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더워서 마냥 짜증 나기만 했던 그 아침의 공기가,
지금 나에게 새로운 희망과 설렘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02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자고 일어났더니 10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는 게. 하지만 사실임에는 분명했다. 10년 전과 똑같이 내 방의 벽지는 분홍색이었고 머리맡에는 김종현이 초등학생 때 뽑아줬던 인형이 (다 낡았지만 매우 아끼던 애착 인형이었다) 있었으며 문고리에는 아침에 갈아입기 편하게 교복이 걸려 있었다. 모든 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아직 등교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시간 위에 조그맣게 자리 한 날짜는 2017년 5월 30일을 표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손에 쥐게 된 옛날 폰이 이질적이었으나 이마저도 눈물 나게 반가웠다. 교복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니 엄마가 10년 전의 얼굴 그대로 식빵 위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잼을 발라서 우유와 함께 건네주었다. 대충 끼니를 때운 후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현관문을 열자, 맞은 편에서 문을 열며 나오는 김종현이 보였다.
“좋은 아침”
아침 인사를 건네오며 환하게 웃는 김종현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얼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슬픔, 반가움, 서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여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종현아-”라고 이름을 부르며 김종현에게로 달려가 안기고 말았다. 내가 갑자기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김종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당황해 했다.
“야, 왜 이래. 너답지 못하게 성은 왜 떼고 불러?”
“…보고 싶었어.”
“어제도 봐놓…. 야 울어?”
물기가 어린 내 목소리에 나를 떼어내 내 얼굴을 확인한 김종현은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가락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김종현은, 한없이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왜 울어, 응?”
“…”
“울지 마, 아침부터 울면 어떡해. 하루의 시작은 기분 좋게 보내야지”
그게 아니라- 내가 널 10년 만에 봐서 너무 반가워서 그래. 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 그냥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엔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종현과 함께 교실에 도착했을 때, 따분하고 지루한 고3 생활이라 다시는 겪기 싫다고 투정부렸던 내가 떠올랐다. 모든 건 그대로였고, 김종현과 나에게 인사를 건네 오는 친구들도 모두 변함없이 10년 전 얼굴 그대로였다. 담임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두 좋은 아침- 다들 자리에 앉아라”
내 기억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10년 전에 우리 반 학생이 누구였는지 정도는 대충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례 시간에 담임과 함께 들어온 저 얼굴은, 분명히 어제까지의 내 인생에는 없던 새로운 얼굴이었다.
“여기는 부산에서 온 전 학생 임영민이고, 안 그래도 고3인데 적응하기 힘들 테니까 너희가 많이 도와줘라. 자기소개 할래?”
“…”
전학생은 좀 내성적인 성격인 것인지, 아니면 떨려서 그런 것인지 자기소개를 하겠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가만히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저으며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전학생은 부반장이 좀 챙겨줘라”
네?! 순간적으로 놀라 본심이 나와버렸다. 아니 반장인 김종현도 있는데 내가 굳이 왜? 물론, 보나 마나 담임은 종현이를 예뻐라 하니까, 종현이에게 귀찮은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시켰을 것이다. 당황해 하는 표정을 감출 수 없어 하니 담임이 왜 불만이라도 있니? 라고 내게 물어왔다. 아, 아니요 라고 대답한 뒤 속으로 담임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전학생이 싫어서’ 라기보단, 단지 기말시험까지 한 달가량 남은 시점에서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났다는 게 싫었다. 내가 이번에 미래를 바꿀 거라면 적어도 국어교사로서의 나는 없을 테니, 원래 내가 10년 전에 준비했던 대로 국제통상학과를 가야만 했다.
“안녕, 난 김여주야”
“어…. 안녕”
조금 귀찮더라도 이왕 하게 된 일 잘해야지. 담임한테 밉보여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반이 홀수라 혼자 앉던 내 옆에 짝이 생기게 되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다만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드는 건,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된 고3 생활이 예전과 마냥 똑같지만은 않기 때문인 걸까
1교시는 미술 시간 이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자습이었다. 국어교사로서 쌓은 경력이 헛되지는 않은 건지 10년 전보다 국어 영역 문제는 훨씬 쉽게 풀렸다. 아까 담임이 내일이 모의고사니 열심히 준비하라고 했던가, 국어는 무난히 1등급이겠네. 문제는 수학이었다. 아무리 문과 수학이라고 해도 오랜만에 인테그랄이니 뭐니 복잡한 수학 기호들을 마주하려니 머리에 쥐가 난다.
“으으…”
나도 모르게 수학 문제로 고민하다가 흘러나온 소리에 옆에 앉은 영민이가 날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그 시선에 나도 자연스레 옆을 돌아봤을 때, 두 개의 시선이 어색하게 마주쳤다. 앓는 소리 좀 냈다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영민이의 표정이 꽤나 귀여웠다.
“나 안 아파. 걱정 고마워”
입꼬리를 끌어올려 빙그레 웃자 똑같이 영민이도 나에게 웃어줬다. 그럼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은데? 부산 사투리를 감추고 서울말을 쓰려고 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 방금 서울 왔어요-’를 여실히 보여주는, 어쩔 수 없이 사투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말투였다.
“아, 이거 어떻게 푸는지 몰라서”
“어디 한번 보자”
문제 한번 보자며 내 옆으로 의자를 가까이 끌어당겨 앉았다. 영민이에게서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자기소개 못 하겠다며 낯 가릴 땐 언제고, 갑자기 훅 들어오네. 몸만 열아홉이지 정신은 스물아홉이었는데, 모처럼 돌아온 열아홉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이번 편은 새 인물의 등장 빼고는 전개가 거의 없네요.. 하핫
다름이 아니라 새로 등장한 전학생을 영민이로 설정했는데 혹시 불편한 분이 계실까 해서요,
불편한 분이 많이 계시면 뉴이스트의 다른 멤버로 바꿀게요! 보는데 난 좀 불편하다, 하시는 분들 계시면 망설이지 말고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