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바람이 연못 위에 보드라운 소용돌이를 일구워냈다. 연못 위로 서서히 떨어지는 벚꽃잎 한장, 두장. 태현은 더이상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서책(書冊)을 덮었다. 태현의 머릿칼을 간지르는 봄바람만큼이나 간질간질한 속내를 어떻게든 풀고자 함이다.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것이 봄날씨라지만은 오늘만큼은 이 훈훈함이 가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갈빛 나무에서 팔랑팔랑 떨어지는 연약하고 바슬바슬한 보드라운 분홍빛 벚꽃잎들이 꼭 깨어져 나갈것과도 같은 유리와 같은 느낌을 주는 연못, 그 수면(水面) 위로 끝없이 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문지방 밑 댓돌(臺-) 위에 놓여진 가지런한 푸른빛의 비단신 위로 조심스레 발을 얹은 채로 쪼그려앉아 연못을 바라보던 태현이 연못 안 정자를 향해 가기 위하여 마저 비단신을 쭈그려 신을 때였다. 옆 쪽에서 들리는 모랫바닥을 스치우는 비단신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못내 놀란 태현이 소스라치게 벌떡 일어났다. "소,송왕 전하!"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마저 신으려던 신이 모랫바닥을 뒹굴어도 아랑곳 하지않고 버선발로 댓돌에 선 채로 겨울에 비하면 가볍지만, 그래도 결코 가볍지않은 무게를 담은 옷을 껴입은 태현이 잔뜩 뒤뚱거리며 송왕,송민호에게 예를 차리려했다. 어쩜 이리도 예쁜 구석밖에 없는것인지. 정녕 같은 사내놈이 맞는 것인가? 민호는 댓돌(臺-) 위 기울어지는 태현의 어깨를 감싸 위로 올렸다. "예는 차리지 않아도 된다,태현." "하오나··" "우리 사이에 무슨 예란 말인가. 그래. 무엇을 보던 참 이었나?" 도무지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예쁘지 않은 구석을 찾기란 불가능 같다. 축 늘어진 8자 모양의 눈썹은 귀여웠으며, 밑으로 보이는 초승달 같이 눈매는 곱기 그지없었다. 겨울 내 핏기 없이 병자처럼 하얗기만 했던 두 볼은 어느새 벚꽃잎을 빻아 찧은 뒤 바른 것 처럼 은연중에 분홍빛으로 감돌고 있었고, 입술은 여느 홍옥보다도 붉었다. "그저, 연못 위로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고만 있었을뿐이옵니다." 태현의 가지런한 붉은 입술이 벌렸다 닫았다 하며 하얀 치아를 내보인다. 달았다. 사실 민호의 눈에 보이는 태현의 모든 것이 달아보여 죽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단 것을 쳐다보기만 해야한다니, 없는 인내심이란 인내심을 다 끌어모아 참고 있는 중이었지만 사실 결과가 마지 않았기에 이렇게 쳐다만 볼 수 있는것이었다. 내년. 태현의 형이 혼인식을 맺고날 내년 여름 후 반드시 청혼을 넣을 것이다. 민호는 그리 생각하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어찌 그리하여 웃기만 하십니까." 팔자 눈썹이 일그러지며 오동통하니 튀어나온 붉은 입술에 아찔했다. 토라진 것조차 어떻게 사람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있나. 미의 대표 주자라는 양귀비가 살아돌아온다 하더라도 태현만은 못하리라. 의도치않은 행동 하나하나가 남심(男心)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 세상의 사랑스러움이란 사랑스러움은 온통 불어넣어 만든 것만 같은 자였다. "미안하네. 그대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네." 태현의 귓가에 마침 팔랑이며 붙은 연분홍빛 벚꽃잎이 시야에 들어온 민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릿칼이 엉킬세라 상냥히 웃으며 벚꽃잎을 떼었다. 느닷없는 손길에 당황한 듯 태현의 볼이 붉었다. 데구르르, 당황스러운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태현이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이며 가까이 온 민호에 가슴에 가벼이 손을 얹고 밀쳤다. "놓,놓아 주십시오! 저는 사내입니다." "안다." 민호는 태현의 가느다란 허리를 오른팔로 껴안으며 태현의 무게중심을 전부 자기쪽으로 앗아왔다. 훅 끼쳐오는 태현에게서 풍기는 봄의 향내(香-).정취(情趣).싱그러움. 그것들에 잠시 넋을 잃을뻔한 민호는 왼손으로 태현의 머릿칼을 슬며시 치우며 귓가에 속삭였다. "내년 여름, 반드시 네게 청혼을 넣을 것이다. 부디 기다려다오."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걱정했던 너이지만 손에 넣게된다면, 손에 쥐게 되고난 후라면 반드시 어디로든 날아가지않게 꼭꼭 쥐고있을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사랑스러운 이. 