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D
“그래서 말이야. 미안하다고.”
하교 후 박우진의 집으로 찾아간 나였다. 몇 년 만에 따로 하교한건지, 집으로 가려고 박우진을 찾으니 이미 자리엔 가방이 없어져 있었다. 진짜 속이 저렇게 좁아서 어디 쓰련지. 박우진 때문에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했다.
엘리베이터 숫자 앞에서 한참 고민을 한 나였다. 12층과 13층. 집으로 갈 것인지 박우진네 집으로 갈 것인지. 평소라면 당연히 집으로 가야했겠지만 오늘은 뭔가 우리 집으로 갈 기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박우진 때문이지. 집은 학교에서부터 계속 가고 싶었다.- 13이 쓰여져 있는 버튼을 누르자 빨간 불이 들어왔고, 곧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또 다시 문 앞에서 고민을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에 벨을 누르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괜히 나인 걸 말하면 문을 안 열어줄 것 같아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자 현관문이 덜컹 열리더니 박우진의 당황한 얼굴이 보였다. 발을 현관문 사이에 끼우고는 꾸역꾸역 몸을 집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속 좁은 박우진은 나랑 얼굴도 안 볼 것 같았으니까.
“김여주 니 왜 왔는데.”
“몰라서 묻는거야, 알면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야?”
“할 말 없으면 집에 가라, 지금 내 바쁘다.”
그런 말을 하는 박우진의 뒤에는 게임이 켜져있었고, 컴퓨터가 있는 곳을 쳐다보자 몸으로 가리려고 계속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니,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내가 괜히 심술부려서.”
“...”
“이제부터는 안 그럴게,”
“그래서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뭔데, 말해줘.”
“니한테 화난 거 아니다. 내한테 그런거지. 좋아한다는 말도 못하는 등신은 난데.”
내 화 안 났다. 걱정하지말고 집이나 가라.”
뭐라 말했는데, 중간 내용을 못 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라 믿고 싶었다. 내가 들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진짜지? 내일 아침에 등교 같이 해야 한다?”
괜히 더 해맑게 내일 등교 같이하자는 말을 하고는 뒤에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나왔다. 그런 내 뒷모습에다 대고 박우진이 뭐라 했지만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 내 니네 집 앞에서 기다릴게.”
숙제를 끝내니 그 숙제가 2배로 더 늘어난 것만 같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 때까지 박우진이 잘 해준 건 뭔가 싶기도 하고, 영민이랑 있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 것도 그렇고, 박우진이 나를 좋아하다는 가정을 세운다면 다 들어맞는 일이었다.
.
하루가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뜨니 등교할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박우진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눈 뜨기가 싫었다. 이런 어색한 사이 정말 싫은데. 한 번도 내가 박우진을 좋아하거나 박우진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눈을 뜨니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밥을 먹고, 씻고, 옷까지 갈아입으니 나갈 시간이 다 되었다. 여기서 좀만 더 늦장을 부리면 백퍼 지각이니 몸을 집 밖으로 옮겼다. 문을 여니 벽에 기대 폰을 보고 있는 박우진이 보였다. 문소리가 나서인지 문쪽을 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곧바로 시선을 바닥으로 옮기긴 했지만 괜시리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 태어나서부터 친구였던 박우진한테 이런 감정을 느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혼자서 김칫국 마시는 거라면 정말 부끄러울테니 일단은 모르는 척 하려 하루종일 애썼다. 등교시간에도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박우진을 향해 얘기했고, 얘기하다 웃긴 말이 나오면 오버해서 막 웃었다.-내가 생각해도 레알 에바였다.-
“야 김여주, 빨리 좀 와라.”
“어. 갈게...”
“아 진짜 그렇게 걸으니까 맨날 지각이다 아이가.”
하도 느리게 걷는 내가 답답했는지 벌써 저만치 걸어간 박우진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손목을 잡아끌었다. 얘는 이러니까 맨날 지각이지. 이렇게 꿍시렁 꿍시렁 대면서도 발걸음을 좀 늦춰서 같이 걸어줬다. 이럴 때 보면 정말 귀엽긴 한데, 표정이랑 말투가 저래서 그렇지.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D
본래 여자의 마음은 갈대가 하지 않았는가. 박우진이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고 보니, 뭔가 더 달라보였다. 체육시간에 뛰어다니는 것도, 툴툴대면서도 나한테 나 맞춰주는 것도. 하는 행동은 평소랑 다를 바 없는데, 내 마음만 달라져서는 괜히 신경쓰였다.
“어, 여주야."
교실로 가니 영민이의 인사가 들렸다.
“쟤는 뭔 복을 탔길래 쟤네 둘한테 쌓여있냐.”
“그니까, 예쁜 것도 아닌데. 미친 거 아니냐?”
뒤에서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우진과 다닐 때마다 자주 듣는 소리이긴 했지만 전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차라리 대놓고 욕을 하면 맞받아치기라도 할텐데. 요즈음 박우진뿐만 아니라 영민이까지 친해졌더니 더 심해진 것 같다.
“야, 뭐라...”
박우진의 귀에도 들렸는지 표정이 안 좋아졌다. 자칫하면 튀어나갈 것만 같은 박우진에 보이는 손목을 그냥 덥썩 잡았다. 내 손 때문이었을까 박우진이 하던 말을 멈추고는 내 얼굴을 살폈다. 좋지 못한 표정때문이었을까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앉아 있어, 이거 듣고 있고."
이어폰과 핸드폰을 건네줬다. 이어폰을 내 귀에 넣자 직접 노래를 골라주고는 볼륨을 크게 높였다. 그리곤 꾹 눌러 엎드리게 만들었다. 그런 박우진 덕분에 밖의 소리는 안 들렸고, 그나마 편하게 엎드려 있을 수 있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렇게 화난 박우진의 모습은 애들이 처음 봤다고 했다. 다행히 영민이가 그런 박우진을 말려줘서 그 쯤에서 끝났지 아니었다면 정말 우리 반에서 큰 일 날 뻔 했다고 한다.
그런 박우진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루종일 내 주위에서 신경쓰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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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오래간만입니다. 거의 일주일 만이라 그런지 줄 간격 수정하고, 사진 넣다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네요. 사실 오늘도 못 올 뻔 했는데 겨우겨우 우진이와 영민이와의 로맨스가 보고싶어 왔습니다. 이번 달까지는 바빠서 다음 편은 주말이나 다음 주 쯤에 올라올 것 같아요. 요즘 바쁜 틈에 남는 시간엔 비지엠을 찾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현생 부수고 싶네요..
남주가 누굴지 대충 감이 오셨나요? 마지막 화가 나오면 말머리를 '워너원/박우진' 혹은 '브랜뉴뮤직/임영민' 으로 바꿀까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지금 말머리가 너무 길어서 보기 불편해서요 ㅠㅇㅠ 그 의견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부분에 대해선 조금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의 여주가 고생이 많습니다. 우진이한테 치이고 영민이한테 치이고, 다른 여자애들한테 욕먹고. 이리저리 바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ㅋㅋㅋㅋ.... (사실 저도 너무 부럽습니다.) 우진이 요즘 너무 직진이라 가끔 쓰다보면 제 예상과 다르게 되곤 합니다. 영민이는 여전히 멜로드라마를 찍고 있구요.
어느새 중반 쯤? 을 달리고 있네요. 원래는 4-5편 안에서 끝내려 했지만 생각보다 한 화의 양도 적고, 세부적인 내용이 조금 있다보니 이제 반이네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 |
BGM |
백아연 - 사랑인 듯 아닌 듯 (보보경심 려 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