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도 있다01.
W.라지
"그간 수고하셨으며.."
'정환아'
춥디추운 운동장에서 빨개진손을 입김으로 후후불며 녹이고 운동장을 가득 울려퍼트리는 지루한 교감선생님의 연설에 하품도 몇번하고 키가 작은탓인지 바로 눈앞에 턱하니 딱딱한 운동장 모래바닥에 꽂혀있는 10반이라 적혀있는 판넬도 주먹으로 툭툭쳐보기도하고
내 나름대로 지루하지않은 연설시간을 보내고있었지만 소심하게 내 바람막이를 툭툭치는 손가락의 느낌에 아예 등을 돌려 나보다 조금큰 2번 친구와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사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아서 시덥지않은 어제봤던 예능프로그램 얘기일 뿐이겠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눈빛의 주인공과 얘기하는것보단 이편이 훨씬 재밌었다.
'정환아 정환아 정환아'
"아쫌!"
등을 매몰차게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절때 좌절하지않는 저 인간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민한 척추부분을 손으로 몇번이나 툭툭툭 찔러왔고, 기분나쁨 느낌에 얘기하던 예능프로그램 얘기를 끊고 최대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오른쪽 눈썹을 한쪽올린채 차선우를 노려봤다.
짜증남이 얼굴에 뭍어났음이 분명한데도 또 뭐가 좋은지 웃으며 주머니에서 하얀네모같은 물건을 꺼내 내 손에 쥐어준다.
"보나마나 교감쌤 연설할려면 적어도 몇분은 더 갈거같으니까 이거 꼭 쥐고있어."
"..야."
갑자기 받게된 그 하얀네모난색은 뜨끈한것이 핫팩이었는지. 저도모르게 꾹쥐고있는 핫팩의 열기에 그대로 노출된 양손바닥이 뜨끈했고 덩달아 볼도약간 후끈거렸다.
뭐야, 왜 후끈하지 발그레해진 얼굴을 감추려 핫팩을 볼에 대자 마치 모닥불을 피워놓고 바로 그옆에 붙어있는듯한 느낌에 저절로 눈이감겼다. 으아- 진짜 따듯해.
"정환아, 우리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즐. 너랑나랑 왜 만나냐."
"뭐 동창회같은거나, 아니면 우연하게 만날수도있지?"
"아서라 상상만해도 싫어."
진짜 싫어, 핫팩이 따듯함을 유지해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싫은느낌에 온몸을 부르르떨었다. 조금은 씁쓸한 표정이던 차선우가 갑자기 내 따듯함을 유지해주던 핫팩을 다시 자기품으로 가져왔다.
휑해진 볼의 느낌에 눈을 껌뻑껌뻑 뜨며 핫팩을 쥐고있는 차선우 손한번, 재수없는 얼굴한번 쳐다보았다. 치사하게 줬다가 뺐는건가?
"야 치사하게, 줄거면 확실하게 주던가."
"그럼 약속하나해."
"무슨 약속?"
"우리 졸업하고서 언젠가 다시 만날때 그땐 나 받아주기로."
"뭐? 너 마음접은거 아니였냐?"
"그럴리가."
절대적으로 단호한 표정에 좌절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징하다 징해, 네가 널 왜 받아주니 그깟 핫팩때문에. 혀를 끌끌차며 핫팩을 받으려 뻗었던 손을 그대로 차디찬 바람막이 주머니에 쑤셔넣었더니 저절로 손이 시리다.
으어 추워, 몸을 최대한 움추리며 차선우옆을 떠나 다시 판넬앞에 섰다. 툭하는 소리가들리더니 이제 운동장 전체를 울리던 쩌렁쩌렁하고 걸걸한 교감선생님의 목소리가 그쳤다. 드디어 끝났나보다 했더니 상장수여식이 있덴다.
아 그깟 상 그냥 대충받고끝내지 뭐하러 이렇게 시간을 끄냐. 보이진않겠지만 난매우지루하다 집에보내달라 라는 반항으로 다리한짝을 덜덜 떨어댔다.
"학부모상 차선우."
"이학생은 평소 행적이 우수하고 성적또한 뛰어났으므로 이상장을 수여함 교장 이원민."
아까 핫팩을 뺐던 쪼잔함은 어디가고 어깨를 쫙핀채 교단 계단을 쿵쿵올라가 상장을 받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선생님들쪽 한번, 우리들쪽으로 한번하자 터져나오는 박수소리에 어쩔수없이 분위기에 휘말려
대충 박수를 쳤다. 인정하긴 싫지만 교우관계도 괜찮았고 성적도 괜찮았고, 잘났긴했다 3년내내. 그래서 내가 더 싫어하는건지도 모르지 진짜 비호감이야.
잘난주제에 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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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시구 댓글 ㅎㅎㅎ
이글은 네이버팬픽카페에서도 연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