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어린 왕은 어린 시절부터 다사다난한 삶을 사셨다.
선대 임금과 중전 사이에는 아이가 없으셨고
후궁으로 들인 여인들 사이에는 내리 계집 아이만 다섯이었다.
후손이 없어 걱정이 컸던 중전은 내명부의 수장으로써 큰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궁 밖에서 제일 아름답기로 소문이 난 여인, 초옥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옥은 선왕의 아기씨를 품게 되고 중전은 극진하게도 초옥을 돌보았다.
초옥은 영리하였다. 초옥 역시 중전의 깊은 뜻을 헤아려 중전을 도왔다.
글솜씨 또한 어느 누구보다 월등하였고 생각이 깊고 학문에 능했다.
그런 초옥의 모습에 선왕께선 점점 더 초옥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중전이 머무는 궁 못지않게 초옥이 머무는 궐을 꾸며주었고 중전의 화원 못지않은 곳을 만들어 초옥을 즐겁게 해주셨다.
선왕은 초옥이 웃기만 한다면 모든 것을 다 내주셨다.
그럴수록 초옥의 집안은 점점 더 욕심을 더 해 나갔다.
열 달이 지나고 더운 여름 초옥은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사내아이가 태어나자 선왕은 하늘민, 빛날형 하늘이 빛나다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고는
관료들에게 세자로 책봉할 것이라는 속내를 내보였다.
그리고 초옥은 종사품 숙원에서 정일품 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리 순탄하게 흘렀으면 좋았을 것을
중전은 그 해 가을 그렇게 되지 않았던, 그토록 원했던 회임을 하게 된다.
중전은 하루아침에 선왕의 관심을 초옥에게서 빼잇아갔고 초옥은 그런 중전의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저 하늘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제발 공주 아기씨가 중전의 뱃속에서 자라기를 초옥은 그리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세자가 되어야만하는 내 아들을 위해서...아니 내 아들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하늘도 무심하시게 다음 해 초여름 깊은 밤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궁궐에 울려 퍼졌다.
동혁, 달 뜰 동, 빛날 혁의 달이 훤히 밝다는 의미의 이름을 선왕은 아이에게 주었다.
민형과 동혁은 연년생인 만큼 궁궐 안에서 친형제, 친구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민형은 초옥을 닮아 학문의 능했고 동혁은 선왕을 닮아 무예에 능했다.
선왕도 장남인 민형을 아끼다가도 자신을 닮은 동혁을 보며 웃음 짓는 날들이 많아졌다.
초옥은 그럴수록 불안했다. 동혁이 세자가 되고 후에 임금이 되면....그렇게 된다면...
"깊이도 고민할 문제가 아닙니다, 옥빈마마...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허나, 숙부님"
"중전을 밀어내시든 동혁 왕자를 밀어내시든 하셔야 하는 일입니다. 언제까지 민형 군을 동혁대군 밑으로 두고 지켜보실 생각이십니까.
요새 전하께서 모든 일에 대군만 앞세워 두고 다니시지 않습니까...그리고"
"..."
"요새 마마께도 전하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숙부님!!!"
민형이 열네 살, 동혁이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밤늦게 초옥을 찾아온 초옥의 숙부였다.
그는 거리낌 없이 늦은 시간마다 초옥의 숙부는 초옥의 궐을 찾았다.
그리고 초옥의 귀에 항상 바람을 넣었다.
중전과 동혁은 위험하다.
하지만 오늘 초옥의 숙부는 도를 넘어선 말까지 초옥에게 향했다.
초옥은 마시던 차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한 번도 이렇게 흥분한 적 없던 초옥의 모습에 초옥의 숙부는 놀란 기세였다.
"그대는 예를 갖추라."
"마마..."
"다시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하려거든 나를 찾아오시지 마시게."
"..."
"내 숙부님이라 부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세...김상궁, 예조판서 나가신다."
초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숙부와 초옥 사이에 발을 내려버렸다.
숙부는 그런 초옥의 모습을 아니꼽게 바라보다가 혀를 차며 초옥의 궐을 나섰다.
초옥의 생각과 함께 깊어지는 밤이었다.
"중전마마와 저와의 처지가 참으로...서글픕니다..."
어찌 사이가 좋은 우리 둘은 이런 운명을 타고났단 말입니까....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그날은 궁궐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전하..."
"의금부에선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해야 할것이다!!! 범인을 내게 빠른 시일내로 목숨만을 살려둔채로 내 앞으로 데려오라!!!!"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중전의 죽음 때문이었다.
"중전에게 독이 든 국화차를 내민 것이 그대인가."
"..."
"대답하시게, 예조판서!!!!"
"마마 말씀 낮추세요. 손을 잘 써놔뒀으니 이제 가만히 중전 자리에 오르시면 되는 일이 아니 옵니까?"
"..."
