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다
짜장면 그릇을 내어 놓고 나는 다시 용국의 집에 들어왔다.
그곳 역시내 집과 다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아직 정리를 다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발로 박스를 밀어내는 용국의 옆 구석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있었다.
" 이게 뭐에요? "
" 피아노요. "
아까 전 같이 밥을 먹으면서 기본적인 자기소개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작곡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도 그럴 것이. 용국의 손가락은 투박하면서 아름다웠다. 행동자체도 무언가 유려했다.
들려줄 수 있어? 아 좀 그런가. 피아노도 상자 안에 있고.. 툭 튀어나온 말에 내가 당황해서 말끝을 흐리자.
" 꺼내면 되죠. "
용국은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박스를 뜯어내었다.
누가 봐도 잘 관리한 듯한 커다란 전자피아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피아노 설치를 끝낸 용국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전자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몇 번 건반을 두드려보더니 곧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가 방안을 메꾸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건,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여름 늦은 점심의 주택가 특유의 평화로움을 물들이는 그의 선율.
창문을 열어 놓은 탓에 햇살 냄새와 함께 간간히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이 용국의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며 지나갔다.
음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닌 나였지만 저 가느다랗고 여린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들기는 용국은 충격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기껏해야 계이름이나 구분하는 나도 피부가 떨리게 좋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주인을 닮은 곡이었다. 가볍지만 깊게 스며든다.
음표 하나하나가 튀어 올라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그림 그리듯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다다를 때쯤 음악이 뚝 끊겼다. 신나게 이야기를 그려가던 내 머릿속도 멈칫, 했다.
" 아직 덜 완성 된 거라 서요. "
그렇게 말하며 목 언저리 부근을 손으로 몇 번 쓸어내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뮤즈를 찾았다.
불러오는 바람에 얇은 커튼이 춤을 추듯 날아올랐다.
용국은 나를 오묘한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 했다.
밖은 조용했고 간간히 골목길을 달리는 오토바이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늦은 낮 평화 속에 그가 있었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졌다.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그리고 앞으로라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용국이 필요하단 걸 그때의 난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 혹시, 앞으로 나랑 밥 같이 먹을래? "
얼토당토않은 내 물음에 용국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누가 보아도 이상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 때의 난 이상해지지 않고선 못 배길 정도로 볼품없었으니까.
다 큰 성인 남자를 집 안에 들여보낸다는 것 자체에 아무런 위화감을 못 느낄 정도로 말이다.
하기야, 용국은 위협을 주기엔 너무 얇고 마른 몸을 지니고 있었다.
" 저 내일 부터 학교 나가는데.. "
" 아. 그렇지.. 그럼 저녁이라도.. "
까였다, 싶었다.
구질구질하게 뭐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매달리고 있었다.
그제야 용국의 눈치를 보았지만 – 지금도 그렇듯 그의 눈은 읽기 어려운 타입이라. -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초면에 저녁을 같이 하자니 나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겠다, 란 생각이 뒤이어 떠올랐을 때. 용국이 대답했다.
" 네, 그래요. "
나는 아직도 그때 그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
남자 고등학생을 매일 밤 집으로 부르다니. 이런 생활을 절대 남에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
" 한 그릇 더 주세요. "
" 네가 가져다 먹어. "
" 오늘 피아노 안쳐줄 거야. 저번에 그 곡 다 완성했는데. "
" 안 돼! 나 내일 마감이란 말이야. 오늘 원고 꼭 마무리 지어야 해 "
" 그럼 빨리요. "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어딘가 휘둘리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만.
“ 저, 내일도 꼭 올거지? ”
“ 네, 내일 뵐게요 ”
어쨌거나 곱상한 나의 뮤즈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꽤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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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국이 생존하면 번외 쪄올게요♡
프요일 잘 넘겨봐요
용국아 데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