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마치고, 대학 최종합격 발표도 났겠다. 등록금을 마련해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는 취지였다. 뭐, 사실 연예인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조금은 껴있었지만...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직업에 대한 정보글이 올라왔고, 생각보다 쉬운 길이였더랬다. 적어도, 직접 해보기 전에는.
"막내! 어디 갔었어!"
"네? 아, 저기. 민주 언니가 커피 타오라고 하셔서..."
스타일리스트 알바라고 해서 그저 옆에서 바늘 갖다달라고 하면 바늘 갖다주고, 사이즈 재달라고 하면 재주고... 그정도의 일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큰 오산이였다. 분명, 스타일리스트 알바라는게 타이틀이였는데 나는 이 곳에 들어오면서부터 막내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잡일을 도맡아했다. 커피 심부름, 담배 심부름, 하물면 지 코 풀게 휴지 좀 가져달라는 심부름까지. 좀 연예인들이나 볼 수 있으면 몰라. 매니저들의 칼같은 눈초리와 정식 스타일리스트 언니들의 눈초리는 내가 연예인 옆에 가기만 하면 당장 날 자를 태세로 경계했다. 아니, 내가 뭐. 사진이나 싸인 같은 걸 구걸하기나 할 것 같애? 적어도 내가 누구 뒷바라지를 이렇게 하는 건지 알아야 될 거 아니야!
"막내야!"
"네, 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너 오늘 계속 그 상태면 진짜 쫓겨나는 거 알지? 오늘이 제일 바쁜 날이야, 얘."
비교적 사교적인 정식 스타일리스트 언니인 세희 언니는 그나마 이 팀 안에서 나를 챙겨주는 편이였다. 아무하고도 못 어울리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던가 하는 그런 작은 것들. 연말 시상식이 있는 날인 오늘은 세희 언니도 메인 스타일리스트로써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 알바에 뛰어든지 2주차인 나에게 연말 시상식의 바쁨은 혼란에 빠지고도 남을 충분한 것이였다. 여기저기서 '막내!' 를 외치는 바람에 몸이 열두개 였으면 했다. 게다가 이 야외 대기실은 왜 달랑 천막 하나로 쌓여서 이렇게 추운건지, 정말....
"막내야. 이거 들고 저기, 옆 천막으로 가. 가서 매니저 오빠 찾아. 알겠지?"
"네? 이걸 다요? 너무 무거,"
"씁! 빨리! 옷인데 뭐가 무거워. 걔네 감기라도 걸리면 우리가 깨져. 빨리 가."
세희 언니가 내게 던지듯 쥐어준 것은 엄청난 양의 패딩들이었다. 포장도 안 뜯어진 패딩을 하나 들어 보자 내 키에 입으면 바닥에 질질 끌고 다닐만한 롱패딩이였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 내가 지금 뒷바라지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남자 연예인들이구나. 아닌가? 이런 건 여자연예인들도 입나. 아, 근데 뭐 12개 씩이나 있어! 슈퍼주니언가?
꿍얼꿍얼 거리며 패딩을 하나하나 걷어올려 팔 위로 쌓자 그게 12개나 되었을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으, 이러고 옆 천막까지 갈 수는 있으려나.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앞도 안보이는 상태로 걷다가 부딪히기라도 하면... 그래서 이 패딩들이 지금 눈으로 질척질척한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 진짜 짤리겠다. 내 등록금, 내 용돈.
"저, 저기... 좀 지나갈게요."
앞에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듯 해서 개미만한 목소리로 비켜달라고 하자,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이상한 사람을 취급한다. 곁눈질로 그 시선이 느껴지는데 왜 괜히 얼굴이 후끈해지고 난리지. 스태프증이라도 목에 걸고 올 걸 그랬나. 이러다가 진짜 이상한 사람 취급 받으면 방법도 없는데... 아까 걸리적거려서 스태프증을 목에서 빼버린게 괜히 후회가 됐다.
"여긴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여긴 좀 따뜻하네. 연예인 대기실이랑 스탭들 대기실 차별하는 것 좀 봐. 여전히 곁눈질로 옆만을 보면 게걸음으로 탁상 근처로 가서 패딩들을 올려놓았다. 허리가 뻐근한 느낌에 허리를 통통 치며, 이제 찾아야 할 매니저오빠를 부르기 위해 뒤를 돌아선 순간.
"...아... 헐."
도대체 왜 들어올 때 인기척도 못 느낀거지? 대체 왜! 아, 쪽팔려. 나 옆걸음으로 들어온 거 다 봤을 거 아니야. 아니 뭔, 남정네들이 저렇게 조용히 앉아있어? 아, 도대체 왜?
밀려오는 쪽팔림에 고개를 숙이고 주님을 외쳐대며 부끄러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아니, 패딩 내려놓고 뒤를 돌아봤는데 딱봐도 연예인으로 보이는 애들이 흰색 수트 입고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거다. 그것도 저건 뭐하는 애야, 하는 눈빛으로 하나같이 날 보면서! 대충 급하게 세어보니 8명 정도 되는 것 같던데. 잠깐, 근데 쟤네 누구야. 처음보는 애들인데. 누구지? 신인인가? 아, 나 늙어나봐.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어!
"막내. 너 뭐해, 여기서."
"으, 네? 아, 오빠. 저, 저거요. 저거 뭐지, 저게. 아, 패딩! 패딩 입히라고 하셔서. 그래서, 네. 그래서 갖고 왔는데..."
