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0214,더 파라디(The paradis) 02.
02. 천사
우현이 뚱한 표정으로 좁은 거실 안을 뱅뱅 돌고 있었다. 내가 진짜 무슨 거지 새끼인 줄 아나보다, 저렇게 귀가 먹은 것처럼 상종도 안 해주는 걸 보면. 무의미하게 같은 자리만 빙빙 맴돌다가, 괜히 심술이 나 남자가 있는 주방 옆 쪽에 멈춘 우현이 가까운 벽면을 발로 걷어 찼다. 아!씨발. 그래봤자 아픈 건 저의 발이었고, 제가 두번째로 다친 발을 감싸며 자리에 주저앉아 뒹굴어도 남자의 눈길은 단 한순간도 우현 쪽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슨 벽이 이렇게 딱딱해 씨발! 저가 차 놓고도 빽 소리를 지른 우현이 질끈 감았던 눈을 살짝 떠 요리하고 있는 남자의 반응을 훔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렇지, 남자는 오로지 저가 하고 있는 떡볶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치이익 거리는 소리가 얄밉게도 귓가에 들려왔다. 그의 관심을 끌어보려 억지로 오버스러운 동작을 취했던 건 사실이었기에 민망해진 우현이 입을 삐죽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엄살인 건 맞지만, 그래도 사람이 아픈 티를 내면 돌아다보는게 정상 아닌가. 치,하고 작게 소리낸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집은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했다. 좁은 거실엔 티비와 낡은 소파 하나가 전부였으며 얼핏 둘러 본 방에는 1인용 매트리스에, 얇디 얇은 홑이불 하나가 깔려 있을 뿐이었다. 우현은 티나지 않게 경악하며 요리하고 있는 그의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우현이 방을 훔쳐보던지 말던지, 하고 있는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는 마치 우현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심지어 우현이 제 면전에 대고 칫솔을 들이밀어도 변함이 없었다.
"이거 누구꺼야?"
"……."
"칫솔이 두개잖아. 누구 같이 살아?"
화장실을 둘러보다 말고, 세면대 위에 나란히 놓인 두개의 칫솔 중 하나를 꺼내어 온 우현이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성규의 눈앞에 칫속을 들이댔다. 이보세요, 안 들려?
"여자친구랑 동거…하나봐?"
동거,까지 말을 꺼내놓고 잠시 머뭇거린 우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에도 남자의 눈길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떡볶이에서 떼어지지 않았지만. 우현은 잠시 후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물어봐놓고도 실례가 되는 질문이 아닌가 해서. 우현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남자의 안색을 살폈다.
남자의 얼굴은 옅은 전등 아래에서 보니 더욱 미묘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요리를 하느라 살짝이 내리깐 눈 하며, 눈 위쪽을 덮고 있는 밝은 갈색의 앞머리는 자세히 보니 절반 정도 그을려 있었다. …불에 그을려진 앞머리라니. 완벽하게 신비롭다. 사실 그 이상한 그 모든 요소까지도 남자에게 있어서 신비감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끈덕지게 남자의 얼굴을 뜯어 살핀 우현의 시선이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아마 저가 내키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것만 같은 입술도. 거기까지 눈길이 미치자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킨 우현이 꼭, 거짓말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홱 틀었다.
"이,입에 본드를 칠했나. 왜 사람 말을 씹고 난리야."
큼,흠흠. 어설프게 헛기침을 한 우현이 기계처럼 몸을 돌려 주방을 빠져나갔다.
-
"먹어."
그렇게 삼십여분 정도 지났다고 생각했다. 벽면에 걸린 달력을 깨작이며 뒤지던 우현이 온 몸에 경기를 일으키며 화들짝 놀랐다. 언제 거실로 나온 것인지, 저가 만든 떡볶이를 간이 책상에 올려 두며 먹으라고 말한 남자가 젓가락을 무심하게 세팅하고 있었다. 우현은 저가 잡고 있던 달력에서 손을 떼고는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무심코 뒤적이던 달력 안에 빼곡히 그려져 있는 빨간색 동그라미의 의미에 의문을 품기도 잠시였다. 거짓말처럼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바로 신경을 거둔 우현이 책상으로 다가와 앉았다.
