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설마 어린애를 혼자 두고 문을 닫지는 않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정훈이는 어린이집 앞에서 혼자 서있었다. 더 서러운 것은, 그 여섯 살 짜리가 무서워서 혼자 목놓아 울고 있을법한데, 운 기색도 없이 손가락만 꼼지락대고있었다. 그모습이 더 마음이 아팠다. 정훈이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엄마!'하며 달려오다 돌멩이에 걸려 넘어졌다.
" 정훈아! "
" 나 괜찮아. 정훈이 이런거 다쳐도 안 아파! "
무릎에서 새빨간 피가 꽤 나오고 있는데도 정훈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정훈아… 정훈이는 나보다 더 어른같았다. 말그대로, 애어른같았다. 여섯 살이라면 마트에서 장난감이라도 보면 칭얼대며 사달라고 할 법 한데, '갖고싶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을 먹고싶다고도 하지않았다. 힘든 내 마음을 아는 것인지, 내 옆에서 묵묵히 박지훈의 몫까지 정훈이가 다 해주었다. 여섯 살 짜리가. 고작 여섯 살 짜리가. 마치 자기는 괜찮으니 걱정하지말라는듯이 나를 향해 밝게 웃었다.
" 정훈아, 오늘은 엄마가 정훈이 먹고싶은거 해줄게. 뭐 먹고 싶어? "
" 난 다 좋아! 엄마가 해준건 다 맛있어! "
박지훈을 만난 건 박지훈을 만난 것이었고, 정훈이는 정훈이었다. 이제 더이상 박지훈과 정훈이는 어떠한 관계도 없으니 괜히 정훈이에게 박지훈을 만났다고해서 의미부여를 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걸 잘 알기때문에, 더욱 정훈이에게 잘 대해주었다. 오늘은 정훈이랑 마트에서 장이나 볼까싶어 정훈이에게 먹고싶은거 있냐고 물어보니 아무거나 다 괜찮다고 한다. 그럼 오늘은 비엔나볶음? 좋아, 엄마!
생각해보니 평소에 먹던 반찬거리가 다 떨어진 것 같아─몇 개는 엄마가 보내주지만─ 비엔나말고도 여러가지 반찬 종류를 사러 정훈이와 마트를 왔다. 정훈이는 내게서 멀어질까 그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정말, 누구 아들인지 귀여워 죽겠다니까. 사실, 이렇게 마트나 길거리를 가면 간혹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다. 좀 나이 드신 분들이… 동생이냐고 아들이냐고 물어보신다. 아들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하면, 젊은거같은데라는 안 좋은 시선으로 보신다. 그래서 마트를 자주 안 온다. 대게 시식코너에서 많이 물어보기때문에.
" 어머, 애 귀엽다. 애 이름이 뭐니? "
" … … "
" 아, 정훈이에요. "
" 귀엽네. 동생이에요? "
뭘 사야되나 쭉 둘러보고 있을 쯤, 정훈이가 배가 고팠나 시식코너를 기웃거렸다. 아주머니가 그걸 보시고 귀엽다며 정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시고는 이름을 물어보시는데, 정훈이가 상당히 낯을 가리는 편이라 대답을 하지않았다. 내가 대신 대답하자, 아주머니께서 동생이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아들이에요.
" 아, 아들이었어? 아들이 엄마 닮아서 그런가 되게 예쁘게 생겼네~ "
" … 감사합니다. "
아무것도 모르시는 아주머니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정훈이는 박지훈을 닮았다. 박지훈이 좀 예쁘장하게 생기긴했지… 나도 모르게 요즘들어 박지훈이 생각날 때가 많아 얼른 그자리를 피했다. 사실, 그자리가 문제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냥 박지훈이 생각난 그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
정훈이는 피곤했는지 내가 요리하고 있을때, 잠이 들었다. 밥 안 먹고자면 배고플텐데… 깨워볼까도 생각해봤지만, 너무 곤히 자고있길래 깨우기도 뭐하고, 자고 있는 그 모습이 예뻐 손대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핸드폰을 보지 못해 할 것도 없는데 뭐라도 봐볼까 싶어 핸드폰을 집어 들었더니, 홀드를 누르기도 전에 진동이 울렸다.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는 뜻이었다. 얼른 홀드를 눌러 화면을 켜보니 수정이한테 전화가 6통 와 있었다. 급한 일인가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않았다.
