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두번째 달
김 훈 대감 마님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제 앞에 앉아 있는유 현의 힘없는 표정이 이 일이 진정 꿈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이 굳어진 것은 김 훈도마찬가지.
"아니, 원래 우리 집안과 혼인을 하기로 말이 다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모란이를 간택에 올린다는 말입니까?"
"선 황제의 유훈이랍니다..."
선 황제. 현 황제의 삼촌. 그는군신관계를 벗어나 유 훈의 아버지를 벗으로 여기었다. 유 훈의 아버지를 아끼는 마음이 남달랐던 선 황제는 굳이 자신의 뒤를 이을 황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조카들과 유훈의 자식들을 이어주려고 하였다. 그 말이농인 줄로만 알았던 유 훈의 아버지는 그 사실을 굳이 유 훈에게 전하지 않았고, 선 황제는 그 약조를진정으로 여기고 유훈을 남겨 이 사단이 난 것이다.
간택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열일곱. 폭군이라고 불리는 전 황제에게 비가 없었던 이유도 모란이 나이가 다 차지 않아 간택에 참여할 수 없어서 애초에간택을 열지 않은 것이었다. 현 황제 역시 선 황제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유훈을 거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도 역시 황후가 없었던 것. 모란의 나이가 열일곱이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진 금혼령. 열일곱부터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화국의 법이 원망스러워지는 김훈 부부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모란을 황후를 만들기 위한 일이 었음을… 황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 일을.. 모란이도 아오?"
"아니오, 모릅니다."
"허면.. 이 사실을 어찌 아이들에게 전해야 한단 말 입니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김 훈과 유 현. 서로를마주하기만 하면 부끄러워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땅이나 손끝만 바라보던 풋풋하게 피어나는 사랑에게 어찌 거역할 수 없는 이별을 통보하라는것인가. 정말 자신과 혼인할 상대가 모란이 맞냐며 몇 번이고 김 훈의 방으로 뛰쳐 들어와 묻던 김태형. 옆에 서기만 해도 얼굴이 붉어져 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떨던 유모란. 그들의사랑이 제 펴지도 못하고 사라져야만 하기에 두 사람은 무거운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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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녕 사실입니까.."
태형의 집을 다녀왔다던 유 현이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앉히고한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간택에 오를 것이니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니.. 농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유 현의 진중한 얼굴과 뒤이어 선 황제의유훈이라는 말에 이것이 농이 아님을 알았다. 자신이 삼간택에 내정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모란은 하늘이무너지는 줄 알았다. 삼간택이라면.. 그녀는 설령 간택에서떨어지더라도 태형의 곁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삼간택에 오른 여인은 설령 황후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황제의 여인이라는 이유로 혼인을 금했기에..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 인가. 방금 까지 자신의 지아비가 될 사람이라고굳게 믿은 사람을..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에 모란은 어지러웠다. 나는어찌해야 한단 말 인가. 저잣거리에서 금혼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황후가 되는 불쌍한 이가 누구일지연민을 하였더니.. 그 벌인 것 인가. 그 불쌍한 이가 자신이되게 생겼구나. 그녀를 감싸는 운명이 너무 가혹하여, 태형을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이 불쌍하여, 혼자 남겨질 아버지가 안타까워,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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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말도 안 되는 처사입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한 것은 태형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고생각하였더니 손에 닿아도 바스라질 것 같아 늘 소중하고 귀하게 여긴 여인이었다. 철 모르던 어린 시절. 지금은 죽은 자가 된 모란의 오라비와 마당을 뛰어 놀던 시절. 그시절부터 창에 언뜻 언뜻 보이던 모란이 늘 궁금해 그녀의 오라비에게 늘 그녀에 대해 묻던 태형이었다. 그것이시발점이 되어 피어난 그녀에 대한 연정.
그는 몇 년 전에 처음으로 모란의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함부로 손도 잡지 못했던 여인이었다. 그녀에게 닿아 본 것은 며칠전 그녀를 성난 말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어깨를 감싼 것이 다였다. 그 처음이 마지막이 되고야 만 것인가. 그 날 그녀를 바래다 주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늘 그대를 생각했다는 말, 그대와 혼인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 혼인하고 나서 그녀를 품에 안고 매일 말해주겠노라 하고 발걸음을 돌렸었다. 그 말들을 평생 하지 못한다는것 인가. 태형의 모란에 대한 마음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김 훈 내외는 두려웠다. 그 사실을 전해야만 했던 그들의 마음이라고 결코가벼웠을 리 없다.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녀는.. 모란은.."