"아, 잘됐네. 쟤네 아까부터 춥다고 난리쳤는데. 알겠어. 나가봐."
지금 막 들어온 매니저 오빠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나니 그제서야 나를 보는 흰색 수트 입은 남정네들의 눈길이 다시 난로로 돌아간다. 아, 근데 한명 빼고. 쟨 뭐야, 왜 사람 민망하게 계속 쳐다봐. 으, 보지 말라고!
"네, 그럼 저 가볼게,"
"저기요!"
나 부르는 거 아닐거야. 날 왜부르겠어. 그렇지. 그냥 이대로 나가자. 눈 밟고 미끄러지지나 말고, 최대한 안 쪽팔리고 조용하게. 제발.
"안 들려요? 불렀는데."
어깨에 올려지는 손의 느낌에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엄마.... 엄마가 왜 연예인 싫어하는 지 알겠어... 나 지금 얘 눈도 못 마주치겠어. 엄마, 엄마 보고싶어. 엄마, 나 무서워. 뭐 잘못했나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 내게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하는 남자는 분명 흰색 수트를 입고 있었다. 그 말은, 진짜 연예인 맞잖아. 잠깐만, 나 무섭다고. 무서움에 머리에 뎅뎅- 종이 치는 느낌까지 일었다. 그때 반갑게 들려오는 소리는, 매니저 오빠가 이 흰색 남자를 부르는 소리였다.
"변백현! 뭐해, 임마."
"아, 형. 나 커피 마시고 싶어."
"아까도 마셨잖아."
"추울 때는 커피야, 그치 형? 형도 마실래?"
평소에 커피를 좋아하는 건지 변백현이라는 남자의 커피 타령에 매니저 오빠도 혀를 내둘렀다. 마시던지- 하는 매니저 오빠의 말에 변백현은 내 어깨를 밀며 천막 안에서 나왔다. 커피 타오라는 거였구나. 으에, 다행이다. 뭐 잘못한 줄 알았네.
"커피 타다드릴까요...?"
"응? 아, 네. 근데 몇살이에요?"
"...왜요?"
"아니, 그냥. 어려보여서."
"열아홉... 근데 이제 스물이에요."
어리다고 무시할까봐서 얼른 말이 고쳤는데 그게 웃겼던지 이 변백현이라는 남자가 웃는다. 확실히,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웃는 입꼬리가 시원시원하니, 잘 올라간다. 근데 화장 엄청진하네. 내 화장보면 비웃겠다. 아까는 눈도 못마주치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자 민망한지 얼굴을 쓸어내리며 내 어깨를 밀고 앞으로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커피 자판기 있는 쪽.
"알바하는 거에요?"
"네..."
"이거하면 돈 많이 모이나. 힘들텐데. 그치?"
반말을 하던가, 존댓말을 하던가. 아니 근데 얘는 몇살인데 나한테 반말도 하고 존댓말도 하는거야? 나랑 동갑정도 되보이는데. 커피 자판기가 팬석과는 약간 가까운 곳이였는데 그곳에 변백현의 모습이 노출되자 몇몇 알아본 팬들이 함성을 질러댔다. 경호원들이 급하게 그 곳을 막아서고, 난 당황스러워 하며 커피 자판가의 버튼을 눌렀다.
"근데 혹시. 나 몰라요?"
"네?"
"아니, 아까부터 모르는 눈치여서. 나 신인치고는 그래도 좀 나가는데."
우려하던 상황이 왔다. 자기 모르는거 알면 이사람은 자존심이 상할거고, 나는 쪽팔리게 될텐데. 아 어째야되는거야. 뭐라고 대답해야 될까요, 주님. 엄마...
"모르는 구나. 그치?"
"그게... 공부를, 열심히... 했죠, 제가."
"그냥 좀 있다가 무대봐요. 우리 신인이라서 좀 앞쪽 순서거든."
그렇게 말하며 변백현은 입에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물고서 다시 천막안으로 사라졌다. 뭐야,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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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난 세희 언니와 함께 대기실 속 작은 모니터로 그 남자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EXO. 이그조? 엑소? 이엑스오? 뭐라고 불러야 되지. 아무튼, 무대는 멋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샤이니와의 무대도 있었고. 미로틱도 멋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변백현이라는 남자는 메인보컬이나 리드보컬 쯤 되었는지 노래에서 고음 파트를 다 소화하고 있었다. 목 안아플라나. 이제 슬슬 짐 챙기고 뒷풀이 하러 가자는 세희 언니의 말에 알겠다며 짐을 챙겼다. 대기실에 남아있는 쓰레기들도 어느 정도 치우고 나서 내 개인 짐을 갖고 밖에 나왔다. 무대에서 내려왔는지 부산스럽게 모여있는 열두명이 보였다. 설마, 또 말걸진 않겠지. 지금 이렇게 보는 눈도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슬슬 지나가려는 찰나,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하는 제스쳐치고는 좀 건방진 제스쳐를 취했다.
"너, 잠깐 와봐요."
망손이가 저질렀네요 |
두번째 스레기 갖고 와서 죄송해요....백현이 짤이 예뻐서 예쁜 글 쓰고 싶었는데 이건 뭐 딱히 로맨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포인트라면... 우리한테 관심보여주는 백현이? 작업 걸어보려고 하는 백현이? 쯤 되겠네여...... 흐읍 죄송해여 시험 끝나고 더 성의있게 써서 다시 컴백할게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