" 어, 왜? 무슨 일 있어? "
" 왜 이제 전화 받아! 오늘 과 모임 있다고 했잖아… "
" 못 간다고 했잖아. "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대박이야. 너 오늘 안 온 거 후회할걸? 백퍼? "
" 왜? "
" 너 혹시 우리 학교에 박지훈이라고 알아? "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터넷이나 열어 뉴스를 보려고 한 순간, 수정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서둘러 받자, 시끄러운 말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왜 이제 전화 받아! 오늘 과 모임 있다고 했잖아… 수정이는 내가 못 간다고 한 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하소연하듯 물었다. 못 간다고 했잖아. 그러자, 수정이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대박이야. 너 오늘 안 온 거 후회할걸? 백퍼? 수정이의 들뜬 목소리를 또 오랜만인지라 얘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들떴지 싶어 왜? 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정이의 말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너 혹시 박지훈이라고 알아?
" … … "
" 성이름! 왜 말이 없어? "
" 아, 어. 몰라. "
" 너도 참..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어떻게 이런 애를 모르니. 진짜 존잘. 아니, 그러지말고 진짜 지금 한 번만 나오면 안돼? "
수정이랑 박지훈이랑 만났다니. 정말, 만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만날 접점은 없었다. 수정이는 3학년이고, 박지훈은 1학년인데 도대체 어떻게. 나오면 안되냐는 수정이의 말에 절대 안된다고 말함과 동시에 나는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수정이와 통화하는 중에 그 속에서 박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아, 유교과에 성이름이라고. 수정이가 박지훈 앞에서 내 이름을 말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바로 전화를 뚝 끊었다. 그 뒤로 수정이에게 두 번 정도 전화가 더 왔지만, 받지않았다. 너무, 두려웠다.
──
' 정훈아,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오늘은 엄마가 빨리 데리러갈게. '
꿈에 박지훈이 나왔다. 몇 년 만에 나오는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한 달 정도는 계속 박지훈이 꿈에 나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더니, 오랜만에 나온게 오늘이었다. 그냥, 학창시절에 있던 친했을때가 나왔다. 정말 일상적인 일로 꿈에 나와서 무어라 말하지도 못하겠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정훈이를 준비시켜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오늘은 안 늦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다.
자체공강을 하고 학교를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늘도 학교에서 박지훈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계속 피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학교를 쉬는게 이번이 한 번이 되면 나중에도 이렇게 계속 쉴 것 같아 그냥 나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땅을 보고 걷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툭툭 쳤다. 어제 왜 전화 안 받았어. 갑자기 끊어서 걱정했잖아. 수정이었다.
수정이한테 얻어 낸 정보가, 박지훈은 수정이와 같은 경영학과라는 것이다. 같은 학교인것도 불안해죽겠는데,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은 과라니. 두 번째로 하늘을 원망했다.
" 그래서 어떻게 번호 좀 알아내볼까, 했는데. "
" … … "
" 여자친구가 있으시다네. "
" … 있다고…? "
"어. 우리 학교인지는 말 안 해주던데, 있대. 하긴 그 외모에 없는게 이상하지. "
요즘 왜 계속 불안과, 무서움과, 원망의 연속일까. 너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니. 나는 너를 떠나 혼자 외롭게 살았는데, 너는… 일부러 나를 더 처참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것일까, 나를 더 짓밟으려고 그러는 것일까. 이미 나는 너무 짓밟혀서 체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혹시, 너는 내가 미워 처음부터 일부러 내게 접근한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너는 나를 싫어한 것일까. 마음 속으로 네게 많은 의문을 던졌다.
+ 어제는 프요일을 보내느라 못 올렸구요....
월요일이 시험이라 아마 내일은 못 올 거 같은 예감이..!
그래서 오늘 하나 더 올라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헤헤
항상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댓글은 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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