"양 존나 많아."
우현이 책상 쪽으로 몸을 당겨 앉으면서 툴툴댔다.
"개새끼 먹으라고 한 거 아냐."
넌 조금만 먹어. 어느새 한개를 쏙 집어먹은 남자가 입 속에서 우물우물 씹으면서 대꾸했다. 난데없이 들리는 욕지거리에 우현이 숙였던 고개를 홱 처들었다. 뭐? 개새끼?
"개애새애끼이이?"
"……."
"아까부터 거지새끼니 개새끼니, 말이 좀 심하시네. 그 쪽 내가 맘에 들어서 데리고 온 거 아냐?"
우현이 발끈해서 뱉은 말에, 이번에 인상을 구긴 것은 남자 쪽이었다. 맘에 들었냐고? 그 무심한 시선을 우현의 눈동자에 정확히 맞춘 그가 한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미친. 물론 아까부터 끊이지 않고 있는 욕설과 함께.
"키우던 개새끼 같아서 데리고 온 거야. 넌 이제 그것만 먹고 꺼지면 돼."
"…키우던, 뭐?"
"한달째 계속 같은 자리에서 나만 훔쳐 보고 있는데, 그게 개새끼 아니고 뭔데?"
그런 주제에 말은 많아. 한껏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우현의 반응 따윈 관심 없다는 듯 앞에 놓인 떡볶이를 다시금 집어먹었다. 그에 반해, 아까와는 달리 입을 딱 다문 우현이 남자를 소심하게 노려보았다. …알고 있었네. 계속 보고 있던 거. 세상사엔 관심 없다는 듯이 허공만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내 존재를 알긴 알았나보다. 우물거리는 남자의 입을 쳐다보던 우현이 입을 삐죽이며 떡볶이를 집어들었다. 딱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반박할 만한 꺼리도 없고, 그의 말마따나 개새끼같이 훔쳐보고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두어번 헛기침을 한 우현이 남자의 내리깐 눈을 힐끔 쳐다보았다.
"집은."
"……."
"…있었네. 맨날 그러고 있어서 거진 줄 알았더니."
"거지는 지면서."
"너거든?????"
별안간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을 쾅,짚은 우현이 씩씩거렸다. 이게 진짜, 아까부터 누굴 보고 거지래. 내가 비록 카드에 돈은 없지만 지보다 좋은 원룸도 있는데. 아까부터 바짝 약이 오른 우현이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난 지금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 살거든? 옷도 씨발, 내가 지금은 비록 이렇게 입고 있지만 그건 다,"
"어제 구한거야."
점점 볼륨이 높아지는 우현의 목소리에 인상을 찡그린 남자가 대뜸 우현의 말을 잘라먹었다. 아마 상대하기 귀찮으니까 내뱉듯이 대답한 것만 같은 뉘앙스였지만, 그의 대답에 말을 멈춘 우현이 어깨를 누그러뜨리고 귀를 기울였다.
"어제 구했다고?"
"…너 존나 단순해."
"집을 어제 구했어? 그럼 그 동안 어디서 잤고?"
"모텔."
"모텔…?"
마치 밥 먹었냐는 질문에 응.이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쉽게 나온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뜬 우현이 되물었다. 모텔에서 잤다고? 우현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같으면, 모텔에서 묵을 돈으로 집부터 얻었겠다."
"그동안은 돈 벌었어."
남자의 말에 중얼거리듯이 답한 우현은 계속 돌아오고 있는 대답에 두 눈을 깜빡였다. 아까는 줄기차게 없는 사람 취급만 해대더니, 얼굴을 마주하고 앉으니 그래도 상대는 해주네. 젓가락질을 하던 손을 멈춘 우현이 여전히 제게 눈길도 주지 않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사람이라고, 대답은 해주는 건가. 심지어 꼬박꼬박 돌아오는 대답에 슬쩍 입꼬리를 당겨 웃은 우현이 그 예리한 눈에 들키지 않게 웃음이 번지려는 걸 감추었다. 흠흠, 어디서 무슨 일 했는데?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적인 질문을 던져보며 떡볶이를 깨작인 우현이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떡볶이 한 조각을 집어들면서 대답했다.
