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버려진 아이였다. 그것은 과거형이므로 지금의 나에게는 속하지 않는 단어다. 내게 버려졌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 쓸모 또는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제 자리를 잃어 외딴 곳, 또는 익숙하지만 두려운 곳으로 내팽개쳐진다는 뜻으로 간주된다. 지금 제 자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 자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외부 또는 내부의 압박이 없으므로 나는 지금으로선, 버려지지 않았다. 나의 자리를 아저씨가 정해주었고, 또한 그 자리에 대한 책임 또는 권한을 내게 맡겼으며, 그 소중한 권한은 나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심어주었다. 나는 그랬다. 버려졌지만 다시 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나 뿐이다. 버려지고 구해지기까지의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고 볼 수 있지만, 나는 버려졌었다는 그 행위로 인해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도 없는 나이에서 나 자신을 보호해야함을 깨달았다. 아저씨는 신이지만,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술술 읽어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저씨가 항상 말하는 인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대로라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나다. 아저씨를 아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그 사실을 잘 알지 못할 테지만, 그것은 나의 사고에서 가장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역시도 나에 대해 잘 안다. 그가 내 마음을 읽지 않는 선에서.
이 말을 한 근본적인 목적은 내가 아주 철 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버려진 아이라서? 그건 말도 안 되는 논리다. 나는 논리를 싫어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아저씨에게서 길러졌기 때문에? 그건 이유에 포함되긴 하겠지만, 그것 또한 아니다. 사실 가장 큰 이유가 '이유가 없다' 이지만, 아저씨에게서 길러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유를 아주 안 가질 순 없었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 철 없는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더 철 없어 보이나? 좀 궁금하네.
나는 열 살때 살기를 느낀 적이 있다. 이건 말했었구나. 아무튼, 그것으로 인해 나는 정신적으로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충격을 받았었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던것인지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 끔찍하다, 내게는. 그 충격이 아마 첫번째 이유없음, 두번째 아저씨, 그리고 세번째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생각보다 그 충격의 비중은 작고도 와닿기로는 컸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얼마 전 빼고. 이건 나중에 말해도 되겠지. 그 살기라는 건, 나를 원한다면 당장 죽이고도 남을 기운이었기에 기가 강한 편이 아니던 나는 어린 나이도 이유에 있겠지만 어쨌든 그 자리에서 울었다. 내가 아저씨에게서 길러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살기를 느낄 이유도, 조건도 없었을 것이다. 조건은 아저씨 말대로지만, 이유는 그 누구에게도 좋은 뜻은 아니기에 굳이 언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다면, 그 살기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향한 느끼지 못할 살기였다. 그러니까, 그 살기를 내게 비춘 자는 내가 그것을 못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아닌가? 그건 알 필요가 없지만, 나는 아무튼 그렇게 해석하겠다.
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가 뭐래도 나다. 불변의 법칙이다. 살아가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그런 건 늦게 깨달아도 되는데, 빨리 알아서 좋은 건 지식밖에 없다. 아저씨도 준홍이도 내겐 중요한 사람들이지만, 아, 또 종업이도. 그들의 선이 나를 넘을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는 가능할까 모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는. 아마 그는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내 선을 아예 넘을 일은 없을것이다. 아마 걸치기까지는 그에게 허용될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능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사람에게는 첫인상이 중요하지만, 내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엔 첫인상이 없었다. 처음 본 게 아닌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또 어디서 본 것인지, 그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의 얼굴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물어본다면 그사람은 알까 모르겠다. 그가 유명인이 아닌 이상,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유명인? 그는 인간이 아니였지. 그는 용이다. 용인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용이다. ……본 적 없나? 조금 헷갈린다. 아무튼 용들은 눈의 빛이 인간과 다르다. 누가 더 낫고를 떠나서 그들의 눈은 살기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용이라는 생물은 여러가지 인간의 인격체를 모방하거나 또는 그들만의 틀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눈동자로 비출 수도 있다. 내가 느낀 살기 또한 용에게서 느낀 것이겠지. 좀 무섭다. 그가 얼마나 나를 죽이고 싶어했길래 그 정도였나 싶기도 하고. 그는 다르다. 살기를 그에게서 느낀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따뜻함을 느꼈다면 느꼈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가 아저씨만큼 큰 존재라고 생각한다. 뭐가 큰 거지? 키는 아닌데. 어쨌든 그들은 나에게서 큰 존재다.
그리고, 나는 그가 좋다. 이건 비밀이다. 그만 모르면 될 비밀.
*
내 부모가 인간한테 죽었어요.
