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횬 오빠..........♡
이 어빠 요새 왜 자꾸 리즈 갱신해여??ㅠㅠㅠㅠㅠㅠ
하안 거짓말, 그 세번째 거짓말. |
하얀 거짓말 W. Irara
* * *
무대 뒤의 대기실은 늘 바쁘게 돌아간다. 이번에 데뷔했다며 직접 사인한 CD를 들고 대기실을 찾아와 우렁찬 인사와 함께 그것을 건네고 나가는 후배들이 있는가 하면, 골이 울리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대는 늙은 여자들. 늙은 주제에 아직 젊은 줄 알지. 떨어진 인기만큼이나 너무 쉽게 쳐져버린 그녀의 턱살에 오늘도 미간이 쉽사리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그런 골머리 아픈 족속들은 피하고 싶은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늘 그녀들과 함께 대기실을 배정받고는 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해 아직은 젊고 창창한데도 늙은 여자들과 동급이라는― 그냥 단순하게 그렇게 이해하면 쉽겠다. 오늘도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코디를 나무라는 여우상의 늙은 여가수를 거울 너머로 힐끗거리다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연신 죄송하다는 소리만 해대는 코디에게 찡긋 윙크를 해 보이고 잠깐 자리를 비켜 달라 말했다.
우현의 눈짓에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뛰쳐나간 어린 코디의 등 뒤로 날카로운 여자의 고함소리가 꽂혔다. 너 일 그딴 식으로 하면 진짜 끝이라고! 알아들어?! 그런 나이 든 여자의 앞으로 다가가 능숙하게 허리를 끌어안은 우현은 여자의 뭉툭한 어깨를 주무르며 잔잔한 미소를 띠웠다.
“왜 그래요, 아가씨. 이렇게 목 함부로 다루면 무대에서 해가 된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면서.” “아, 자기. 아니 글쎄 저년이 이딴 천 쪼가리를 들고 와서는 나더러 입고 무대에 오르라고 그러잖아!” “이 의상이 어때서? 이건 자기밖에 소화 못할 것 같은데? 적어도 우리 최 여사 몸매 정도는 돼 줘야 입지.” “어휴, 어린놈이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어?” “최 여사는 이런 어린놈이 좋잖아. 아니야?” “치, 좋지 당연. 이런 귀염둥이가 또 어디 있겠어?”
우현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대기실을 벗어난 여가수를 보며 우현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등 뒤에서 저의 코디가 수고했다면서 역시 우현이 뿐이라며 어깨를 주물러왔지만 그마저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한 탓에 온몸이 뻐근하고 눈이 따가웠지만 소화해야하는 스케줄의 양은 다를 게 없어서. 이렇게 피곤한 삶이고 숨 쉴 틈 없이 답답한 생활이었지만 제가 선택한 상황이니 물러설 데도 없었다. 우현의 노래를 좋아하는 성규 덕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길을 선택했고 그에 입이 닳고 마르도록 기뻐했던 성규였기에. 그때의 그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우현은 아픈 목을 빙그르르 돌렸다.
현재의 생활이 어떤지를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은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외줄타기와도 같았고, 또 내 힘의 원동력이던 녀석마저 내 곁에 없으니까. 힘이 들고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라고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니까. 무의미한 숫자들의 나열을 바라보았다. 총 스물 세 팀의 출연자중 가장 마지막 순번. 나는 이미 그런 자리에 있었다.
“우현아 준비는 다 됐어.” “순서는?” “아직 열 두 팀 남았어.”
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송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TV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가식적인 웃음을 띠고 있는 가수들을 보고 있자니 토기가 치미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차례가 다가오면 연락을 달라는 소리와 함께 답답한 대기실을 벗어났다.
우현은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었다. 한결 편하다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이리저리로 틀었다. 아직 명수가 돌아오지 않아 성규는 우현의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성규임을 알지만, 그래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은 까닭은 제 집에 성규가 쉬고 있다는 생각에서. 핸드폰을 들어 성규의 번호를 누르고 귀로 가져갔다. 성규가 좋다던 우현의 노래가 컬러링으로 흘러나오고, 우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응, 우현아.