"잤어."
남자의 대답은 여전히 무심했다.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다잡으며 우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잤냐고 안물었는데? 남자의 쌩뚱맞은 대답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히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부연설명을 기다리던 우현의 입꼬리가, 잠시 후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20."
20. 정말이지 이 대화에선 뜬금 없는 숫자였다. 이십. 남자가 뱉은 이십이라는 말을 머릿속으로 곱씹어보다가, 에이 설마. 고개를 갸웃거려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은 것은 허탈한 목소리가 잔뜩 묻어나는 물음 뿐이었다. …아줌마…들이랑?
먼저 그런 뉘앙스의 말을 꺼낸 것은 본인이었으면서, 우현의 물음에 인상을 한껏 구긴 남자가 한껏 굳어있는 우현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그러기도 잠시,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것인지 우현을 노려보던 눈을 거둔 남자가 마악 떡볶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너 성매매해???????"
소리나게 젓가락을 팽개친 우현이 대뜸 소리를 쳤다.
"20만원??????"
…이 새끼 아까부터 볼륨 조절 엉망이네. 우현의 큰 목소리에 급기야는 짜증이 치민 듯, 삐딱하게 고개를 처들은 남자가 말했다. 씨발, 반말하지 마. 남자가 으득, 이를 갈았다. 아까부터 너,너 거리는 거, 어차피 다신 안 볼 사이라 봐주고 있었는데 거슬려 죽겠네. 그러나 저의 말은 들은 것인지 만 것인지, 충격 먹은 표정 그대로 추궁해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우현을 본 남자가 허,하고 실소를 내뱉었다.
"대답해. 진짜야? 너 막, 그러니까 막, 자…자고 다녀?"
"반말하지 말라고."
"이, 이십."
"나랑 자고싶냐?"
여태번까지의 톤과는 다르게, 어딘가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자고 싶냐고. 재차 쏘아붙이는 남자의 말에 말문이 막힌 우현이 대답하는 것도 잊은 채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꿍한 눈으로 우현을 노려보던 남자가 은근히 격앙되었던 기분을 억누른 채 다시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근데 안 자."
"……."
"개새끼랑 자는 사람이 어딨어."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남자가 잡고 있는 단어는 개새끼,라는 욕설이었다. 우현이 한동안 그런 남자를 살펴보다가 괜히 앞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나,나도 안하고 싶거든? 너도 남자고, 나도 남잔데 무슨. 최대한 덤덤하게 말하자,하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더듬거리는 멍청한 말투였다. 아오,씨. 왜 말은 더듬고 난리야. 이상한 자책과 함께 덜덜거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으려던 우현에게 벌써 세번째 직격타가 날아들었다.
"남자랑 잔거야."
"…뭐…?"
"그래도 너랑은 안 자. 기겁하지 마."
넌 개새끼잖아.
그것이 그 날 만났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었다. 충격적인 말은 연달아 하는 주제에, 개새끼니 뭐니 운운하는 말. 거기까지 들은 우현은 소리나게 젓가락을 던져놓고 옥탑방을 뛰쳐나왔다. 개같다. 자꾸 나보고 개새끼라 하는데, 더 개같은 건 너야. 차마 지껄이지 못하고 온 말이 우현의 입 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천사라고 생각했다. 비록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분명히 그 안에 봉인되어 있는 천사가 눈 앞에 내려온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거의 보름이나 되는 시간 동안이나, 말 한 번 못 붙여보는 주제에 제 머릿 속을 파고들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라도. 그는 분명히 천사가 틀림없다고. 우현은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저가 입은 꼴을 자꾸만 내려다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맞춰 입은 초라한 옷. 초라한 천사와 초라한 옷. 다 뜯어져 가는 티의 밑단을 잡아 뜯은 우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내가 지금 왜 부아가 치미는 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왜 배신감 같은 게 드는 지는 모르겠는데.
