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는 언덕 언저리에 유화 냄새가 퍼졌다. 유난히 버밀리언 색을 좋아하는 백현, 그리고 버밀리언 색의 중심이 되는 찬열. 남색의 마이 위로 누드 버밀리언이 칠해졌다. 나무 위로 눈꽃이 피고, 그것을 배경 삼아 앉아서 책을 읽는 찬열은 예뻤다. 붉은 표지의 책, 백현은 찬열과 퍽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검게 내려앉은 머리 위로 하얀 눈발이 내렸다. 유난히 늦게 굳는 물감에 백현은 눈을 원망 했으나 그것도 잠시, 조금씩 부피를 더하는 눈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찬열에게 집중했다.
백아, 눈 예쁘다.
뭐가 예뻐. 남이 보면 눈 처음 보는 앤 줄 알겠다.
딱딱하고, 꽤 무심한 말투였지만 찬열은 해사하게 웃었다. 코 끝이 빨갛게 오른 찬열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줄 백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백현은 마르지 못한 스케치북의 면을 뜯어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처럼 찬열이 그 손을 잡아끌었다. 다 터버린 백현의 입술을 치유하는 것처럼, 그렇게 몇 번이고 핥아내는 찬열의 목 위로 백현의 붉은 목도리가 닿았다. 몇 초의 시간에 눈에 쓸려 형태가 뭉그러진 그림을 백현은 반으로, 또 반으로 접어 자신의 가방 안으로 넣었다.
너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백현아.
백현을 하염 없이 응시하던 찬열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축 가라앉은 동공이 백현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나 말이야, 너를.. 찬열은 말을 잇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공기 중에 남아있는 유화 향이 텁텁했다. 찬열은 혼란스러웠고, 백현은 하얗게 질리도록 꾹 깨문 찬열의 입술을 걱정했다. 백현이 찬열을 안았고, 동시에 찬열의 입술이 열렸다. 널 좋아하는 것 같아. 허공으로 뇌까려진 고백은 어린 소년들의 감정을 정의하긴 힘들었으나, 그나마의 버팀목이 되었다. 입을 맞추고, 서로의 시간을 탐하는 것에 대한 허락. 한 폭의 그림 속 찬열은 더 이상 누드 버밀리언이 아니었다. 귀까지 설렘으로 물든 열 아홉에게. 버밀리언, 버밀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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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실 클찬을 중심으로 한 찬총러기 때문에 종종 다른 커플링도 올라와요. ㄷㅐ부분 조각일 거예요. 죄송하구.. 암호닉 정하셔도 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