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죠?"
운명처럼 널 사랑해
w. 깡총아토끼해봐
01 화 ,
" 가는 중이야. 버스탔어 지금. 어어 진짜 탔다니까. 아 소리 지르지말고. 응 그래 자기야. 내 맘 알지? 미안해 곧 갈게. 사랑해. 응. " 화난 여자 친구를 달래주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남자의 손길은 분주했다. 대충 구겨 신은 신발을 똑바로 고쳐신고는 셔츠남방을 걸쳐 입으며 전화를 끊는데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기 바빴다. 촬영장으로 쓸 만한 곳이 있나 둘러보는 그냥 직업병 같은거였다. 아, 물론 항상 보는 그 도시적인 느낌이 그득한 동네는 똑같았지만. ... 어? 버스 정류장에 거의 다다른 남자의 눈이 화장품 가게에 붙혀진 전단지 속의 여배우를 지나 사진관에 멈췄다. 뭐야 저거. 못보던 사진관이 하루 새에 아주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선 건 둘 째 문제라 치고, 사진관에 홍보용으로 덩그라니 붙어있는 사진 속 남자는 바로 저 자신이 아닌가. 심지어 저가 아주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현재 자신의 여자 친구보다 분명히, 어, ㅡ본인이 말하길 저의 취향과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ㅡ 예뻤다. 만약 남자의 직업이 예능국 피디가 아니라 연예인을 발굴하는 엔터 사장이었다면 당장 찾아내서 캐스팅하고 싶을 정도쯤 되는. Arriving Soon , 버스 시간 안내 기계가 잠시 후 도착을 알리자 그제야 후다닥 버스에 올라타긴 하는데 눈은 거기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건가. 저는 생전 찍은 기억도 없는 사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관에 붙어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어릴 때 사진이라면 잊어버린 기억이다 부정이라도 해보지만 지금보다 더 늙었다면 늙었지 저건 어떻게 찍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너 그 때 버스 탄거 아니지? 전화하고도 30분이 넘었거든." "" "야, 다니엘." "ㅇ, 어?" "너 무슨 일 있어? 왜 정신을 못차려 아까부터." "아니, 아무 일 없는데? 그냥, 어제 촬영 때문에 밤 새서 그런가 정신이 좀 없네." 뾰루퉁한 애인의 표정은 눈에 인상깊게 남겨지지 않는지 그 말을 뒤로 다시 멍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다니엘에 어느새 사소한 삐짐은 화남으로 둔갑해 다니엘을 쏘아붙힌다. 됐어, 그럼 가서 자. 나도 어제 야근해서 피곤해.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여자 친구를 따라 시선을 재빠르게 옮긴 다니엘은 특유의 아양스러운 웃음으로 그녀를 잡았다. "자기야, 미안해. 오늘은 진짜 너무 피곤해서 그래. 집 데려다줄게." "피곤하면 그냥 빨리 집 들어가서 잠이나 자. 너 이러는거 한두번도 아니고 바쁜 남자친구 둔 내가 또 이해해야지." "아, 왜 그래 또." "뭐가 또야?" "유림아," "그런 표정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말라고. 난 뭐 네가 그렇게 웃으면 다 참고 넘어가줘야 돼? 네 그 덤덤하고 안일한 태도, 넌 그게 제일 문제야." 여자가 떠나간 자리에 홀로 남은 다니엘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휴대폰으로 찍어놓은 그 사진을 단 하루도 빠지지않고 봤고, 한시도 잊은 적 없었다. 애인의 기분을 풀어줄 정신이 없었으니 그녀와의 관계는 진전이 없었고, 물론 엉켜버린 머릿속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며칠 째, 그 사진관은 영업을 하지 않았고 사진은 삐뚤어지지도 않은 채 똑같은 자리에서 다니엘을 비웃고 있었다. - "561번, 씨에잇 소속 김여주 입니다. 포지션은 보컬이지만 춤과 랩도 자신 있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백 명으로 시작해 고작 열 명을 뽑아 올리는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지원자 수는 무려 팔백을 넘어섰다.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백 명의 연습생을 뽑기 위한 예선 1차 오디션은 하루를 꼬박 새우고 이틀째 지속되고 있었다. 잠이 많은게 유일한 흠이다 라고 할 정도로 유독 잠이 많은 다니엘은 이미 반쯤 졸고 있는 듯 했다. " 난 개인적으로 이 연습생 오늘 본 연습생 중에 제일 괜찮은 것 같은데, 피디님은 어때요? " 561번의 춤과 노래가 끝나자 왕작가가 다니엘에게 시선을 던지며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대답은 금방 돌아오지 않았으나 남의 말을 한 번에 듣지 못하는 일이야 최근의 다니엘에게 다반사였으니 질문을 던진 왕작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메인 피디 자리를 꿰찬 유능한 피디, 오직 그 타이틀만이 그들의 인내심을 아주 조금 더 높아지게 했다. 피디님, 하고 툭 치는 다른 작가의 손길에 마른 세수를 한 번 하고 고개를 든 다니엘의 첫 마디는 대답이 아닌 탄성이었다. 헐. 헐? 헐! 딱 이 세마디. "잠깐만, 잠깐만 여주 씨." 다니엘의 부름에 뒤돌아본 여자의 외모는 다니엘이 하루도 빠지지않고 봐오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쏙 빼닮아있었다. 자연이라는 걸 증명하듯 진하진 않지만 얇은 쌍커풀이 속쌍커풀처럼 자리 잡은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하며, 매끄럽게 내려오다가 끝이 동그랗게 떨어지는 콧대, 입꼬리가 예쁘게 말려올라간 선한 입매, 날렵하진 않아도 군살 하나 없는 동그란 얼굴형까지 며칠을 고민하며 상상해온 것이 무색하게 뭐 하나 꼬투리를 잡을 것도 없이 그 여자였다. 네? 하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그 얼굴에 다니엘은 헛웃음을 쳤다. "그, 난 피디고 그 쪽은 참가자니까 당연히 작업 멘트는 아닌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