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현이 죽었다.
유난히도 비가 쏟아지던 날이였다.
2.
억척같이 달라붙었다,그 녀석은. 아메리카노를 시킬때면 어디선가 나타나서는 카라멜마끼야또를 외치며 내 옆에 앉곤 했다.
밥을 먹으러 외출을 할 때면 귀신같이 알아채곤 내 옆집 문을,그러니까 자신의 집 문을 열고 나오곤 했다.
이웃사이에 그것도 못해줘요? 라며 애교스럽게 말을 붙여왔고, 나는 곧 힘이 빠진 목소리로 피실,하고 웃었다.
3.
어느 날은 울고 있었다. 무릎을 감싸 쥔 아이의 어깨가 이따금 흔들렸다.
그 자그만 등을 토닥거리면 이내 엉엉-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3-2.
왜 울어,하고 조심스레 물어보면 아무 말 없이 눈물이 맺힌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면 녀석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나는 그 표정이, 참 좋았다.
4.
이승현-하고 부르면 쪼르르 달려와서 쳐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표정이 꽤나 마음에 들어서, 자꾸만 이승현,이승현하고 불렀다.
4-2.
자꾸,왜 그렇게 불러요? 라며 입을 삐죽 내밀고 불만스럽게 날 쳐다보는 녀석의 표정도 썩 보기 좋은 얼굴이였다.
나는 문득 그 표정이 보고싶어서 이승현, 그 세 글자를 내뱉었다가 흠칫하고말았다.
이제 이 세상엔, 쪼르르 달려오는 이승현도, 눈을 동그랗게 뜨는 이승현도, 날 쳐다보는 이승현도, 입을 삐죽이는 이승현도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당연케 들려와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5.
휴대폰 앨범을 보다 한장의 사진에 알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커플 인증샷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이였다.
한쪽은 뚱한 얼굴에, 한쪽은 한껏 예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승현은 이 사진을 썩 마음에 들어하며 신나했다.
5-2.
나의 고백에, 녀석은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고민을 하는듯, 가만히 멈춰서 멍-해 있었다.
내가 서둘러 정리를 하려고 할 때 이승현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남자는 싫은데- 하며 웃었다.
역시 그렇겠지 싶어 별 당황도 하지 않은 나를 당황케 만든 이승현의 한마디는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래도 뭐, 형이니까 내가 크게 인심 써볼게요. 딴사람이면 택도 없는데….
마지막 한마디까지 또박또박 야무지게 뱉어낸 녀석은,뿌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5-3.
여기 보세요- 이승현은 핸드폰을 들이밀며 화면에 나와 자신의 얼굴을 비췄다.
뭐하는건데? 영문을 모른 채 액정에 얼굴이 비친 내가 불만스레 물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승현은, 커플 인증샷이라며 예쁜 표정을 지으라고했다.
그걸 대체 왜 하는거냐며 내가 면박을 주자, 눈을 부라리며 늙은이, 하고 투덜거렸다.
5-4.
이거봐요. 잘 나왔죠? 이승현은 핸드폰을 들고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녔다.
보라면서 그렇게 뛰어다니면 내가 어떻게 봐. 라는 내 말을 듣고 그제서야 아, 하며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뚱한 나의 표정이 찍힌 사진을 보며, 너만 잘나왔잖아. 라고 내가 불만을 표하자, 녀석은 잔뜩 으스대며 셀카도 본판이 돼야 잘 나오는거죠,했다.
5-5.
그렇게 이승현이 밥과 커피, 간식이나 선물 등을 요구할때 애교스럽게 부르던 이웃사이라는 명칭은 애인사이라는 부끄럽고 간질간질한 말로 바뀌었다.
어느샌가 불어온 변화의 바람에, 쑥스러운 감정들이 나를 간지럽혔다.
6.
녀석과 사귀게 된 이후에, 나는 웃음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밀당을 시도한다거나, 텔레비전이나 소설 등에서 본 것들을 써먹는다던지 하는 행동을 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7.
대판 싸운 날도 있었다.
회사 일로 여자 사원과 잠시 만날 일이 있었는데, 이승현과 딱 만나게 된 것이다.
여자인데, 거기다 예쁘기까지 했으니 오해하기가 충분했다.
녀석은 나와 여사원을 번갈아보더니 인사를 꾸벅, 하고 쌩하니 뒤돌아 가 버렸다.
일이 끝난 후 녀석의 집에 들렀을 때, 이승현은 늘 우는것처럼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울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그 녀석의 오해를 풀어 준 뒤에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형이 참 좋은데….하며 이승현은,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8.
어떻게 너와의 이야기를 마무리지어야할까.
나는 아직도 너가 참 좋은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너가 참 좋은데.
어떻게 내가 널 잊을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너를,그 녀석을,그 아이를,이승현을-
참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