전화를 받고 있는 목소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를 가는 중인 듯 한 성규의 목소리에 우현은 너무 당연하게 ‘어디야’하고 물었다.
-나 지금 방송국가고 있어. “방송국은 왜?” -너 보러 가고 있는데?
마치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어?’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성규의 말투에 우현은 걷던 복도 위에 우두커니 멈춰 서고 말았다. 덜커덩― 하고 삐걱거리기 시작한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우현의 곁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인사를 건넸지만 우현은 답할 수 없었다. 그, 그래서 어딘데? 기대에 잔뜩 들뜬 우현의 목소리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내뱉어 졌다. 이런 우현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금방 도착해. 건물 앞이야’하고 답한 성규의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어쩐 일로 나를 보기 위해 방송국을 찾는 건지. 불안한 마음보다는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전화가 끊긴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전화기를 붙들고 서 있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내 옆을 지나가다 우렁차게 ‘선배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 신인 그룹에 화들짝 놀라 겨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현은 아무렇게나 인사에 응했다. 늘 짓던 미소도 아닌, 훈훈하게 건네어 주던 덕담도 아닌. 얼이 빠진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버리고는 다짜고짜 일층 로비를 향해 내달렸을 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행여 성규와 엇갈려버리지는 않을 지, 초조한 마음에 단정하게 정리된 손톱도 물어뜯었다. 띵―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우현은 허겁지겁 안에서 내렸다. 로비에 서서 입구 쪽을 봐도 성규와 비슷한 인형은 볼 수 없었다. 엇갈린 건가하고 불안에 젖어 세팅 된 머리를 헝클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남우현?”
놀라며 뒤를 돌아 본 우현은 눈 안 가득 들어오는 성규의 모습에 와락 그를 끌어안았다. 성규에게서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세게 끌어안은 우현은 성규의 어깨에 코를 묻었다. 대기실에서 내려오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 초조하게만 느껴져서. 말도 없이 먼저 저를 찾아준 성규에게 또 한 번 희망을 걸어버려서. 분명 제가 아플 짓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내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성규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우현의 허리를 끌어안아 등을 다독였다. 뭐야, 왜 이렇게 뛰어왔어? 성규의 물음에 숨을 참으며 품에서 그를 떼어낸 우현은 웃는 얼굴로 성규를 바라보고 섰다.
“네가 온다고 그래서.” “내가 오면 오는 거지 그렇게 뛰어서 마중을 나올 건 뭐야?” “그냥.” “하여간 남우현, 머리 나쁜 건 변함이 없어요.” “너는 왜 온 건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성규에게 우현은 궁금함 반 두려움 반으로 물었다. 갑작스러운 우현의 질문에 잠시 조용해진 성규는 저를 빤히 바라보고 선 우현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그 눈에 빨려 들어가 버릴 것 같은 기분에 시선을 떨어트렸다가 다시 눈을 맞추었다. 여전히 저를 바라보는 두 눈동자. 성규는 입술을 살짝 내밀고 답했다.
“그냥, 네가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너는 이 말을 나에게 하면서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너는 끝끝내 내 마음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너를 사랑한다는 내 마음 따위 전혀 모른다는 듯이 철없는 얼굴로 나를 마주한다. 하지만 그런 너를 포기 할 수도 없게 하는 것. 너에게서 간간히 보이는 희망 때문에. 애인들이나 주고받을 법한 대화와 나를 사랑한다는 듯 한 눈빛. 그윽한 그 눈길을 받고 있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녀석의 붉은 입술이 뱉어낸 ‘독을 감추기 위한 새빨간 사과’ 같은 거짓말은 나를 단숨에 현혹시켰다. 자, 받아. 내 앞으로 내밀어진 작은 종이봉투.
