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다른 필명으로 올렸던 글을 재업로드 한 글입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행여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옆으로 돌아갈까 싶어 초점 없는 눈으로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면 어쩌지,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보이면 어쩌지, 내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면 어쩌지 싶은 마음에 머릿 속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자꾸만 바싹 말라가는 아랫 입술을 앙 깨물었다. 한참을 허리를 바짝 세운 채로 이 상태를 유지하자니 슬슬 한 번 쯤은 눈을 돌려도 되지 않을까, 나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고 있지 않을 텐데 싶은 요망한 마음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몇 분이나 지났다고, 인내심 하고는.그래, 딱 한 번만. 한 번만 보자는 생각이 자꾸만 내 뇌를 잠식해갔다. 모를 거야, 내가 쳐다봐도 전혀 눈치도 못 채겠지, 까지 생각이 미치자 결국 내 뇌는 주책바가지인 마음에게 져 판단력을 그대로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소리마저 조심하며 고개를 고정한 채로 살짝 눈동자만 옆으로 굴리자 턱을 괸 채로 책상 쪽으로 몸을 기대어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는 전정국이 보였다.……아, 씨발 핵존잘.당장이라도 책상을 뒤엎고 학교 건물을 뽑아서 아프리카까지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물론, 마음만 가득했다. 지금 당장 책상을 쾅 치면서 일어서서 전정국이 너무 잘생겨서 수업에 집중이 안됩니다! 하고 외치고 와장창 창문을 깨부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그랬다가는 자퇴서가 어서와, 하고 날 반겨줄 게 뻔하기에 창문을 부수는 짓은 머릿 속에서만 하기로 스스로 결론을 내리며 혼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짝을 바꾼다고 했을 때 시험 끝나고 바꾸면 안 돼요? 라는 질문을 날렸던 스스로에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OO는 선생님이 꽃 길만 걸으시기를 기도했다. 짝사랑을 한 지는 사실상 좀 됐지만 짝은 커녕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좋아서 뒤져버릴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또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색함에 굳어진 몸과 입을 어떻게 해야할지가 문제였다. 옆 분단에서 친구가 입 모양으로 오, 하고 짖궃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게 보였다.“오늘 진도는 여기까지.”문학 선생님이 책을 덮으심과 동시에 아이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책상 위로 엎어지기 시작했다.봄. 드디어 봄이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점심을 먹은 직후인 5교시에 밀려오는 식곤증까지. 안 그래도 피곤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게 식곤증에 춘곤증까지 더 해진 지금, 교실은 완전히 초토화 상태였다. 힐끔 옆을 바라보니 전정국도 다른 아이들처럼 책상 위에 얼굴을 눕힌 채로 눈을 감은 상태였다.얘는 왜 하필 내 쪽을 바라보고 자는 거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쳐다볼 엄두도 내질 못했던 잘생긴 얼굴이, 고작 눈 하나 감겼다는 이유만으로 자꾸만 눈에 들어찼다. 언제 봐도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 와, 속눈썹이 나보다 기네.한숨을 내쉬며 전정국과 같은 자세로 책상 위에 엎어졌다. 얼굴만 책상 위에 딱 붙인 채로, 고개는 물론 당연하다는 듯이 전정국을 향해 있었다. 일찍 마친 수업에 조용한 교실에서 짝사랑 하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참 이다지도 설렐 수가 없었다. 퍽 낭만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3월 말, 봄. 고등학생, 짝사랑. 무려 낭랑 18세. 키워드만 나열해보아도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꼭 영화 속 여자주인공이라도 된 듯 한 기분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전정국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입꼬리를 더욱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입꼬리를 씰룩이며 나른한 눈으로 전정국을 바라보던 도중,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 색도 예쁘네.……눈동자 색?순간 화들짝 놀라 재빠르게 고개를 반대 쪽으로 돌렸다. 아, 아 씨발. 아…….“……풉.”얼굴이 화끈거렸다. 열이 확 오르는 걸 보니 얼굴이 새빨개진 것 같았다. 울상을 지으며 아예 책상으로 고개를 처 박아버렸다. 전정국이 웃는 소리까지 들었더니 귀까지 화끈거렸다. 안 자면서 왜 자는 척이야. 아……, 쪽팔려…….짝사랑에 대한 고찰w. 레티처음 전정국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두 달 쯤이 지난 후였다. 5월 달에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던 체육대회는 내겐 그저 수업 없는 날 쯤에 불과했고, 그랬기에 당연하게도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었다. 줄다기리나 응원전 같은 단체전의 명단에만 이름을 올려놓고는 물총을 쏴대며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애들을 천막 아래에서 구경하는 일. 그게 내 체육대회에 대한 추억의 전부였다.중학교 내내 그랬는데, 당연히 고등학교라 해서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일주일이나 애들끼리 치열하게 싸워가며 정한 반티를 입고서, 정해진 구역에 앉아 사진 좀 같이 찍자며 셀카봉을 들이미는 친구에 대충 꽃받침 한 번 해주고, 간식을 입 안에 넣어주는 친구에 입 한 번 벌려주고. 그렇게 대충 시간을 떼우면서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 나에, 결국 친구는 더럽게 재미 없다며 이 반 저 반을 쏘다니니러 혼자 떠나버렸고 나는 그 친구에게 그저 베시시 웃어보였다.고등학교에서 추억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잔뜩 신이 나 웃으며 뛰어다니는 애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까지 설렐 정도로 좋은 기운들이 학교 내에 그득한 기분이었다. 