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reply-내가 되었으면.
성규님의 마음을 대변하고싶은 브금입니다...^~^
A
이성열은 유명했다.
큰 키에 슬림하면서도 딱 각 잡힌 몸.
예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만한 얼굴.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늘 짓는 웃음이 밉게 보지 못하게 한다.
군대를 다녀오기 전, 신입생시절엔 학교모델을 맡으며 외모에 눈먼 골빈 여고생들의 입학욕구를 불러일으켰고
반년 전, 제대 후 복학한 뒤에는 어린 후배들의 ㅁ음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기 바쁘다.
아, 물론 그런 이성열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는, 게이다.
그것도 한사람에 무려 5년 가까이 붙어있는 순정파 게이.
물론 쌍방향으로 꾸준하게 서로를 사랑하는.
그건, 참 거지같은 일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는.
내가 성종에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사사건건 태클에 경계를 하더니,
결국은 내가 휴학한 사이 성종을 꼬드겨 동반입대를 하기도 했다.
일 년 만에 겨우 학교로 돌아왔는데도 그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데에서 오는 실망이란.
내가 군 면제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래, 성종이 행복하다면 지켜보고 있을 용의도 있다.
그런데 그 이성열 씨발새끼는, 그 간단한 일도 못한다.
얼굴이 엉망이던 성종이를 위로하려 만난 날 들은,
몇 년을 사귀었는데 자기가 성열에게 뭔지 모르겠다는,
사랑한단 한마디조차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눈물 섞인 말에
네 곁에 난 언제나 있어주겠다는 다짐이 생긴 것이다.
맨날 울리기나 하는 사람인데, 그 새낀.
"선배! 어디가요? 지금 시간 비죠! 같이 밥 먹어요 저랑! 저 지금 왕따 됐어요―..흐히"
웃는 게 이렇게 예쁜 사람인데.
B
곧 5주년이다.
뭘 해야 하긴 한데...뭘 하면 좋을까.
1주년엔 어쩐지 때맞춰 김명수 그 새끼가 납치되는 바람에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고,
2주년에는 우리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얼굴도 못 봤고,
3,4 주년에는 둘 다 군대 때문에 제대로 챙길 생각을 못했다.
사실 생일도 별로 딱히 챙긴 적이 없는데...그러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하며 책상을 볼펜으로 두드리며 강의실 안을 둘러봤다.
하나, 둘, 셋, 넷....오케이.
"야, 거기. 둘째 줄 맨 오른쪽, 그리고 내 앞에 앉은 너랑 너 옆에.
맨 앞에 너, 아니 너 말고 니 왼쪽. 그래 너. 니네 오늘 내가 밥 사줄게"
"네???"
당황하는 아이들에게 대충 입 꼬리를 올려 씩 웃어주고, 강의가 끝난 뒤 아이들을 불러냈다.
돈 없어 보이는 사정을 고려해 그래도 학생식당으로 끌고 가는 여후배들.
너네 나 아냐?
먼저 부른 게 나긴한데.. 니네가 언제 나랑 이렇게 친했다고 팔짱이야 팔짱은.
돌솥비빔밥이며 순두부찌개며 뭐 이것저것 시켜다가 가져와서는 그때서야 나를 쳐다보고, 근데 선배 우리 왜 불렀어요?
분명 따로 앉아있는 애들을 불렀는데 원해 네 명이 친구인 것 마냥…….
"나 애인 있는 거 알지"
"알죠― 선배 소문이 얼마나 자자한데요. 누구예요, 근데?"
"맞아, 진짜 누구예요?"
"아, 알거 없고. 너네 뭐 남자친구한데 받은 이벤트같은거 없냐? 감동적이었던 거라든지-"
내가 비빔밥을 비비며 얘기를 하니 먹으려고 숟가락을 든 채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는 넷이서 뭐라 말을 하며 깔깔 웃는다.
아이씨...차라리 남자 놈들을 잡아다 묻는 건데.
그래도 다행인건, 지들끼리 떠드는 수다에서 건질 만한 게 몇 개는 들린다.
"그래 진짜, 나 남자친구가 막 운동장에 촛불 세워놓고 있는데- 그게 식상한데 왜 그렇게 좋아? 완전 감동-"
"어 맞아 맞아! 난 그거 있잖아 헤어지자고 뻥쳐가지고....내가 얼마나 울었는데, 진짜... 의외로 식상한 게 잘 먹힌다?"
"야, 다시 한 번 말해봐. 뭘 뻥을 쳐?"
헤어지자라...맨날 이성종이 홧김에 지멋대로 내뱉어 내 속을 태워놓은 말 아냐 그게.
사람속이란 속은 다 태워놓고, 맨날 '진심이 아니었어'.
말을 해버리면 나에게 질려 떠날까봐 무서워 사랑한단말도 제대로 못하는 날 꼭 그런 말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거꾸로 그걸 써먹어볼까…….
"근데 나중에 밝히고 나서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한 거! 좀 돌이켜보면 어이없는 거! 그런 거여야 돼요!"
"대충 뭐, 난 여자만 만나보니까 그냥 호기심 같은 거였다, 근데 이제 재미도 없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하면 되겠나?"
내 한마디에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멍…….
그리고는 넷이서 한꺼번에 소리를 지른다.
