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할께, 안받기만 해봐라.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툴툴대던 양요섭, 은 그렇게 나에게 통보를 하고 미련없이 공원을 떠났다.
집에서 나왔을때가 점심 무렵이였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벌써 어두워졌다.
사람이 원래 잘 다니지않는 이 공원엔 지금. 멍청한 남자가 있다.
아니 어쩌면, 미쳐버린 남자가 두명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벤치에 혼자 앉아 핸드폰을 꺼내 홀드를 풀자 보이는 성규와 나의 사진.
저 사진을 찍은지 불과 2개월도 채 되지않았는데,
사진 속의 김성규와 이 곳 어딘가에 있을 김성규는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그래, 김성규는 한달 전 부터 변해가고있었다.
멍청한 남우현은. 그걸 이제서야 알아채버렸다.
"차라리..."
끝까지 모르는 척 했어햐했다. 아니, 어제 김성규를 따라나서는게 아니였다.
김성규가 다시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수 도 있었다.
액정의 조명이 점점 꺼져가는 찰나에, 갑자기 화면이 밝아지면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양요섭이였다.
"..여보세요."
-"나 집 도착했다! 집 들어갔어?"
"왜, 전화하셨어요."
-"우현이랑 더 친해지려고 그러지! 왜, 싫어?"
사랑스럽다.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사랑받는게 익숙해지고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지 아는, 그런 사람이다.
김성규랑 너무나도 닮은 사람.
"..아니요. 집이에요."
-"거짓말하지마. 바람소리 다 들리거든? 안들어가고 뭐해, 내 생각하나?"
"..아, 빨리 들어가야겠다."
-"내 생각 하는거면 더 있어도 되는데."
지독한 비지니스 관계가 될 수 도 있다. 어쩌면 그 이상, 이하가 될 수 도 있는.
어쩌면. 김성규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양요섭을 이용하고, 양요섭은 나를 이용할 것이다.
-"아, 한번만 형이라고 불러주면 안돼?"
"나중에, 때가되면 불러드릴께요."
-"아..저 숨막히는 존칭 좀 봐. 우현아, 지금 형이랑 밀당하는거에요?"
"아니요, 전혀."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수 도, 받을 수 도 있다.
그만큼 서로 위로해 줄 수도 있는, 그런 관계가 되기를.
-"야, 오늘 밤에 눈 온댔어. 빨리 더 늦기 전에 들어가. 춥다."
"...형,"
-"....뭐라고, 우현아?"
"앞으로...잘, 해봐요. 우리."
-"야, 잠깐만 너 지금 나한테 형...여..여보세요? 우현아?"
좋은, 그런 인연이 될 수 있길.
나의 욕심이 꼭 이루어지길, 바라고 바란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성규와 나의 집은 행복했던 공간이 아닌.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이 되었고.
김성규와 나의 대화는 형식적인 대화만 오갈뿐, 별 다른 얘기는 없었다.
김성규의 외박이 잦아지고,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갔다.
"..우,현아."
"어, 왜."
"..나 출장가, 일주일동안."
"...조심해서 잘 갔다와."
거짓말이다, 완전한 거짓말.
날이면 날이 갈수록. 김성규는 대담해져가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김성규가 나를 불렀다.
"우현아, 나한테 뭐..화난거..있어?"
"..없어."
"..아니. 요즘 들어 자주 나가고..그러길래.."
헛웃음이 나왔다. 김성규는 나에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것인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짧게 울렸다.
아마도, 양요섭이겠지.
[두준이 출장간대. 출장은 무슨..나 지금 공원 밖에 포장마차야. 형이 쏜다 10분안에 튀어오삼]
"니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오늘 늦어, 먼저자."
그렇게 김성규를 홀로 집에 두고 나왔다.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계속, 조금씩 틀어지다간..
"우리 우현이, 엄청 빨리 왔네? 상으로 형이 뽀뽀 한 번 해줘야되나.."
입술을 쭉- 내밀고 나에게 들이대는 양요섭, 이 남자는 진정 아무렇지도 않은 것인가?
양요섭의 이마를 쭉 밀며 옆자리에 앉았다. 혼자서 벌써 2명이나 마시는걸 보니까, 속이 상하긴 하나.
"우리 우현이 아주 형한테 기어올라요, 응?"
눈도 벌써 풀려가지고,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취하긴 했나보다.
"형, 자작하면 3년간 재수가 없대요."
"그래서 지금 내가 3년간 재수가 없을 것이다, 이 말이냐?"
"아니요, 그래서 제가 따라준다구요."
따라준다니까 또 좋다고 허허 웃으며 한번에 술을 들이키는 양요섭은, 이미 정신이 나가보였다.
술잔을 테이블에 탁- 하고 세게 올려놓은 양요섭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우리 우현이, 참 잘생겼다. 바람필 맛 난다니까.."
"형, 취했죠?"
"근데, 우리 두준이가 더 잘생겼어. 메롱."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웃던 양요섭의 웃음 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해있었다.
"윤두준이나...김성규나, 진짜 나쁘다. 그치?"
"..응, 진짜 나빠요."
"근데 김성규는...두준이도 사랑해주고, 우현이도 사랑해주고."
"...."
"나는...아무도 안사랑해준다. 내가 더 예쁜데, 그건 쫌 부럽네."
아무말도 할 수가 없다.
여기, 사랑에 버림받은 두 남자는.
멍청하게도 여전히 자신의 연인이 돌아오길, 바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