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우진아 그만 마셔라. 너 이러다 진짜 큰일 나. 임마, 야!"
"냅둬, 제발 좀...."
하느님 제발.
"니가 이런다고 이름이가 살아서 돌아오냐? 어?"
제가 사랑하던 여인을,
김이름을.
"제발 한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이름아, 네가 죽은지 벌써 일주일이 다 돼 간다. 근 일주일 간 정말 술에 미쳐 살 정도로 밤낮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술만 마셨다. 의식이 멀쩡해지면 자꾸 떠오르는 너의 기억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들이 붙고 또 들이 부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 없이 기도했다. 널 제발 다시 만나게 해달라고. 꿈 속이라도 좋다고. 제발 그 예쁜 웃음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네가 죽은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 거짓말 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해가 슬금슬금 뜰 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 침대에 누울 겨를도 없이 소파에 누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잠을 잤다. 불편한 자세에, 불편한 옷, 더군다나 딱딱한 소파 위에서 잤으니 몸이 멀쩡 했을 리가 없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옷을 갈아입고선 다시 소파 위에 앉았다. 그때,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고 내 자취방은 이름(이)와 부모님 밖에 몰랐기에 의문을 가지며 현관으로 가 문을 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번 더 울리는 초인종과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박우진! 안에 없어? 우진아!"
"어? 열렸다. 뭐야 있었으면서 왜 대답도 안했어?"
반신반의하며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을 열자 거짓말같이 내 앞에 이름이가 서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미친 건가 지금?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이름이가 맞았다. 내가 사랑하던. 하지만 과거일 뿐 여전히 이름이를 향한 내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이름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뭐야, 왜 멀뚱히 서 있어? 나 들어간다. 말릴 새도 없이 틈을 비집고 집으로 들어와 익숙하게 냉장고를 채워 넣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이름이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사람 무안하게."
"........"
'서울시 한 아파트에서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달 전 일어났던 ㅇㅇ동 사건과 비슷한 범행 수법이...'
"와, 우진아 저거 봐. 요즘 세상 너무 무섭다."
"넌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그런가? 그래, 나는 뭐 우진이가 있으니까...."
아, 머리야... 다음 말이 뭐였더라,
"나는 뭐 우진이가 있으니까 걱정 안해도 되겠다."
"나는 뭐 우진이가 있으니까 저런 일 걱정 안해도 되겠다."
...생각났다. 티브이 한편에 뜨는 날짜를 보니 이름이가 죽기 2주 전이였다. 그리고 지금 티브이에선 우리가 2주 전에 봤던 뉴스가 다시 보도되고 있다. 그 말은 즉슨..., 지금이 내가 원래 살던 시간에서 3주 전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이가 지금 살아있는 거고, 내 앞에서 이렇게...
"뭐야, 박우진 너 울어? 왜?"
"....보고싶었어, 김이름 너무 보고싶었어. 이제 어디 가지말고 내 옆에 있어. 응?"
***
"뭐야, 평소엔 피곤하다고 밖으로 나오지도 않더니. 왠 동물원?"
"너 가고 싶어 했잖아. 왜, 싫어?"
"아니 누가 싫대, 좋으니까 그러지."
그 동안 이름과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려 이른 아침부터 만났다. 예전부터 작고 귀여운 것과 동물만 보면 되게 좋아했었는데 나에게 종종 동물원을 가자며 졸랐었다. 그 때 마다 난 귀찮다며 이름이를& 어린애 취급하며 다른 곳으로 데이트를 하러 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동물원 한번 같이 가 주는게 뭐가 그렇게 어렵나 싶었다. 일주일간 후회했던 모든걸 다 해줄게 이름아.nbsp;
"우리 저기도 가보자."
"머리띠...?"
"여기 까지 왔는데 기분 좀 내자, 응?"
"그래 가자."
"오, 왠일이래 박우진. 사람이 변했어 막."
머리띠 샵에 들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이처럼 구경을 하는 #이름의 모습을 죄다 카메라에 담았다. 우진아, 이거! 우리 이거 하자! 한껏 신나 보이는 얼굴에 지금까지 같이 와주지 못한게 미안해졌다. 씁쓸한 표정을 짓다 이내 표정을 바꾸곤 이름이가 씌어주는 머리띠를 썼다. 진짜 김이름자기같은 짓만 해요. 내 머리에는 호랑이가, 이름이의 머리에는 백호 귀가 얹혀 있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드는지 머리띠 두개를 쏜살 같이 결제해 와서는 다시 내 머리에 씌어줬다. 사진을 찍자는 이름에 예전 같았으면 싫다고 내뺐겠지만 나 역시 사진을 남기고 싶어 빼지 않고 우리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
"와, 우리 최근 들어서 사진 진짜 많이 찍었다 그치."
