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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때, 어린왕자라는 책을 봤다. 재미가 없었다. 하품만 나왔다. 지루함을 못이겨 책을 덮으려는데 장미가 한아름 그려져 있는 정원과 여우 한 마리, 그리고 어린왕자가 그려져 있는 한 장을 보았다. …예뻤다. 그 곳의 정원이, 그 아름다운 정원보다 한 마리의 여우가.
그 뒤 부터였을 거다. 여우를 좋아하게 된 건. 여우를 좋아한 후 부터 내 방 벽에는 온통 여우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여우를 사달라고 부모님께 조르다가 과장해서 죽을만큼 얻어 맞고 울면서 집에서 쫒겨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동물원에 여우가 있었는데 그게 너무 귀여워서 그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철장을 타다가 동물원 관리자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 탈 없이 고교 생활을 보내는 어느 날,
여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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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
“여우야아.”
“…….”
“여우야!”
“…씨발, 따라와요.”
화끈한데? 진짜 예쁘다, 나만의 여우. 나만의 귀여운 팍스. 여우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밖으로 향했고, 나도 그 여우를 따라 종종 걸음으로 여우를 따라 나섰다. 우리 여우는 뒷태도 예쁘다, 정말.
“저기요.”
“응, 여우야.”
“어제부터 왜 자꾸 여우, 여우하시는건데요?”
그거야 당연히 네가
“여우니까.”
“자꾸 여우, 여우 거리시면,”
“응?”
“대현이한테 이를꺼예요!”
…귀엽다. 바락바락 화내는 것도 어쩜 그리 예쁘지? 근데 대현이가 누구야? 설마 장모님, 장인어른이신가? 어머, 설마. 어떤 자식이 부모 이름을 막 불러 제끼겠어? 예의없게.
“대현이가 누군데, 여우야?”
“여우라고 하지말라니까요!”
“여우야, 나는 방용국이라고해.”
“진짜 대현이한테 이를꺼야!”
그리고서는 폰을 들어 어딘가로 콜콜. 그리고서 찡얼찡얼 통화상대에게 말을 하는 여우. 찡얼대는 거 봐. 진짜 귀엽다. 진짜 내껀데? 내 맘은 붐붐붐붐, 너 때문에 숨숨숨숨 못 쉬어. 난 슬슬슬슬쩍 다가가 너에게 빠져버렸어, 아. 내 스타일에 적합해. 난 네게 반해서 허우적대. 너와 함께라면 언제나 서울 뉴욕 로마 프라하.
“대현이가 할 말 있데요.”
“아, 응.”
진짜 대현이한테 전화했구나, 대현이 안녕?
“헬로, 나이스미츄. 대현리.”
-“…뭐라 쳐 씨부리노.”
포스 쩌네. 이 엉아 벌벌 떨겠다. 아주. 전화기를 귀에서 살짝 떼고 여우를 보며 여우야, 나 전화 좀 진지하게 하고 올게. 기다려, 알겠지? 그러자 살짝 고개를 끄덕끄덕. …누, 누가 좀 나한테 휴지 좀. 나 코피 안나? 나는 거 같은데. …존나 귀엽다. 아쉬움이 남아 여우를 흘끗 흘끗 쳐다보며 벤치에 앉아 폰에 귀를 대고 말을 시작했다.
“네가 대현이냐?”
-“어. 근데 왜 반말 쓰는데, 니?”
“몇살이신데요.”
-“먹을 만큼 쳐먹었는데.”
“나도 먹을 만큼 쳐먹었어.”
-“그건 됐고, 너 준홍이한테 뭐라고했길래 저리 찡얼대노?”
“여우야.”
-“……야.”
“왜.”
-“…니도 그렇게 생각하나?”
어. 맞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야, 니 보는 안목 좀 있네? 와, 반갑다, 야. 이름이 뭐라고? 방용국. 나는 정대현이다. 어, 알아. 야, 우리 언제 한번 만날까. 아니, 여우 보려면 시간 없는데. 지랄까네. 미친, 내가 최준홍 사진 던져 준다. 만나자. …콜. 내가 조만간 연락한다.
