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펫! 아니, 나는 펫?
혼자 사는 일상, 외로우신가요?
일하고 돌아오면 마주하는 텅빈 집, 이제는 싫으시다고요?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
당신의 일상을 달래줄 애완남, 지금 당장 연락하세요.
☎02)xxx-xxxx
띵-동-
"거기 두고 가세요."
띵-동-
"거기 두고 가라니까요."
띵-동- 띵-동-
"아 씨, 거기 두고 가라니까 왜 자꾸 벨을 눌러."
오랜만에 한가롭게 주말을 보내려고 했더니 누군가 아침 댓바람부터 벨을 눌러대는 통에 단잠에서 깼다. 기사님인가 싶어 두고 가라고 소리쳐도 끊이지 않는 벨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두고 가라면 두고 갈 것이지, 왜 자꾸 벨을 누른대.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 이른 오전이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침을 한 번 삼키고는 인터폰 화면을 열었다. 멀끔한 옷차림으로 서 있는 남자에 뒷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사람이 더 무섭다고 어젯밤에 봤던 뉴스 사건 사고가 리플레이됐다. '범인은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노린 것으로... 여성혐오에서 비롯...'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호신술 정도는 배웠지만 그래도 무섭다. 여차하면 112에 신고할 기세로 숨을 죽이고 몇 초 쯤 있자 계속해서 화면에서 벨을 누르던 남자는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듯 했다. 사람을 더 불러모으려는 건가. 나, 25살 먹고 잡혀가는 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의 눈에 나는 절대 안 보이는 게 분명할 텐데도 화면상으로 눈이 마주친 것 같아 순간 움찔했다. 남자의 얼굴은 험악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오히려... 잘생긴 편에 속했다. 그것도 존나, 존나게.
'지이이잉-'
112에 신고해야겠다고 마음 먹자마자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10년지기 미친년' 화면에 뜬 이름이 반가워져 눈물까지 날 것 같았다. 절친에게 지금 상황이라도 알리려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소리에 벙찐 건 그 다음 일이다. "야, 미안하다!!!!!" 귀가 얼얼해져 휴대폰을 순간적으로 멀찍이 떨어뜨리고 다시 휴대폰을 가까이 댔다. 뭐가 미안한 거야, 지금.
"너 지금 집 앞에 남자 한명 와 있지?"
얘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친구와는 얼마 전까지 함께 살았다. 천성이 자유로운 그녀는 인생 한번을 외치며 다니던 회사에 시원하게 사표를 쓰고 해외로 떠났다. 해외에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욕을 바가지로 먹었지만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설득과 함께. 그럴 용기도, 패기도 없는 나는 이렇게 한국에서 코딱지만한 월급으로 살고 있지만. 근데 얘가 갑자기 미안할 건 뭔가.
"어떻게 알았어? 너 사채 썼냐?"
"야, 내가 그 정도로 미친년은 아니거든. ... 미안하다. 어쨌든 밖에 걔, 빨리 문 열어줘."
"미쳤냐? 지금 친구가 정체모를 남자한테 문열어줬다가 죽게 생겼는데?"
"걔 그거야. 너는 펫, 요새 유행하는 거 모르냐?"
너는 펫... 그거라면 요즘 커리어우먼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가 핫하다는 연하남 키우기가 아닌가. 너는 펫의 목적은 이랬다. 일상에 지친 커리어우먼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펫'같은 연하남. 좋게 말해서 펫이지 그냥 연애 기반 동거. 자칭 '획기적인' 시스템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엔터테인먼트의 등장으로 한창 이슈가 되고 있다고 들었다. 내 생활 챙기기도 바쁜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지만. 근데 그게 왜 나한테 와?
"그... 내가 니네 집에서 살 때 니네 집 주소로 신청해놨는데 그게 당첨이란다. 니가 알아서 잘 키우거나 아니면 취소라도 좀 해줘. 사랑한다 친구야!!"
뚝-
"야, 야! 미친년아!"
휴대폰을 붙잡고 소리쳐봐도 이미 끊긴 전화에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만은. 그러니까 지금 쟤가 우리 집 주소로 저 "펫"을 신청했다는 거지. 그리고 자기는 내뺀거고? 엉? 진짜 미친년인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기 잘 데는 또 어딨다고. 아무리 펫이라지만 엄연히 남자고! 여잔데! 얘는 내가 걱정도 안 되나. 그리고 존나 중요한 게 있다. 지금까지 만난 내 남자 취향은 거의 귀요미 연하남이었는데 화면 속 저 남자는 멋있어도 너무... 멋있다. 이게 바로 취향 브레이커라는 건가.
