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화제 진압 완료되었습니다!!"
화제로 인해 발생한 짙은 연기를 뚫고 상황전달을 위해 호원에게 잽싸게 달려온 우현이 제 볼에 진득하게 흐르는 땀을 소매 끝으로 쓱 닦아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거리며 달려온 우현이 기특한지 호원은 우현에게 앉으라는 듯 담배 하나를 건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털썩 주저앉으며 담배를받아입에 문 우현이 익숙하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탁, 탁하는 소리와 함께담배에 불을 붙이는게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된다는 듯 우현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호원이 이내 우현의 어깨에 뿌옇게뭍은 재를 툭툭 털어냈다.
"어때? 사망자는 없었고? 또, 우현 씨 다친 곳은 없고?"
"당연히 없죠, 반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조심 또 조심!"
겨울엔, 비 오는 날을 빼고는 늘 날씨가 건조하기 때문에 항상 화제 사고가 잦다는것을누구보다 잘 아는호원이었기에우현과 호원을 비롯한 3팀 구조대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큰건물 상가에서 일어난 이번 화제는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발 빠른 3팀 구조대에 의해 손쉽게 진압되었다.
"우현 씨, 이제 가야죠? 지금 벌써 새벽 3시야"
호원이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며 시커먼 재가 묻은 손을 툭툭 털어내었다. 피곤한 듯 말끝을 흐리는 호원의 눈 밑엔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지 오래였다. 야간근무를 하다 보면 자다가도, 심지어는 샤워하다가도 비상벨이 울리면 바로 소방복을 입고 재빨리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피곤을 잊으려 무거운 눈꺼풀을 질끈 감아보는 호원을 바라보며 푸우- 하고 한숨을 쉰 우현은 아까 건물주가 고맙다며건네준 캔 커피를 호원에게 내밀었다.
"뭐예요… 이게?"
"아시다시피 캔 커피에요. 피곤해 보이시는데 쭉 들이키세요!"
눈웃음을 흘리며 커피를 건네는 우현을 보며 호원은 우현이 참 밝고 싹싹한 친구라고 생각했다. 호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우현이 건네준 캔 커피를 응시하는데, 우현의 휴대폰에서 요란하게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의 액정에 떠있는 이름을 본 우현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가 단번에 지워졌다.
빠르게 사라지는 미소로 보아. 분명, 항상 웃으면서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우현에게도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호원은 대충 짐작할수 있었다.
"여보세요?"
[우현 씨… 지금 호원 씨랑 같이 있죠?]
"네"
[빨리 와요. 지금 다른 직원들 당신네 때문에 차 출발 못하고 있잖아, 안 그래도 전부 다 피곤해하는데.]
"네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팍 끊어버린 우현의 표정이 똥이라도 씹은 듯 바싹 구겨졌다. 호원이 눈을 치켜뜨며 왜? 하고 물어보자 우현은 김 팀장이에요, 빨리 오래요 하며 얼굴에 다시 미소를 띠운다. 가식이 묻어나는 우현의 웃음에 응답하듯 호원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커피, 고마워. 하고 먼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을 열어놓고 깜빡 잠이 든 건지 아니면 누군가 열고 나간 건지도 모를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사무실로 들어오는 바람이 서늘하게 찼다. 그 서늘한 기운에 깜빡 졸다가 깬 우현이 습관적으로 제 입가를 슥슥 닦아낸다.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턱을 괸 체 한참을 그렇게 넋을 놓고 허공을 바라보다 이내 잠을 깨려 식은지 오래인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켰다. 찬 기운이 도는 사무실에는 우현밖에 없었다. 직원들 모두 사내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을 것이었다. 텅 빈 사무실을 눈으로 대충 훑으며 밥을 먹으러 갈까 말까 고민하던 우현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사무실 한쪽에 우현의 시야로 들어온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띈다. 의자에 앉은 체 요리조리 움직이는 머리통은 책상 선반에 놓인 여러 서류들을 정리를 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팀장님?"
"...."
"김성규 팀장님."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깜짝 놀란 듯 성규의 몸 전체가 움찔하며 곧바로 날카로운 시선을 우현에게 쏜다. 그게 또 웃겨서 우현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린다. 하여간 저 인간 은근 겁이 많다니까. 입 밖으로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을 꾹꾹 눌러 삼킨 우현이 커피 한잔하실래요? 하고 친근하게 굴어댄다.
"난 됐어 우현 씨나 많이 드세요"
"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
"근데, 팀장님?"
묘한 신경전에 대화가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성규는 이제 약간 귀찮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은 체 눈동자만 굴려 우현을 본다. 그 모습이 마치, 저를 째려보는 것 같아 혼자 뜨끔했지만 우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싱글벙글 미소를 띤다. 성규도 궁금하기는 한 모양인지 손은 열심히 서류를 뒤적이면서도 눈은 올곧이 우현을 향한다. 대답을 재촉하는 듯 성규의 눈이 조금씩 가늘어진다.
"왜 밥 안 드시러 가세요?"
"...."
우현의 질문에 성규의 귀 끝이 붉게 물든다. 복숭아 마냥 붉어지는 귀에 우현은 어리둥절해졌다. 뭘 잘못 말한 건지 자신이 방금 전에 한말을 되짚어보는데 작은 목소리로 뭐라고 웅얼거리는 성규에게 못 들었다는 듯 우현이 눈을 치켜뜨자 이번엔 목소리에 힘을 실은 대답이 들려온다.
"완두콩 밥 나와서,"
"...?"
"아까 호원 씨랑 식당 갔는데, 오늘 메뉴가 완두콩 밥이라서 안 갔어요"
"아 그러시구나.."
"나, 콩 싫어하거든,"
가식적으로 짓는 미소가 나오기 전에 픽 하고 코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이 서른을 넘어가는데 완두 콩밥이 싫다고 투정이라니, 분명히 사내식당에 메뉴판을 본 뒤 풀죽은 얼굴을 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을 성규가 눈앞에 선하게 보였다. 의도치 않게 성규를 비웃는 것 같은 상황이 돼버려 당황한 우현이 한껏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려 애를 쓰는데도 계속 비실비실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아니.. 팀장님 그게 아니라"
"...."
"그러니까.."
"웃겨요?"
"아니,은근히 팀장님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우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규는 일부러 탁, 탁하고 큰소리를 내며 서류뭉치를 정리한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성규가 나 화장실 좀, 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의자에 풀썩 주저앉아버린 우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힌다. 사실 말을 뱉은 우현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가 멀다고 김성규와 팽팽한 신경전을 하며 서로를 미워하던 게 바로 어제였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별 헛소리를 다했는가, 아무래도 사무실에 들어온 차디찬 겨울 공기가 문제였다. 아니, 방금 마신 미지근한 아메리카노가 문제였던가. 아니면 완두콩 밥을 오늘 메뉴로 내놓은 사내식당의 잘못인가. 우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연신 제 머리를 쥐 뜯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아까 김성규한테 말을 건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아니, 백번 양보해도 귀엽다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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