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집엔 감자 없지?"
"...고구마 있는데."
"그,그럼 느그 집엔 김종현 없지?"
"느그 집에도 강너랑없잖아."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그와 나눈 첫 대화다. 초등학생때냐고? 아니, 고등학생때다. 순수한 시골소년. 아마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래, 여기는 감자밭을 일구는 김종현이 있는 강원도 강릉이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던 나를 부모님이 불렀다. 그리고 부모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뭐? 나 잘 못 들은 것 같은데."
"우리 귀농한다."
"에- 술 마셨지? 응?"
"강릉 어때? 너 고구마 좋아하니까 고구마 농사 지으려고 하는데."
"...아빠. 이건 헐 진짜 대박 리얼 정말로 아닌 것 같아."
"좋다고? 알았어."
"오, 주여..."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강릉으로 오게 되었다. 처음 강릉으로 온 날, 나는 묘한 소년을 보았다. 옆 집 대문에 몸을 숨기고 자꾸만 우리 집을 기웃기웃 거리기에 처음에는 도둑인가 싶었다. 아무리봐도 내 또래 같은데..."야. 너 뭐 해? 뭐 할 말 있어?"
"안,니야!"
내 물음에 그대로 쪼르르 옆 집으로 도망치듯 가버린 소년에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뒷 목만 긁적였다. 뭐가 아니라는 거지. 아무튼 그 날은 그 소년을 생각할 틈도 없이 짐 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다음 날에는 아빠가 기어코 고구마 모종을 사와 심기 시작했다. 와아... 고구마 원없이 먹겠다. 며칠 뒤, 전학수속을 마치고 나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새로운 교복이 어쩐지 어색했고, 묘했다. 좋은 일만 있었으면.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가자 모든 학생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아... 이러면 괜히 또 부담스러운데.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마쳤다. 안,녕... 나는 서울에서 전학 온 강너랑 이라고 해. 잘 부탁해... 응... 자기소개가 끝나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어디에 앉힐지 고민하고 계셨다. 나도 고개를 들어 반 아이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쩐지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어, 쟤는... 그런데 그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두 손을 꼬옥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괜시리 웃음이 났다."너랑이는 종현이 옆에 앉자."
종현...? 선생님의 손 끝을 따라가자 나는 그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아 쟤 이름이 종현이구나. 떨리는 발걸음으로 종현의 옆에 섰다. 손을 내밀며 인사하자 종현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왔다. 안녕. 저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집에 갈 때까지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종현이가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떡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나를 반겼다."너랑아, 옆 집에 떡 좀 가져다 드리고 와, 떡이 너무 잘 됐다."
"응? 알았어."
나는 대충 가방만 벗어둔 채 떡을 집어들고 옆 집으로 향했다. 옆 집이면 종현이 집일텐데, 집에 왔으려나. 아까 남자애들끼리 피씨방에 간다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는데. 옆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곧 이어 인상 좋아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나오셨다."안녕하세요! 옆 집에 이사왔는데 떡 좀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아이고, 고마워서 어쩌나. 잠깐만 있어봐요. 뭐 줄 게 있나... 얘! 종현아!"
"왜요 엄마?"
종현은 방 안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보고 굳은 듯 보였다. 뭐 못 볼 거 봤나... 사람 민망하게 왜 저러고 서 있지. 나는 그런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종현아 안녕?"
내 인사에 종현은 도망치듯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그의 행동에 어머니 역시 당황한 듯 보였다. 곧이어 어머니도 종현을 따라 들어가고 나는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말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종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서 나타났다. 품에는 바구리를 안고서."느그 집엔 감자 없지?"
...? 감자? 그제서야 종현이 안고있는 바구니에 한가득 있는 감자를 보았다. 자랑하려는 건가. 우리 집에는 고구마 있는데."...고구마 있는데."
내 말에 종현은 당황한 듯 어버버 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에서 다시 나온 말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그, 그럼 느그 집엔 김종현 없지?"
우리 집에 김종현이 있으면 안 되는거 아닌가?"느그 집에도 강너랑없잖아."
내 말이 끝나자 김종현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내 품에 바구리를 안겨주고 떠났다. 아, 한 마디 말도 남기고서."...가, 강릉 감자가 맛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