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는 김 훈 내외는 정말 고통스러웠다. 선 황제는 왜 그런 유훈을 남겨서.. 이렇게 한 청년의 순수한 연정을무너뜨린단 말 인가. 실로 잔인하기 이를 바 없다.
황제에게 여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양반가의 자제는 이 화국에 없을 것이다. 일홍이라는 여인. 현 황제의 연인.그녀의 소문은 좋지 않았다. 현 황제의 개국공신의 딸인 일홍은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나 그녀의투기 또한 실로 유명했다. 황제와 하룻밤을 보낸 궁녀나 기녀들을 그 다음날 자신의 처소로 데려와 옷을홀딱 벗긴 후 매질을 한다던가 다른 사내에게 희롱하도록 한다는 소문이 자자 했다. 또 황제의 천하가 마치 저의 것인양 행동하는 모습이 방자하기 짝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힘으로 황제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황제는 일홍에게 푹 빠져 그들의 정분이 불 같다 하는데.. 모란. 그녀가 황후 자리에 앉는 다면 일홍의 투기를 견디기가 힘들 것임은 분명했다.그리고 황제의 눈이 매우 높아 이제 갓 성인이 된 모란이 황제에게 차지 않을 것 또한 당연했다. 궁에들어가 차디 찬 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궁에 들어가 뒷방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모란이만 허한다면.. 그녀를 데리고 화국을 떠나겠습니다."
태형은 절박했다. 자신에게 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녀는그렇게 소박맞을 여인이 아니다. 자신에게 와야만 하는 여자지만. 설령자신에게 오지 않는다고 하여도 저보다 잘난 남자여야만 했다. 물론 현 황제가 이 화국의 지존임은 틀림없다만저보다 그녀를 잘 돌봐주고 아껴줄 수 있을까? 그녀에게 자신보다 더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그녀가 자신을 아껴주지 않을 남자에게 가는꼴을 어찌 멍하니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 인가.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큰 결심을 한 듯 무겁게 이야기하는 태형의 모습에 기겁을 하는 김 훈 내외. 그들은 얼른 자신의 아들을 말렸다. 간택에 오르기로 한 여인을 데리고화국을 떠난다니.. 이 일은 황제의 여인을 데려갔다는 이유로 엄벌에 처해질 수 있었다. 삼대가 멸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조상들의 묘까지 파헤쳐 질 수도 있었다.김 훈 내외는 무서운 결정을 내리는 그의 아들을 뜯어 말렸다.
"그럼.. 저의 마음이 이렇게 그녀를 향하는데.. 어찌 그녀가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가는 꼴을 두고만 보라는 겁니까!"
"간택에 오르는 것 뿐.."
"삼간택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끊고 소리를 지르는 태형. 분이 가라 앉지 않은 듯한 그의 두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흘렀다. 은애하는 여인. 그녀를 제대로 안아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 보내야한다는 것 인가. 그녀가 없어도 자신이 과연 살 수나 있을까? 그는허탈하게 자리에 주저 앉았다. 시간이 흘러 그녀가 간택령을 받아 그녀의 집에 화려한 가마가 왔음에도그는 그 자리에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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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며칠. 깨어나자 마자 아버지에게 마음에 다른 사내가 있다며 어찌 황제를 지아비로 맞겠냐며 저는 갈 수 없다고 며칠을간청하던 모란. 허나 유 훈은 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태형에 관한 소문을 접한 모란은 태형이 걱정이 되었다. 집 앞에 도착한 화려한 가마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를 봐야만한다. 그에게 꼭 얼굴을 보고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러나유 훈이 막았다. 미련을 버리라는 뜻이었겠지. 결국 체념한모란은 가마에 오르기 전에 자신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꼭 들려주었다. 연서라면 연서일 것이다. 그를 향해 지금까지 전하지 못한 말을 담은 이 편지.
"태형... 꼭 그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꼭 건강하셔요."
그녀를 태운 가마가 궁을 향해 떠났다. 떠나가는 가마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유 훈은 머리를 짚으며 태형의 집으로 향한다.
*아마도 많이 느리게 굴러갈 예정.. (등장인물이 다 등장하지도 않았어요..ㅜㅜ)
*읽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오타지적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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