정대현, 너 진짜 마음에 들었다. 사진 받으면 지갑에 끼워두고 맨날 봐야지. 아, 기쁘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정말 샤랄라 한게. 올레, 여기는 천국이로구나.
…근데 정대현 너 내 번호 아냐?
아, 오티엘이다. 내가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폰을 여우에게 넘겨주자 내 표정을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정대현한테 욕들은지 알겠지.
“여우야, 여기.”
“대현이가 뭐래?”
“동감한데.”
“씨발, 정대현 도움도 안되는 새끼.”
헐, 여우의 본성인가. 그 섹시한 입에서 나오는 욕짓거리라니. 정말 원더풀, 판타스틱, 언블리버블, 템퍼하는군.
“여우야.”
“아, 뭐요!”
“여우야, 초콜릿 먹을래?”
“초콜릿요? 왜 갑자기?”
뭘 의심스럽게 노려보고 그래. 그냥 네가 초콜릿 먹으면,
“섹시할 거 같아서.”
“…변태!”
…아, 아프다. 그래도 좋다. 내 얼굴에 여우의 손이 닿았다니. 황홀하기 그지 없군. 근데 볼이 정말 얼얼하다. 집에가서 얼음 찜질 해야겠다.
근데, 여우는 씩씩 대면서 걷는 것도 어찌 그리 예쁠까.
-
“여우야 안녕.”
“…몇살인데 계속 반말이세요?”
“19살인데, 여우는?”
“23살.”
“…아, 나보다 나이 많네?”
조금 의외네. 대학생이라니. 조금 어려보이는데. 뭐 어때! 여우는 여우지. 아, 기대된다. 여우는 오늘 뭘 먹고, 얼마나 공부하려나? 옆에서 지켜봐야지. 아, 행복해라.
“왜 자꾸 따라와?”
“존댓말 계속 쓰지.”
“왜? 나보다 나이 어리잖아.”
“그야, 당연히.”
“당연히?”
“존댓말이 더 섹시하니까?”
야, 이 새끼야! 아악! 책 모서리로 찍지마! 아프다고! 맞아야지, 네가 정신을 차리지? 때릴거면 이왕이면 어여쁜 여우 손으로 때려주면 안 아플 것 같은데. …이게!
여우가 남자는 맞구나. 아, 진짜 아프다. 어떻게 인정 없이 책으로 때릴 수가 있지? 내가 손으로 때려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손으로 때려주면 좋았을텐데. 여우의 손으로 맞는 기분은 황홀할거야. 여우의 손이 내 몸에 닿는다니. 아, 상상만해도 온 몸이 화끈하네. 여우는 손이 참 매울 것 같다.
“여우야, 오늘은 무슨 공부할거야?”
“안 해.”
“진짜?”
“어.”
“그러면 나랑 데이트할까?”
“…싫어.”
에에, 데이트 하겠다구? 알았어! 가자! 야, 싫다니까?!
…아싸, 손잡기 성공. 여우 손 왜이렇게 보들보들해? 손잡으니까 나 완전 기분 좋아. 막 두근두근해.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 난 마치. 나 어떻해. 진짜 여우한테 홀렸나봐. 그니까 여우 한 눈 못 팔게 내가 잡아야 둬야지. 어흥.
“근데 여우 이름이 최준홍이야?”
“응, 최준홍.”
“여우 이름 예쁘네.”
“그니까 이름 불러, 여우 하지 말고.”
“싫어.”
왜, 싫은데? 그럼 여우는 여우가 왜 싫은데? 너 때문에. 나는 여우가 진짜 좋아, 그냥 좋아.
“어쩌라고.”
그래서 너도 그냥 좋아.
“있잖아, 여우야.”
“뭐.”
“4살 차이는 궁합도 안봐도 된다던데.”
“그래서?”
“나랑 사귈까?”
-
“여우야 사귀자, 응?”
“싫어.”
내가 고백했을 때, 여우는 가차없이 내 뺨을 또 때렸다지. 아, 아직도 아픈 것 같아. 오빠 마음이 너무 아파, 여우야. 그래, 하긴 튕기는게 없으면 서운하긴하지. 너무 싸보이는 것도 안 좋아. 너무 많이 튕기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여우야. 날 좀 봐, 어딜보니. 왜이렇게 나를 애태우는거야.