천사는 내 믿음을 배신했다. 살아가면서 처음 만난 나의 천사는 어쩌면, 생각했던 대로 천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독히도 미묘했던 편의점 앞 천사가.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진 우현이 어두침침한 방 안에 놓인 침대에 몸을 눕혔다.
* * * * *
편의점은 씨발, 도대체 왜 학교 가는 길목에 딱 있는건데.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에 맞서면서, 오늘도 집을 나서는 우현이 툴툴대면서 방향을 바꾸었다. 4일 전, 남자를 만났던 날 이후로 생긴 불편한 버릇이었다.
이제는 집을 얻은 모양이니까 어쩌면 편의점 앞을 지나더라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넣은 우현이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목을 비잉 돌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천사는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시련만 주고 있는 것 같다. 우현이 비실거리는 웃음을 흘렸다. 그게 천사냐, 악마지. 아마 그 동안, 이상하게 홀려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고 벌써 백번은 넘게 마음을 다잡은 우현이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악마야 악마. 후,하고 내뱉은 한숨에 입김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고 말고. 코 끝이 빨갛게 언 우현이 코를 훌쩍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4일이 지난 오늘. 어느덧 학교에 나가는 마지막 날이 되었음에도 천사가 제게 걸어놓았던 주문은 풀리지가 않고 있었다. 개새끼니 뭐니 했던 쌍스러운 욕지거리까지 어른어른 떠오르는 걸 보면.
날씨가 춥다. 홑이불 한장으로 어떻게, 잘 지내고는 있을까. 무섭도록 떠오르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제풀에 심통이 난 우현이 둘둘 싸맨 목도리로 코 끝을 파묻은 채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쳤다.
-
"그래서, 할 거냐고 말 거냐고?"
음주 시험이 제격이라면서, 강의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맥주를 사들고 왔던 성열에게선 당연하게도 술 냄새가 진동했다.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긴 우현이 저 쪽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성열의 머리통을 저만치 밀어버리며 대꾸했다. 술고래 새끼야, 나가 뒤져버려. 우현이 민 대로 밀린 성열이 기우뚱하게 넘어질 뻔한 몸을 일으켜 다시금 우현에게 달라붙었다. 아 왜, 왜애 우현씨이. 나 혼자 하면 무서운데.
"야간 알바를 혼자 하면 무섭다고!"
"아니 그러니까."
우현이 찡그러진 주름을 펴기 위해 손가락으로 꾸욱, 미간을 눌렀다.
"왜 하필 그 편의점인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용을 쓰며 돌아왔던 문제의 그 편의점.
딱 종강 시즌에 맞추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고 들떴던 성열이기에, 어디 대단한 곳을 물었나 했다. 겨우 편의점 야간 알바라는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던 우현이 더욱 자세한 위치 정보를 듣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입을 떠억 벌렸다. 그런 우현의 어깨를 짤짤짤 흔든 성열은 그런 경악스러운 표정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하이톤의 목소리로 우현을 졸라댔다. 응? 응? 너도 할거 없는 거 다 알아. 한 명 남았으니까 나랑 같이 하자고.
"됐어, 편돌이새끼야. 새벽에 강도 들어서 뒤지든지 말든지. 간다."
이미 그 편의점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심기는 뒤틀렸다, 이 말이야. 끈덕지게 저의 어깨를 잡아오는 성열의 팔을 있는 힘껏 뿌리친 우현이 비교적 빠른 발걸음으로 성열의 행동 반경에서 벗어났다. 야! 남우현!
"미쳤어? 어딜 가?"
이미 저만치 먼 곳에 떨어진 성열이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오늘 종강 총회 있는 거 까먹었냐? 똘빡아!"
"안 가."
"안 들려!"
"안 간다고!"
대충 소리를 빼액 지른 우현이 귀찮은 기색을 띠며 뒤를 돌아다봤다.
성열이 두 눈을 깜빡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우현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한 성열이 두 손을 입가에 모아서 크게 소리쳤다. 너어는-죽었다아-
"회장 형이- 안오면 너- 주욱여-버린댔는데-"
길가를 쩌렁쩌렁 울릴 셈인지, 노래하듯이 얄미운 음정으로 빈정거리는 성열이 생글생글 웃었다.
