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아마 비가 내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났었기 때문이다. 사랑니와 비 냄새의 상관관계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날들이 때로는 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커지고 커지더니 이제는 형체를 다 들어내고 고통까지 주고있다. "왜 이제 오셨어요." 나는 아이처럼 입을 아 벌리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그저 민망함에 손가락만 꼼지락 거릴뿐. "아무래도 발치를 해야할 것 같은데, 예약을 잡고 다시 오셔야 겠어요." 사랑니라니. 이 나이먹고 사랑니라니. 학창시절 사랑니가 났다며 고통스러워하는 친구들을 보며 비웃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째서 나는 이제야 고통스러운것인가. 처음 사랑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때였다. 당시 짝지였던 재환이 퉁퉁부은 볼을 하고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물만두 같은 재환의 볼이 퉁퉁 부었다. 불어터진 만두같다고 생각했다. "재화나. 어제 17대 1로 싸웠어?" 내 물음에 재환은 헛웃음을 치며 내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툭 밀었다. "사랑니나서 뽑은거거든?" "사랑니?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누군데? 응? 응?" 촐싹거리며 묻는 나에 재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바보야. 사랑니는 그런 거 아니거든. 그 날 나는 집에가서 한참을 사랑니에 대해서 검색해봤던 것 같다. 17살에서 25살 사이에 나는 거구나. 그럼 25살까지 안 나면 안 나는건가? 나는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20대 중반의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내 사랑니이기에 나는 사랑니가 안 나는 줄만 알았다. "멍청이." "너는 꼭 말을 해도." "예전에 나 놀릴때는 언제고 성이름 꼴 좋다, 꼴 좋아." 술이나 한 잔 하자고 부른 재환은 사랑니가 났다는 내 말에 고등학생때의 나처럼 나를 놀려왔다. 사랑니가 난 자리가 살짝 욱씬거렸다. 나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진통제는 역시 소주지. "재화나 마셔마셔 먹고 죽어- 네 발로 기어가 네 발로 기어가-" "아... 성이름 진짜 미치겠네, 미치겠어. 내가 작작 마시랬지. 이 술주정뱅이가..." 한참을 부어라 마셔라 하며 술을 축냈을까. 취기때문인지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고 기분 마저 좋아졌다. 밖에는 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주잔에는 이슬이 맺혔고, 얼마나 마신건지 우리의 테이블엔 참이슬이 한 가득 놓여있었다. 재환은 술에 취한 나를 욕하면서도 나를 두고 가지 않는다. 나는 그걸 안다. 그래서 나는 재환과 술을 마시는게 좋다. "언제까지 마실거냐?" "개 될 때 까지." "너 이미 개거든? 멍멍 개 몰라? 모르냐?" "야옹." 개 아니야. 아직 고양이야. 내 말에 재환은 졌다는 듯 손을 저었다. "재화나. 나는 비 오는 게 좋아." "알아. 비 냄새 좋다고 말한게 벌써 몇 년 전이더라." "크- 역시 재환이. 다 알아. 착하다 착해 우쭈쭈." 재환은 그 뒤로 몇 번이나 식어버린 어묵탕을 다시 데웠고, 그걸 나한테 떠주기를 반복했다. 착한 녀석.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는 사람은 재환 혼자뿐이다. 심성이 착한건지. 아니면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없는 내가 불쌍해 보이는건지. 그 뒤로 소주를 몇 병을 더 비우고 나서야 우리 둘은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는 어느새 그친 후였고,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해서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때 그를 만났다. 비 냄새. 그에게서 강하게 풍겨오던 냄새였다. 어쩌면 비 향기라고 해야할까. 나는 본능적으로 그를 팔을 붙잡았고 그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 안녕하세욧. 처음 뵙겠읍니다... 소재는 바로 제가 사랑니가 났기 때문이죠^^* 사랑니 아프네유ㅜㅜ 재밌지는 않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암호닉 신청하실 독자분이 계시다면 언제든지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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