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feat. 정세운
일기예보엔 온통 구름과 비 소식으로 가득했다. 창 밖으로 본 하늘은 그치게 할 마음도 없는지 더욱더 거세게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나는 날이었다. 멍하니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몇 분 동안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여전히 켜져 있는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정세운의 절친이자 정세운과 나의 연을 이어줬던 김재환이었다. 뭐야, 왜 전화한 거지.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깊이 고민을 하다 아직도 끊기지않은 전화를 받았다. 저가 먼저 여보세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늦게 받았다며 한껏 승질을 내는 네 목소리에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냥 끊지 안 끊은게 누군데 승질이야..괜스레 짜증이나 '그냥 있어, 왜 전화했는데'하며 조금은 딱딱한 제 말투에 궁시렁거리다 이내 아-하며 그 입에서 거론하지 않았음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정세운의 소식이 전해져온다. [걔 엄청 아파. 자취방에서 안나오고 계속 처박혀있어. 부모님도 지방에 계신데 혼자 약도 안 챙겨 먹고 밥도 그렇고, 내내 그러고 있다고.] 네가 아프다는 소식에 조금은 움찔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3년 연애의 종지부를 일주일 전에 찍었는데 이제 아무런 사이도 아닌 사이가 돼버렸는데 어떻게, 무슨 낯짝으로 그곳에 찾아가 걱정을 해. "나 못 가, 무슨 낯짝으로 거길 가." [니가 그럴줄 알고 집 앞으로 가고 있으니까 딱 준비하고 기다려, 같이 가. 너만 찾는다고, 걔가. 너한텐 3년이 고작 이 것밖에 안되냐.] 고작, 고작이라고 하기엔 3년 동안 오로지 제 옆엔 정세운이 차지하고 있었고 세운과 했던 많은 추억들은 결코 헛된 게 아니기에. 하지만 이별을 고한 사람은 나였고, 세운은 그 지독한 이별을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다정했고 한없이 여렸기 때문에. 네가 찾아온다는 말에 한숨을 푹 쉬며 알겠다 대답을 한 후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났을까 초인종이 눌리는 소리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동시에 요란하게 들려 인상을 찌푸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빨리 안 나오나며 짜증 섞인 목소리에 네 목울대를 손날로 한 번 탁-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운동화를 신고 네 앞으로 섰다. "시끄러워, 좀. 여기 나만 사는 거 아닌데 뭔 민폐야" 네네-하며 제 등을 떠미는 네 손길에 저지도 못한채 그대로 밖을 따라 나섰다. 타고 온 택시가 그대로 집 앞에 서있었고 서둘러 택시를 타 재환은 세운의 자취방 주소를 불렀다. 가는 길 내내 재환도 나도 그 누구 하나 먼저 세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꺼내지 않은 것일 수도. 내가 과연 세운을 걱정할 자격이 있는가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이 아픈 걸까, 괜찮기는 한 걸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다 실타래가 꼬여버린듯 이리저리 엉키는 것 같았다. 택시의 와이퍼는 끝도 없이 쏟아지는 장맛비를 양옆으로 비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필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에, 하필 이렇게 그치지도 않을 장마에 아픈 네가 안쓰러웠다. 지금 이 날씨가, 이 쏟아지는 비가 네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염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다 시선을 정면에 두고 바라보자 비가 시야를 어느 정도 가렸지만 익숙한 곳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와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봤자 절대 안 된다고 할 게 뻔한 네 대답을 알기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먼저 내리라며 우산을 건네는 네 손짓에 쭈뼛쭈뼛 택시에서 내려 우산을 폈다. 조금만 더 먼 곳에서 내려주지. 조금만 더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해주지. 애꿎은 택시만 원망을 했다 자취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유난히 오늘따라 더욱더 많아 보였고, 걸음은 한없이 느렸다. 앞장서서 걸어 올라가는 재환의 다리를 잡아끌어내리고 싶었다. 그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한숨을 픽 쉬며 재환을 따라 올라갔다. 안 온 지 오래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공기마저 어색할 수가 있을까. 계단만 올라가면 바로 보이는 네 자취방 현관문 앞에 재환이 서있었고 그 옆에 서서 도어록만 바라봤다. "비밀번호 알지? 눌러, 나는 모르니까." 턱짓으로 도어락을 가르키는 네 행동에 팔을 느리게 뻗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하나씩, 하나씩 눌렀다. 띠리릭- 도어록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재환이 문고리를 잡아 문을 열고 저를 현관으로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거라 어버-거리며 재환을 바라보자 조금은 개구쟁이같은 얼굴로 웃으며 그 새끼가 문을 닫는 순간까지 나는 그저 가만히 신발장에 서있었다. 미친 새끼, 미친 새끼가 분명해. 일부러 같이 와놓고 나만 집어넣은 거지. 다시 문을 열고 나갈까 생각했지만 신발장 너머 들리는 네 거친 기침소리에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어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네가 곤히 자는 모습을 봤다. 상기되고 조금은 수척해진 얼굴에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짓눌렀다. 이럼 안되는 걸 알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바라봤다. 매고 온 에코백 안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에 흠칫 놀라 가방 안을 뒤지는데 언제 넣어놨는지 모르지만 누가봐도 김재환이 넣었다는 걸 알 수가 있는 약봉지가 들어있었다. 꾸깃-종이를 잡는 소리에 세운은 옅은 기침을 뱉으며 제 쪽으로 몸을 틀어 누웠다. 얼른 약만 협탁 위에 놓고 가야겠다. 조심조심 약봉지를 협탁 위에 올려놓고 걸터앉았던 엉덩이를 떼려는 찰나 제 손목을 잡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느낌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너무 놀라 잠깐 숨을 멈췄다. 뭐라고 말을 할까, 무슨 말을 해야 그럴 싸 해보일까.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저를 쳐다보는 네 눈빛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걸 접고는 입을 작게 열었다. 그리고 조금은 어색하고 쓴 웃음을 지으며 "안녕.." 하며 근 일주일간 못했던 인사를 건넸다."안녕" 그리고 너는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항상 제게 보여주던 미소를 지으며 환한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창 밖은 흐렸고, 장맛비가 한창이었다. 안녕하세요, 포뇨리입니다! 단순 정세운의 팬심으로 만든 단편인 장마입니다! 부족한 실력으로 끄적여봤어요..(*´∇`*) 많이들 봐주시면 좋겠구 부족한점이나 아쉬운 점 댓글로 남겨주세요..!(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