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생 A
잘하면 늦을 수도 있겠는걸.
나는 9시를 향해 달려가는 분침을 보며 고개를 돌려 흰 연기속에 둘러싸인 그 애를 쳐다보았다.
학교 따위야 어느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무심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던 그는 돌연 기침을 하며 괴로워한다.
" 괜찮아? "
나의 무미건조한 물음에 그 애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기침을 하고나서야 담배를 짓이겨 껐다.
좁은 골목을 나와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피라도 토할 듯이 거친 기침은 멈출 기미가 없다.
나보다 한 뼘 모자라게 작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다 눈이 마주쳐 버렸다.
" ...걱정하는 척 하지마, 역겨우니깐 "
" 그래. "
나와 그 애는 사이좋게 교문에서 담배 냄새로 걸렸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처럼 가방과 주머니를 탈탈 털어 담배가 없음을 확인하고 통과할 수 있었고,
익숙하게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보인 그는 선도부에게 잡혔다.
나는 다시 손목시계를 한 번, 학생이 무슨 담배냐는 선도부의 잔소리가 실증 난다는 듯한 표정의 그 애를 한 번 보았다.
십여분 정도가 지나자 담배를 빼앗기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걸어오는 그 애와 다시 속도를 맞춰 걸었다.
" 넌 맨날 등신처럼 기다리는게 지겹지도 않아? "
" 그러는 너는 맨날 늦는- "
" 씨발, 또 "
그 애는 나를 있는 힘껏 째려보고 먼저 계단을 올라간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입시준비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출결은 신경을 쓰라는 말을 하셨고 출석란에 동그라미를 치는 선생님을 확인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교실로 향하려는데 본인보다 훨씬 큰 사이즈의 헐렁한 와이셔츠와 대충 묶은 넥타이의 그 애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어-
친구와 함께 걸어오던 그 애는 나를 보며 반갑게 웃어보인다. 아는척을 하는걸 보니, 아무래도 돈이 필요한 것 같다.
" 왜? "
" 마침 잘 됐다, 나 만원만 "
" 어제 너네 엄마가 줬잖아 용돈. "
" 개소리야, 받은 적 없어. 얼른 주기나 해. 나 배고파. "
나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오천원을 주려다 만원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그 애는 웃으며 돈을 받고 다시 슬리퍼를 끌며 사라졌다. 질질 끌려가는 슬리퍼의 가죽 소리가 한동안 복도를 울려퍼져나간다.
* * * 남고생 A* * *
" 위치 추적 되나요? "
" 예.. 뭐, 이 근방 20m 내에 있다고 하는데 GPS가 이상한 곳에 잡혀서 원참.. "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연락 하나 되질 않는 그 애 때문에 나는 대충 가디건을 걸치고 집 앞 파출소로 향했다.
GPS가 어중간하게 가리키는 이 곳, 네온사인 불빛으로 가득 찬 거리에 있는 모든 건물 공중화장실을 들러보기로 했다.
저번엔 이 빌딩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나는 익숙한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속살을 훤히 드러낸 그 또래로 보이는 여자들을 뿌리치는게 담배냄새를 참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간신히 공중화장실로 들어가 굳게 잠겨있는 화장실 문을 두드려 보았다.
" 김여주, "
대답이 없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다 핸드폰을 켜 맨 첫 번째에 있는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기본 벨소리가 동시에 화장실 칸 안에서 울리는 걸 듣자마자 통화를 종료하고 빌딩 경비실로 향했다.
경비아저씨께서 나를 보며 아, 하더니 열쇠를 주신다. 나는 목례를 하고 화장실로 가 문을 열어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잠을 자고있는 그를 마주했다.
또 어디서 뒹군건지, 싸운건지.
스타킹은 찢어지고 거무튀튀한 자국들을 군데군데 묻힌 그의 팔을 어깨에 들처매고 일어났다.
" 누구야.. "
" 이민형. "
" ....아, 이민형 "
그 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웃었다.
그가 웃음과 동시에 알싸한 술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했다.
얼마나 마셨어?
몰라 나도.
나는 익숙하게 불분명한 그 애의 대답을 듣고 천천히 걸음을 뗐다.