“무대 올라가기 전에 허기지면 어쩌나 해서. 보나마나 점심 안 먹었을 거 아냐.” “무대는 빈속으로 올라가는 게 더 나아.” “바보야. 그냥 잘 먹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된다.” “…잘 먹을게.” “하여간, 너는 무드가 없어.”
우현의 앞을 지나쳐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간 성규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투명한 버튼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줄곧 층수만 보고 있는 성규였다. 그런 성규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우현은 눈을 깜빡였다. 과연 제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 말을 믿어도 될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에. 손에 들린 종이봉투가 꽤나 묵직했다. 이건 정말 온전히 저만을 위한 것일까. 그에 앞서, 어쩌다 제가 이렇게나 성규의 마음을 의심하게 됐을까 하는 착잡함이 앞섰다.
어제보다 조금 밝아져 있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미용실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바뀐 머리를 베베 꼬며 괜찮냐고 되묻는다. 붉게 물들어있는 머리칼 사이로 내 굵은 손을 밀어 넣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바깥의 공기를 안아 무척이나 차가웠다. 예쁘다. 그렇게 한마디 했더니 너는 입 꼬리를 말아 올리고 웃으며 ‘고마워-’ 하고는 때맞춰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올라탔다.
‘오, 김성규. 좀 예쁜데?’ ‘야, 남자한테는 예쁘다는 말 하는 거 아니야.’ ‘그럼 예쁜데 예쁘다고 그러지. 뭐라고 그러냐?’ ‘멋지다고 해야지.’
문득 스쳐 지나간 과거의 잔상. 예쁘다는 칭찬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우현의 배에 주먹을 꽂았던 성규. 그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예쁘다는 말에 익숙해져있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성규를 멍하니 보던 우현은 성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빨리 안타? 팔랑거리는 손짓에 황급히 엘리베이터로 올라탄 우현은 성규의 옆에 서서 가만히 숨을 골랐다. 뜻하지 않게 떠올려진 기억에 느닷없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는 화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어서.
‘김성규, 예쁘네.’ ‘고마워요, 형.’
아이라인을 짙게 그린 성규의 뒤에 서서, 성규를 목을 안은 채 거울속의 성규에게 말을 건네던 그. 김명수.
“…아….”
김성규는 김명수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 * *
“말이 돼?” “…어쩔 수 없잖아.” “한국에 돌아 온지 일주일도 채 안됐어. 근데 다시 파리로 돌아간다고?” “그럼 어떡해. 갑자기 잡지사에서 형 파트너로 나를 세우고 싶다고 그러는데.” “하아, 김성규. 너는 계산이 안 돼? 잡지사에서 그랬겠냐? 딱 보면 모르냐고. 김명수 그 사람이 부른 거잖아.” “야, 남우현. 너는 친구가 일 좀 잘 해보겠다는 데 그게 그렇게 아니꼬워? 뭐가 불만인건데.”
니가 그 새끼한테 돌아가겠다고 하는 거. 뒷말은 꾹 눌러 담았다. 그래. 아무 이유 없이, 단지 ‘내가 보고 싶어졌다’는 그 가당치도 않은 이유를 가지고 네가 나를 찾을 리는 없었겠지. 빨간 사과에 묻어있던 독 같은 너의 말. 터질 것 같은 화를 추슬러 담으며 비상문의 문고리를 세게 붙잡았다. 아무도 없는 비상 계단에 너와 나의 다소 격해진 목소리가 울렸다. 개방된 듯 밀폐된 그 공간 안에서 이런 문제로 너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탐탁치가 않았다. 뭔가를 억누르며 문고리를 아플 만큼 세게 잡고 있는 손이 내 얼굴을 대신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말해봐. 내가 잘되는 게 그렇게 싫어? 내 속도 모르고 자꾸만 묻는 네 입 위로, 할 수만 있다면 그 얼굴을 붙잡고 내 입술을 맞추고 싶었다. 야, 남우현.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부르기에,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마. 더 이상은 나도 어떻게 할 지 몰라.” “…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왜? 내가 왜 아무 말 말아야 해?” “…친구로라도 남고 싶으니까.”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자존심까지 다 구기고 답했다.