“내가 잘할게. 사귀자. 응?”
“시끄러워. 나 공부해야해.”
“내가 원하는 것 다 들어줄게! 나랑 사귀자, 어?”
내가 이렇게 비굴하게 까지 나오는데 안 사귈꺼야? 내가 두손을 꼭 모은 채 빌게. 프레잉. 가슴을 졸이며 난 기도해. 저 하늘에 이렇게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해. 여우야, 제발. 응? 나의 애타는 마음이 안 보이니?
“그래.”
“응? 진짜?!”
“대신 네가 분명 내가 원하는 것 다 들어주는 조건에서야. 콜?”
“응.”
“내 눈 앞에서 띄지마. 그게 내 소원이야.”
여우야, 그 말은 사귀기는 하는데 얼굴은 보지 말자. 이런 말이야? 그러는게 어딨어. 취소할게. 취소하면 되잖아. 안 사귀면 되잖아. 네 얼굴은 꼭 봐야하는 거란 말이야.
“사귀자는거 취소할게.”
“그래? 그럼 그러던가.”
씨익, 웃는거봐. 존나 예뻐. 진짜 여우야. 최준홍, 진짜 뭘 먹고 이렇게 예뻐. 진짜 나는 여우 얼굴만 봐도 완전 행복해. 안 사귀면 뭐 어때. 내가 쫓아다니면 되지. 여우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야, 너 19살이라고?”
“응. 우와, 여우야 드디어 나한테 관심 생겼어? 응?”
“지랄. 망상 금지.”
“에, 그럼 왜?”
“그냥 어느 대학 가는가 싶어서.”
“나? 당연히 우리 여우 가는 대학이지.”
당연한 걸 뭘 물어? 우리 여우 누가 잡아갈지 누가 알아? 불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가서 내가 네 옆에 꼭 붙어서 감시할거야. 우리 여우 못 잡아가게. 우리 여우는 내껀데, 누가 넘 봐? 넘보면 뒷산에 망태 할아범보고 그 사람 잡아가라고 할 거고 산타 할아버지보고 선물 안 주라고 할거야.
“너 공부 잘하냐?”
“응, 나 잘해. 조기졸업 했잖아.”
“니가?”
왜이렇게 놀라? 나 이래뵈도 학교에서 전교 1등 해봤어. 내가 좀 자기 관리가 투철하긴 해. 설마 여우야, 너 나한테 반한거야?
“여우야 오빠 너무 멋있지?”
“멋있기는 무슨.”
그리고 오빠는 무슨 오빠냐며 웅얼웅얼 대는데…. 그게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다고. 여우는 진짜 나를 홀리려는 속셈이었던거야. 진짜 저렇게 유혹해대는데 안 넘어갈 사람 어딨어?
“여우야,”
“그 놈의 여우. 그만하지?”
“그렇게 섹시해도 되는거야?”
… 이, 이게! 내가 우습지? 엉? 아, 여우야. 때릴려면 손으로 때리라고. 응? 손으로 때려, 책으로 때리는 것 보다 행복할거야. 그래, 손으로 열나게 맞아보자, 어? 아악!!! 여우야, 아파! 아프다고!!
“그딴 말 하지마, 알겠어?”
“응, 근데 여우야.”
“뭐.”
“여우 손 정말 예상대로 정말 맵구나.”
진짜 등짝이 화끈화끈해. 나 죽을 것 같아. 여우한테 맞은게 도대체 몇 대야. 뺨 두 대에 등짝 200대는 넘게 맞았겠다. 진짜 뻥 안치고 200대 넘게 맞은 것 같아. 겁나 아프다. 나 아픈데, 피해보상 받아야지, 안그래?
“여우야, 나 아픈데.”
“그래서.”
“피해보상 좀 해줘야겠어.”
“피해보상?”
“응, 그 때 못한 데이트를 하는 걸로 피해보상 땡치자. 콜?”
