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타입 아닙니당.. 키스타입은 밤에 올거에요!! 그때까지 이것을 읽고 계시면 됩니당 ㅎ 마음에 드는 짤의 첫인상으로 소설 찌는 원래 진행하던 시리즈에요 똑같이 열심히 썼어요 ㅠ
너는 낯을 잘 가렸다. 그건 차마 잊을래야 잊어지지 않는 너의 잔상. 그래도 한번 안면을 트고 말을 놓은 상대방에게는 스스럼없이 웃고 치부를 드러내보이던 너의 당당함이 거미처럼 여덟다리로 내 집을 헤집었다. 두 다리 난 자리도 벅찬데 거미같은 여덟 다리 네가 난 곳은 가슴을 뚫어 나는 바람이 되었다. 가출 청소년이 발 붙일 곳이라봐야 PC방 아니면 찜질방이다. 너는 독특하게도 나를 가장 먼저 찾아왔다. 초등학생 너를 처음 보았을때 쌍커풀이 켜켜이 쌓인 여우같은 눈매에서 나는 무엇을 읽었던걸까. 발자국을 삼킬 네 운명도 그때 그 켜 어딘가에 끼어있었나. "안녕하세요." "안녕." 학교 안에서는 한 살 한 살 차이가 억겁의 세월이다. 나는 그 애와 학교 하나와 두 해를 뛰어넘는 5살 차이. 우리는 서로의 사이 정중앙에 유리벽을 쌓아올리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건실한 공사는 2년 여 이어지다, 네가 중3이 되던 해 금을 내비쳤다. "의대 다닌댔죠." 생화학은 1-4시. 한가롭게 나서는 등굣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네가 말을 걸었다. 사람은 나뿐이었으나, 생경한 목소리와 그 상황에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되물었다. 나? 너는 시선으로 대답했다. "어, 어." "잘 부탁해요." "어?" "엄마가 하도 의대 타령을 해서." 조그맣게 씹어삼키는 욕지거리를 들었다. 나는 내 세상의 외피를 겁없이 뚫은 네게 그 뚫린 구멍만큼의 관심을 주기로 했다. 너는 그 대화를 시작으로 내게 많은 것을 물어왔다. 때론 공부를, 때론 안부를, 때론 기분을. 나도 많은 것을 대답했다. 때론 공부를, 때론 안부를, 때론 기분을. 너는 그렇게 입시에 쩌든 평범한 '청소년' 집단에서 빠져나와 '홍지수'라는 개체가 되었다. 훗날 깨달은 바로, 너는 질문을 통해 너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닉하게도 나에 대한 너의 질문에서 나는 너에 관한 많은 것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너는 엄마의 잔소리가 꽤나 성가시다고 느끼고, 자기 친구들에 대한 주변의 악평에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네 말은 네 말대로 일리가 있는 것이, 너에게는 둘도 없이 믿음과 신뢰를 주는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친구들이 이른 나이에 술이며 담배를 시작하긴 했어도 그것은 고래와 겉뜨기만큼이나 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바였다. 어른들은 멍청하지. 아이 그 자체의 됨됨이와 무관한 요소들로 채점해 사람에게 등급을 매긴다는 것에 너는 진절머리를 냈다. 어쩌면 네가 나보다 똑똑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때 오만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의 중심이 나인것마냥. 그 다다음해, 그러니까 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내가 본과 2년차가 되는 그 해의 끝무렵에, 너는 가출을 했다. 두꺼운 실로 촘촘하게 짜인 베이지색 워머로 얼굴 반을 가리고, 몸집 반만한 스포츠백을 꽉꽉 채워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다. 