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등신아. 내가 그러길래 잘 때 이불 꼭 덮고 자라고 했지?”
“아, 뭐! 내가 안 덮고 싶어서 안 덮었냐. 잠버릇이 이런데 뭐 어쩌라고!”
“표혜미님, 들어오세요.”
오늘은 내가 그렇게 쳐말해줘도 쳐안듣는 표혜미가 기어이 감기까지 걸려서 병원에 왔다. 꿈에서 무슨 태권도를 배우나 잘 때마다 이불을 뻥뻥 차내서 찬바람 다 맞고 며칠 전에는 코만 훌쩍거리길래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 아침 결국 전화로 감기 걸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디가 아프세요?”
“감기 걸려서요.”
“에휴- 그러길래 옷이라도 따뜻하게 입고 자든가. 쯧쯧···.”
옆에서 조용히 몇 마디 했을 뿐인데 표혜미가 날 째려보면서 입모양으로 궁시렁대지 말라며 협박했다. 흥이다. 뭐.
“열은 있으세요?”
“아니요. 별로···.”
“네, 열났어요. 37도 조금 넘게? 그 정도요.”
“콧물은요?”
“그렇게 많이는 안 났···.”
“감기 걸리기 한 3일전부터 좀 훌쩍거리더라고요.”
“아···. 목은 안 아프시고요?”
“네, 별로 뭐···.”
“며칠 동안 물 마실 때마다 목 아프다고 했어요.”
“네, 뭐 그렇게 심한 감기는 아니시고요. 그냥 주사 한 대 맞으시고 3일치 약 처방해드릴게요. 그 후로도 계속 아프시면 한 번 더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야, 빨리 일어나. 가자. 오늘은 표혜미 주사 맞는 날~”
의사선생님이 주사 맞고 가라는 말을 하시자마자 표혜미는 벌써 죽을상이 됐다. 표혜미한테 들은 바로는 어릴 때부터 주사 맞는 게 싫어서 계속 안 아픈 척했다가 결국 입원까지 했다는 뭐 그런 얘기가 있는데 아무튼 그 정도로 주사 맞는 걸 싫어한다. 표혜미는. 그래서 난 지금 엄청 신난다. 내가 옆에서 싱글벙글 입꼬리 올리며 웃는 걸 보더니 표혜미가 진짜 엄청 세게 어깨를 팍 쳤다.
“아!!”
“재밌냐?”
“아야···. 이러다 내가 다시 의사선생님한테 가야겠네.”
“주사를 싫어하는 애인이 주사를 맞는다는데 웃겨?"
“왜 그래애- 나 원래 걱정하면 입꼬리 올라가잖아. 몰랐나? 몰랐구나, 우리 혜미가.”
“에휴···. 하···. 나 주사 맞고 올게···.”
“다녀와. 아, 내가 손잡아줄까? 주사 맞을 때?”
“그냥 제발 조용히 포코팡이나 쳐하고 있어줘.”
그렇게 표혜미는 엄청 비장한 눈빛으로 주사를 맞으러 들어갔다. 포코팡을 다섯 판 쯤 하고 있을 때 저기 표혜미가 엉덩이를 문질문질 하면서 걸어왔다. 주사 맞으면서 얼마나 손을 꽉 쥐었는지 문지르는 손이 시뻘겋다.
“우리 혜미 주사 잘 맞았나?”
하며 토닥토닥해주니 무슨 철천지원수 보듯이 째려본다. 아, 철천지원수 맞나.
“만지지마.”
“많이 아팠구나? 어휴, 간호사언니도 참 나쁘지. 혜미는 주사 그런 거 무서워하는데. 그죠?”
“야, 나 엉덩이에 감각이 안 느껴져···. 이러다 영원히 엉덩이에 감각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주사 하나 맞고 온 세상 걱정 다 끌어 모은 표혜미가 귀여워서 그대로 고개를 돌려 뽀뽀를 해버렸다. 표혜미는 사람 많은데 돌았냐며 팔짱 낀 팔을 흔들며 퍽퍽 친다. 사람 많은데서 뽀뽀 한 거치곤 좀 아팠지만 귀여우니까 뭐.
“원래 뽀뽀는 갑자기 해야 되는 거야.”
“무슨 등신같은 소리야.”
"그래. 니 애인 등신이다. 아, 그리고 주사 잘못 맞으면 엉덩이 감각이 없어진다더라."
"응? 뻥치지마···. 말 같지도 않은 말하네···. 하하···."
"진짜라니까? 내가 저번에 기사 봤어."
"진짜···?"
“그렇다니까. 그니까 이따 집에 가서 확인해볼까?”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