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 유선호
이미 지킬 이미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밥만이라도 예쁜모습으로 먹자는 생각을 하며 선호와 함께 급식실로 내려갔다. 급식실로 가는 내내 나를 부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어깨가 하늘위로 솟을뻔했다. 중간에 설마 쟤가 귀요미라는 말도 들렸지만 정신건강을 위해서 자체 스킵했다.
선호의 미모는 아주머니들에게도 통하는 것인지 나보다 2배는 많은 양의 치킨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하나만 더 달라고 하실때는 고민도 않고 안된다고 하시더니, 어딜가나 페이스가 중요하구나....세상 참....하지만 나도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다. 이소정이 나보다 2배많이 치킨을 받아왔었다면 당장 아주머니에게 가서 왜 차별하냐고 벌써 따지고도 남았을테지만, 그게 선호였기에 그냥 참았다. 그래 선호는 크니까 많이 먹어야돼.
채소만 가득하던 식판에 오랜만에 고기가 그것도 치킨이 등장하자 급식실을 내려오면서 했던 다짐도 잊고 정신없이 치킨을 뜯었다.
"와 여주야 너 진짜 잘 먹는다"
내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감탄을 하는 선호의 말에 그제야 정신없이 치킨을 뜯던 본능적인 입이 멈추었다. 하... 남은 이미지라도 챙기려고 했더니만 이건 무슨 치킨발골달인의 모습만 보여주고, 왜 이 정신은 선호앞에서도 이성을 잃고 치킨을 뜯게 내버려두냐고.
"하하.....너무 배가..고파서..
아 이제 배부르다."
"왜, 더 먹지 내것도 먹어"
급하게 먹던치킨도 내려놓으며, 그래봤자 이미 뼈만 아상하게 남은, 아직 차지도 않는 배를 두드리며 배가 부르다고 하자 선호가 자신의 식판에 있던 치킨을 옮겨주며 더 먹으라며 손짓을 했다. 괜찮다고 배가 부르다며 힘들게 거절을 하였으나,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인지 젓가락으로 치킨을 들어 내 입앞에 가져다 놓으며 '아'라고 말하였다. 그 말에 홀리듯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며 선호가 준 치킨을 먹었다.
그렇게 결국 선호의 치킨을 반 이상이나 먹고서야 정신을 차리며 급식판을 비울 수 있었다.
"귀욤아 너 보기보다 엄청 잘 먹는다"
"내가 원래 잘 먹어서.....
근데 아까처럼 그냥 이름불러주면 안될까?"
"이제 밥 다 먹었는데"
"제발 진짜 내 평생소원이야, 제발 제발 그 귀요..라는 소름돋는 호칭을 버리고 이름으로 불러주라"
"음...나는 귀요미가 좋은데,,,여주가 그렇게까지 싫다면 어쩔수 없지.
대신 그럼 나도 소원하나만 들어줘"
귀요미라고 불러주지만 않는다면 무슨 소원이든 못들어주겠나싶은 마음으로 말만하라고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선호의 입에서 나온 소원은 귀요미만큼이나 끔찍한 말이었다. 그때 그 오빠야를 한번 더 불러달라니, 내 흑역사를 다시 재연하라니.....
그것말고 다른 소원은 없냐며 애절하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것말고는 없어라는 말뿐이었다.
"싫으면 어쩔 수 없지....대신 그럼 나도 계속 귀요"
"할게!! 할려고 했어! 지금 할려고,
그래서 말인데 우리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지않을래?"
결국 빈 과학실에서 오빠야를 끝까지 완창하고야 김여주라는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당분간 선호 너의 얼굴을 마주하기는 힘들것 같구나..
자리를 바꾼다는 담임의 말에 유일한 친구인 소정이와 떨어지는게 아쉬워서 인상을 한껏 쓰고 있었는데, 바뀐자리에 내 이름옆에 나란히 선호 이름이 써져있는걸보고는 소정이에게 어서 자리를 옮기라며 가방을 싸는 걸 도와주었다. 갑자기 태도가 변한 내 모습에 소정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하는 걸 봤지만, 우리 우정은 이런거 아니겠니.
"여주랑 짝이네, 좋다"
심장에 무리가 올만한 미소를 지으며 좋다고 말을 하는 선호의 모습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선호가 내가 좋다고 했어..엄마 딸 출세했어.
선호는 나와 비슷하게 공부에는 크게 흥미는 없는거 같아보였다. 열심히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서 잠을 청하거나 내게 장난을 걸어오곤 했다. 너랑 짝을 하면 열심히 공부하는 잘생긴 너의 옆모습만 보게 될 줄알았는데, 이렇게 자꾸 귀여운 모습까지 보여주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몰라...
오늘따라 더 지루한 영어수업에 흐릿해지는 시야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갑자기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손길에 눈을 반쯤뜨며 선호를 보는데, '나 심심해 놀아줘'하고 말을 하는 모습에 감겼던 눈을 번쩍떴다.
심심하다던 선호가 하자던 게임은 끝말잇기였다. 끝말잇기라니 어쩌면 게임도 너처럼 이렇게 귀여운 것만 하니.
일기장-장독대-대나무-무지개-개나리
[리모컨]
개나리라고 적는 내 손이 무섭게 이어서 리모컨이라고 적는 선호였다. 리모컨이라니, 선호 너 어렸을때 끝말잇기 좀 해봤구나.
컨..컨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뭐가 있지...컨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않아서 온 집중력을 다해서 머리를 굴리는데,
"김여주, 방금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단어 말해봐"
"네?"
"너 또 딴짓했지?"
'아닙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방금 아주 강조하셨던 단어가"
"너 답 못하면 바로 복도행이야"
"그게...어....컨디션!!!"
선생님의 말을 듣지도 않았지만, 끝말잇기를 하느라고 못들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어서 뜸을 들이고 있는데, 그때 마침 생각이 나지않던 컨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생각이 나서 기쁨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내 말에 반애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소정이는 머리에 손을 돌렸다. 이마를 짚으시던 선생님은 '김여주 복도로'라고 조용히 말을 하셨다.
변명의 여지도 없었기에 죄송합니다하고 짧게 인사를 드리며 복도로 나왔다. 아휴 김여주 거기서 컨디션을 외치기는 왜 외쳐가지고. 뒤늦게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머리를 치고 있는데 뒷문이 열리면서 선호가 나왔다.
"너 왜 나와? 혹시..화장실 가려고?"
"너랑 같이 벌서려고,
같이 게임했잖아
내가 먼저 하자고 했고"
내 옆에 서서 손을 들고 있는 선호의 모습을 보니, 팔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의리도 엄청나게 같이 벌도 서다니, 나와 이소정사이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우정이야.
수업이 끝날때까지 손을 들고 벌을 섰지만,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질 줄 몰랐다. 벌서는게 이렇게나 행복한 일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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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무슨일이에요!!!!! 조용히 묻힐줄 알았던 글을 읽어주시는분이 계시다니....
감동받아서 한편 더 가져왔습니다.ㅜㅠㅜ
이번글도 정식 연재는 아니고 그냥 쓰고 싶을때 올리는 형식이 될거에요
ㅜㅡㅜㅡ다시 한번 읽어주신분께 감동입니다ㅠ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