"그러네. 이거 예쁘다, 걸어놓을까?"
"응!"
시간이 벌써 일주일 하고도 3일 정도가 흘렀다. 이름이가 죽기 4일 전. 일주일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매일 같이 만나며 하루가 멀다하고 놀러 다녔다. 매일 같이 만나다 보니 떨어져 있는 시간도 너무 길어 요즘 이름이는 우리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저번에 부산가서 찍은 사진..., 이건 우리 동물원가서..., 어? 이거 예쁘다. 일주일간 찍은 사진을 혼자 중얼거리며 정리하고 있는 이름이의 모습을 폴라로이드로 또 찍었다. 아 진짜 박우진! 사진 정리하라니까 사진을 찍고 있어! 심술내는 모습도 너무 예뻐 이름이의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니 하얗던 얼굴이 토마토 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어떻게 이런 모습마저도 귀엽지?
"이 사진 걸어둔다?"
"응."
"어디가 좋으려나, 여기가... 어, 어!"
"야!"
사진을 붙이려 의자를 끌고 벽에 줄을 걸고 있는 이름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의자 위에 까치발을 들고 위태하게 서 있는 모습에 다가가려 하는데 순간 중심을 잃고 의자 아래로 넘어지는 이름에 얼른 달려가 머리를 손으로 받쳤다.
"아야..., 괜찮아 너? 야 피!"
"너는, 괜찮아? 다친데 없어? 안 아파?"
"난 괜찮은데..., 우진이 너 요즘 너무 많이 다치는거 아니야?"
이름이의 머리를 받쳐주다가 선반 모서리에 손등을 긁혔는지 피가 맺혀 흐르고 있었다. 그 말은 즉슨, 내가 이름이의 머리를 받치지 않았다면 이름이가 다쳤을거란 얘기다. 이름이의 말대로 요즘들어 계속 이름이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많았다. 그 일들을 전부 내가 막거나, 오늘처럼 내가 대신 다치거나. 이름이의 기일이 다 돼 갈 수록 점점 잦은 횟수와 점점 위험해지는 상황에 밖을 나가도 불안했다. 저번엔 설거지를 하다 손을 베이질 않나, 어젠 우리가 있던 건물에 화재 사고가 일어났었다. 제발요, 제발... 조금만 더 있게 해주세요...
***
"나가자아, 응?"
"안 돼. 오늘은 진짜 안 돼."
"아 왜! 그런게 어딨어."
",,,오늘은 진짜 안 돼. 이름아, 응?"
입이 삐죽나와 소파에 한껏 삐진 티를 내고 있는 이름을 바라보다 달력을 바라봤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이름이의 기일. 오늘은 절대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뭐가 그렇게 서운한지 울상한 표정을 한 이름에 마음이 흔들렸다. 아, 안되는데, 나가면 안 되는데...
"이름아, 내 봐바."
"싫어. 너 같이 안나가주면 나 혼자 나갈거야!'
"야! 김이름!"
혼자 나가겠다며 소파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이름이의 뒤를 급하게 쫓아 붙잡았다. 나가줄게, 나가준다고, 혼자는 절대 안된다고 가시나야. 내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맑게 웃으며 신발을 신는 이름에 어쩔 수 없이 나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한데 진짜... 동네 골목이 좁아 다행히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골목이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생각만해도 불안했다. 날이 좋아서 신난건지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계단을 내려가는 이름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다 뒤 따라 내려갔다.
"니 한눈팔지 말고 내 옆에 딱 붙어 있어라."
"참나 내가 무슨 어린 애 인줄 알아. 어? 저기 아이스크림!"
어린 애 맞네 무슨. 아이스크림 집을 발견하고 뛰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정신이 들어 얼른 이름을 뒤따라 갔다. 얼른 들어가야지 마음이 영 불편해서야 이거 원.
"파인트 사서 집으로 들어갈까? 어때, 좋지."
"파인트로 되겠냐, 쿼터 사이즈로 하나 주세요."
"오, 박우진이. 나 밖에 강아지랑 놀고 있을게."
내가 아이스크림을 담는 동안 강아지와 놀고 있겠다며 밖으로 나간 이름을 불안한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며 쳐다봤다. 뭐 잠깐인데 괜찮겠지... 마음을 놓고 이름이 좋아하는 맛으로만 골라 담아 나오려는데 인형이 보이길래 직원분께 여쭤봤다. 아이스크림 케이크을 사면 증정해준다는 말에 냉큼 케이크까지 사 양 손에 인형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사를 건넨 뒤 밖으로 나왔다. 근데, 얜 어디 가 있는거야.
