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매우 가정적이고 다정한 제품군이므로 고객님이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말도 잘 기억하고 따라주는 스윗다정의 대가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능글맞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교환이 불가능한 사유이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모처럼의 한가로운 토요일, 어제도 영민과 새벽까지 통화를 하다 잠든 탓에 눈도 제대로 못 뜬 여주가
웅웅거리며 울려대는 제 핸드폰을 겨우 찾아내선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졸려 죽겠는데..
"...여보,세요..."
"자고 있었나, 미안. 내가 깨웠나."
"....임영민?"
"임영민이 뭐고. 다시 불러봐라."
"....어, 어...영민아?"
"옳지, 잘한다."
"..뭐야.이게...아침부터 웬일이야? 벌써 일어났어?"
아니다, 잘 잤어?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영민에게 안부를 전하면 영민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왜 웃고 그래에..
하다가도 아침부터 듣는 영민의 목소리가 참 다정하고 스윗해서 입을 우물쭈물거리다 말았다.
"놀러올래."
".....어딜?"
으, 임영민 목소리 되게 엄청 무지막지 치명적이야.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웅얼거리다
영민의 뒤따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 여주가 뭐?하고 되물었다.
"우리집."
"....?"
"우리도 홈데이트, 그거 하자고."
어제 새벽에 통화할때 지나가는 말처럼 어떤 데이트를 하고 싶냐 묻는 영민에 새벽감성인건지 뭔지, 그냥 내가 미쳤던 게 틀림없다.
요샌 홈데이트가 대세라며 이것저것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올라 눈을 꾹 감았다 뜬 여주가 입만 벙긋거렸다.
아니, 우리 단둘이. 지금! 어! 그것도 임영민 집에서! 남녀가 유별한데!(혼자 김칫국 드링킹중)
또 그걸 용케 실천하겠다고 전화를 건거다. 이른 토요일 아침부터, 기특한 임영민이가.
...근데 그거 지나가는 말로 그런건데. 손도 아직 몇번 안 잡아봤는데..아, 물론 키스는 했다. 음...그렇구나, 우리 키스도 했지..흫..
우리 오늘 진도 나가는건가......아, 아니야...순진한 우리 영민이를 상대로 이 무슨 부정한 생각이야! 예끼!
"여보세요? 니 자나."
"....어, 어?"
"왜 말이 없노, 내랑 데이트하기 싫나."
"어...아니, 아니! 아니!!"
"그래 좋나. 귀 떨어지는 줄 알았다."
영민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는지 여주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힘껏 펼치다 영민의 말에 겨우 대답을 해냈다.
내가 또 언제 그렇게 좋아했다고 그러냐! 영민은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떨어뜨리다 다시 귀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나만 좋나."
아씨, 또 그렇게 시무룩한 목소린데! 왜 또 섭섭한 목소린데!
"아니지, 아니지! 나도 좋지!"
"그체, 사실 내는 더 좋다."
임영민 진짜 말 예쁘게 하는거 보세요...얘가 제 남자친구에요..(룸곡)
뿌듯해져오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영민이 준비가 다 되면 전화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알았다고 대답한
여주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섰다.
무려 40분만에 모든 걸 속성으로 마친 여주가 영민에게 준비가 다 되었다며 카톡을 보내자 영민에게선 전화가 왔다.
"어, 영민아. 나 준비 다 했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라."
"어?"
"내 데리러 갈게."
"야, 별로 멀지도 않은데."
"밖에 덥다. 기다려봐라, 거의 다 왔다."
부득이 저를 데리러 오겠다는 영민에 현관문까지 나가던 발걸음을 물렸다. 얘는 날도 더운데 뭐하러 왔다갔다하려고 이래.
버스 타면 금방인데. 별 생각을 다하며 핸드폰을 껐다 켰다 의미없는 딴짓을 하고 있자.
똑똑
"영민이?"
"어, 너네 영민이."
얼마 안 가 들리는 영민의 애교섞인 목소리에 자연스레 올라가는 입꼬리를 큼큼하며 내린 여주가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면
곧바로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영민의 모습이 보인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기도 전에 영민은 모닝뽀뽀라며, 아침부터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왔다
.....얘, 고순가봐.
"덥제, 내 차 도로 받았다."
"뭔 차? ..아, 그 차? 형이 쓴다며."
"어, 내 이제 니랑 사귄다고 차 다시 달라했다."
영민과 계단을 내려가자 보이는건 영민이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에서 사주었던 차였는데,
영민이 쓸 일이 없다며 제 형에게 넘기다시피 했던 차가 다시 영민의 손에 고스란히 들어온 셈이었다. 우리 사귄다고는 언제 말했대.
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꾹 눌러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너, 장롱면허잖아. 임영민.
"내 못 믿나, 타라. 얼른."
쭈뼛거리며 차에 타지 못하고 서있는 나를 보더니 영민은 손수 내 손을 끌어와 나를 조수석에 앉혀주는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래, 너 다정하고 좋은데. 내가 네 운전실력을....아는데, 영민아.
"...어,어."
영민과는 대학교에 들어오기전 함께 운전면허를 따러 다녔다. 그때 나는 2번만에 합격했는데,
영민은 3번도 아니고 무려 4번만에 면허를 손에 쥐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황천길로 데이트가는거니, 영민아..
