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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우지호] 콩깍지 (부제: 그들의 추상적 관계) 0 | 인스티즈

 

 

콩깍지 .

 


때는 고3. 밤늦은 시각 . 우리집으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은 그날따라 유달리 어두웠고 늘 혼자 걷는 내 발소리 뒤로는 바짝. 또 하나의 발소리가 따라오고있었다. 머릿속엔 뉴스 속 희생된 여자들이 속보로 떠오르고 손발은 어느샌가 걷잡을수 없이 떨려오고 있었다. 도망칠까? 하지만 소용없는 노릇인것은 불보듯 뻔한 것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어봤자 얼마못가 나동그라질것이다 . 아무나. 누가좀. 두눈을 질끈 감앗다. 조금씩 빨라지는 내 걸음에 맞춰 그의 발소리도 빨라지고 있었다. 아..엄마.. 코끝이 저렸다. 울음이 터질것같았다. 도망가고싶어. 도망가고싶어.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치던 그때. 별안간 웬 남자가 초록대문을 박차고 요란스럽게 튀어나왔다.




" 아이씨, 어! "
" 꺄아아악!! "




 짜증을 내며 튀어나온 그 남자를 보자마자 난 나도모르게 자지러지며 그자리에 주저앉아버렷다. 남자는 놀란듯 황당한 표정으로 날 흘끗보다 그냥 갈 심산인듯 몸을 돌렷다. 아. 도와달라고 해야하는데,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가않는다. 나는 덜덜 떠는 내 다리를 오른손으로 간신히 주먹을 쥐어 퍽퍽 내리쳤다. 움직이지가 않는다. 어느새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내 뒤의 남자가 천천히 내쪽으로 오는게 느껴진다. 아. 제발. 그때. 다시 남자가 뒤돌았다.




" 근데. 뭐지 이거 ."





하고 중얼거리며 나를 따라오던 사람을 보는듯 내 뒤로 시선을 두엇다. 그러다 휙 .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덜덜 떨리는 입술로 실낱같은 목소리를 뱉었다.




" ....도..와주세요... "





그의 미간이 움찔. 하더니 나를 똑바로 주시한다. 들렸을까, 제발.




" 어이 아저씨. "





시선은 내게로 둔 채. 그가 험상궂은 목소리를 낸다. 나를향한 말이 아님을 알아도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속수무책. 그만 쳐다보고 있었다.




" 아저씨 좀 수상해. "




남자가 웃었다. 분명 입꼬리가 원을 그리며 올라갔다. 꼭 비웃듯이. 영문을 파악하기도 전에 남자가 내 뒤로 뛰쳐갔다. 내가 고갤돌려 확인했을때는 이미 그남자는 수상한남자를 밑에 깔고 주먹을 내던지고 있었다. 아. 어어..! 둔탁한 소리. 안도감보다는 되려 초조해져 이가 서로 부닥치며 소리를 내고 움직이는것 바쁜 눈동자뿐. 그런 미련스런 내 행동 탓일까. 한참을 주먹을 날리던 남자가 일어섰다.




" 야. "




하고 부른 그는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다시 이어 말한다.




" 신고 안하고 뭐해. "




나는 그제야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까만화면. 아. 전원이 꺼져있었지. 그래서 그렇게 무서웠던건데. 시야로 사시나무마냥 떨리는 팔목이 들어왔다. 괜찮아 이제. 나는 눈을 꼭 감았다 다시 떴다. 눈앞의 그는 발로 축 늘어진 남자를 툭툭 치며 대수롭게 침을 뱉고있었다. 그모습을 보니 더더욱 말할 용기는 안났지만 이 상황 속에 있는게 결국은 더 고역일것이리라. 나는 입을 열었다.





"저.. 전원...꺼졌어요..."





남자가 고갤 돌려 나를 본다. 입에는 불을 붙이지않은 담배가 물려있다. 잠시 내게 시선을 두던 그는 호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이내 아무것도 찾지못햇는지 욕을 중얼거리다 휘적휘적 내앞으로 걸어온다. 등골이 곳추선다. 분명 나를 도와준사람인데도. 나는 빳빳이 긴장한채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 충전 좀 하고다녀라. "




남자의 손이 내 머리를 부스스하게 쓰다듬고 지나간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있던 대같은것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는 꿈틀거리는 남자를 들쳐메더니 슬리퍼를 질질 끌며 앞장섰다. 긴장이 풀린 나는 멍청히 그 광경을 지켜만 보고앉아있었고 그는 몇발자국 가다가 또 고갤돌려 나를 불렀다.





" 야. "





따라와 빨리.


골목길 흐릿한 가로등 아래로 그의 노랑머리가 빛을 받아 선명하다. 불량스런 눈매. 퉁명스런말투로 나를 부르는 저 웬 사내. 골목길이 어두운 탓일까. 심장이 쿵쿵 방망이질을 한다. 그의 말에 들썩 주저앉은 엉덩이를 들려는데. 아.

