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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항상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종현이가 생각났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습한 기운이 서서히 잠식해 어느새 내가 옆에서 교복 셔츠의 목 부분을 팔랑이며 덥다고 열심히 손으로 부채질할 때도, 꿋꿋이 긴 맨투맨을 고집하던 그 김종현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01
항상 사람들은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어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1년 전으로만 되돌아간다면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텐데.
나 역시도 항상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 생각은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어떻게든 김종현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끝이 났다. 그때 그 날, 내가 바보같이 아침에 수험표를 빼놓고 가지만 않았더라도. 김종현이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2017년 어느 가을
중요한 대학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그러나 네 결과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듯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가을비답지 않게 많은 양이었다. 그래도 어때, 내가 누군데. 하며 자신 있게 집을 나섰지만 웬걸, 버스를 30분 동안 타고 내린 뒤에야 내가 바보같이 수험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았던 욕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어떡하지,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을 터였다. 부모님은 바쁘시니 전화를 받지도 않으실 것이고, 동생은 중학교에서 핸드폰을 걷어갔으니 전화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결국, 방법은 하나, 14년 지기 친구인 김종현한테 전화를 걸어 수험표를 갖다 달라고 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종현이는 담임이 제일 예뻐라 하는 반장이었고, 난 우리 반에서 2등이었으니 내 수험표 때문에 잠시 외출증을 끊어 달라 한다면 담임이 충분히 보내줄 것이었다. 시간은 50분쯤 남았고, 버스가 좀 돌아와서 그렇지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시간 내에 수험표는 도착할 것이다.
머릿속에서 대충 계산이 끝나자, 내 손은 망설임 없이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있었다. 신호음은 몇 번 가지 않아 끊겼다.
[여보세요? 왜?]
“야 김종현, 나 지금 수험표 깜빡하고 안 가져와서 그런데 담임한테 말해서 좀 가져다주면 안 돼?”
[뭐? 수험표를 안 가져가? 너 지금 제정신이야?]
“아 진짜 제발 부탁할 게….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먼저 안으로 가 있어 택시 타고 금방 갈게]
그게 내가 나눴던 김종현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40분이 지나도 연락 한 통이 없자 초조해졌다. 분명히 지금이면 도착했을 텐데. 내 입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김종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라는 기계적인 음성뿐이었다. 그렇게 한 다섯 번을 걸었을까, 결국 포기하고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빗물에 교복 치마가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지난 12년 동안 열심히 죽어라 달려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였다. 비에 젖은 화면 위로 김종현의 이름이 뜬 게
“야 김종현, 미쳤어? 왜 안 와, 지금 어디야?”
[저기, 핸드폰 주인분하고 무슨 관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제일 최근에 통화하셔서 연락 드립니다]
내 원망이 가득 섞인 목소리에 돌아오는 건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네?”
[몇 분 전에 B 대학교 근처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00 병원 응급실에 있거든요]
“…”
[빨리 보호자 분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 순간 마지막 남아 있던 내 이성의 끈이 완벽하게 끊어졌다.
그 뒤로는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너무 당황해서 그랬을까, 아님 10년 전의 일이라 그런 걸까.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땐 김종현의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였다. 김종현의 부모님과 누나들이 울고 있는 모습과 모두 할 말을 잃고 침울한 표정으로 있던 담임과 반 친구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혼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죄책감에 눈물도 흘리지 못하던 내가 어렴풋이 기억 날 뿐이다.
김종현은, 그 날 나의 부름에 택시를 타고 나를 향해 오다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욕심을 내서 달리던 화물 트럭과 부딪혔다고 했다.
당연히 면접은 불합격이었다.
김종현의 죽음으로 2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담임이 날 교무실로 불러 넌지시 말을 건넸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이제 우리 반의 희망은 나라고. 그리고 종현이가 가고 싶어 했던 대학과 학과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들은 마지막 종현이의 꿈은 경제학과를 가고 싶어 하는 거였는데, 나도 친구라면서 참 무심했지. 종현이는 A 대학 국어교육과를 지망했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결심했다. 꼭 열심히 해서 정시로 그 대학교에 가겠다고
수능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평소에도 모의고사는 잘 나오는 편이었기 때문에 몸이 부서져라 공부를 하니 수능 성적은 괜찮게 나왔다. 사이트에 내 등급들을 입력하고 A 대학교 국어교육과 옆에 충분히 지원 가능하단 내용이 떴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의 한 1000분의 1이라도 덜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종현이의 못다 한 꿈을 내가 이룰 수 있게 되어서.
지금 선생의 입장이 되어서 그 때 담임을 생각해 보면 참 못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어떻게 나를 몰아세워서 실적 올리기에 급급할 수 있는지. 그래도 그 결과는 모두한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였지만 말이다.
여전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창문을 스쳐 가듯 치고 지나가는 빗물들이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땐,
어제 비가 내렸냐는 듯이 화창하고 맑았다. 조금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더운 바람이 부는 게 꼭 가을 같지 않고 여름 같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10년 전 내 방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