 살아온 것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서도, 스스로 다른 것들과의 접촉을 거부해서도 아니었다. 이는 단지 그의 세계 내부에, 그의 수용 범위 내에 색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번 벌어진 틈은 닫히지 않았고, 따뜻한 색들이 물밀듯 밀려오며 태용을 잠식시켰다. 태용이 형형색색의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서로 잘 어우러진 어떤 것을 보고 조화롭다고 일컫곤 한다. 지금의 태용은, 가장 사랑하는 악기를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는 태용은, 알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누군가를 뮤즈라 칭할 수 있는 태용은 온전히 성숙하며, 눈부시게 조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