우현의 대답 뒤로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착잡한 우현의 표정과는 달리 성규의 표정은 너무 여유로웠다. …친구로라도 남고 싶다. 그 소리는 내가 한마디라도 더하면, 친구로도 남지 못할 짓을 할 거라는 소리야? 성규의 물음에 우현은 고개를 돌렸다. 몰라. 그리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멈춰봐! 뒤에서 붙잡는 목소리에 멈칫, 오르던 계단에서 멈춰 섰다. 그게 뭔데? 자꾸만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는 너의 돌발적인 행동에 내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실상 말 못할 것도 없었다. 그토록 지랄같이 여기던 ‘친구’라는 관계를 집어 치우고 사랑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기회였다. 운이 좋다면 내가 그를 해보지 못할 것도 없을 테니까. 그 만큼이나 나도 잘나가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 보다 더 너를 잘 알고 있을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까닭은, ‘불안함’ 때문에. 친구가 아닌 우리 사이에 더는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게 너무 불안해서.
우현은 성규의 말을 무시했다. 성규를 뒤로 한 채 계단을 올랐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성규의 독한 기질을 우현은 알고 있었다. 파리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분명 두 번 생각 할 것 없이 떠나겠지. 그래서 우현은 성규를 붙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남우현! 어느덧 꽤 올라온 계단, 그보다 아래층에서부터 우현을 따라 뛰어 올라오는 성규의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현은 아까보다 조금 더 다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멈춰 보라니까?” “……….” “남우현, 나 저질 체력인거 알잖아!” “따라 올라오지 마.” “그게 뭐냐고!” “……….” “친구로도 남지 못 할 행동이 뭔데!”
이젠 따라 올라오지는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우현은 한숨을 내쉬며 멈춰 섰다. 그리고는 뒤돌아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제 앞에 선 우현을 올려다보며 성규는 씩씩 거렸다. 너 왜 내가 멈추라는 데도 계속 올라가? 앙칼진 그 목소리에 우현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왜 네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 하는데?” “뭐?” “왜 네가 멈추라고 하면 멈춰야 하냐고.”
으르렁거리듯. 낮고 굵은 우현의 목소리에 성규는 미간을 구겼다. 방금 너 뭐라고 그랬어? 우현이 방금 했던 말을 재차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되묻는 성규의 행동에 우현은 차가운 얼굴로 성규를 벽으로 밀어 붙였다.
“아!” “……….” “뭐하는 짓이야?” “……….” “이거 안 놔?”
어깨를 짓누르는 우현의 힘은 성규가 쉽게 밀어낼 수 없을 만큼 셌다. 부딪친 등이 아픈지 인상을 구긴 성규는 숨을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우현의 행동에 화가 나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분을 삭이고 있었다.
나는 뭘 하려는 걸까. 왜 너는 나를 자꾸 자극 시키는 걸까. 친구로도 남지 못할 그 행동이 무엇이냐고 묻는 너의 입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를 아프게만 하는 그 입술을 물어 뜯어버리면 성이 찰까. 부글부글 끓는 활화산보다 더 끓어오르는 화 아닌 화를, 네가 알까. 가슴이 답답한 게 주먹을 쥐고 세게 가슴을 내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네 앞에서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어금니를 꽉 물고 아까부터 네가 물었던 것에 대해 답을 하기 시작했다.
“친구로도 남지 못할 행동. 그게 궁금해?” “……….”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나 가지고 노는 거야?” “…야, 남우현.” “내 이름 그만 좀 부르고 답이나 해. 너 이미 알고 있잖아.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그 말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 했었지 않아?”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건드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안 그래?” “……….” “난 김성규 니 장난감이 아니란 소리야.”
몰아붙이는 목소리에 너는 기분이 상한건지, 작은 입술을 앙 깨물었다. 남우현, 말 가려서 해라. 이를 악 물고 하는 말을 바로 맞받아 쳤다. 가려서 못 해.