빌딩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 **역 스타벅스요. "
" 어휴.. 아가씨가 저렇게 취해서 쓰나. "
" ..**역 스타벅스요. "
혀를 차는 택시기사의 말을 들은체 만체 하며 다시 한 번 목적지를 말했다.
의심의 눈초리로 나와 그 애를 번갈아 쳐다보는 택시기사님들의 눈초리는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택시에서 내린 후 그 애를 부축하며 걷는데 맞은편에서 두 세명의 남자들이 아는 이를 발견한 듯 아는체하며 다가온다.
" 야, 김여주 아니야 저거? "
" 맞는데? 옆에는 누구야? "
운이 썩 없게도 집 앞에서 그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남자들을 발견한 그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내뱉으며 남자들과 하이파이브를 해댔다.
나는 혹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그의 한 쪽 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그 애를 지탱했다.
" 여주야 나랑도 한 잔 해야지. "
" 어? 그럴까? 야 근데, 허락맡아야해 "
" 허락? "
" 나 얘네랑 더 먹어도 돼? "
갑자기 나로 향한 시선들에 당황한 나머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 팔에 겨우 의지하며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는걸 보면 절대 이 상태로 홀로 보내면 안되었다.
하지만 나를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이들에게 반감을 사고 싶기는 더더욱 싫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일은 주말이라 학교가야한다는 핑계는 못 대겠고,
어떡하지.
" 야야, 안 돼. 나 가야해. "
" 뭐야! 진짜 갈거야? "
" 어어~ 너네끼리 놀아라. "
그 애는 갑자기 친구들을 보내며 나를 부추기며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나는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먼저 집으로 가자는 그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며 같이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신발장에서 주저 앉으려하는 그 애를 겨우 일으키며 신발을 벗겨주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몸을 가누지 못하는것 같아 걱정이 됐다.
평소같으면 내가 넘어지지 말라며 팔만 붙잡아도 욕을 하며 손을 뿌리치는데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아이를 안전하게 침대에 눕혀 재우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쪽 팔로 허리를 감싸고 다른 팔로 그 애의 팔을 어깨에 올려 움직였다.
" 옷 갈아입을 수 있겠어? "
" 뭐, 못 갈아입겠다고 하면 너가 벗겨주게? "
" 아니 그냥 자게 하려고 했지. "
" ...등신, 머저리. "
꼬질해진 양말을 벗어던지는 그를 따라 양말을 주워담던 나는 가래섞인 기침을 연거푸 해대는 그 애를 보는둥 마는둥 하며 한 마디 거들었다.
" 담배 계속 필거야? "
" 너도 한 대 피워봐. 끊을 수 없을걸. "
" 글쎄. "
자리에서 일어나 휘청거리며 스타킹을 내리는 그 애를 황급히 뒤로한 나는 어두운 집 안을 보며 서 있었다.
그는 곧 나에게 더러워진 스타킹을 던졌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빨래바구니에 양말과 함께 넣었다.
" 야, "
" 응. "
" 밴드 있냐, 나 무릎에 피난다. "
나는 마루로 나가 연고와 밴드, 물을 적신 손수건을 갖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 애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젖은 손수건으로 무릎을 살살 닦아주었다.
아프다며 욕이 난무하는 와중에 나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 야. "
" 응. "
" 넌 왜 여자친구 안 만들어. "
"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뭐. "
" 나는 사귀자는 남자들이 줄을 섰는데, "
" 좋겠네. "
나는 밴드를 붙이고 다 됐다는 뜻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라,
고개를 든 순간 생각보다 나를 마주하는 얼굴이 너무 가까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순간 나는 초점없는 그 눈동자를 보고 말을 잃었다.
그 애 역시 아무말 없이 나를 흐릿한 초점으로 보고 있었다.
뜨거운 입김이 얼굴을 감싸고 돌았다. 그 애는 천천히, 힘 없이 팔을 들어 내 턱을 부여잡았다.
" 키스 할래? "
" ..... "
" 싫음 말어. "
나가, 잘거야.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워 이불을 뒤집어 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코를 골기 시작했다.
하여간. 예전부터 느껴왔지만 술버릇 한 번 고약하다.
나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이불을 가지런히 해주고 방 문을 닫고 나왔다.
아.. 근데,
왜 이렇게 덥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