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연애
w. F코드
[갑을연애.12]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지하주차장 안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서 멍하니 앉아있던 우현이 조수석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아침에 입고 있던 두터운 점퍼는 어디에 둔 건지 얇은 가디건만 걸친 채 자신의 두 팔을 비비며 좌석에 올라타는 성규의 모습에 우현이 자신이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 성규의 몸에 걸쳐주고는 히터의 온도를 더 올렸다.
“난 겨울이 제일 싫어.”
“자기 옷은 어디다가 두고 가디건만 걸치고 와요?”
“몰라. 녹음 끝나고 나오니까 사라졌어.”
“애도 아니고”
“뭐야? 언제는 애기라면서. 변했네, 변했어 남사장.”
역시 남자는 믿을 동물이 못 된다며 한숨을 쉬는 성규의 모습에 우현이 웃음을 터트리자 성규가 그런 우현을 밉지 않게 흘겨보며 우현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고 우현은 그런 성규의 손을 잡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녹음은 잘 끝났어요?”
“두말하면 입 아프지.”
“미안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됐어. 어차피 남사장 있으면 신경 쓰여서 없는 게 더 편해.”
“그 말의 뜻을 알면서도 기분 나쁘게 들리는 건 내 착각이겠죠?”
“너 좋아서 신경 쓰인단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면 그건 착각이 아니라 당신이 이상한 거지.”
여전히 마주 잡은 성규의 손을 놓지 않고 있던 우현이 무심한 성규의 말에 마주잡고 있는 성규의 손을 끌어올려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우현의 입맞춤에도 여전히 무심하게 창밖으로 보던 성규가 우현의 차가 신호에 맞춰 정차하자 창밖으로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우현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하여튼 김성규, 한 번을 안 져요.”
우현의 목소리에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는 성규의 모습은 흡사 청담동 내놓으라 하는 집의 안주인 마냥 우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이 귀여워 보이는 아이러니한 모습이었지만 우현은 성규이기에 가능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배가 부르면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없기에 하루 종일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을 손에 쥔 채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열심히 말하는 성규의 모습을 우현이 맞은편에 앉아 삐딱하게 머리를 괸 채 바라봤다. 하지만, 아까 녹음실에서의 일이 떠올라 그때와 같은 흥분감에 숨소리마저 거칠어진 성규에게 그런 우현의 모습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저 녹음을 한 소절 마칠 때 마다 자신의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해야 하는 성열이 그 자리에서 바로 립싱크를 시도했지만 이건 뭐, 입 모양은커녕 본래의 노래와 박자도 못 맞춰 답답하다며 가슴을 두드리기 바빴다.
“망했어. 이성열 그 새끼 때문에 진짜 다 망하게 생겼다고.”
“그동안 이성열이랑 같이 연습하지 않았어요?”
“했지, 근데 내가 뭐 그 새끼 노래를 듣나? 춤을 보나? 나 하기도 바쁜데 남을 그것도 이성열을 관찰 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 물론, 주위 얘기나 연습기간을 보면서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잖아. 아니, 어떻게 입도 못 맞추냐고.”
“............”
“만약에 우리가 망한다면 그건 99 아니지, 100프로 이성열 탓이야.”
“100프로나?”
“생각을 해봐. 노래 좋지, 보컬 좋지, 가사 좋지 막말로 장우영이라서 그렇지 그런 기업에 1대1로 투자를 받는 입장에서 망할 일은 없잖아. 안 그래?”
“어째 말에서 본인자랑이 있는 거 같은데?”
“이건 본인자랑이 아니라 사실을 얘기 한 거지.”
점점 뻔뻔해지는 성규의 태도에 한 마디 덧붙이려던 우현이 줄곧 손에 들려만 있던 코코아에 성규가 입을 대자 목까지 올라왔던 말을 삼키고는 그저 가만히 코코아를 들이키는 성규를 바라봤다. 여기서 자신이 한 마디 더 하면 성규는 분명, 지지 않으려 먹던 코코아에서 입을 떼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정말 빈속에 잠이 들어 내일 아침 배가 아플 수 있겠다는 걱정이 우현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투자금은 받은 거 맞지?”
“투자자라면, 장우영씨 말하는 거예요?”
“어. 설마! 아직 안 받은 건 아니지?”
“받긴 했어요. 다는 아니지만.”
“뭐? 다가 아니면 얼마나 받았는데? 반? 아님 반도 못 받았어?!”
“70프로 먼저 받았어요.”
“나머지 30은 내일 당장 달라고 해서 최대한 빨리 받아.”
“왜요?”
“몰라서 물어? 그 새끼라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중간에 성규가 말을 끊자 우현이 그런 성규를 빤히 바라봤다. 손에 쥔 머그컵을 탁자에 올려 둔 성규가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건지 목까지 붉어져서는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고 우현은 그런 성규에게 살며시 손을 뻗어 불쌍하게 이에 짓눌린 입술을 빼주었다.