"지연이도 너- 어엄청 보고싶-"
…어 할텐데, 라고 말하려던 목소리가 뚜욱 끊기면서, 뒤돌아선 성열이 냅다 줄행랑을 쳤다. 옆에서 주운 건지 한 손에 왠 벽돌을 들고 저 쪽을 돌아다본 우현의 모습을 본 성열이 뒤꽁무니가 빠져라 달려나갔다. 미친 새끼. 저 새끼라면 진짜 쳐 죽일지도 모른다.
-
곧장 집으로 가야겠다. 가서 아르바이트가 됐든 뭐가 됐든, 할 거리를 찾아 놔야 방학을 보내던지 하지. 버스에서 졸던 내내 했던 생각은 그것이 전부였다. 쓸데없는 연락만 터져나오는 핸드폰 액정을 괜히 껐다 켰다를 반복하며 창문에 머리를 기댄 우현이 가물가물해지는 눈을 치켜 떴다. 여기서 졸아버리면 종점까지 가 버릴 지도 몰라.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우현이 저의 시야에 드디어 익숙해진 동네에 들어오자 급히 벨을 눌렀다.
일단은 좀 자고. 원룸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올려다 본 하늘에서는,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모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우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랄맞아, 길 미끄럽게. 저도 모르게 잇새로 튀어나온 욕설과 함께 발걸음을 떼려던 우현이 종국에는 멈칫 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낯익은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딱 한 번 와본 것이 전부였는데.
…이상한 남자를 따라서 쫄래쫄래 올랐던 언덕이 눈 앞에 있었다. 아까 버스에서 졸았는데, 설마 지금 이곳이 그 꿈의 연장선은 아닐까 하고 빠르게 눈을 깜빡인 우현이 고개를 처들었다. 열 발자국 쯤 앞에 눈 쌓인 대문은 분명 저가 지났던 바로 그 집이 분명한것을.
그래 씨발, 부정하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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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질적으로 나섰던 대문 앞에 멈춰 선 우현이 제 신발 끝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쌓여있던 눈 위로 함박눈은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뽀드득거리는 발자국을 뒤로 남기면서 걸어온 우현이 주인을 닮아 허름하기 짝이 없는 녹색 대문 앞에 발걸음을 묶었다. 허리를 조금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대문. 괜히 대문을 힐끔 쳐다본 우현이 멈춰 선 저의 신발코 위에 쌓인 눈을 톡톡 털어내며 발장난을 쳤다.
물론 이 곳을 다시 찾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그나마, 익숙한 대문이니까 앞까지 걸어와보긴 했는데.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대문 앞에 멈춰 선 우현이 잔뜩 딴청을 부리면서 대문을 흘겨봤다. 그렇게 한참을 목도리를 코 끝까지 끌어당긴 우현이 대문 너머로 은근슬쩍 눈치를 봤다. 집이 왜이렇게 조용해. 소음 하나 없이 고요한 집 내부를 들어다보려 까치발을 든 우현이 크흠,하고 괜스레 인기척을 내 보았다.
그러다가 눈에 잡힌 것은, 대문 앞 한 발자국 즈음 떨어진 곳에 수북히 쌓여 있는 담뱃재였다. 하얀 눈 위로 떨어져 있는 담뱃재들은 유난히 선명하게 두 눈 속에 들어왔다. 담배? 우현이 고개를 까딱하며 담뱃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 씨이발!"
쨍그랑,하며 귓전을 찢는 소음과 함께 멋대로 튀어나온 욕지거리였다. 순간적으로 옆통수가 서늘해짐을 느낀 우현의 발치에서 째앵,하고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의 발으로부터 불과 일센치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찢어지는 굉음을 내며 깨진 병은 파편을 튀기면서 흩어졌다.
"뭐,뭐뭐뭐야?"
본능적으로 두 발 물러섰던 우현이 난데없이 투척된 소주병을 쳐다보며 숨을 헉헉거렸다. 씨발 장난 아니고 죽을 뻔 했다. 조금이라도 옆으로 비켰다면.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려 가슴께로 오른손을 가져간 우현이 심호흡을 하다가, 옆에 섰던 왼 발목이 문득 따갑다고 느꼈을 때였다.