" 저...근데.. "

" 왜 "

" 다리가.. "

 

안움직여요. 아. 내가 말해놓고도 창피해 고갤 푹 숙였다. 내 말에 그는 대답없이 조용하다가 이내 내 앞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선 여전히 덜덜 떠는 내 손목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엇, 하는 새에 그가 나를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빠져 휘청하자 당황하며 불쑥. 그가 내 허릴 붙들었다. 아주 잠깐.의 정적.

 

 

 

" 가지가지 한다.진짜. "

 

피식 비웃는듯한 그 말투가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한 쪽에 남자를 들쳐매고 한쪽엔 나를 붙들고. 그는 무거운 듯 짜증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 이거 잡았다고 신고하는거 아니지? "

" 네? 아, 그, 그럴리가..! "

 

그가 나를 보며 개구지게 웃는다. 보통이라면 넘어지고도 남았을 무게를 잘도 버티고있다. 난 위태로워 보여서 불안하기만 한데. 그는 몇번 자세를 고쳐잡더니 아무래도 무겁긴 했는지 남자를 바닥에 다시 내던진다.

 

" 아씨. "

 

나는 그 소리에 저도모르게 발목을 움직였다. 아.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나도 덩달아 짜증이 나려고 한다. 어쩌지 이제. 문득 고갤 올리자 그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널부러진 남자를 내려다 보고있다. 갑자기 그가 날 휘감은 허리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내 모습은 거의 그에게 기댄 셈이다. 얼굴이 불이 튄 것 처럼 화다닥 달아올랐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나를 벽에 기대 앉혔다. 그리고 어께를 붙잡고는 내 시선을 맞춘다. 쿵. 하고 거세게 맥박이 뛰는 것 같다.

 

" 야. 여기 잠시만 있어. 금방올께. "

 

놀란 내가 말없이 불안한 얼굴을 하자. 다시 한번. 금방 올께. 진짜. 하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남자를 들처매고 저만치 뛰어간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어두운 골목길으로 시선을 돌린다. 깜빡히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은 아까만큼 흔들리지는 않는다. 일어서보려고 엉덩이를 주춤 들썩이던 찰나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남자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여기요!! 하고 소리치자 무릎에 손을 얹은 채 숨을 고르던 남자가 번쩍. 고개를 든다. 가로등 불빛 아래 노란머리가 보였다. 그사람이다. 우습게도 베시시 웃음이 번졌다.

 

".....헉..헉.. 야!!... "

 

숨을 몰아쉬며 뛰어온 그가 내 앞에 섰다. 야! 하고서 한참을 숨을 고르더니 그는 휙 돌아앉아 업혀! 한다. 어어?!

 

" 네?! "

" 업히라고 빨리. 늦게가면 나 의심받을지도 모르거든? "

 

 

그의 말에 어정쩡하게 그의 등으로 팔을 뻗었다. 지금 내 꼴이 꼭 허리춤 아래로는 감각이 없는 셈이라 업히기가 영 쉬운것이 아니다. 낑낑대며 올라타려고 하고 있는데 어찌나 답답했던지 그가 한숨을 푹 내쉬고 어께너머로 나를 보더니 두다리를 번쩍 들어 업는다. 헙. 나도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 ....아..휴. 가자. "

 

 

그가 조금 빠른걸음으로 걸었다. 꼭 미로같이 숨막히던 골목길이 조금 높은 시야여서 그런걸까 생각보다 낮게 느껴졌다. 눈물자국이 마른 두 뺨이 땡긴다. 묵묵히 걷기만 한 그 덕인지 금새 골목을 빠져나아 큰 길가로 나왔다. 아까 그 남자는 정신을 차린듯 앉아서 경찰에게 무어라 변명을 하고있었다. 그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떡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아서 그런지 다시금 오금이 저렸다.

 

 

" 어어, 아저씨. 허리춤에 보세요. 거기 허리춤. "

 

 

들썩이며 나를 다시업으며 그가 경찰에게 말했다. 그 남자가 짐직 당황한 듯 우리쪽을 쳐다본다. 경찰이 그의 팔을 포박하고 허리춤을 뒤지고. 나는 헉, 하고 숨을 몰아 쉴 수 밖에 없었다.

 

 

칼이였다.

 

 

" 어떡해... "

 

 

탄식과 동시에 눈물이 또 터지고야 말았다. 만약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무섭다. 아니 끔찍하다. 두려움에 다시 떨림이 찾아오고 업힌채 그의 등에 고갤 파묻었다. 주체 할 수 없이 눈물이 뚝뚝 흘렀다. 다행이라는 생각보다 그 상황에 있었던 그 자체가 너무나 무섭다. 엄마. 아이처럼 혼자 중얼대며 엄마를 찾았다. 집에 가고싶어.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경찰차. 그리고 끔찍한 저 사내의 곁에 더이상 있고 싶지 않다.

 

 

" 야. "

 

 

내가 우는 걸 눈치 챈 그가 어르듯이 나를 부른다. 대꾸할 정신이 없는 나는 흐느낄 다름이지만.