"대군을 죽이려다 이렇게 얽혀버린 일이 오라 저 역시 당황스럽습니다. 이럴수록 정신없는 폐하의 맘을 마마께서 잘 달래주셔야지요."
"...내가 감히 네가 한 일이라 전하께 못 전할 것 같으냐..?"
"예, 아마 못 전하실 것이옵니다."
"뭐라?"
"제가 대군에게 옥빈께서 전해주신 것이라 전해드렸사온데 어찌 마마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
"걱정 마십시오. 대군께서는 감히 마마께서 하셨을 거라 생각 안 하실 것이옵니다. 그저 마마께서는
조강지처를 잃으신 전하를 위로하시고 어미를 잃고 자리도 잃으실 대군을 동정하시고 제가 가진 힘과 마마께서 지닌 직위로 민형 군을 세자로 책봉토록 노력하시면
그만이옵니다. 안 그렇습니까?"
"예판!!!!!"
"저를 원망하지 마세요, 이 일은 누구 하나라도 했어야 하는 일이었사옵니다."
"..."
"그동안 침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마마의 답인 줄 알았건만 이리 나오시면 참으로 서운합니다."
중전은 독약에 중독되어 죽었고 그 배후는 중전의 외삼촌이라는 누명으로 중전의 집안사람들이 멸족하게 되었다.
동혁은 그저 그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하루아침에 어미와 친척 사람들을 잃고 말았다.
궁녀에게 받은 국화차를 탁자에 올려두고 옹주들과 민형 군과 투호를 하고 놀았다.
그리고 들어오니 그 국화차는 온데간데 없었다.
궁녀 중 한명이 차를 치웠겠거니하고 지나쳤던 것이 화근이었나.
저녁이 되고 어머니를 찾아뵈니 그날따라 어미는 조금 더 긴 대화를 이어나갔었다.
항상 조심하라 말씀하셨던 어머니지만 그날따라 어머니는 동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부하셨다.
"왕자...궁 안은 커다란 만큼...무섭고 차가운 곳이에요."
"어마마마, 저도 이제 열세살이옵니다. 판단할 줄 알아요."
"왕자, 어미 말을 새겨들어야만 해요..."
"예, 말씀 받잡겠사옵니다."
"동혁아"
"...예, 어마마마"
"...오늘만큼은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아."
"항상 꾸중하셔놓고 오늘은 무슨 날이옵니까?"
"동혁아."
"예예, 소자 어머니 말씀 받잡겠습니다."
"너를 조금 늦게 보았지만 만나서 기뻤단다..너는 어미의 자부심이니 자신감 잃지 말고 살아가..."
"...어머니, 참으로 낯간지럽습니다."
"..."
"저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무척이나 기쁩니다. 하늘같은 아버지,이리도 따뜻한 어머니가 많은 것도 같이 궐 안에서 놀 수 있는 형제가 이리 많은 것들까지
늦게 만난 것이 어떻습니까 늦더라도 이리 만난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그렇지요, 어머니?"
"..."
"그냥 다 제 복인 것 같아 무척이나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니 그것 참 다행이구나..."
어머니는 그리 나를 쓰다듬고는 다음날 눈을 감으셨다.
"...어머..니..흐.."
동혁은 자신의 궁안에서 중전의 옷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밖에서 지켜보던 민형도 괴롭기만 했다.
"내가 무엇을 어찌하면 좋겠느냐..."
항상 웃어만 주었던 철부지 동혁이었다 고작 한 살 터울이지만 자신을 극진히도 형님 취급을 해주어
자신 역시 동혁을 친아우처럼 터울없이 지내왔다. 동혁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린 늘 함께였다.
그래서 다가서지 못하겠다. 동혁이 저리 힘든 것을 알아 등을 두들겨 주고 함께 울어주고 싶은데 민형은 그러지 못하였다.
민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옥빈의 궐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자신은 분명히 알아야만 했다.
'그동안 침묵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이 마마의 답인 줄 알았건만 이리 나오시면 참으로 서운합니다.'
자신의 외종조부와 어머니께서 나누신 말씀의 뜻을 알아야만 했다.
자신의 오해이길 바라는 이 뜻을 풀기까지 동혁에게 찾아갈 수가 없었다.
믿기 싫은 이 상황들이, 자신의 오해라고 생각하려고만 했지만 오해라고 사기에는 큰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발언이....
믿기싫지만 오해하고 싶지 않지만..어머니를 믿지만 그래도 이 일이 만약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민형이 옥빈의 처소로 향하는 그날은 참으로 훤히 빛나는 보름달인 밤이었다.
중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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勸君金屈卮
권군금굴치
滿酌不須辭
만작불수사
花發多風雨
화발다풍우
人生足離別
인생족이별
귀한 잔에 술 부어 그대에게 권하노니
부디 잔 넘친다 사양 말아주오
꽃 피면 비바람 거세고
우리네 인생살이 이별도 많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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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람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