"…개…새끼야?"
쥐죽은 듯이 고요했던 집 쪽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처든 우현이 허,하는 실소를 내뱉었다.
어김없이 저를 개새끼라고 칭한 남자가 고개를 쏙 내밀고 우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작은 눈이었던 것 같은데, 동그랗게 뜨고 있는 눈은 아마 저도 충분히 놀랐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우현의 눈동자가 그새 남자의 얼굴을 스캔했다. 불에 그을렸던 걸로 기억한 남자의 앞머리는 어느새 짧게 다듬어져 있었으며 대책없이 허여멀건한 얼굴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표정중에 가장 다이나믹한 얼굴이었다. 입을 떠억 벌린 남자가 눈바닥에 떨어져 깨진 소주병과 우현을 번갈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안…다쳤어?"
머리 위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말거나, 우현의 눈은 남자의 머리통 옆에 진열되듯이 놓여진 소주병들을 훑어봤다.
옥탑방 위의 남자를 쳐다보느라 잔뜩 꺾어 올린 고개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얼어붙은 얼굴 위로 차가운 눈송이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내렸다.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든 상황에서도 우현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비실거리는 웃음을 내뱉었다.
함박눈과 천사가 내 눈앞에 있다. 쏙 내밀어진 머리통 주변으로 펑펑 내리고 있는 눈은 꼭 천사가 부리는 마법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씨발, 천사는 날 죽이려고 했어.
여전히 고요한 대문 앞에서, 우현의 어이없는 한숨만이 소음이 되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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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결정했어요! 완결 낸 다음에 텍파를 드리면 뿌듯뿌듯할거같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냥 혼자 끄적이면 힘이 안 날것 같아서 연재를 시작해요^ㅠ^ 긴 여정이 될거같아! 날 지지해줘요 요로분 / 2013,더 파라디(The paradis) 라는 제목을 <0214,더 파라디(The paradis)>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실 2013 이라는 숫자 붙인 게, 애초에 프롤로그에 썼던 유아인씨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픽인지라 시 제목인 '이천칠년' 처럼, 앞에 '2013'을 붙인거였는데 요즘 학교2013..도 나왔고ㅠㅠㅠㅠㅠㅠㅠ..(물론 전혀 몰랐어요) 글잡에 또, 2013이 앞쪽에 붙는 픽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아무도 뭐라하진않았지만 그냥 제가, 겹치는 게 싫어 제목을 바꿉니다 픽 제목은 한참 전에 생각해논거였는데ㅠㅠ 정해놓고 혼자서 와!나 겁나참신해!ㅎㅎ천재아님?ㅎㅎ 생각했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그게 아..아니었나봐요 ..휴ㅠㅠ안타깝도ㅏ 아 참, 제목인 파라디는 불어이며 한국어로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p.s 완결이 나면 공금으로 메일링 할 예정입니다 티벳 블라섬 밤야 케헹 꿀꿀 감성 다별 단비 키시스 who 찔찔이 콩이 하트하트 슈드 삐뽀 버섯 tender 챠비 나무 매직홀 이유 흑발여리 동동 겅겅이 개인 디어 일광 어머 갈비 사리 슈슈 썬크림 바카루 모모 신알신 유자차 만두 모바일 똑똑이폰 에몽 다트 달간 퐁퐁이 제나 아이비 가리비 우왓 푸리 라임 댕열 변백현♥ 규룽 여리 여우 김남성우규현 내사랑울보동우 선녀리 녹색오리 무단횡단 마가렛 개드립 남군 진스 북이 새벽 이불 까또 여니 홀니 헿헿 자라 뀨뀨 불맠 이라라 이씨 차별 닌텐도 제이 멜루 앙녕 내사랑들^ㅠ^ 빠지신 분 없나 확인 부탁드려요, 없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메일링 때 꼭 필요합니다. 빠지신 분 없기를 바래요..★ 이제 누가누가 따라와주시는지 볼까?^3^ 팔로미!하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