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다.
외지고, 어두운 이 공간에는.
양요섭의 울음소리만 크게 울렸다.
"형, 그만 울어요. 눈 붓겠네."
"남우현, 너..제 정신이야? 너 미쳤어?"
"어, 미쳤나보지."
미친건 저 둘뿐만이 아니라,
양요섭, 그리고 남우현도 미쳤다.
이 곳에는 지금, 미쳐버린 사람들만이 존재했다.
"집은..내가 나갈께. 내일 안으로, 짐은 다 뺄테니까."
"남우현 너..아니야. 너 거짓말이잖아, 우현아."
"웃으면서는, 못보내주겠다. 형도 양심이 있으면 바라면 안되는거고. 간다."
김성규는 모순 덩어리이다.
김성규는, 욕심이 많은 걸까. 나 하나가지고는 부족했던걸까.
나와 말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김성규는 그 남자의 손을. 잡고있었다.
길어질것만 같았던 김성규의 연극에서.
나의 역할은, 끝이 났다.
"이제..이제 진짜 끝났다, 우현아."
김성규와 그 남자에게 등을 보이며 양요섭과 공원을 빠져나왔다.
저 무대에, 오래 있고싶지 않았다.
"...그러네요. 형, 그만 울어요. 감기 걸려."
"너나 걱정하시지..이 날씨에 가디건 하나만 딸랑 입고 나오냐?"
"형이 막 울면서 말하니까 그렇지."
아까와는 다른 밝은 공간이다.
사방이 터지고, 환한 그런 공간이였다.
"쪽팔리니까 우는 건 그만 말해..아, 너 그러고보니까. 아까 나한테 뭐? 양요섭? 이제 야 라고도 하겠다?"
"아..기회봐서 야 라고도 할껄 그랬나. 야, 가자."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요, 우리 우현이. 미쳤지?"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이게, 남우현과 양요섭의 모습이다.
남우현과 김성규의 모습은, 어땠더라.
"너, 근데 집 나오면 어디서 살게?"
"나도 몰라. 형이 거둬주겠지."
"이게 어디서 거져먹으려고...돈 내, 임마."
"우리 사이에 무슨 돈?"
"내가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능구렁이를 키웠어..예전의 남우현으로 돌아와."
남우현과 양요섭.
양요섭은, 여리고 약한 사람이다.
사랑에 버림받은, 사랑스러운 사람.
양요섭의 작업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날이 밝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남우현과 김성규의 공간이 아닌 곳으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김성규는 그 남자와 같이 있을 것이다.
김성규와 해외 여행을 갔을 때 샀던 큰 캐리어를 꺼내어 짐을 한두개씩, 싹 담았다.
짐을 다 챙기고 거실로 가면, 김성규와 나의 사진이. 작은 액자속에 담겨있었다.
저때의 김성규와 남우현은, 이제 없다.
변해버린 김성규와,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남우현.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제의 모습 그대로인, 김성규가 내 눈 앞에 있다.
"..안가면, 안돼?"
"어, 안돼."
끝까지 김성규는, 연극을 한다.
나는 김성규의 연극에서, 그냥 스쳐지나갔던 엑스트라이길,
"언제부터, 알았어?"
"눈치 챈 건, 한 달 정도 됬나..확실하게 안 건, 얼마 안됬어."
"그럼 니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지 그랬어."
난 끝내, 엑스트라는 될 수 없다.
주연 김성규. 조연, 남우현.
"그 남자 좋아한다는거, 진짜 아니지?"
"아니, 진짜 좋아해."
"너 아직도, 나 사랑하잖아. 내 말이 틀려?"
나는 김성규를 사랑한다.
나는, 김성규를 사랑했다.
김성규는 나를, 사랑했나?
"어, 사랑해. 근데 이제 아니야."
"무슨, 의미야?"
"외사랑은 딱, 질색이라서. 그만하자. 얼굴 보는 일..없었으면 좋겠다."
낭떠러지에 아슬아슬 걸쳐져있던, 내 사랑은.
끝도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김성규의 부름을 뒤로 한 채, 다시 양요섭의 작업실로 돌아왔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소파에 늘어져 케익을 먹고있었다.
"뭔 가방이 저렇게 크데..빨리 와, 아침 먹어."
"형, 눈 부어서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못생겼어요."
"아침 말고 욕 먹을래?"
양요섭이 나를 픽 째려보며 플라스틱 포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하얀, 생크림 케익.
"아침에, 두준이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자기가 집 나가겠다더라."
"..이거 맛있네요, 형."
"하여튼 윤두준이나, 남우현이나 더럽게 자존심만 쎄가지고.."
"아, 왜 형이 과일 다 먹어요."
"끝까지 미안하다는 소리는 안해, 개새끼."
"형."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사랑에 버림 받은 사람 두명에게는,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저랑 바람 말고, 연애 해볼래요?"
그 끝이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남우현의 연극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