골학 퀴즈에 대비중이던 나는 빨간 파카 차림의 고등학교 2학년을 눈밭에 얼려죽일 수가 없어 다짜고짜 집에 들이고 담요를 둘러주었다. "왜, 갑자기," "봐봐, 다들 갑자기래. 갑자기가 아니라구. 그 정도 머리가 없겠어, 내가? 이 한겨울에?" 맞는 말이었다. 너는 영악하리만치 네 스스로의 건강과 안위를 잘 살폈고, 그런 네가 '이 한겨울에' 집을 나올 정도라면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어떤 거대한 사건이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엄마가 또 잔소리하셨어?" "'또' 가 아니야. '결국' 이지." 말 한 마디로 정리를 끝내기에, 나는 너의 집이 되어주기로 했다. 절대 방해 안되게 자기가 알아서 다 하겠다며, 누울 자리 하나만 내어주면 된다고 사정사정하는 '친구' 를 얼려죽일 수가 없어서. 다짜고짜. 너는 손이 매워 집안일이든 뭐든 꼼꼼하게 끝을 봤다. 자취생의 찬장에는 네가 만든 반찬들이 하나 둘씩 늘었고, 계절이 바뀔때마다 농 안에는 향이 다른 제습제와 사쉐가 놓였다. 네 말마따나 너는 공부 외의 모든 것에 욕심이 있고 능력이 있는 아이였다. 너는 가끔 나와 책을 읽고, 가끔 나와 산책을 하고, 가끔 나와 영화를 보고, 가끔 나와 카페를 가고, 가끔 나와 눈을 맞췄다. 여우같은 눈. 밥을 먹다,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다 뒤를 돌아보면 너는 그 동물같은 표정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눈으로 나를 맞았다. 인간의 눈을 가진 나는 그 앞에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유혹당했고 때론 우울해했다. 종잡을 수 없는 아이.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아이. 천둥이 치는 밤, 스트레스성 탈모에 불면증까지 떠안은 나를 폭 끌어안고 재워준 그 밤. 품 속 헛헛한 것 하나하나까지 잘 빨아말린 오리털처럼 보송보송하게 만들어놓고 너는 왔을때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정말 홀연히. 정말 사라졌다. 정말. 가출하고 가장 먼저 선택한게 일개 자취방이라면 나는 다른 어디를 가서 네가 헤매고 있을지 더 예상할 수 없어 매일을 불안에 떨었다. 동네를 헤매고, 수업이 끝나면 거리를 쏘다니며 네 이름을 외치고. 내가 미친년이 되는건 사실 별 상관 없었다. 중요한건 여우의 눈을 가진 너를 다시 찾아오는 것. 네가 와야, 네가 잘 말려놓고 간 이 오리털 같은 것들이 무엇인지 물어볼 수 있는데. 새하얀 깃털 세례들만 남겨놓고 너는 물기처럼 증발했다. 여우의 눈을 가진 너. 3달을 동네 사람들 눈 뒤에서 살고, 주말을 멍하니 흘리며 더 비싼 수도세를 치르다가, 다시 무의미한 어느 주말이 왔다. 침대에 누워 멀쩡한 정신으로 2시간인가, 3시간을 엎질러놓고 치울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말 그대로, 초인종이 울렸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내 방에서도 들리는데, 그건 그 흔한 전자음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마치, 울음소리. 여우의 그것. 설마하는 심정으로 마음 속에서 주사위를 몇 번을 굴렸던가. 엎질러 쌓아둔 빽빽한 시간들 틈으로 간신히 나아가 3달만에 현관에 도착했다. 지나오면서 쏟아지고 무너진 나의 고통들이야 나중에 치우면 그만이다. 나는 몇 센티 철문 너머의 사람이 누구인지 일단 그걸 알아야 이 이후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우의 울음소리로 초인종을, 누군가의 마음을, 머릿속을 눌러대는 너는 누구니. 일요일 아침 햇살에 잠시 눈이 아득했다. 