기분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터진 봇물은 거침이 없이 쏟아져 나왔다. 참고 참았던 울화와 같은 내 뜨거운 감정이 너를 데이게 하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상처받은 눈을 한 너를 마주하고서도 나는 거침이 없었다. 너 솔직히 말해봐. 나 가지고 노는 거 맞잖아. 내가 편하니까, 만만하니까! 김명수한테 가서 아양 떨다가 좀 힘들어지면 나한테 오는 거잖아. 아니야? 아픈 곳을 꾹꾹 찌르는 내 말을 듣고 선 네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알고 있었다. 네가 울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내 병신 같은 입은 너를 할퀴는 말을 멈출 줄을 몰랐다.
“네가 여태 섰던 쇼들, 다 니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해? 착각 하지 마. 그거 다 김명수 빽이라고. 알아?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애써 모른 척 하는 거야? 모른 척이라면 그런 거 하지 마. 쪽팔리게 빌붙어 먹지 말고 네 힘으로 일어서서 성공하라고. 김명수가 언제까지 너 끼고 있을 줄 알아?” “적당히 해. 친구 계속 하고 싶으면 그 입 당장 닥쳐.” “친구? 허― 난 이미 네 친구 아니야.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사랑한다고. 내가 김성규 너를 사랑한다고! 김명수가 널 사랑하는 거 같아? 김명수는 다른 사람 있어. 행여 없다고 해도 너는 사랑 안 해. 김명수는 너 사랑 안 하지만, 나는 너 사랑해. 널 액세서리 달고 다니듯 취급하는 그 김명수 같잖은 새끼보다! 나! 남우현이 김성규를 더 사랑한다고!” “닥치라니까!!”
너의 비명소리와 함께 내 고개가 돌아갔다. 눈이 크게 떠지고 돌아간 뺨에서 따끔따끔한 느낌이 오기 시작하고 나서야 내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네가 눈에 들어왔다. 맞을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도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 모진 말을 너에게 했으니까. 네 자존심을 짓밟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으니까. 차라리 이렇게 맞아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을 정도로 나쁜 말을 했으니까. 볼을 붙잡고 그대로 멈춰 서있었다. 나를 때렸던 손을 미친 듯이 떨고 있는 네 표정은 나보다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숨이 넘어갈 만큼 힘겹게 울고 있는 너. 얼마나 힘을 주어 세게 내리 친 건지, 네 작은 손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빗겨 맞아 너의 시계가 내 볼을 훑고 지나갔나 보다.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볼에서부터 턱 끝으로 흘러내리는 걸 보니.
우현의 얼굴을 보던 성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우현아! 괜찮아? 성규는 우현의 얼굴을 붙잡고 소리를 쳤다. 피나, 피가 난다고!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우현은 피나는 제 볼 따위 안중에 없다는 듯, 빨갛게 부풀어 오른 성규의 손을 잡고 끌어 내렸다.
“손 안 아파?” “우현아… 흐으… 얼굴에서 피난다고.” “빨개졌다, 손.” “흐윽, 그러니까… 그만 하라고…. 그만하라고… 내가 그랬잖아.”
울음을 어떻게든 참아보려 앙다문 그 입술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친구… 친구…
“성규야.” “흐으… 우현아… 흐윽, …피…” “우리 친구 하지 말자.” “흑, 하으으… 남우…현… 피난다니까…!” “친구로도 남지 못할 행동, 나 지금 할 거야. 그러니까… 이젠 나 네 친구 아니야.”
…친구 안 해.
성규의 울음소리가 우현의 입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성규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간 우현의 혀가 조심스럽게 성규를 감싸고돌았다. 놀란 성규의 뒷머리를 끌어당겨 입술을 밀착 시킨 우현은 성규의 붉은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지금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너의 허락 없는 키스였지만 만족했다. 네가 아슬아슬하게 쌓아둔 ‘친구’라는 답답한 벽을 허물어 깼으니까. 그거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비록 아프게 시작한 키스이지만 괜찮았다. 나의 첫 사랑과 첫 키스를 너에게 줄 수 있었기에. 내 숨보다 소중한 김성규를 가슴에 품고 무덤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에. 그래서 난 …우리의 절교에 만족했다.
