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르게 우거진 나무들,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아스팔트 도로, 그 옆에 펼쳐진 논밭. 무더운 햇빛에 따지듯 울어대는 매미까지. 유난히도 뜨겁고 치열했던 여름. 차갑지만 청춘의 열기가 가득했던 경기장 혹은 교실. 소년의 여름은 그 누구보다 치열했다.
자전거 바퀴가 당장 녹아내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야. 소년의 흰색 자전거는 차가 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유려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경기까지 남은 시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3년. 중학교의 마지막 시합이었다. 그 누구의 도움, 스폰도 없이 혼자서 달려온 소년에게는 더욱 의미가 남달랐다. 시골의 작은 학교라서 제대로 된 부서활동이 지원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수영장까지는 왕복 2시간을 차를 타고 다녀야했다. 그나마도 2학년 때 지역 대표로 출전한 수영대회에서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2등을 했기에 학교에서 차량, 교사를 붙여줘서 3학년부터는 조금이나마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무런 생각없이 도로를 달린지 20분. 학교에 도착하니 저보다 더 먼저 출근한 선생님이 저를 반기기에 자전거를 세우고 이어폰을 빼낸 뒤 소년은 꾸벅 인사를 했다.
"20분이나 늦었어, 30분 전에 와서 몸 좀 풀고 있으랬더니. 일주일 전인데 벌써 긴장 풀린 거야?"
교사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소년은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에 소년에게 다가와 가까이서 그를 위로 아래로 두어 번 훑어보더니 손수건을 꺼내 소년의 손에 쥐어주었다.
"어차피 등교하느라 열심히 땀도 뺐을테니까 몸은 다 풀렸겠네. 워밍업 생략하고,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손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땀을 훔치던 소년은 기지개를 쭉 켜더니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나쁘지 않아요. 뭐... 물장구 좀 쳐봐야 알겠지만."
소년은 말끝을 흐렸고 그 뜻을 정확하게 헤아린 교사는 픽 웃으며 뒤돌아 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 소년도 큰 걸음으로 따라가 조수석에 먼저 들어가 앉았다. 그런 소년을 보며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운전석에 앉은 그는 목에 걸려있던 교사증을 벗어 소년에게 건네며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켰다. 아직 잔디가 들어서지 않은 시골 학교의 운동장을 흙바람을 내며 빠져나가며 그는 소년을 흘끗 쳐다봤다.
"으아, 이제야 좀 살겠다. 아침부터 이렇게 더우면 어떻게 살라는 거야... 크흠, 기간제 교사도 교사라고 그걸 주더라고. 어때, 쌤 이름 딱 있으니까 진짜 교사같지 않아?"
소년의 손에 들린 교사증에는 김석진, 세 글자와 함께 그의 이름과 그의 사진이 있었고 시골 작은 학교의 교사증이 뭐가 그리 좋다고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한껏 톤이 높아져있었다. 소년도 이 대회가 마지막이었지만 석진에게도 마지막이라는 걸 알기에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여태 이런 거 안 만들어주더니 떠날 때 되니까 이제서야 만들어주네요. 쌤 작별선물 받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안 잘리게 정국이 네가 좋은 성적 거둬야지. 혹시 알아? 그 공로를 인정 받아서 계약기간 연장해줄지."
소년은 괜스레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고 그런 소년을 바라보다 석진도 웃었다. 소년은 아직도 더운 건지 교복 상의를 벗었고 미리 입고 있던 그의 교복 왼쪽 가슴에는 흰색 명찰에 전정국이라고 단정하게 박음질 된 이름이 적혀있었다. 한참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니 익숙한 시내 풍경을 지나 지겹도록 많이 다녔던 체육관에 도착했고 서둘러 차에서 내린 그는 주차가 다 끝나기도 전에 회원증을 목에 걸고 체육관으로 들어가 캐비넷으로 올라갔다. 늘 하는 훈련, 늘 들어가는 곳이지만 그와 반대로 항상 처음인 것 처럼 가슴이 뛰었다. 가슴이 뛰니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고, 서둘러 전신 수영복을 입고 실내로 들어가 정국은 스트레칭도 하지 않고 물로 뛰어들었다. 소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첫 작품으로 독자 분들께 인사드립니다! 프롤로그라고 생각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고, 본편부터는 더 긴 분량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