“노콜.”
“알았어, 콜!”
여우야, 어디가고 싶어? 집에. 영화보러 가고 싶다고? 알았어. 가자! 집에 가고 싶다고. 어머나, 여우야. 그렇게 나랑 여우랑 단둘이 있고 싶은거야? 집에 갈까? 아, 아니. 영화 존나 보고 싶다고.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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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무서운 거 보자고?”
“응. 이럴 때는 공포 영화가 딱이지.”
“나 못 보는데.”
“남자새끼가 그것도 못보냐?”
“…못 볼 수도 있지.”
… 너 좀 귀엽네? 하고는 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여우. 웃는거 처음인 것 같은데. 진짜 예쁘다. 여우는 진짜 웃는게 예쁜 것 같아. 뭐? 웃는거 정말 예쁘다고. …지, 지랄. 어, 여우 얼굴 빨개졌어. 더워? 부채 사올까? 아, 됐어. 영화표 뽑고 올게. 기다려.
“무서운 거 진짜 못보는데.”
무서운 거 보면 여우한테 앵길지도 모르는데. 허허. 여우한테 앵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무섭다고 여우 막 껴안아야지. 아 좋아라♡ 공포 영화도 이런 좋은 점이 있구나. 여우랑 자주 와야지.
“야, 가자.”
“으헤헤헤, 응. 알았어. 으헤헤헤-.”
“왜이래?”
“아니. 여우랑 영화 보러 오니깐 좋아서.”
“염병 끼 떤다. 진짜.”
말투봐. 진짜 험해. 내가 길들여야지. 어린왕자의 여우 길들이기. 프로젝트. 미션 여우의 예쁜 입에서 예쁜 말만 나오게 만들기. 도전. 근데 여우는 욕하는 것도 예뻐서 괜찮은데. 욕 쓰면 되게 섹시해서 좋아. 이 미션은 버려야겠어.
“여우야 우리 자리 어디야?”
“E열 22, 23번.”
“아, 저기네.”
아, 긴장돼. 왜 하필 제일 구석이야. 벽에서 막 손 튀어나오면 어떻게 해. 나 무서워서 어떻게 영화보니. 여우야, 니가 안에 들어가면 안될까? 그냥 앉아라.
…네.
*
“으아아악! 여우야!”
“…….”
“저, 저거 뭐야! 뭐야!”
못보겠어. 여우나 안아야지. 두 팔을 뻗어 여우를 꽉 껴안고는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여우는 움찔하더니 별 말을 안한다. 에, 내 팔 안 쳐내네. 아, 좋다. 여우는 은근히 어깨가 넓네. 좋다. 이젠 하나도 안 무서운 것 같아. 영화보다 너보는게 더 좋은 거 같아. 네가 좋아, 정말.
고개를 들어 살짝 여우를 쳐다보자 영화에 완전 푹 빠져있다. 헤에, 여우 진짜 예쁘네. 이마도 예쁘고, 눈썹도 예쁘고,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그래도 입술이 제일 예쁘네. 우리 여우는. 내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지 고개를 숙이고 나를 쳐다보는 여우를 빤히 쳐다보다 턱을 살짝 잡고는 입을 맞췄다.
…씨발, 진짜 달아.
*
“여우야.”
“…왜.”
“좋았지?”
“…뭐, 뭐, 뭐래!”
“좋아서 거부 안한거면서.”
“아니거든?”
아니기는. 얼굴 완전 홍시 됐어. 어쩜 얼굴이 발그레진 것도 그렇게 예쁘니? 부잣집 딸래미 시집간다고 연지곤지 찍은 것 같잖아. 진짜 예뻐.
“여우야, 나랑 사귀자.”
“…흥.”
내 말에 흥, 하고 콧방귀를 끼더니 휙, 하고 뒤 돌아서 영화관을 나가버린다. 흥이라고 했지? 진짜 뭘 먹고 그렇게 귀여운거야? 응? 누가 그런거 가르쳐줬을까. 그런데 더욱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건 뒷모습이 너무 섹시하다는거야. 우리 여우는 뒷모습도 어찌그리 예쁘데?