“왜 그렇게 싫어해요?”
“그거야 그 새끼가 먼저.......”
“아니, 당신 말고 장우영이요.”
“뭐?”
“장사장은 당신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예요?”
갑작스런 우현의 질문에 성규는 우현이 자신의 입가에 댄 손을 다시 제자리로 가지고 갈 때 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말 해주기 싫은 거예요 아님, 성규씨도 그 이유를 모르는 거예요?”
“......둘 다.”
“..........”
“몰라서 해줄 말도 없지만 알아도 싫어.”
“..........”
“나 먼저 잘게.”
“.........성규씨.”
자리에서 일어난 성규가 우현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지만 우현의 입에선 별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에 성규가 한숨을 쉬며 입을 떼려하자 꾹 다물고 있던 우현의 입이 떼어졌다.
“내 꿈꾸라고요.”
별 시덥지 않은 말을 중요하리만큼 무겁게 하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가 고개를 저으며 방으로 들어갔고 우현은 성규의 모습이 방 안으로 사라지자 얼굴에 있던 웃음을 지웠다. 말하기 싫다는 성규의 면전에 대고 차마, 오늘 내가 당신의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우현은 성규가 먹다 남은 코코아를 들이켰고 너무 단 코코아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남우현 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쪽에 남우현 사장의 사진이 많이 찍혔더군.’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성규 놈을 감시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남우현사장이.......’
‘미안하다는 말씀 하시려고 절 부른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그쪽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꽤 남우현 사장 이야기는 자주 들었네. 젊은 친구가 당돌하고 아주 칼 같다고. 그래서 내가 그 동안 성규 놈을 안심하고......’
‘회장님은 성규씨를 못 믿으십니까?’
‘못 믿는다라.......’
‘혹시, 성규씨 때문에 절 부르신 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성규씨 절대 허튼 짓 할 사람도 아니고 나쁜 일 할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남들보다 게으르기야 하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남았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맡은 일을 다 끝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겐가?’
‘네?’
‘내 아무리 성규 놈이랑 긴 시간을 떨어져 있었어도 핏줄인데 정말, 남우현 사장은 내가 내 핏줄을 몰라서 자넬 불렀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한참 잘못 짚었네.’
‘그럼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내가 성규 놈을 그저 감시했다고 생각하나? 천만에, 감시는 했지만 그건 그저 성규 놈이 사고를 칠까 걱정해서가 아닌 성규 놈이 다칠까를 걱정해서라네.’
‘그게 무슨?’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핏줄을 내가 모를 리가 없다고.’
‘설마......’
‘성규 놈 만큼 내 핏줄인 우영이 그 놈에 대해서도 내가 잘 알지 않겠나? 그게 문제라네. 우영이 그 놈을 잘 알기에 그간 성규 놈을 감시 한 거네.’
‘그 말은 혹시, 성규씨를 보호하고 계셨다는 소리 맞습니까?’
‘이빨 빠진 호랑이가 무슨 힘이 있겠나.’
‘그래도 호랑이 아닙니까?’
‘호랑이라는 겉모습으로 내 새끼를 지키기에는 한계가 있네.’
‘제가 어떡하면 되는 겁니까?’
우현의 말에 중년의 남자가 살며시 웃으며 커피를 들이켰고 그 모습을 보던 우현이 순간, 성규가 나이를 먹는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성규의 모습이 남자에게 겹쳐보였다.
‘장사장과 성규씨. 그 둘의 사이가 왜 그렇게 나쁜지 알고 계십니까?’
우현의 말에 자신의 말이 다 끝났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남자가 뒤에 서 있던 남자가 건네준 지팡이를 받아 들었다.
‘태생부터 돈과 명예를 나눠가져야 하는 운명은 사이가 나빠졌기보단 사이가 좋은 적이 없다고 봐야지.’
‘...........’
‘조심하게. 성규 말대로 토끼 놈은 더 이상 토끼가 아닌 구렁이가 되어버렸으니까.’
안녕하세요
2013년 마지막 밤에 F코드입니다.
왜 마지막이냐고요? 왜냐면 저는 31일 지금이 지나고 약 10시간 뒤에 잠에 들지 않아 있을테니
저에게는 오늘이 2013년에 마지막 밤이네요 ㅠ_ㅠ
이렇게 또 한살이 먹고, 한 해가 지나가네요.
비록, 계획했던 모든 걸 이룬 한 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남은 한 해였으면 좋겠네요.
2013년 저는 여러분을 만났고 또 여러분이 재밌게 읽어주시는 글을 쓰게 되었지만
또한 한 편으로는 소중한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일로 일자리를 잃고
자신의 의견을 얘기 했다는 이유 만으로 행동에 제한을 받는 모습을 바라보는 가슴 아픈 한 해 였습니다.
내가 아닌 우리 또 모두가 새해에는 조금 더 살기 좋은 평화로운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2013년 마지막 안녕하십니까?
2014년은 모두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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