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수야, 도망쳐...
숨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온 힘을 끌어모아 마지막으로 그렇게 외쳤다.
피 웅덩이에 엎드려 따뜻한 피를 쏟아내면서도 두 주먹을 말아쥐고 그 앞에 앉아 흐느껴 울고있는 경수를 향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기이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그는 입에서 쿨럭- 피를 토해내는 것을 끝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경수에게 손 한 번 뻗지 못한 채. 그저 들릴락 말락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을 뿐이었다.
- 가, 어서 가... 넌 꼭 살아야해...
차마 손을 들어 자신 쪽으로 뻗어오다 애닳게 멈춰선 피로 얼룩진 그의 손을 마주잡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훔치던 경수가 마지막 그의 한 마디에
결심한 듯 마른 손을 뻗어 채 감지 못한 슬픔과 고통으로 물든 그의 두 눈을 애잔한 손짓으로 감겨준 뒤 몸을 일으켜 애써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이끌었다. 신발조차 신지 못한 맨발이 까슬한 모래바닥에 닿아 다 쓸리고 피가 베어나오는 것 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절뚝이는 걸음걸이로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듯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목덜미로 식은 땀이 흘러내리고,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두 눈알을 굴리는 경수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깜깜한 어둠에 휩싸인 길거리는 사람 하나 지나다니지 않았고, 어딜 가도 불 켜진 상점은 보이지
않는다. 빠르게 뜀박질 할 수 없는 그의 연약한 다리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절뚝거림이 더욱 심해지며 후들후들 떨려왔다.
제발... 제발...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 어둠이 내려앉은 캄캄한 구석에 작은 몸뚱아리를 숨긴 경수가 두 다리를 팔로 꽉 끌어안고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그가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길 바라면서도 누군가 도움을 줄 사람이 나타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칠흑같이 어두웠던 자신의 삶 속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준 그 사람처럼...
감았던 눈을 뜨면 이 모든게 꿈이고 따뜻한 그 사람의 품이길 원하고 또 원했다.
저벅... 저벅...
"찾았다..."
아아... 안돼...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낮은 남자의 목소리에 양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은 경수가 두 눈을 더욱 꼬옥 감았다.
낮게 코를 울려 웃은 남자가 경수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경수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한참 찾았잖아 경수야..."
"으으으..."
머릿 속에서 떠오른 단어는 입 안에서 몽글거리기만 할 뿐 미쳐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웅얼거리기만 할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경수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흘려댔다.
그런 경수의 머리와 뺨을 차례로 따뜻한 손으로 쓰다듬은 남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눈동자를 경수의 얼굴 앞까지 가져갔다.
"무서웠지..? 괜찮아... 내가 왔잖아. 자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흐으... ㅅ....어... 으응..."
싫어...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 뜻을 전하는 경수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남자가 순간 놀라는 것도 잠시, 다시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형 때문에 그래?"
"으으..."
"걱정마. 그걸 걱정하는거라면... 형은 이제 없어 경수야... 너에게 손을 대는 형 따위 필요 없으니까... 너도 무서웠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이제 겁먹을 필요 없어. 다시 우리 둘 뿐이거든"
안돼... 싫어... 그러지 마...
"자, 가자. 우리 둘 만의 공간으로..."
두 팔을 뻗어 가볍게 경수를 안아올린 남자가 어둠 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집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흑요석같은 까만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번뜩이며 빛난다.
"발 좀 봐. 상처투성이잖아... 그러니까 왜 맨발로 도망을 가고 그래. 주인 허락도 없이 집을 나가고... 벌을 받아야겠다. 그치...?"
준면이 누워있던 곳은 미약하게 핏자국만 남고 그 흔적 역시 준면과 함께 사라져있었다.
그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경수를 더 강하게 끌어안고 핏자국을 즈려밟은 남자가 발걸음을 옮겨 '金鍾仁'라고
선명하게 명패가 박힌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잔디가 깔린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온 남자가 이제야 만족한다는 듯
품 안의 경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려 미소지었다.
"집으로 돌아온걸 환영해 경수야"
이건요 음... 사실 제가 예전에 혼자 썰풀었던걸 기반으로 떠올리고 쓴거예요.
그 이야기의 결말정도랄까...? 물론 이건 새드엔딩의 경우구요.
여기서 나오는... 준면이는 이미 이름 나왔으니 아실거고 남자는 당연히 한자보면 아시겠지만 종인이겠죠
음... 감금 쪽이라고 해야하려나...;;;;;
이 이야기를 풀려면 무지 긴 시간이 걸려서.... 나중에 장편으로 쓰게될 지도 모를 이야기이고...
간략히 풀어보자면 준면, 종인이 집안 깊숙한 곳에 감금된 경수예요.
