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영업2팀 강과장에 대하여
"안녕하십니까, 마케팅팀 신입사원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건 물론이고, 어찌 됐든 첫인상은 반드시 좋게 남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반듯한 첫인상을 만들기 위해서 꼭 있어야 하는 건 깔끔하고 정갈한, 그리고 씩씩하고 싹싹한 인사였다.
그렇게 뵙는 분들마다 인사를 했으니 점심시간쯤 되면 목이 슬슬 칼칼해지는 게, 오후 3시쯤이면 스멀스멀 다크서클이 내려왔다.
피곤했던 건 사실이다.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피곤에게 좀 안녕을 고해보려고 탕비실에 들어갔던 거고, 하필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던 거다.
"하암-"
길게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탕비실 문을 열었는데 거기에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나는 놀랐는데 그 사람은 놀라지 않은 듯했다. 태연한 얼굴로 컵에 카누 가루를 옮겨담는 걸 보니 말이다.
"아, 죄송합니다. 계시는 줄 몰랐어요."
"......"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티스푼으로 가루를 녹였다.
머쓱해진 나는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 커피는 한 잔 만들어가지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그의 옆에 섰다.
"......."
"........"
누구 하나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적막이 흘렀다. 커피 다 탔으면 나가도 되지 않나... 다 된 것 같은데 왜 안 나가지?
뭐 내가 나가라 마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여기 같이 있는 건 좀 민망하겠다 싶어 내가 더 행동을 빠르게 했다.
"...나한테는 왜 인사 안 하지?"
"예? 아... 아, 죄송합니다. 마케팅팀 신입사원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를 흘긋 보고 나서도 별 말 없었던 게 내가 인사를 안 했기 때문인가 싶었다.
나도 탕비실에 사람이 있는 줄을 몰라서 대뜸 당황해서 인사하는 걸 까먹었던 건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는 마음에서 더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내심,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 데 좀 빡빡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군기 좀 잡으시는 스타일인가...?
앞으로는 싹싹하게 인사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인사하는 걸 잊었습니다. 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름도 잘 기억하기 위해서 사원증도 뚫어져라 쳐다봤다. 영업2팀, 강다니엘. 이라고 써있었다. 이름이 다니엘이니 까먹지는 않겠다 싶었다.
다시 나를 한 번 흘긋 쳐다본 그는 제 컵을 든 채로 탕비실 문을 열고 나갔다.
.....뭐지? 내가 뭐 그렇게 큰 잘못한 건가...?
탁, 하고 닫혀버린 탕비실 문이 내 질문에 답을 해줄 리는 없었다.
그게 그와의 첫만남이었다.
-
한 달 정도 별 문제 없는 출근이 이어졌다. 그 동안 선배들의 얼굴을 많이 익혔다. 특히 우리 팀 분들과는 회식도 하면서 말을 좀 텄다.
딱히 친해지기까지 한 사람은 없지만, 회사가 누구와 친해지러 오는 곳도 아닌 데다 굳이 그럴 이유까지 없으니 거기까지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신입 동기들과는 점심식사를 몇 번 같이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사람들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됐다.
"○사원은 그거 알아요? 해원기획 비주얼 탑쓰리."
"아뇨, 처음 들어봐요. 그런 게 있었어요?"
"아이~ 그럼요. ○사원은 부서에 신입 한 명이라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안 해주겠구나? 우리가 해줘야겠네요!"
굉장히 활발하신 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심 비주얼 탑쓰리가 누구인지는 좀 궁금해졌다.
네, 저 부서 내에 동기가 없어서... 좀 알려주세요... 하면서 우는 시늉을 하다가 이어지는 말에 호오, 하면서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 분 다 팬층은 분분한데, 일단 원탑은 마케팅팀 옹과장님이라는 말들이 많아요."
"저희 옹성우 과장님이요??!"
"으응. 젠틀스윗의 대명사래요. 젊은 여직원들한테 인기가 엄청 많고요."
원탑부터 우리 팀 우리 과장님이라니... 아는 사람이 비주얼 탑이었다는 게 신기했다.
아니 뭐, 안 잘생겼다는 건 아닌데, 왠지 잘생겼다고 들으니까 갑자기 더 잘생겨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요? 그럼 2위는요? 하며 주책맞게 호기심을 내비췄다. 이런 이야기는 호들갑 떨지 않고서 듣기는 역시 어렵다.
"두번째는, 아마 ○사원은 아직 못봤을 수도 있는데, 전략팀 황민현 대리님이래요."
"아... 그 분은 한 번도 뵌 적 없는데."
"그쵸,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한데 여자친구랑도 오래 사귀었고, 뭐 곧 결혼한다는 소문도 있고...."
"아아."
그래서 인기가 많이 떨어졌구만. 그럼 옹과장님은 여자친구 없으신가 보네? 뭐, 그야 본인 피셜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거지만...
그럼 두구두구두, 대망의 마지막 비주얼은....
"마지막은 신흥세력인데, 영업2팀 강다니엘 과장님이래요."
"신흥세력이요?"
"네. 원체 조용하고 별로 말이 없어서 있는듯 없는듯 했다가, 이번 전직원 워크샵 때 그렇게 춤을 잘 췄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숨어있던 비주얼이 딱!! 하고 드러났던 거죠."