 

 

" 괜찮아. "

 

 

괜챃아. 이제 괜찮아.

 

별다른 말 없이 그는 계속 해서 괜찮을 거라 나를 토닥였다. 그렇게 그의 등에 업힌 채로 정신없이 나는 울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그 후. 취조 라고 할 것도 없는 취조를 받고 .나 다음으로 열변을 토하는 노랑머리 사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경찰서 의자에 앉아 율무차를 홀짝였다. 그는 경고조치를 받았고 노랑머리는 욕을 해대며 나를 이끌고 나왔다. 하루정도는 구치소에 있을 꺼라며 안심시키는 경찰 아저씨의 위로아닌 위로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와 경찰서를 나서는데 뒤에서 경찰이 나를 불렀다.

 

 

" 어, 저기. "

" 네? "

" 근데 두사람은. 어떤 관계신지? "

 

 

힐끗.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 친구요. "

 

 

그리고 다시 그는 뒤돌아 휘적휘적 걸어갔다. 삼선 슬리퍼에 흰티셔츠. 노랑머리. 인상이 사납다는것 외에는 아는 것 없는 우리 두사람이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것이 시작이였다. 바보같이 멀뚱히 서서 가는 모습을 보던 나를 이끌며 집까지 데려다 준 이후로. 나는 종종 그를 만났고. 그러다 이름이 우지호라는 것도. 나랑 동갑이며, 학교는 자퇴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처음 내 예상과 맞게 그는 개구진 성격에 욕을 입에 달고살며 아닌밤중에 쓸대없이 기어나가는 일지 잦은 야행성이였다. 우악스러운 성격의 어머니이신 아줌마와 꼭 닮아 맨날 집이 조용할 일이 없지만 누구보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생각보다 효심깊은 녀석이기도 하다. 첫 인상과 다르게 음악을 하겠다는 심지굳은 신념이 있기도 하고.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는 시도때도없이 오락실을 가거나 내 등하교를 같이 하기도 하며 붙어다녔다.

 

 

그리고 그를 만난지 벌써.

3년.


 

 

 

" 야 좀 꺼져봐. "

" 우지호. 우리집이거든?! "

 

 

 

리모콘을 발가락으로 잡아끌며 능청스럽게 코를 후벼파는 저 녀석이 3년 전 그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 아직도 오락가락 한다. 그땐 좀 멋있었는데. 자취를 하게 된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집에 기생하는 녀석은 아마도 분명 역마살이 낀 것이 분명하다. 좀 비켜봐. 간신히 옆으로 치워가며 티비 주변을 청소하는데 아니 여기가 우지호 집인지 우리집인지.

 

 

" 좀 집에 가면 안되겠니? "

 

 

 

인상을 구기며 내뱉는 내 말에 힐끗. 지호가 사나운 눈초리로 날 쳐다본다. 옛날엔 저거에 많이 쫄았지. 하지만 알고지낸지가 3년이다. 붙어다니지 않은적이 없고. 익숙해지고도 남아 물리기 까지 한다. 뭐. 어쩌라고. 하는 저 똥배짱. 내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서있자 이내 표정을 풀고 베시시 웃는 녀석. 넉살도 좋지.

 

 

" 싫어. "

 

 

아이고 두야. 뒷통수를 감싸쥐는 내 앞으로 성큼. 우지호가 다가온다.

 

 

" 이여주. "

 

 

얘가 왜이래. 하는 사이 벽에 나를 가두는 녀석. 멍청한 표정으로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그가 다시 거만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 이렇게 잘생긴 오빠가 집에 있어주니까 설레 죽겠지? "

 

 

염병. 똥을싸네.

욕을 하며 어께를 밀치는 내 머리를 헝크러트리며 장난스래 짜식. 하고 다시 쇼파로 가서 드러눕는 우지호. 설레긴. 정작 자기는 여자집이라는 자각이 아예 없지?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에라. 덩달아 쇼파에 같이 드러누워 버렸다.

 

 

스물둘.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 시절보다야 훨씬 자랐고 주변은 변했다. 사회는 때로 나를 서럽게 하고 화나게 했다.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고 소원해졌다. 그 속에서 단 한가지 변하지 않은 관계는 우지호 였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기를 .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석이였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붙더라도 내게 가장 편한 사람이였고. 안전한 사람이였다. 말하자면, safety zone인 셈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나는 여전히 고등학교 삼학년 때 처럼 그의 옷자락을 붙들고 옴짝달싹않고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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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레알 금손이세요 ㅠㅠㅠㅠㅠㅠㅠ 우지호 설리설리하네요 !!! ♥
10년 전
포스터칼라
가무사하무니다ㅠㅠㅠㅠㅠㅠㅠㅎ
10년 전
독자2
작가님진짜재밌어요ㅠㅠㅠㅠㅠㅠ이런글이초록글가야해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3
헐ㅋㅋㅋㅋㅌ큐ㅠㅠㅠㅠㅠ완전설레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신알신하고가여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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