오대오의 가르마를 탄 태현의 앞머리를 살짝 귓가의 뒤로 넘긴 후 민호는 태현의 반듯한 이마에 키스했다. "크흠흠..!" 청빛의 내시복을 입은 사내가 뒤로 온채로 헛기침을 가다듬고 있었다. 놀란 태현이 민호의 뒤로 재빨리 숨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이 귀여웠다. 김내시 덕분에 내 이런 풍경을 다시 보는군. 진급(進級)을 건의해볼까 둥의 생각을 하며 민호는 오른손을 뒤로 내어 떠는 듯한 태현의 왼 손을 잡아 힘이 되주었다. 모자를 것 없는, 오히려 기세 등등한 귀족인 남씨가문의 차남(次男)이라 부끄러울 것 하나 없는 자리에 선 태현이라지만 민호와 있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킬때면 간혹 이런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 그리고 그 순수한 모습을, 민호는 사랑했다. "무슨일인가." "아,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황실에서 황제폐하께옵서 송왕전하를 부르시옵나이다. 속히 가시옵소서." "무슨 일인지 한마디 귀띔이 없던가?" "소인같이 천한 내시가 무엇을 알겠사옵니까. 바삐 가보시옵소서" 황궁의 일 중 한번도 귀띔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민호는 조금의 불길함을 느꼈지만 뒤로 떨고있는 연인이 될 자의 떨림에 그저 떨림을 웃으며 떨쳐버렸다. 하나뿐인 버팀목이 되어야한다.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긴장을 하면 이 사랑스러운 이를 어찌 지킬것이란말인가. "알겠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민호는 웃으며 태현을 방 안으로 들여보낸 후 성큼성큼 태현의 집 밖으로 나섰다. 위풍당당한 풍채(風采). 저분이 황제가 되어야하실터인데. 궁중 내 물밑작업을 알고있는 김내시가 아쉬움을 속으로 삼키며 민호를 가마로 안내하였다. * "그 무슨 망발이시옵니까!" 붉은 카펫 위 왕과 독대한 민호가 악에 바쳐 비명을 질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어쩌다,어쩌다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을 채 눈치 채지 못했나. 궁중 내 소란스러움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고있던 자신의 탓이었다. 자신을 황제로 추대하려는 세력을 알게 된 황제가 마지막으로 꺼낸 패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차기 황제로 추대하려는 세력이 적잖은 이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씨가문의 차남과의 결합(結合)이라니. 본인이 아무런 생각이 없다하더라도 누가 보아도 위협적이라고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렇다해도. 그렇다하더라도,자신은 결코··· "송왕. 송구하네. 그래도 물러서주게나. 나는 자네에게 이걸 부탁하는게 아닐세. 통보하는거지."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통보. 그 한 단어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간신히 붙잡아 세운 민호가 꽈득하고 손을 쥔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장로회의. 설마 그곳에서조차 통과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닐게다. 아닐 것이다. 그 황태자 옆에 자신의 손녀를 붙이길 원하는 탐욕스러운 늙은이들이 사항을 통과시킬리 없다. 아님이 틀림이 없다. 그러니 제발. "남씨가문의 차남이 황태자빈이 되었다는 것이 장로회의에서 통과되었다는 말일세. 송구하네." 콰직하고 얼결에 배문 입술에서 피가 났다. 이럴리 없다. 이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럴려고 내 태현을 7년이 가도록 연모하며 곁을 지킨 것이 아니었단 말이었다. 내년 여름. 제 신부가 되어 제게 올 줄 알았던 이가 제 또다른 혈육, 제 동생인 황태자(皇太子) 강승윤의 아내가 된다한다. 텅빈 머릿속 새하얗게 질리다못해 새파랗게 되어버린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민호는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이끌었다. 태현아. 태현아. 세상에서 제일 내게 소중한 이야. 내 널 어찌하면 좋으냐. - 제목은 임시로 붙였습니다. 설정을 말씀해드리자면 제국에 황제가 있고 황제의 아들.즉 직계혈족은 황태자가 됩니다. 그러나 황태자의 친척인 왕실의 남자. 즉 황태자의 친척 등은 성 뒤에 왕이 붙어서 제국내 어느 지역을 담당하는 왕이됩니다. 황제>황태자>○왕 이런식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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