약간, 엄마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해야하나.그렇게 오전 시간들을 흘려보내고 나서 점심시간에는 주문한 도시락을 들고서 애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후에 꿀 같은 휴식을 취하려던 나는,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라는 축구 결승전을 봐야한다며 난리법석을 떠는 친구에게 이끌려 축구를 구경하러 나가야만 했었다. ……이 때 내가 그냥 안 본다고 버텼었더라면, 지금쯤 전정국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를 텐데.축구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축구를 하는 애들과도 친한 사이가 아닌지라 열심히 아무나 이겨라를 외치는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하품이나 해대던 차에, 내게 어깨를 내주었던 친구가 어깨를 들썩이며 내게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손가락의 끝이 향하는 곳에는 열심히 뛰어다니는 한 남자애가 보였다.“야, 야. 쟤 잘생기지 않았냐? 1학년 중에 쟤가 제일 잘생긴 것 같음.”“얼굴 잘 안 보이는데…….”“아, 좀 자세히 봐봐. 선배들한테도 인기 오진다니까. 벌써 번호 따려고 한 누나들이, 어휴.”“나 눈 안 좋은 거 알잖아.”누가 진성 덕후 아니랄까봐, 그저 잘생기기만 하면 아주 그냥. 자세히 좀 봐보라며 자꾸만 어깨를 들썩이며 내 졸음을 다 달아나게 만드는 친구에, 그럼 가서 고백하라며 장난식으로 말을 하며 아예 친구의 허벅지를 베고 그대로 스탠드 위에 몸을 눕혔다.“나 지금 딱 좋아, 딱 잠들 수 있으니까 건들지 마.”“네가 축구를 볼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그럼, 현명하네.”내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덮어버리는 친구에 웃음을 터뜨렸다. 노곤노곤,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으며, 햇빛은 따사로웠다. 축구 경기를 보며 들썩이는 친구에도 아랑곳 않고서 몸을 뒤척이며 눈을 감았다. 진짜 딱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하고 생각을 할 때 즈음이었다. 천국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행복하다고 생각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순식간에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굴에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헐, 헐. OO야, 괜찮아?”“……아.”뭔가 내 얼굴을 치고 간 건지 코부터 느껴지는 아픔에 그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로 몸을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안면을 강타한 것의 정체는 아무래도 축구공인 듯 했다. 전교생이 있는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보던 경기 도중에. 아픔도 아픔이지만 몰려오는 민망함까지 더해져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민망하다고 울 정도로 어린 애 같이 굴 성격은 아니지만 눈물은 아픔 때문에 저절로 차오르는 듯 했다. 얼굴을 손으로 다 덮은 상태인지라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상태에서, 날 걱정하는 친구의 목소리와 남자애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그냥 가라고 손사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괜찮아? 아, 나 좀 봐봐.”“아냐, 나 괜찮아…….”그 중 한 남학생이 내 손목을 붙들며 손을 잡아내리려 하길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고개를 도리질 쳤다. 물론 괜찮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씨발, 대체 얼마나 세게 찬 거야…….“전정국 미친 새끼 존나 세게 찼는데. 진짜 괜찮아? 잠깐만 봐봐, 멍 들었을 것 같아서 그래.”“비켜봐, 아. 손 좀 치워봐.”자꾸만 내 손목을 붙드는 남자애에 슬슬 짜증이 나려던 순간, 내 손목을 붙들고 있던 남자애의 손길이 사라졌다. 내 얼굴을 가격한 주인공이 등장한 건지, 귓가에 애들의 욕이 박혀왔다. 전정국 미친 놈아, 같은 뭐 그런. 내 손을 강제로 내리려던 남자애의 손길도 치워줬고, 고의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기에 슬쩍 손을 내리며 괜찮다고 말하려던 순간, 전정국이 내 머리통을 팔로 확 감싸안았다. 순식간에 전정국의 가슴팍에 얼굴이 박힌 나는 당황해 그대로 굳어버렸다,“진짜, 진짜 미안해. 아, 진짜 세게 찼는데. 많이 아프지, 미안해.”저도 생각보다 많이 당황했던 건지 안절부절 못하는 게 티가 팍 나는 전정국의 말투에, 아니, 사실 그보다는 갑작스레 낯선 남정네에게 안겼다는 사실에 나는 머릿 속이 새하애진 상태였다. 내 머리통을 꽉 끌어안은 채로 내 머리통 위로 미안하다는 말을 쏟아내던 전정국은, 곧이어 내 얼굴을 붙잡고는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에 들이미는 행동까지 서슴치 않았다.“멍 들겠다, 아. 하필 여자애 얼굴에.”“……어, 어……..”“눈가 빨개졌다. 울었어? 아, 미안해. 보건실 갈래? 같이 가자.”미간에 내 천(川) 자를 새긴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얼굴을 살피는 전정국의 낯뜨거운 행동에, 나는 손을 덜덜 떨며 전정국의 손목을 잡아내렸다. ……손을 벌벌 떨면서, 지금 생각하면 존나 빠가 같지만 그 때는 진짜로 손이 덜덜 떨리는 걸 주체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못생긴 애가 그랬더라면 손이 떨리는 정도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었겠지만, 가까이에서 본 전정국은 솔직히 눈이 존나 높은 내가 보기에도……. 어, 그래. 존잘. 솔직히 존나 개존잘이기는 했다.내 얼굴을 붙잡은 애는 존나 잘생겼지, 시선은 집중 된 상태지, 와중에 얼굴은 화끈거리지. 누구든지 내 입장이 되어본다면 손 떠는 것 정도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정확하게 남은 그 날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당황한 나를 친구가 보건실에 데려가겠다며 끌고나왔고, 멍하니 보건실까지 이끌려 가서 대충 약을 바르고 나왔던 것 같다. 그 전정국이라는 아이와, 내 친구가 잘생겼다 이야기 한 애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았던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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