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be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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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4년, 인류는 기나긴 전쟁 끝에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멸망의 시작점은 영토분쟁, 인종차별, 독재정치, 자원부족, 내전. 이 모든 것들이 민중의 불만이 되었고 나라의 불만이 되었으며 세계의 불만이 되었다. 불만의 끝은 전 세계가 양쪽으로 나뉘어 시작된 전쟁이었다. 큰규모도 규모인만큼 무리하게 10년동안 질질 끈 전쟁의 결과는 참담했다. 대규모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대부분이 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죽거나 다쳤으며 굶주려 죽었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거나 식품을 팔던 인력자원이 사라지자 식량문제는 더욱더 악화되었다. 전쟁 중에 터진 핵 폭탄으로 각종 식물들과 짐승들은 거의 파괴되었지만 생명력이 끈질긴것들은 크기가 거대해지거나 기괴하게 변형되어 사람들을 먹잇감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제는 먹이사슬의 아래쯤 위치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잡아먹히거나 또는 잡아먹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다였다. 국가 간의 구분은 무너진지 오래였으며 지구의 도시란 도시들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남은 것이라곤 흩날리는 석탄가루, 괴기 동식물이 드글거리는 숲이나 모래, 건물들의 잔해, 사람들의 뼛가루 등이 바람에 흩날리는 황무지. 오염된 바다 등이 다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인간들은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황무지에 커다란 도시를 지었다. 도시의 이름은 월더니스 스칼, 스칼은 마약과 도박. 살인, 납치, 강간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경찰은 없어진지 오래였고 이미 무너져내린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인류보호'라는 명분하에 들어오는 커다란 짐승들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도적들의 침입을 막는 블락커라는 직업군인을 만들었다. 스칼에 있는 여자들은 강간을 당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으며 하루의 끝이었다. 임신된 아이를 낙태하는 것은 최고의 범죄였고, 스칼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블락커들이나, 여자들은, 걸리는 즉시 끔찍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죽는 게 낫다며 고문 당하는 사람들 모두 입 모아 제발 죽여달라고 빌 만큼 끔찍하고, 잔인한 고문을 받게 된다.
사람들은, 극도의 이기심, 탐욕과 생존 욕으로 물들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스칼 어느 한 곳에서 시작된 소문 하나가 있었다. 지구 어딘가에는 식량과 목숨 유지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달콤한 낙원이 있다고,
그리고 결국, 스칼에서는 대규모 탈출 소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도. 보이지 않는 낙원을 찾기위해 탈출했다.
-Rudbeckia 00-
멍하니 서서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먼지와 함께 습한 바람이 내 옆으로 느릿느릿 스쳐 지나간다. 비가 올 모양인지 꾸득 거리는 구름의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가 오면 이동이 어려워진단 말이다. 그나저나 이 빌어먹을 블락커 제복을 하루빨리 벗어던져야 할 텐데, 스칼 쪽 블락커들이 날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죽음을 간절히 소망하며 고문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옷을 멋대로 벗어서 이동하다 넘어지거나 다치기라도 해서 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다녔다간 크루얼러 나 샤먼 같은 난폭한 살인 짐승들에게 공격당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블락커 제복은 보온 기능도 완벽하고 꽤나 멋들어진 제복이기 때문에 버리기에 아쉬움도 있지만 이 제복으로 인해 내 생명이 위협받는다면 당장이라도 찢어버릴 자신이 있다.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다가, 슬슬 배도 고파오니 사냥이라도 할까 싶어 잠시 땅에 내려놓은 버디슈 도끼를 꺼내들었다.
"엇,"
도끼를 꺼내들자마자 빗방울 하나가 내 콧등에 떨어졌다. 오랜만에 기운 좀 차리고 일어나 보려 했더니만 의욕 빠지게, 비 온다. 사냥은 글렀으니 하는 수 없이 굶는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 굶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익숙하다.
비를 피할 곳을 찾으려다가 바닥이 쩍쩍 갈라진 석회 빛 모래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약한 빗줄기가 내 머리칼과 얼굴 등 온몸을 훑고 흘러내린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떴다. 회색빛 땅에 회색 하늘, 회색 빗줄기. 모든 게 회색 투성이다. 난 회색이 싫다. 스칼에서의 회색은 죽음의 상징이다.