“여우야, 같이가!”
“됐거든?”
“아, 같이가!”
싫다고! 그리고서는 총총총 뛰어간다. 뒷태 겁나 예쁜 여우씨 같이가요! 뭐? 별 말 안했어, 밥 먹으러 가자. 사줄게.
-
영화관을 벗어나 시내로 나와 돌아다니다가 스파게티 집으로 들어서자 여우가 여기 대현이가 일하는데라며 웅얼댄다. 대현이? 설마, 내가 바라고 바랬던 그 대현? 오, 만나면 사진 받아야지. 어떻게 해서든. 자리를 잡고 앉자 웨이터가 와서는 주문대를 건내려는데 여우는 됐다는 듯 손으로 제스쳐를 취하고는 토마토 스파게티 2개 주세요. 라고 말을 한다. 웨이터는 토마토 스파게티 2개 주문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뒤돌아나갔다.
“여우는 먹는 것도 어쩜 그리 예쁘냐.”
“…다치고 머거라, 어?”
아, 발음 새는거봐. 엄마 누가 나 좀 말려줘. 안그럼 이 예쁜 여우를 확 납치해갈 것 만 같아. 여우야 입가에 뭍은 스파게티 소스 좀 어떻게 해줘. 나 이성 잃으면 변태 밖에 더 되겠니.
“여우야 이, 입가 좀 닦을래?”
“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건내자 휴지는 본 척 만 척 하면서 혀를 내밀어 소스를 먹는다. …아, 씨발. 존나 섹시해. 더 보면 진짜 미칠 것 같아. 여, 여우야 나 화장실 다, 다녀올게. 어.
*
“아아아악!!!! 미칠 것 같아!!! 저 여우를 어떻게 해야해?!!”
“아, 좀 조용히 좀 해요.”
“아아아아아악!!!!!!”
“거기, 조용히 좀 해라. 집중이 안되잖아요!!! 네?”
아, 누구야! 누구는 여우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주위를 둘러보는데 화장실 칸에서 누가 문을 박차고 씩씩 대며 나온다. …바가지머리. 씩씩대는 꼴이 꽤나 웃기다.
“씨이, 당신 때문에 내 하나뿐인 기회가 날라갔어.”
이 기회는 언제 올지 몰라. 어흐어어엉. 하고는 눈물샘을 터트린다. 이, 이 인간 왜이래. 진짜. 별게 다 꼬이네. 한숨을 푹, 쉬고 있는데 그 사람은 눈물을 옷가로 쓱쓱 닦더니 두고봐요! 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인가보다. 이름표를 보는데….
정대현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헐, 정대현?
“반갑다, 정대현. 나 방용국이야!”
“니가 방용국이가? 반갑다!!”
…정대현이 누구더라. 분명 아까 입밖에 나왔던 이름인 것 같은데.
“니 내랑 전화 했었다이가.”
“어, 어.”
언제 했을까.
“여기 만날 줄 누가 알았겠노.”
“어, 그러게.”
“최준홍한테 번호 얻을라고 했는데 금마가 안준다고 빽빽 소리질러가지고. 연락 못했다.”
…아, 알겠다. 그 정대현이었구나. 아, 드디어 알았다. 누군가했네. 기억력 나쁜 건 알아줘야해. 방용국. 근데 번호 안 준다고 빽빽 소리치는건 당연하지 않을까. 여우한테 내 번호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여우가 알겠니.
“여우한테 내 번호 없는데.”
“아닌데. 있다. 방씨 니 밖에 더 있을까.”
있을 수도 있지.
“진짜? 난 없는데.”
“둘이 뭐해?”
그러게. 여우야, 화장실 앞에서 뭐하고 있었던거지? 우리 여우 언제 왔니. 진짜 예쁘지, 우리 여우는. 팔짱을 끼고 대현이와 나를 쏘아보는데 그 눈빛이 얼마나 섹시한 지 몰라. 넌 몰라. 완전 10점 만점에 10점. 템퍼해. 정말.
“여우야, 왜 이렇게 예뻐.”
“됐어, 나 내버려두고 얘랑 얘기하고 있었던거야?”