어떤 말인지 아세요? 제가 인간을 근본적으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예요. 사랑해서도 안되고, 그 어떤 감정도 인간에겐 아까워요. 어떻게 물질에 눈이 멀어서 생명을 죽여요? 그것도, 그들의 자식이 보는 눈 앞에서. 저는 어려서 풀어줬어요. 그때가 제가 네살 즈음 되었을 때일 거예요. 근데 그게 더 웃긴게요, 제가 그 자리에서 또 그 인간들을 죽였어요. 본능적으로, 물어 뜯어 죽였어요. 하지만 이미 제 부모님은 그들의 손에 의해 끌려가서 피부가 다 까지고, 피가 다 흘러…… 더 이상 말 안해도 되죠? 어린 저에게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어요. 인간들을 죽인것? 그게 어떻게 잘한 일이예요. 그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지금은 이렇게 멀쩡하게 말하는 척 하지만, 지금 제 기분은 여태까지중 가장 엿같아요. 지금 상황이 안좋거든요.
제가 일찍 고아가 됐으니까, 친구도 없었죠. 그 때 유일하게 친구가 되었던 사람이 방용국이예요. 성격 더럽고, 잔인하고…… 아무튼 안 좋은 수식어는 다 갖다붙일수 있는 저를 그렇게 잘 이해해줬어요. 신기했어요. 나도 어쩌면 소중한 존재구나. 그러니까, 나도 이젠 편하게 기댈 존재가 있구나. 하는 사실이. 아무튼 걔는 저한테 제일 소중해요. 가족 같아요. 제게 없는 부분을 방용국이 채워 준 것만 같아요. 제 성격은 변할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가 있어도. 대신 그가 나를 이해했어요. 그래서 전 그에게만 말을 붙였어요. 그래야 할 것만 같았어요. 왜, 자기한테 필요할 때만 말을 해야한다고 때때로 느끼잖아요. 전 그에게 잡다한 이야기도 하고, 쓸모없는 이야기도 했어요. 그건 나한테 필요했으니까. 이러니까 진짜 외로워보이네. 네, 사실 좀 많이 외로워요. 그새끼가 다른것도 아니고 인간한테 눈이 멀어버렸잖아요. 얼마나, 더러워요. 기분이.
걔가 열네살때, 나도 열네살이었을 때 같은 용한테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전 그만 애타게 찾았는데, 그는 우리가 거주하는 곳을 넘은 인간의 서식지에서 피해를 입었더라고요. 결국 그를 찾았어요. 저도 미련하게 그 숲까지 갔는데, 그 숲에서 서성이고 있더라고요. 근데, 진짜 거지같고 웃긴건, 그가 인간에게 도움을 받아서 왔었다는 거예요.
모든 용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저도, 방용국도, 그 어떤 용이든. 그런데 전 인간에게 피해를 입은 후로부터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적이 없어요. 근데 제가 방용국을 찾으려고 인간으로 모습을 바꿔서 그 숲을 돌아다녔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게 별 거 아닌거같을수도 있지만. 저에겐 아니예요. 일종의 배신이예요. 인간에게서 도움을 받고 와서는 그 인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는 것 자체에 어이가 없었어요. 물론 죽을 뻔한 위기에서 도움을 받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예요, 또한 필요할수도 있죠. 근데 전 열넷이였어요. 그 나이때엔 사리분별보다도 제 앞을 분별할줄을 모르는 나이인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생각했겠어요. 그 당시에 봤던 인간은, 저희보다도 어려 보였어요. 저는 그 인간이 특히나 싫어요. 옆에 신을 끼고 있던데요. 신에게 도움을 받고 편하게 잘 사는 꼴을 보기 싫었어요. 신은, 제가 잘 아는 신이예요. 신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가 살 수 있게 한 존재고. 그래서 전 그만 싫어요. 웃기죠. 저도 제가 웃겨요.
근데 그것보다 증오가 더 크니 문제였어요. 그가 저한텐 유일한데, 그는 아니잖아요. 그는 이미 제가 싫어하는 그 인간에게 마음을 돌렸잖아요. 이제 전 버려졌잖아요. 그쵸. 어떻게 그래요. 본능에 이끌린대로, 또한 마음이 바라는대로 행동하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예요. 근데. 절 버렸다니까요. 제가 그랬잖아요. 여태까지중 가장 기분이 엿같다고. 모든게 다 그 탓이예요. 지금 어떻게든 그를 해코지하고싶은 마음이 큰데, 차마 그러질 못하겠어요. 제가 그를 죽이고싶은 마음보다 필요한 마음이 더 크거든요. 그가 죽으면 아마 저도 죽어버릴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싫어요. 제가 미련한걸 진짜 싫어하는데, 지금 제가 제일 미련하잖아요.
마음같아서는 저부터 죽을 마음을 가지면 그를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제가 용기가 생각보다 없나봐요. 쉽게 죽을 마음도 못 가지는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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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번외편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