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절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
'무슨' 일로 가는 과정을 담은 팬픽입니다.
그냥 가볍게 봐 주세요! 여기에 밍왕 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밍왕 / 중추절의 비밀.
w. 보통의 하루
그 애가 날 좋아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만. 눈치 없는 편이라고 혼났던 나도 다 느껴질만큼 그 애는 티를 내고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 애의 개인적인 성향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다.
카메라가 있든 없든 사람을 빤히 쳐다보면서 이상한 말을 해댄다거나,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 힘으로 밀고 들어온다거나, 남자끼리는 절대 할 것 같지 않은 말을 내뱉는다거나, 너무 자연스러워서 당시에는 생각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이상하고 의미심장한 말들까지.
그 '성향'이 나에게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즈음에, 난 이미 눈치가 제로라며 이 곳 저 곳에서 꾸짖음을 듣고 있던 후였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얘를 어쩌지? 어쩌면 좋지. 우리 그냥 돈 벌자고 시작한 게임이잖아. 라고 형 답게 타일러야하나? 아니면 리얼리티를 위해 나도 대충 맞춰주어야하나.
나름 관계의 선을 잘 그어왔던 내가 혼란스러웠던 이유 또한, 그 애 때문이었다.
다 같이 술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어렴풋이 듣고 말았던 것이다. 양예밍의 여자에 대해서.
“아니, 그래서 양예밍이랑 그 애랑 사귄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아직은 아니라던데, 곧 사귈 것 같아.”
“누구? 아 그 여배우? 입단속 잘 해야겠네. 이러다 사진이라도 찍히면 곤란하지.”
“애초에 계약 조건에 그런 건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 둘이 이렇게 뜰 줄 알았겠어.”
알딸딸하게 들어갔던 술이 한 번에 깨는 순간이었다. 술기운을 빌려 양예밍에게 나는 남자랑 사귈 마음이 (아직) 없다는 것을 어필하려 했는데.
술 취한 머리로 감당하기 힘든 갑작스럽게 들이 닥친 정보에 나는 정신이 버쩍 들고 말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져 나는 자리를 뜰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수치심에 물든 두 뺨과 귀를 술기운 탓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우리 테이블에 앉은 작가 몇에게 몸이 안좋다며 핑계를 대고 서둘러 짐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참 웃기게도 담배를 피고 들어오던 양예민과 마주치고 말았다. 정말 되는 것 하나 없군.
“어? 어디가, 야오왕.”
“나 몸이 안 좋아서, 먼저.”
“술 많이 안 먹었잖아. 어디가 아픈데? 나 좀 봐.”
“너 이러는 거 좀 과해. 카메라도 없잖아, 여기에.”
“무슨 말이야? 갑자기 뭐가 과하다는 거야.”
저 능청스러운 표정. 뭔지 다 알고 있으면서 저런다. 내가 이것 좀 과하지 않냐는 식으로 나오면, 이게 왜? 친구끼린데 뭐가 어때서? 와 같은 반응이다.
속이 뒤집히고 뒤집힌다. 사람 머릿속을 잔뜩 뒤집어놓고 발 빼는데 아주 선수인 자식. 어쩐지 속이 더욱 안좋아져 대꾸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겠는가. 고작 그 애를 피해 달려가야하는 곳이, 그 애와 내가 묵고 있는 '우리'의 숙소라는 것이 참으로 비참했다.
양예밍이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쫒기는 사람 처럼 뛰어 숙소에 들어왔다. 일단 빨리 씻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자고 싶다.
오늘은 일단 자자. 취한 머리로 뭘 굴려봤자라구. 아무렇게나 옷을 벗고 수건 하나를 챙겨 급하게 욕실로 들어왔다.
차라리 잘 됐네. 괜한 오해해서 미안하네. 혼잣말도 몇 번 하며 머리를 감는 와중이었다.
“야오왕. 안에 있어? 너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 정말 억울해. 얘기 좀 하면 안돼? 몸은 괜찮아? 왜 대답이 없어. 안에서 쓰러진 건 아니지? 응? 야오왕- 나 걱정 된다고. 나 문 열고 들어간다? 열쇠 저기 항아리 안에 있어.”
내가 정말 걱정이 되어 들어온 건지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나를 찾는 양예밍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정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올 것만 같아 문을 두어번 쳐 주었다.
“나 괜찮아. 그러니까 좀 조용히 해 줘. 머리 아파.”
“휴. 놀랬잖아. 빨리 나와. 나 답답한 거 싫어, 정말.”
멍청한 새끼. 저 다정한 목소리에 오해를 했던 거잖아. 도망쳐 온 곳이 고작 여기라는 것도 한심스럽다. 그리고 제일 한심스러운 건….
“양예밍, 거기있어? 미안한데…내 속옷 좀….”
“안가지고 들어갔어?”
“그래. 아니면 가운이라도 좀 줘.”
큭. 하고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쪽팔려, 쪽팔려! 또 귀가 벌게지는 것이 느껴졌다. 욕탕이 더운 탓에 더 그랬다. 이 와중에도 줄까 말까- 하며 장난을 치는 양예밍에게 짜증을 한 번 낸 후에야, 나는 간신히 내 몸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풀리는 일이 없어. 습기에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기 위해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가리고 재빠르게 드라이기 앞으로 갔다.