* * *
도착 했어요. 프론트 도어에 서있을게요. 메신저로 연락을 보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예정과 다를 것 없이 도착한 파리. 파리의 밤은 한국보다 따뜻했다. 점퍼 안에 입은 가디건에서 너의 향기가 났다. 잠깐 머물러 있었을 뿐인데, 향이 옮은 건가. 괜스레 소매 끝에 코를 묻었다. 그러다가 친구를 하지 않겠다던 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서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계속해서 떠올라 괴롭히는 그 날의 잔상. 입술에 와 닿았던 뜨거운 네 입술까지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고개를 숙인 채 신발코로 바닥만 툭툭 걷어찼다.
빵― 사색에 잠긴 성규의 앞으로 헤드라이트가 길게 길을 놓았다. 경적 소리에 고개를 든 성규는 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명수를 보며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뒷좌석 문을 열고 캐리어를 실은 성규는 앞좌석의 문을 활짝 열었다. 눈에 들어오는 시트 위의 반짝 빛나는 무언가. 그것을 손으로 주워들고 차로 올라탄 성규는 손에 들린 물건을 자세히 보았다. 처음 보는 귀걸이. 성규는 뭔가 감이 오는 지 아무 말 없이 귀걸이를 주머니 안으로 떨어뜨렸다.
“말도 안하고 가고.” “매니저가 말 안 해줬어요?” “매니저야 말 했지만, 네가 직접 말 안했잖아.” “…미안해요.” “응. 다음부터 그러지마. 서운할 뻔 했으니까.”
보자마자 입을 맞추려는 형의 행동은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목을 뒤로 내뺀 것. 그건 왜 그랬을까. 적지 않게 당황한 형의 얼굴에 대고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어. 하지만, 입을 맞추기는 싫어.
예상 어긋나는 성규의 행동에 명수는 가만히 성규와 눈을 맞추었다. 고개를 살짝 돌린 성규는 헛기침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둘러댔다. 감기기운 있어요. 형 컨디션 조절해야 하잖아. 흔들리는 성규의 시선을 보지 못했던 건지. 명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제 목에 둘러져 있는 목도리를 풀어 성규의 목에 칭칭 감았다.
“너도 몸 관리 좀 해.” “……….” “그렇게 한 겨울에 목 내놓고 다니지 말고.”
검은 폴라티를 입어서인지, 명수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검게 느껴졌다. 성규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손은 성규의 손을 잡고서 남은 한손으로만 운전을 하고 있는 명수를 보며 성규는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저를 대하는 이 태도가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럽지만 과연 그 안에 깃들어있는 마음마저 진실인건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눈치 채가던 상태에서 우현의 말을 들어 더욱 의심이 가고 힘이 겨운 성규였다. 잘빠진 명수의 옆얼굴을 보던 성규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에 눈앞이 어지러워 눈을 감고 시트에 몸을 묻었다.
형을 의심하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고작 너의 현란한 혀 놀림 하나에 혼을 뺏겨 우리의 사이를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형의 키스를 거부한 것도 모자라 형의 옆자리에 앉아 너를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괘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까닭은 나처럼 아파 보이는 너의 눈 때문에. 사람은 눈으로 말을 한다고 했다. 상대의 정신 상태나 마음가짐, 혹은 진심은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날 마주했던 네 눈이 생각보다 훨씬 아파서 나는 괴로웠다. 여태 외면하던 네 사랑이 그렇게나 컸던가 하는 생각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우리의 사이를 끊어내 버릴 정도로 크게 존재했던가 하고.
“한국에 가서 뭐했어?” “그냥 있었어요.” “어디에 있었는데?” “……….” “내 말 못 들었어?” “아뇨.” “어디에 있었냐고.” “……….”