그리고는 정대현을 휙 쏘아보고는 화장실을 벗어난다. …정대현, 우리 여우 왜저래? 몰라. 최준홍 왜이렇게 예뻐. 응? 여우 왜이렇게 새침해. 진짜 예뻐.
정대현, 사진은 나중에. 어. 그리고 계산 좀 부탁해.
나는 여우 사냥 하러 가야지. 나만의 여우를 잡으러.
-
“여우야.”
“…….”
“여우야, 예쁜 내 여우야.”
“대현이랑 더 있지 그랬어.”
단단히 삐졌구나. 우리 여우. 내가 미안해. 응? 이제 여우만 볼게. 여우 질투 났으면 말을 하지. 여우도 혹시 나한테 마음 있었던거야? …아니거든?! 에이, 부정하지마. 다 알아. 흥.
“내가 잘못했어. 내가 뭐해줄까? 다 들어줄게. 응?”
“다 들어준다고?”
“응.”
하, 어쩔거야. 방용국. 우리 여우 너무 예뻐죽겠어.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하는 저 자태를 봐. 진짜 안 빠지면 이상한거야. 세상 사람들이 우리 여우의 매력을 아직까지 몰라서 다행이야. 여우의 매력을 내가 먼저 알아서 다행인거야. 여우는 내꺼야.
“정했어.”
“뭔데?”
곰곰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싱긋 웃으며 생각 났다면서 나에게 오라고 손 짓한다. …유혹의 손짓이다. 손짓하나도 정말 아름다워.
내가 다가가자 키발을 들고는 이마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서 하는 말이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엄마 나 계탔어요.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여우가 나한테 뽀뽀해줬어요. 나 산타할아버지가 나한테 선물 안줘도 마냥 행복할 것 같아. 완전 좋아! 여우야 완전 내가 너를 좋아해. 근데 뭘 잘 부탁한다는거지?
…근데 더 중요한 건 나 머리 안 감았는데.
-
“여우야, 여우야.”
“뭐.”
“나랑 사귀자.”
“꺼져.”
“오늘은 또 왜 앙탈이야? 응? 사귀자니까.”
내 말에 여우는 활짝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든다. …아, 또 거절당했어. 오늘만해도 몇번째 거절이야. 26번째 거절이네. 아, 아니다. 이거까지 합해서 27번째. 도대체 뭐가 문제지? 어제는 분명 자기 입으로 잘 부탁한다고 해놓고. 여우는 진짜 나를 애타게 만드는거야. 울고싶어. 나 정말 애타! 왜이렇게 나를 밀고 당기고 하는거야.
“방용국.”
“응, 왜. 여우야.”
“너 짜증나.”
그리고는 오후 수업 있다면서 미련없이 가버린다. 아, 미련 없기는. 하긴, 저렇게 쿨한게 매력이지. 너란 여우는 정말 쿨쿨쿨. 근데 내가 짜증난다니. 벌써 내가 싫어진건가. …뭐ㅡ, 나를 싫어해도 상관은 없는데. 싫어하는 것도 하나의 관심 아니겠어?
그나저나 우리 여우가 벌써 보고프다.
-
“여우야, 이제 수업 끝난거야?”
“뭐, 뭐야. 너 왜 여깄어.”
“우리 여우 마칠 때 까지 기다렸지.”
“이 추운데?”
“응, 여우 보고파서.”
내 말에 여우는 허둥지둥대며 자기 목에 둘러져 있는 목도리를 둘둘 풀어서 내 목에 둘둘 감아준다. …꽤나 감동이다. 그리고는 자기 손에 어여쁘게 씌어져있는 장갑을 쏙쏙, 빼더더니 내 손에 낑낑대며 씌어준다. 그리고는 허리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나를 쳐다보며 만족한다는 듯이 헤죽 웃는데 그게 그렇게 예쁘다니까.
“여우야, 아직도 추운데.”
“뭐? 어디라도 들어갈까? 몸 좀 식히자.”
“아니, 필요없어.”
“춥다며.”