누운 채로 멍하니 옆을 바라보다가 꽃 한송이를 발견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쭈구리고 앉아서 꽃을 관찰했다. 길쭉하게 나있는 노란색 꽃잎이 아주 화사했다. 이런 회색빛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예쁜 색깔이다. 그나저나 해바라기를 닮은 이 꽃 이름은 뭘까,
"예쁘지?"
"...."
"그 꽃은 루드베키아야."
내 등 뒤, 즉 내 뒤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났다. 재빨리 내 도끼를 꺼내들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겨냥했다. 빗속에 사람 하나가 나처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서있었다.
"워워, 진정해 해치지 않아. 그 빌어먹을 도끼 좀 내려놓고 말하는 게 어때? 난 그냥 꽃 이름을 가르쳐 준 것뿐이라고!"
"넌 뭐야?"
"걱정하지 마 너처럼 정부 똥구멍이나 핥는 한심한 블락커는 아니니까,"
"...."
"음.. 나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건가? 소속을 묻는 걸 보니"
"헛소리 집어치워"
"게다가 탈출한 모양이야? 스칼에서 여기는 꽤 먼 곳인데.. 발견되면 개죽음이겠군."
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녀석은 해군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나와 같은 한국어를 쓰는 걸 보니 한국인이다. 스칼에서 탈출한 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었다. 한국인은 스칼에서는 흔하지 않아 한국인을 마지막으로 본건 2년쯤 됐으려나. 아 참, 사냥을 나간 나의 동료 우지호는 빼고 말이다. 나는 계속해서 남자를 노려보며 겨냥한 도끼를 내리지 않았다.
"뭐, 난 상관없어, 이 시대에 남자 여자 가리는 건 사치 아니겠어?"
"...."
"이히 프로이에 미리, 지켄넨출레르넨"
"이히.. 뭐?"
"반갑다구"
무슨 자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야, 난 금방이라도 네 녀석의 목을 썰어낼 수 있다. 도끼든 손을 좀 더 높이 들었다.
"음... 난 그냥 반가워서 그런 건데 말이야, 당신이 그렇게 적대적으로 나오면 내가 당신을 쏘는 수밖에 없잖아 "
남자가 총을 꺼내들었다. 철컥하고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났다. 아차, 요즘 세상에 무기 없이 다니는 멍청이는 없었지, 총을 보아하니 MP5SD5. 해군용 총이다. 소음기가 부착되어 있어 저 녀석이 날 쏘기라도 한다면 난 나의 동료 우지호에게 도움을 요청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체 픽 하고 죽어버릴 것이다.
"...."
"내가 이총으로 너의 뇌를 쏘는 게 빠를까, 아니면 네가 너의 도끼로 날 베어내는 게 더 빠를까?"
"아마 후자겠지"
"음, 틀렸어. 하지만 거리가 좀 더 가까웠다면 네가 더 빨랐을 거야 아쉬워하지 말라고"
"...."
"도끼 내려놔"
나의 생명줄과도 같은 버디슈 도끼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두 손을 낮게 들어 올렸다. 항복의 표시다.
"옳지."
"나한테 물질적인 걸 요구하려나 본데 식량이나 총 따위는 없어, 그냥 갈 길 가라."
"왜 이래, 난 그냥 꽃의 이름을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뿐이라니까? 하지만 당신 반응이 왠지 매력적인걸? 호기심이 막 생기잖아"
남자가 내 턱을 오른손으로 잡아올렸다. 나보다 조금 작은 체구에 말랐지만 힘이 장난이 아니다. 뿌리칠 세도 없이 이 녀석이 내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보더니 씩 웃는다. 왠지 기분 나쁜 미소에 주먹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이 썩 잘생기진 않았지만, 꽤 섹시하기도 하고, 것보다 괜찮겠어?"
"뭘 말하는 거지?"