"....아..... 그래요?"
"으응. 나도 우리 팀 대리님이 동영상 찍은 거 보여주셔서 봤는데, 정말 장난 아니더라구요.
입사는 한 지는 꽤 된 모양이던데 그 시간 동안 숨기고 있었던 게 희한할 정도로 아주 반짝반짝 빛이 났대요."
".....아...."
아.... 예..... 그랬군요.... 하면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강다니엘이라면 그때 그 탕비실에서 만났던 그 분이었는데, 하도 경황이 없었던 탓인지 잘생겼는지 어쨌는지조차 기억이 잘 안 났다.
기억이 나는 건 나를 흘긋 쳐다보던 눈빛 뿐이었고, 차갑기 그지없게 탕비실 문을 닫고 나가던 뒷모습이었다.
역시 잘생긴 사람은 싸가지가 없는 건가... 이래서 인물 좋은 걸 경계해야 해. 하는 생각을 해보다가,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감을 깨닫고 걸음을 서둘렀다.
"여튼 그래서, 이 탑쓰리는 여직원들한테 인기도 엄-청 많고 그렇대요.
모르면 간첩 된다고 하니 잘 알아둬요, ○사원도."
"예, 예에...."
뭐... 간첩까지야... 하하... 하면서 기억해두고 있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황대리님은 뵌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우리 팀 옹과장님이 비주얼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더 잘생기게 느껴지는구만.
앞으로는 흘끔흘끔 자주 쳐다보면서 눈호강이라도 하겠다 생각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그러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영업마케팅부서 회식 날이었다. 1분기 결산이 마무리되면서 실적이 꽤 올라서, 부서 전체가 회식을 하게 된 거다.
부서는 영업 1, 2팀과 마케팅팀으로 나눠져 있으니 총 3개 팀이었고, 나는 마케팅팀 신입사원이었다.
우리 마케팅팀만 회식을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부서 전체 회식은 처음이라 내심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도 있었다.
굳이 왜 설레기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원은 부담되면 많이 안 마셔도 돼요. 무리하지 마요."
OH OH 쏘 스윗 OH OH
우리 옹과장님... 역시 너무 스윗하셔... 따흑... 하면서 잔을 받아 들었다.
사실 그 때 비주얼이라는 말만 안 들었어도 이렇게 심장이 뛰지는 않았을 건데,
뭔가 비주얼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어쩐지 더 심장이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굳이 이 느낌을 부정하지는 말자고 생각하며 과장님을 향해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러다 다 함께 짠-을 하자는 소리에 잔을 들고 크게 짠- 하고 외쳤는데,
반대편 끝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강과장님과 눈이 마주친 거다.
눈이 마주치긴 마주쳤는데, 대뜸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입니다!!!"라고 외치기도 어려운 거리여서 일단 소맥부터 꿀꺽꿀꺽 넘겼다.
이따가 마주치거나 자리 순회를 돌 때 한 번 다시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진짜다. 분명히 생각은 했다. 그런데 아마도, 메이비, 프로버블리, 마시다 보니까 까먹은 거다...
"아이고오....."
얼마나 마셨을까. 주는 술은 취할 때까진 거절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배웠기에, 그리고 그다지 못마시는 편도 아니었기에 주는 족족 받아마셨다.
그러다 보니 평소보다 빨리 취기가 올라와 화장실에 왔는데, 알딸딸하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실수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 거다.
거울에 비춰진 내 모습을 보니,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고 눈도 조금씩 발갛게 변하는 게 아마 더 이상 술을 주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우, 배도 부르고 슬슬 피곤한 것 같기도 해서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신입사원 ○○○입니다!!"
오, 이번에는 인사 제대로 했다. 하는 마음이 들자마자 뿌듯함에 미소가 흘러나왔다.
알딸딸 하니 차마 그 미소를 숨길 생각은 못했는데,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던 순간은 그가 나를 향해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
한참을 말 없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길래, 이제 화장실을 쓰셔도 된다는 의미로 살짝 옆으로 빗겨 섰다.
그랬더니 한 발자국 움직여 나와 다시 눈을 맞추는 그. 무슨 일인가 싶어 올려다 보니 아까 그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어.. 화장실 쓰셔도 됩니다. 과장님.."
"......."
"그럼, 저, 그만 자리로 돌아가보겠,"
"여기 있었네, ○사원, 어디 갔나 했어요."
내 옆으로 옹과장님이 오셨다. 훤칠한 두 분 사이에 얼굴과 눈이 발그레진 채로 서있으려니 민망해서 아하하, 네에... 하면서 좀 멀찍이 떨어졌다.
강과장님과 옹과장님은 서로 눈인사를 했고, 나는 그만 자리로 돌아가 보겠다고 하고 두 분을 남겨놓고 돌아섰다.
....지금 약간 뭔가, 묘한 기류가 흐른 것 같았는데. 술 마셔서 그런가? 기분 탓인 거겠지?
"....눈독 들이지 말지."
술기운이었지만 그 목소리 하나 만큼은 똑똑히 들었다.
아니, 귀에 콕 박혔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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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오피스물 남주 추천 받아서 써봤어요!! 반응 좋으면 다음편도 들고 오겠습니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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