타고서 안전벨트를 곧장 메는 나를 보던 영민이가 김빠지게 웃다가 니 내 못 믿네, 맞제. 하며 시동을 켰다.
예상외로 부드럽게 나가는 차에 영민의 눈치를 살피다 안전벨트를 쥔 손을 슬며시 풀었다.
오늘은 날이 아니었네, 황천길 가는 날이 아니었어(신남)
"내리자, 여주야."
아침에 영민과 만날거라고 아닌척하며 알게모르게 신경써 꾸몄더니, 그게 피곤했던지 영민의 집으로 가는 20분 그 짧은 거리동안 혼자 잠이란 잠은 다 잤다.
영민의 집은 우리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었다. 사귀기 전에는 차라리 멀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사귀고 보니 이 먼 거리가 아쉽다. 가까우면 더 좋을텐데, 얼굴도 자주 보고. 뽀뽀도 자주 하고(?)
영민이 에어컨을 틀어놨던건지 불어오는 냉기가 시원해서 영민이 틈을 내준 사이 실례하겠습니다아 하며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영민은 그런 여주를 보고 귀엽다는 듯 웃다가 아침은 먹었나, 니. 하고 물어왔다.
아니. 하고 소파에 널부러진 듯 앉자 영민이 그런 여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니는 긴장도 안되나."
"...뭐가?"
영민은 내 말에 나를 잠깐 흘겨보다 뒤로 돌아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만 긴장되나."
"..뭐라고?"
영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엌이랄것도 없는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져서 여주는 까치발을 들고 영민의 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꽤 분주해보이는게 뭘하나 싶었더니,
재료가 가득이다. 너, 뭐해?
"밥."
"...해주게?"
"어, 니 여긴 왜 왔노, 덥다. 저 가서 앉아있어라."
영민이 손을 탈탈 털어 마른 행주에 제 손을 닦더니 나를 도로 거실로 옮기려 굴길래 영민이 기특한 마음에 영민의 엉덩이를 팡팡 때려주곤 선생님 흉내를 냈다.
"우리 녕민이, 기특하다. 쌤이 상 줘야겠어요!"
"......"
하고보니 어째 오글거려서 영민의 눈치를 슬쩍 올려다본 네가 영 반응이 없는 영민에,
영민의 엉덩이위로 어설프게 올려뒀던 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떨어지려고 했다.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슬금슬금)"
"무슨 상 주실 건데요, 선생님?"
....나니고레?
나니? 나니?
....와, 임영민. 지금 뭐라고 맞받아친거야.... 임영민! 엄마! 아부지! 임영민 입에서! 지금! (비속어)
고개를 모로 돌린 영민이 슬쩍 웃으며 제 상황극에 동참하기 시작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어, 어. 우리 녕민이, 뽀뽀?"
"에이, 그건 너무 약한데요, 선생님."
"......어..."
문제는 임영민이 대놓고 섹시한 바람에 내 얼굴이 토마토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2년산 토마토_잘 익었어요_빨개요_팝니다_
"....어, 저..저기, 영민아! 우리 너무 가까..운데?"
"선생님, 뽀뽀말고 다른거 주시면 안돼요?"
고개를 뒤로 내빼도 어느새 제 코앞만큼 다가온 영민에 바둥거리면 영민은 이미 여주의 허리를 제 두손으로 잘 받치며
능글맞게 제게 이야기중이었다.
".....어, 어. 그래, 뭐가 받고 싶니...요?"
어설프게 영민의 흉내를 따라가면서 한 생각은 망.했.다. 였다. 영민아, 진정해. 우리 너무 가까워!
점점 가까워지는 영민에 눈을 꼭 감으면 영민의 숨결이 곧 제 귓가에 가까이 다가왔다. 임영민이 내 귀에 속삭이고 있다..
"선생님, 너요."
"......?!"
...지금 나만 이상한 생각합니까, 아니죠? (식은땀)
영민의 품에 얼토당토안하게 갇혀있는 꼴이라 영민의 팔을 조심스레 들고 도망가기를 시전했지만, 영민은 지금 선생님놀이에
푹 빠진 학생1이라 말끝마다 선생님 소리를 붙이며 제 팔을 다시 붙잡아왔다. 선생님, 쌤. 주세요, 얼른요.
되도 않는 떼를 쓰는 영민에 이제는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녕민아, 왜 이래....내가 잘못했어.....
"...녕민아, 밥! 밥 먹자! 응?"
제 다급한 목소리에 영민은 그제야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리며 내 머리를 잔뜩 헤집었다. 귀엽노, 김여주.
몸에 해로운 섹시한 임영민이 사라졌다. 아, 다행이다. 함부로 스킨십한 나레기, 반성하자.
"...다 되간다, 좀만 기다려라."
"어, 응!"
여전히 키득거리는 영민의 웃음소리에 다시 토마토가 되어 손부채질을 열심히 해야했지만.
그래도 위험천만한 상황은 피했어. 잘했어, 김여주! 아주 나이스!
.....는 개뿔. 다시 등을 돌려 부엌으로 향하던 영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해맑게.
"쌤."
얼떨결에 눈을 키우며 으응? 이라고 대답하자 영민은 또 한번 터진 웃음을 수습하며 운을 뗐다.
"낮에도 이겨도 돼요?"
+ 이 제품군은 낮져밤이이나, 고객님에 따라 낮이밤이일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오랜만이죠.
영민이 생각나서 4편을 썼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