"야, 멍멍아 거기로 가면 안 돼! 거기 차도란 말이야!"
"....?"
"거기로 가면 안된다니까, 거참. 갑자기 목줄은 왜 풀려서..."
"...김이름!"
밖으로 나오니 아까까지만 해도 쭈구려 앉아 강아지와 놀고 있었던 이름도 없을 뿐더러 같이 있던 강아지 까지 어디갔는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코너를 돌아 살펴보니 강아지가 차도로 뛰어간건지 강아지를 잡으러 뛰는 이름이었다. 난 또 큰일이라도... 잠깐만, 차도... 김이름! 불안한 마음에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다 내려놓고 이름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건지 강아지를 안아 걸어오는 이름에 안심을 하고 있을까 잠시후 큰 굉음과 함께 이름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제발, 아닐거야. 살아 있을거야. 그러니까 제발... 살면서 이렇게 뛰어본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빨리 뛰어 도로로 나왔다. 주변 상가 사람들이 큰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는지 차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었고 수군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제발...
"김이름!"
속으로 몇 번 씩 기도를 하며 사람들을 뚫고 지나온 가운데엔 낑낑 거리고 있는 강아지와 그 옆에서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이름이가 있었다. 혼자 두는게 아니었는데, 짧은 시간이더라도 같이 있었어야 됐는데. 내가 바보야, 또 내가... 또 다시 한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좌절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소리만 지르며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려달라고.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고.
"나와주세요! 구급대원 입니다!'
"좀 비켜주세요!"
"이제 가야 될 시간이 됐구나."
***
"......"
"......"
온 배경이 하얀 공간에서 중년의 남성과 이름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가 차를 다 마실 때 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찻잔을 내려놓자 중년 남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간만에 다녀온 이승은 어떠하였느냐."
"그냥 뭐..., 똑같았어요."
"......"
"제 소원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이승도 다녀오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기억도 많이 남기고 왔네요. 이젠 후회 안하겠죠?"
"...... 왜 괜찮은 척 웃고 있는 것이냐."
"저 되게 괜찮은데요? 그럼요. 되게...."
결국 울음을 터뜨린 이름이 고개를 숙이고 소매를 다 적실 듯이 울어댔다. 결국엔 이렇게 될 운명인걸 알았음에도 더 살고 싶었다. 더 살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더 살고 싶었고, 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일주일 간 매일 같이 기도했다. 내게 다시 2주의 시간을 달라고. 더는 바라지 않겠다고, 그저 내 사랑하는 사람만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던 중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신을 만났다. 매일 같이 울며 점점 흐릿해져가는 기억에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거짓말 같이 내 앞에 무언가 나타났고 그는 자신을 신이라 소개했다. 날 지켜 보고 있었다며 내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3주의 시간을 거슬러 내가 죽기 2주 전으로 돌아왔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진이도 날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매일 같이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울음에 귀를 기울여 준거라고.
"하..."
나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예정되어 있지 않은 불의의 사고였다. 자동차 제어기기가 망가져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나에게 그대로 들이 받았고 나는 그대로 날아 추락했다. 다시 돌아온 이승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우진이를 찾아간 일이다. 아무렇지 않게, 최대한 모른다는 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본 우진이는 한동안 멀뚱히 서 있다 상황 파악이 됐는지 날 끌어안고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엉엉 목놓아 울었고 나는 무슨 일이냐며 태연하게 우는 그를 안아줬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함께한 추억이 늘어나고 그럴 수록 더 떨어지기 싫었다.
"나가자아, 응?"
약속했던 2주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우진이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진짜 떨어지기 싫은데, 이렇게 눈 깜빡이는 순간에도 보고 싶은데 널 어떻게 두고 다시 가 우진아.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우진이에게 떼를 쓰며 밖에 나가자고 했다. 우진이 역시 오늘의 불길한 예감을 아는지 절대 안된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속의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혼자 나가겠다며 떼를 쓰고 나가려 하자 우진이가 급하게 따라 잡으며 알겠다고, 같이 나가자고 했다. 그럼 난 또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웃으며 기쁜 척을 했다. 나도 나가기 싫어 우진아...
일부로 우진이를 혼자 있게 만들려고 아이스크림을 사자고 했다. 난 그동안 밖에 있는 강아지와 같이 놀고 있겠다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강아지의 목줄이 끊어져 강아지는 멀리 도망갔고 나는 그 강아지를 어쩔 수 없이 쫓아가야만 했다. 저 멀리 나를 발견한 우진이가 내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엔진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우진아, 나 너무 무서워. 널 두고 내가 어떻게 혼자 가?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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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이 있을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