시대적 배경은 일제강점기 정도? 현대 아니구요... 글서 여기 나오는 집도 요즘의 아파트
같은 개념이라기보다 그냥 옛날 한옥같은? 전통가옥같은 곳이예요... 미로 비슷한?
준면이는 아버지의 억압에 못이겨 성인이 되기 무섭게 집을 나와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10년 정도 후에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요. 본가로 돌아와보니 아버지는 이미 자신이 집을 나가고 얼마 후에 바로 돌아가셨고
어렸던 종인이가 집을 물려받아서 살고 있었죠. 종인이는 돌아온 형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준면이 보기엔 어딘가 석연찮아보여요.
자신이 살 집을 구하기 전까지 본가에서 얼마동안 지내려하는 준면이는 자신의 방으로 가려는데 종인이가 가로막아요.
돌아오지 않을 줄 알고 집 안을 조금 공사했다며 다른 방에서 지내라고 말하고, 그 날 밤에 둘은 오랜만에 술도 마시고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회포를 풀죠. 형제가 한 방에서 잠들었다가 술기운+잠결에 화장실이 가고싶어진 준면이 일어나서 주섬주섬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버릇처럼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데 뒤에서 종인이가 거기서 뭐해? 하는 어쩐지 서늘한 목소리로 물어요.
순간 술기운에서 확 깬 준면이 본능적으로 다시 술취한 척을 하면서 방으로 돌아가는데 그 때 부터 자신의 방 쪽이 계속
의심스러운거예요. 자신의 방은 사라지고 어쩐지 복도도 어두컴컴 차가운 냉기를 띠는 듯 하고 자세히 보고 싶어도 자꾸만
경계하는 듯 눈치를 주는 종인이에 준면이는 아예 그 방에 대해서 신경을 꺼버려요. 뭐 사실을 말하자면 종인이가 방심하도록
신경을 끄는 척 하는 것 뿐... 어느 날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온 준면이는 집 안으로 들어섰는데 말소리가 들려서 슬금슬금
그 쪽으로 향하니 종인이가 자신의 방 쪽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잇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기에 뭔가를 숨겨두고 있다고
확신을 하게 되죠. 그리고 종인이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졌을 때 쯤 준면이는 며칠 집을 비울 일이 생기고 이에 맞춰 종인이 또한
나가봐야겠다고 말을 해요. 종인이는 사실 준면을 경계하느라 그동안 바깥외출을 한 번도 제대로 못했다는...;;;
그리고 준면이는 말했던 일정보다 하루 일찍 집에 돌아옵니다. 역시나 종인이는 집에 없죠..ㅋㅋㅋㅋㅋ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방 쪽으로 향하니 거기엔 있어선 안될 차가운 철문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방을 개조했다고 해야하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칠흑같은 어둠과 함께 길게 이어진 복도가 나타나요.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는데 준면이 누구 있어요? 하고 물으니 갑자기 조용...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가니까 문 손잡이에
쇠사슬(;;;)같은게 감겨져 있어서 그거 풀고 들어가니 뭐... 그 뒤는 다들 예상하시는대로 침대 하나 있고 경수가 뙇!!!!
종인이가 경수를 뭐 주워온 걸 수도 있구 어떤 경로로 경수를 데려와서 집 안에 십 년 가까이 아무도 모르게 가둬놓고
혼자만 아는거죠... 뭐 보살폈..... 다기엔... 그냥 몸의 언어(..)로 최소한의 행동을 학습시키고 세뇌시키고 학대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면서 길들이는... 그걸 준면이 알게 되고 종인이 몰래 드나들면서 경수한테 말도 붙여주고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하는... 그러면서 둘이 정도 들고 뭐 그런 이야기..???ㅋㅋㅋㅋㅋㅋ
근데 경수는 움직일 일도 없이 방 안에 늘 갖혀있고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있으니 체구도 작고 운동량도 턱없이 부족...
햇볕도 받지 못해서 피부는 새하얗고 여기저기 학대의 흔적... 또 종인이가 말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말을 하고 싶어도 거의 실어증상태예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웅웅거리기를 반복한다는...
저 위는 결말... 준면이 자기 집을 얻어서 나가게 되면서 종인이 몰래 경수를 데리고 나가려는 속셈이랄까요
그러니까 새로 얻은 집의 위치도 절대 알려주지 않고... 도망가려고 하다가 들킨...????
뭐 본래의 생각했던 결말은 그렇게 행복하게 나가서 경수 말도 가르치고 열심히 먹여서 살도 찌우고 그런...
다정한 준면 좋아요..//ㅅ// 이건 그냥 싸이코 종인이를 보고 싶었고 또 아무것도 못하는 가녀린 경수도 보고팠고...
어째 본편보다는 그냥 썰풀이가 길어보여도 그냥 기분탓일걸요...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