"선배 진짜 게이였어요?!!!"
"아 조용히 해 니들. 게이 아냐, 걔가 여자였어도 좋아했을 거니까, 상관없어."
"에이이...좋겠네요, 선배애인은"
"아무튼 들어봐. 대충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될지..."
내가 확실히 사람 보는 눈은 있는지 넷 다 별 큰 반응 없이 그냥 밥을 퍼먹으며 듣는다.
내숭도 없고, 편견도 없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C
아 어딜 간 거야.
분명 강의실은 여기가 맞는데, 이성열은 흔적도 없다.
아, 난 밥 누구랑 먹으라고-...
쓸데없이 너무 잘나서 친구도 없는 게, 어딜 간 거야.
대충 햄버거사다가 때우고 도서관이나 갈까 하는데 마침 앞에 익숙한 뒤통수가 보인다.
"선배! 어디가요? 지금 시간 비죠! 같이 밥 먹어요 저랑! 저 지금 왕따 됐어요―..흐히"
"아 깜짝 놀랐잖아-. 넌 왜 여기 있어? 인문대건물 올 일도 없는 게."
"아 그냥 뭐...선배 찾으러 왔다 쳐요! 흐하하"
다짜고짜 소리치니 놀라면서도 부드럽게 웃어주는 성규선배.
아 다행이다. 진짜 밥 먹을 사람 없을 뻔했네.
대충 먹자는 생각에 둘이 걸어 학생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이성열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린다.
흔한 목소리는 아닌데, 귀가 이상한가.
이제 가을인데 뭔 냉면이냐는 선배의 타박도 한 귀로 흘린 채 냉면을 들고 앉으러 가는데
헐, 아까 들린 목소리가 진짜 이성열인가보다.
무려 여자들과 함께 앉아 밥을 퍼먹고 있는 이성열.
웬일이래. 무슨 일이지?
놀래켜줄 생각으로 냉면을 그대로 든 채 다가갔다.
"아니 그러니까....그건 오버고, 그냥...좀, 야 그건 심하잖아 좀. 씨발 미쳤냐 내가?"
"아이 선배~ 그 정도는 해줘야 좀 얘기가 되는 거죠, 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다. 귀엽긴.
점심을 이렇게 토꼈으니 저녁은 같이 먹자고 해야지.
어느 정도 가까이 가니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그건...좀 심하고, 그냥, 난 남자 안 좋아해서 좀 그렇다. 그냥 호기심이었다. 정도?"
"하긴...선배 같은 경우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좀 그렇긴 할 거야, 그치?"
"응응! 또, 더 생각해봐요"
"또....음.....질렸다...역겹다...지쳤다...짜증난다....이중에 뭐가 제일 나아?"
누구 얘기를 하는 건지 아주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째 나를 떼어놓고 가더니,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어떻게 감성적으로 날 찰까, 그걸 고민 중이었구나? 어?
이 개새끼야, 너랑 나랑 지낸 세월이 얼만데.
그걸 봐서라도 최소한 그냥 노말하게 끝내야지.
넌 이별통보도 계획 짜서 하니.
그럴 정성으로 나한테 사랑한다 진심이다 한마디만 해주지그랬어.
진심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어?
이제까지 이성열과 사귀면서 화내고 울고 짜증내고 설레고 했던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지나간다.
그게 다 내 원맨쇼였다니.
흐하하핫. 웃음이 다 나온다.
그대로 멈추지 않고 이성열의 뒤로 다가갔다.
"진짜 그렇게 하면, 괜찮겠지?"
"당연하죠! 어? 누구……."
"꺄악!!선배!!!"
"선배! 어떡해.."
그리고 들고 있던 냉면을 그대로 들이부었다.
당황하는 여후배들.
그래, 니들은 진짜 이런 새끼 만나지마라 제발.
이성열이, 냉면을 통째로 맞고도 가만있던 이성열이, 벌떡 일어섰다.
"아오씨, 이씨발 어떤 년이야……."
그리고 천천히 날 보려 뒤로 돈다.
또 잘못했다하겠지, 진심도 아닌 말로.
더 싫은 건 또 거기에 납득해 용서해버릴 내 자신.
화가 가라앉기 전에, 그냥 뒤돌아섰다.
아니 물론 사나이답지 않은 내 눈물을 또 보여주기 부끄러워서도 있고.
"....이성종? 이성종이야, 너?"
"이제, 끝이야"
생각 같아서는 더 윽박지르고 따지고 냉면을 들이붓고 싶지만, 지금 눈물에 떨리는 목소리도 충분히 쪽팔렸다.
달랑 그 말만을 던진 채, 달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성열 개새끼. 이성종 바보쪼다.
//
A가 성규님,
B가 이성열씨.
C가 성종씨..
계속 A,B,C를 돌아가며 연재할 생각입니다ㅎㅎㅎㅎ
이것도 열편쯤 연재할것같아요..ㅎㅎㅎ..
말이열편쯤이지 두달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편연재가 끝나면 새학기가 시작될쯤이겠네요...그전엔끝났으면 좋겠는데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사정이 어떻든 뭔갈 쓰는건 즐거워요.
써주신 감상보는것도 물론 즐겁구요ㅋㅋㅋㅋㅋㅋㅋ
원동력이 되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