형의 물음에 너의 집이라고 말 하지 못하는 나는 뭐야? 왜 떳떳하지 못한 건데.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왜 너의 집에서 머물렀다고 쉽게 말을 할 수 없는 건지. 형이 너와 나를 의심할까봐? 그렇다면 내가 형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또 그건 싫은데. 복잡한 머리를 붙잡았다.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있자 옆에서 ‘머리 아픈 거야?’하고 형이 물어왔다.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살짝 깨문 채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봐. 손을 뻗어 성규의 이마에 손을 얹은 명수는 말이 없었다. 아프면 쉬어. 깨어 있으려고 애쓰지 말고. 내일 촬영은 잘 마무리 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더는 아무 말이 없는 명수. 성규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제 병이 꾀병이라는 걸 명수가 알아 차렸음을.
“……….” “……….”
형에게 둘러댈 변명을 찾을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이미 실망과 함께 신뢰의 한 조각을 잃은 것 같으니. 형의 말을 따라 시트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을 청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검은 시야 한 가운데에 너의 얼굴이 희뿌옇게 떠올랐다. 그리고 차오르는 눈물. 내 사랑과 닮아 아픈 너의 사랑이 가슴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돌아설 수 없는 나임이 현실. 나는 형을 사랑해서, 형을 두고 돌아서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남들이 말하는 어이없고 기가 차는 사랑. 가슴을 두드려도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답답하고 앞뒤 꽉 막힌 사랑. 그 사랑을 내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주춤, 너의 자극에 흔들린 건 사실이긴 했다. 사랑을 주겠다는 너를 뿌리칠 이유는 없었지만 내가 형을 떠나야 하는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미련한 바보처럼 이렇게 아프게도 형이라는 사람을 쥐고 있었다.
“성규야, 자?” “……….”
형의 물음에 이번에도 답하지 못했다. 눈치 빠른 형은 분명 알아차렸을 거다. 내가 한국에 잠깐 머물렀던 그 동안에 어디에 있었는지를. 또 내가 왜 이유를 말 할 수도 없는 지도. 그래서 저렇게 여유로운 목소리로, 마치 다 알고 있다는 그 목소리로 나를 부를 수 있는 거겠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잠에 든 척, 미동도 하지 않고 숨죽여 있었다. 한참 후에 내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는 느낌, 그리고 벌어진 점퍼를 단단히 잠가 주는 손길. 평소에 느낄 수 없던 자상함이 마치 꼭 너처럼 다가왔다.
“아프지 마라.” “……….” “너 아프면 형 마음이 되게 안 좋아요.” “……….”
평소에 쉽게는 들을 수 없었던 형의 다정한 목소리. 본능적으로 불안함을 느꼈지만 행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흡사 너와 착각을 하게 만드는 형의 행동을 느끼며 기뻐하고 있는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일까.
“……….” “성규야, 사랑해.” “……….”
빈껍데기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한마디에 울음이 나올 만큼 미련한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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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야 잔소리 대마왕 ★
안녕하세여!! 그대들!!!!!!!!!!!!!!!!!!
염치도 없이 일주일 넘게 글을 안들고 왔던, 이라라입니다bbb
연말에 너무 바빴어요ㅠㅠ 하는것도 없는데 막 일생기고 약속있고 그랬써여(비겁한 변명)
그래도 부랴부랴 이러케 들고 왔.........는데.....
한번만 용서를 해 주십사....................T^T
이번편은 보다 빠른 전개를 위한 성규의 흔들림.
무엇보다 이 글의 시작은 성규와 우현이의 첫 만남 이 아닌, 진행되고 있던 관계의 마찰을 중간부터 뚝 잘라 시작을 하였으니까여...
여색함이 없겠다 싶어서 이렇게 흔들리는 성규를 데려 왔어요.
여기에서 시작해서 우현이와 좋은 길로 풀려 나갈지,
혹은 계속해서 명수에게 머물러 있을지.
그건 나중이 되어봐야 알 것 같네요.
무튼 기다려주신 그대들, 너무너무 고맙고 미안해요ㅠㅠ
다들 스릉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