몇 년 같은 잔상이 조금씩 흩어지고 보이는 낯익은, 아주 낯익은 어떤 실루엣. 역광을 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시각을 제쳐놓고서라도 그게 내가 아는 '누군가' 임을 알려주는 단서들은 너무 많았다. 오감이 혼란스러웠다. 정신이 들끓었다. 네가 웃었다. "오랜만이지." 여우같이. "지수야..?" "보고싶었어." "..." 고작 생각해낸게 지수야라니. 울음이 터져 목이 막히기 전에 내뱉은 최초의 말이 지수야라니. 네가 밀려들었다. 온 몸이 흠뻑 젖었다. 나를 끌어안은 네가 속삭였다. "진짜, 많이, 보고싶었어." "지수야," "이게 뭔지 모르겠어서," "..." "그래서. 응." 현관문 손잡이를 놓고 네 허리에 손을 올리기 무섭게 너는, "그런데," 숨을 들이킨다. 귀에 눈이 달린다. 숨소리가 미묘하게 떨린다. "떨어져 있어도 모르겠어서." ".. 지수야." "떨어져 있어보면 알까 싶었는데," "..." 품에서 나를 놓는다. 뺨을 감싸고 천천히 코를 맞댄다. 속눈썹에 아침 빛이 어린다. 속삭인다. "여전히 모르겠어." "..." 시선이 나를 메다꽂는다. 정수리에서 발바닥까지 종소리가 울린다. 네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는다. "뭐야, 이거?" ".. 지수야." 밀려든다. 무엇인가 왈칵 터져버리고, 시간 속에 먼지 쌓였던 내 오리털들이 너에게 잠긴다. 나는 네 목을 안는다. 너는 내 등을 감싼다. 위태롭게 신발장 벽에 기대선다. 현관이 닫힌다. 입을 뗀다. 벅찬 말들이 너무나 많이 쌓였다. 곧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사랑해." "하아, 하아," "지수야 나는," "하아," "나는 알겠어." "하아," "사랑이야, 너." 목덜미를 좀 더 세게 끌어안는다. 빨리, 네가 만든 이 왕국을 좀, 어떻게 좀. 얼굴로 옮겨온 네 손이 뺨을 쓰다듬는다. 울지 말라고? 동물의 언어로 소리소문없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인간의 귀를 가진 나라 알아듣지 못했다고 너에게 고해성사 하련다. 그러는 너도 좀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더듬거리며, 위태로워하며, 현관을 지나 방에 닿을때까지. 너는 수도 없이 많은, 처음 들어보는 너의 언어를 나에게 가르쳐준다. 그때마다 눈물이 난다. 애처로워서, 간절해서. 왜, 왜 이렇게 늦게. 사람의 말보다 정교한 여우의 말로, 거미같이 집요한 너의 입술로, 혀로, 젖어오는 새로운 언어를 흠뻑 받아들인다. 인간의 부질없는 단어들을 부수는 과정. 네가 없던 3달 동안 나를 쥐어짜던 창살같은 말들. 너는 너무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적셔 녹여버리고, 좀 더 단단하게 등을 받친다. 응, 알아. 이해했어. 드디어 알아들었어. 널 믿을거야. 널 사랑할거야. 너에게 말할거야. 입술을 떼고 너와 눈을 맞춘다.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눈도 어느새 여우가 되어 있다. 다시 감쳐올린다. 나를 너로 만들어줘. 지수야, 영원히 함께 닿자. 우는건지, 웃는건지 모를 네가 나에게 스며든다. 눈을 감으면 나는 아득히 먼, 꼬리가 붉은 너의 동족. 너와 달랐어서 미안해, 하고 너에게 첨벙 빠져들었다. 후회하지 않아. 지수야, 나는, 을 끝으로 인간의 언어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 끝까지 가득 채운 여우의 언어들이 부식된 나날들을 삭이고 있었다. 미안해서, 다시 울었다. 아득해서, 또 울었다. 너, 홍지수. 수많은 반점과 그러나의 끝에서 만난 너. 그리고 나. 우리는 대체 얼마나 서로 다른 말로 엇갈리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