"내가 여기로 걸어오다가 흙구덩이에 쓰러져있는 멍청한 블락커 한 명을 봤는데, 크루얼러에 게 공격당한 것 같아 보였어"
크루얼러는 변형된 짐승 중에 가장 악질이고 잔인하다. 몸집이 2~3m 가까이 되는 데다가 커다란 공룡 같이 생긴 크루얼러의 손발톱은 날이 서있다. 흉폭한 크루얼러가 배고팠다면 우지호를 잘근잘근 씹어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배는 고프지 않았는지 쓰러져있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서 손발톱으로 할퀸 모양이다. 불행 중 다행이지.
"네 동료지?"
"...."
"아마 한 시간 안에 죽을 거야, 출혈이 심해 보였거든"
녀석이 밝은 미소를 싱긋 지어 보였다. 저렇게 웃으면서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그나저나 우지호가 위험하다. 빌어먹을 자식 내가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말했었는데.
"네가 본 멍청한 블락커는 어디에 있지?"
"궁금해?"
"말장난할 생각 마"
"네 이름을 알려줘 멋진 블록 커 청년"
"...."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김성규.
이 자식은 정신 이상자다. 이름을 안 가르쳐준다고 총을 쏘려 했다. 꽃 이름을 가르쳐줄 때 하하 호호 웃으면서 넘길 걸 그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음, 성규라..."
"넌 이름이 뭐냐"
"하하하!"
녀석이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역시 해군도 별수 없군, 이런 쓰레기 싸이코 인간 말종 같은 새끼가 해군이라니, 바다에 떠있는 배위에서 위풍당당하게 사람들을 지키는 해군은 개뿔 죄 없는 사람을 총으로 위협하며 이름을 묻는 해군을 가진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보기보다 당돌한데?"
"...."
"내 이름은 남우현이야 예쁜이 청년"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바로 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허리를 숙여 내 버디슈 도끼를 집어들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아까 남우현 네가 말했듯이 나에게도 승산은 있다. 이름을 물어본 이유는 남우현, 이 자식은 곧 내 손에 죽을 테니, 내 기억 속에서 이름 없이 죽는 건 네가 너무 불쌍하고 슬프니까.
"크레센트 액스, 좋은 도끼를 쓰네?"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 남우현, 총을 내려놓는게 좋을거야"
"날 죽이면 너의 동료는 찾을 수 없을 텐데?"
"상관없어 내가 찾으면 되니... 윽!"
남우현이 발로 내 명치를 힘껏 걷어찼다. 방심했다. 쓰러지기에 앞서 급작스럽게 올라오는 토기에 바닥에 주저앉아서 헛구역질을 했다. 물 안개를 뚫고 남우현이 내게 천천히 걸어오는지 고인 빗물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져온다. 녀석이 주저앉아있는 내 뒷머리를 힘껏 잡아당겨 눈높이를 맞춘다. 머릿 가죽이 뜯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오지만 입을 꾹 다물고 놈을 노려보자 남우현은 내 양 어깨를 밀쳐 흙바닥에 눕혔다. 힘껏 허약해져있는 몸에 차가운 비까지 맞고 한대 얻어맞고 나니 근육이 벌벌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시야에 빗물이 들어와 남우현이 뿌옇게 보인다.
"갖고 놀다가 죽이려고 했는데"
"죽여"
"그럴까?"
남우현은 루드베키아 한송이를 거칠게 뜯어내 나의 귀에 꽂는다. 의식이 몽롱한 내게 남우현은 입모양으로 '예쁘네'라고 했다.
"성규야, 루드베키아의 꽃말이 뭔 줄 알아?"
".... 윽"
내가 고통에 신음하자 남우현이 표정을 굳히고 내게 말했다.
"영원한 행복."
난 그만 정신을 잃었다.
*
안녕하세요! 와클이라고해요 처음보시죠? 하하하하하하..
짧아서 죄송하지만 프롤로그니까 괜찮답니다 !! ^-^
블락커란 월더니스 스칼이라는 그지같은 도시를 보호하기위한 평화유지군 비슷한거에요.
스토리전개는 블락커인 성규가 낙원을 찾기위해 스칼을 탈출했지만 우현이를 만나 이러쿵저러쿵 하는걸로 전개가 될것같네요!
조심스럽게 암호닉 구해봐요...댓글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