내 의도로 온 사람은 아니지만(분명히 명시한다) 친구의 실수로 일어난 불상사에 의해 누군가 오래 밖에 서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심호흡을 몇 차례 하고는 문을 열었다. 낡은 집 문이 열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분명 화면으로만 봤을 때도 남다른 피지컬이라고 느꼈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보니 더욱 남다른 피지컬이 느껴졌다. 큰 키와 다부진 어깨에 마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집이 있는 것도 아닌, 근육이 적당히 잡힌 몸과 흰 티에 청바지만 입었을 뿐인데도 딱 떨어지는 핏. 게다가 얼굴은 또 어떤가. 그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차례로 훑어보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남자는 침흘리겠어요- 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을 벗었다. 뭐, 침? 누가 봐도 바보같은 표정으로 얼빠진 채 그가 한 말을 곱씹다 정신을 차렸다.오랜 시간 세워둔 것도 짜증날 텐데 초면에 샅샅히 훑어보면 기분 나쁠 만하지, 그래...
"저기..."
"문 존나 일찍도 여시네요."
쟤 지금 나한테 욕한 거야?
"네? 저기 지금 저한테..."
"김미영씨. 일단 나이는 24살. 이상형은 귀여운 남자. 동생처럼 애교많은 성격을 좋아한다고... 이 부분은 죄송하게 됐네요. 잘생긴 게 좋다. 이건 뭐... 보시면 알겠죠."
종이에 적힌 친구의 정보, 정확히 하자면 그가 나에 대한 정보인 줄 알고 있는 글을 읽으며 이런 저런 코멘트를 덧붙이는 그에게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확실히 덩치가 큰 남자는 위압감부터 달랐다. 아니, 펫이면 뭐 귀엽고 사근사근한 맛이 있어야 내가 즐거운 거 아닌가.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피식거리며 웃는 그가 순간 멋있어보여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을 꺼냈다.
"저기요."
"네."
"저 읽어주신 부분 다 잘못됐고요. 저 죄송한데 환불 어떻게 안 될까요. 못 할 것 같은데."
"네? 그건 곤란한데요."
곤란하다니 그게 무슨.
"계약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어요. 환불 불가하다고. 아무리 제가 마음에 안 들어도..."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이게 제 친구가 신청한 거거든요. 약간 착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보시다시피 저는 여기 그쪽 데리고 살만큼의 장소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누구를 키울 여유가 안 돼요. 환불같은 거 안 되나요?"
게다가 전 남자랑 동거할 준비가 안 됐고요, 라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굳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일일히 내 감정을 다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아... 근데 죄송한데 저희 시스템상 안 됩니다. 그냥 키우셔야 돼요. 저를."
아까 그 싸가지 없던 태도는 어디가고 마치 자기가 진짜 내 강아지라도 된 마냥 헤실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자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미쳤구나, 미쳤어. 지금 처음 본 남자랑 동거를 해야될 판인데 머리 쓰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 일단 지금 현실을 마주해보자. 내 10년지기라는 년은 너는 펫이라는 걸 신청하고 해외로 갔고(언제올 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펫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 너는 펫 제도는 환불이 불가능하다. ...계약서에 그렇게 되어있단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잖아. 얘를 키운다... 아니, 얘랑 함께 산다.
"제 이름은 강다니엘이고요. 나이는 24살입니다."
"저는 성이름이고... 이게 진짜 맞는 건지 모르겠는데... 하, 저도 24살이네요."
"동갑이네요."
차라리 연하였으면 대놓고 귀여워했을 텐데 이번에는 동갑이랜다. 내가 키워야 된다는 펫이 동갑이라니. 동갑. 동갑이랜다! 얘랑 친구라도 먹어야 되나 싶어 하하, 그러게요. 하고 멋쩍게 웃어보이면 강아지같은 웃음을 짓던 아까와는 다르게 꽤나 다정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다니엘이 있었다.
"잘 부탁해요. 이름아."
아... 이 새끼 조련 수준이 상당하다...
꼭 읽어주세요 |
국프동 하숙에 대해서는... 글 하나 쓰는 것보다 짤을 찾고 썰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머리가 아픈 일이더라고요. 국프동 하숙을 기다리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조금 늦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하숙물이라는 게 생각보다 썰찌기가 되게 어렵더라고요. 흑흑... 그래도 며칠 뒤에 시험만 끝나면 바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암호닉 말이죠! 국프동 하숙 암호닉만 다음 편에서 다시 다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국프동 하숙이 초록글에 올랐더라고요.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신작 알림 보내기를 끄고 글을 올릴까 하다가 그럼 제 필명이 아예 국프동 하숙용으로 변할 것 같아서 그냥 올립니다. 혹시라도 국프동 하숙인 줄 알고 들어오셨다가 실망하신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는 프로듀스 101 연생 모두를 사랑해요! 제 글에 자주 나오는 연습생들이 있지만요... ㅎㅎㅎ 이 글 남자 주인공도 정하기 되게 힘들었는데 다니엘이 제가 생각하는 펫 이미지에 딱 맞았어요. 저는 제 펫한테 조련당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 ㅋㅋㅋㅋㅋ 사족이 길어졌습니다. 너는 펫, 아니 나는 펫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그동안 올렸던 다른 글에 비해서는 텀도 빠르게, 짧게, 많은 편수로 올릴 것 같습니다. 제 예상+바램이지만... 아 그리고 !!!! 이 글에는 녤 시점도 중간중간 추가될 계획입니다. 저는 남주의 감정선도 참 좋아하기때문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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