“야오왕. 나한테 기분 나쁜 것 있어?”
“뭐? 드라이기 소리 때문에 안들려.”
“그럼 드라이기 꺼. 머리 나중에 말리면 되잖아.”
쇼파에 앉아 있던 양예밍이 금세 내 앞으로 다가와, 드라이기를 낚아 챘다. 오늘 밤은 양예밍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자주 볼 수 없던 화가 난 눈. 비틀어 다문 입. 살짝 좁아진 미간.
“아니면 내가 말려줄까?”
“됐어.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러면 말 해줘. 왜 그러는 거야 갑자기. 밥 먹을 때만 해도 기분 좋았잖아 너.”
“너 여자친구 있어?”
결국 묻고 말았다. 샤워를 하면서도 한참을 고민했던 대사를 이렇게 멋 없이 치다니.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거 없다고 말 했잖아.”
“그럼 연락하는 사람도 없고? 아니 애초에 내가 이걸 왜 묻고 있는지…. 상관없어 양예밍. 너가 누굴 만나서 뭘 하든지. 다만 소문만 안 나게 잘 해줘. 괜히 일 하는 스텝들 피해 주진 말라구.”
신경질적으로 양예밍을 밀고 침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고작 투룸인 작은 숙소가 이렇게도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따라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던 양예밍은 그대로 숙소 밖을 나가버렸고, 그날 밤 그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잠에 이룰 수 없었다.
/
“다음 주에 중추절 특집으로 촬영을 할 거야. 그래서 짧게 여행을 기획했는데….”
스텝 누나가 하는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냉전 상태에서 뭘 하라는 거야.
“그래서 너네 일상을 좀 기록했으면 좋겠어. 근데 너네 싸웠니? 왜 그래?”
“그런거 아니에요.”
“호흡 잘 맞추더니, 오늘 영 이상하다? 잘 풀어 줘 양예밍! 네 애기 단단히 삐진 얼굴이다.”
“아 누나! 누가 애기에요, 진짜.”
나의 진심이 담긴 짜증에도 스텝은 웃어 넘기며 나가버렸다. 그 날 밤 이후로 양예밍은 나에게 화가 난 것 처럼 보였다. 지가 왜? 왜 화가 나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야오왕. 잠깐 얘기 좀 하자.”
“그래 알겠어.”
쇼파에 앉아 있던 양예밍이 내 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이리도 쪼잔한 사람이었던가. 그게 뭐라고, 뭐가 대수라고.
“내 얘기 끊지 말고 들어.”
“그래.”
“나 그 날 엄청 화 났었어. 무슨 말을 들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 말을 먼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는 파트너잖아.”
“…….”
“근데 대충 알겠어 이제는. 나 그 여자랑 안 만나고 안 사귀어. 사장님이랑 여럿이서 밥 한 번 먹은게 다라고. 나 정말 억울해.”
“그랬구나. 알겠어. 오해해서 미안하다 양예밍. 그리고 그런거 나한테 해명 할 필요 없잖아?”
“그 말 진심이야? 궁금하지 않았어?”
“궁금하긴 했어. 근데 그 뿐이야. 오해라는 거 알았으니까 됐다구.”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리던 양예밍이 갑작스럽게 내 어깨를 잡아 끌어 안았다. 또 다. 또 이런 갑작스러운 접촉.
“양예밍. 너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겠는데, 카메라도 없는데 이러는 거 곤란하다고.”
“야오왕.”
“내가 직접적으로 얘기한 거는 처음인 거 같은데. 너 매번 이게 어때서? 라고 능청스럽게 넘어가잖아. 사실 그것도 되게 불쾌하거든? 사람 맘 이상하게 해놓고, 발 쏙 빼고.”
그거 정말 예의없고 무례한 거라고. 부득거리며 포옹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양예밍이 더욱 나를 꽉 안았다.
“야오왕 나 좋아해?”
“뭐?”
“그게 아니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야. 나 좋아해?”
“나 지금 장난할 기분 정말 아니거든?”
“잘 모르겠지? 나를 동료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 한 번만 솔직해져봐.”
강력하게 아니- 라고 말하려던 입이 움직이질 않았다. 심장 한 가운데가 푹- 하고 찔린 것만 같다. 그래 이새끼야. 헷갈려서 죽겠다고. 입에서 한참을 맴돌던 말이었다.
남자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던 마음을,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주지 않겠다고 굳게 먹었던 마음을. 몇 번이나 고쳐먹게 한 장본인에서 나온 사실은 나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그러면 우리 실험 한 번 해보자.”
“뭐? 갑자기 뭔 실험.”
“너만 그런 거 아니거든? 나도 답답하고 궁금해서 미치겠어. 너를 정말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게 된단 말이야.”
특히, 이럴 때. 너가 이렇게 날 올려다볼 때. 미치겠다고. 그러니까 실험 한 번 해보자, 야오왕.
대답할 기회 조차 주지 않은 양예밍이 내 볼을 잡았고, 나는 단번에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닿을듯 말듯 장난을 치다가 스쳐갔던 이전의 접촉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대놓고 달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