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탈출할까?
고작 그 한 마디에 뒤숭숭한 마음이 싫었다, 라고 하지만 머리는 어느 정도 반응을 하고 있었다. 꼬물거리던 성규의 손이 잊혀지질 않는다. 지금 제 옆에 누워 미동 없이 잠든 성규를 보며 우현은 괜히 눈을 찡긋거렸다. 탈출에 대해 한 번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필히 거짓이었다. 여기에 들어온 순간에도 민간인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던 우현은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이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 뿐이었다. 차가운 복도를 바쁘게 걸어다니는 교도관의 발걸음이 귓가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방, 차가운 사람들. 그 속에서 온전히 사랑을 피워내기엔 어쩌면 무리였지만, 둘은 나름대로 탄탄한 결실을 맺어가는 중이었다. 무엇이든 몰래 하는 것은 매력 있다.
그것이 사랑이든, 사랑을 위한 살인이든.
대신 매력이 있는만큼 후폭풍도 거세다. 걸리면 끝장이라는 소리다. 이미 살인에 대한 죄를 선고 받아 그만큼의 형량을 견디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제발로 걸어들어온 성규를 만났다. 목적의 일부는 달성. 이런 동거를 꿈꾼 것이 아니다. 그 빌어먹을 김명수 대신에, 따뜻한 집에서 사랑하길 소망했던 것이었다. 제 둔기에 맞아죽은 김명수의 감지못한 눈이 아른거렸다. 이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 죄, 그래서 김성규를 가질 수만 있다면 다 좋았으니까……. 그래서 지금 제 옆에 있는 성규를 바라보는 마음은 벅차다. 벅차서, 이 느른한 기분이라면 한 명쯤은 더 죽여도 좋을 것 같다.
우리 탈출할까?
……
나가고 싶어. 우현아.
제 애인이었던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손을 꼭 잡고, 이 곳을 탈출하고 싶다던 성규의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된다. 탈출하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게도 성규를 제외하곤 이 방엔 아무도 없었으니까. 뜻이 같은 성규와 계획을 잘 짜서 탈출해, 그 잠깐동안의 민간인 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럼 사형을 당해도 좋을텐데ㅡ 아, 홀로 남겨질 성규……. 어차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소원을 빌어본다. 숟가락으로 벽을 파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 당장의 욕망을 채우기엔 너무나 느릿한 방법일 뿐이었다. 딱 하나 생각해둔 것이 있다면…….
피는 보기 싫은데. 그치, 성규야?
……
너는 무서워하잖아.
……
그래도 미안해. 여기서 너 나가게 해줄게.
***
기상을 알리는 기분 나쁜 음악이 퍼져오면 수감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맨손체조를 한다. 성규도 예외는 아니다. 늘 그렇듯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우현에게 웃음을 날려주곤, 괜히 으쓱한 척 체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어쩐지 우현이 없다. 사람의 부재는 무섭다. 피범벅이 된 명수를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선한 얼굴을 한 우현이 명수를 죽였다는 것이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제발로 들어오게 된 이 교도소는 무섭다. 성규는 급히 문을 두드렸다.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달려온 교도관이 성규의 얼굴에 무심하다.
"우, 우현이가 없어요."
"병원에 실려갔어."
"……네? 뭐라구요?"
버석거리는 얼굴에는 버짐이라도 피어오를 듯, 건조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을 어쩜 그리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까. 작은 구멍으로 손을 뻗어 교도관의 손을 꼭 잡았다. 손이 건조하다. 건조하다……. 거친 손을 밀어낸 교도관은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살시도를 했더라고."
"……"
"화장실 거울을 깨버렸어. 그 미친 놈이."
"우, 우현이가요?"
"죄 없는 사람도 죽이더니 이젠 자기까지 따라죽으려고 그러나."
입꼬리를 돌돌 만 교도관은 그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방 옆에 조그맣게 딸린 화장실로 천천히 걸어간 성규의 얼굴을 이미 사색이었다. 역시나, 둔탁한 쇠에서 비릿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명수에게 풍기던 냄새, 건조하고 탁탁한 그 냄새. 피비린내에 성규가 털썩 주저앉았다. 화장실 안은 유리 파편들로 가득했다. 벽 한가운데에 붙어있던 거울에 직접 몸을 부딪힌 것처럼, 거울은 흔적도 없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바닥에 놓여있었다. 차가운 한 조각, 우현아. 너는 이걸로 왜 그런 생각을 했던거니.
……뻔히 내가 따라들어온 걸 알면서도.
+ 맛보기입니다. 아직 제목이 없다는게 함정...누가 제목 좀 건네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