“여우가 안아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침묵. 역시 이건 아니었나. 우리 여우 표정 굳은 거봐. 또 뺨 맞는거 아니야? 여우한테 맞으면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아프긴 매우 아프니까. 어서 말 돌려야겠다.
“여우야, 그냥 저기 카페 들어가…자?”
“…….”
“여우야?”
오, 신이시여. 내가 당황한 듯 버둥대자 허리에 두른 두 손을 꽈악 쥐는 여우. 그리고서는 내 가슴팍에 고개를 파뭍는다. 어, 안되는데. 내 심장소리 다 들릴텐데. 나 혼자 미련하게 쿵쿵 뛰고 있는 심장소리를 네가 들으면 너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냥 생각하기 싫어. 이대로가 좋아. 나는 허공에 떠있는 팔을 내려 여우를 꽉 껴안았다. 좋아. 따뜻해, 정말.
“이, 이제 안 추워?”
“응. 따뜻해.”
“다행이다. 그니까 이제 떨어져.”
“에이, 분위기 없게.”
안 떨어져? 아잉, 여우야. 나 아직 추워요. 윽, 귀여운 척 하지마. 여우야 귀여운 척이 아니라 방용국은 원래 귀여워요. …징그러워, 바보야. 그리고서는 내 가슴팍을 홱, 밀쳐낸다.
“여우야, 어딜 만져?”
“뭘, 어딜 만져. 아무데도 안 만졌어!”
“내 순결. 여우야 나 책임져.”
“뭐?”
“책임져! 응? 나는 아직 순결한 남잔데.”
“그러는 너는!”
“나? 나 왜?”
“나한테 뽀뽀했잖아!”
…아, 귀여워. 어떻게해. 나? 진짜 미치겠어. 그니까 여우가 한 말을 해석하면 너가 나한테 뽀뽀했으니까 나 책임져. 이런거네? 우리 여우 왜이렇게 귀엽니, 진짜. 그니까 여우가 한 말을 풀어 해석하면 나는 널 책임지기 싫으니까 네가 날 책임져! 이런거잖아. 어쩜 여우는 자기 닮아서 예쁜 말만 내뱉을까.
“그래, 여우야. 내가 너 책임질게.”
“그, 그런 뜻 아니거든?”
“아니기는, 얼굴 다 빨개졌어.”
“이, 이씨. 고백을 할거면 장난식으로 하지마! 무드있게 하란 말이야!”
…아, 그래서 우리 여우가 뚱해있었던거구나? 진짜 귀엽기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워서 얼굴 시뻘개진거봐. 불여우다. 잘 어울린다, 불여우. 아니, 그래도 아무리 장난식었다지만 난 언제나 진지했다고.
“최준홍.”
“뭐?”
“진짜 좋아해.”
“…….”
“진심이야, 거짓인 적 한 번도 없었어.”
“…….”
“나랑 사귀자.”
“…누, 누가 무드있게 하랬지 느끼하게 하랬어?!”
“그래서 받아줄거야 말거야!”
몰라, 이 바보야!! 여우야, 말해주고 가야지! 몰라, 몰라, 말 안해!
여우야, 진짜 좋아해.
Fin
外 ( 작은번외 ! )
“준홍아, 준홍아-.”
“이씨, 왜!”
“우리 준홍이 삐졌어?”
내가 준홍이의 두 볼을 잡고 쭉쭉, 늘리자 인상을 쓰며 내 손을 내팽겨친다. 헐, 우리 준홍이 요즘 왜저러지. 어제는 나한테 뽀뽀까지 해놓고는. 뭐, 내가 길바닥에 앉아서 징징대서 어쩔 수 없이 해준 거긴 하지만. 받은건 받은거잖아. 그래, 거기다가 어제는 폭죽이 펑펑 터지는 멋진 야경에서 무릎 꿇고 같이 살자고 커플링까지 교환했는데. 뭐가 문제지. 커플링이 별로였던걸까.
“준홍아, 커플링은 오빠가 돈 더 많이 벌면 더 멋진걸로 사줄게.”
“그건 당연한거지. 평생 이거 끼고 살라고?”
“준홍이 오빠랑 평생 살고 싶은거구나! 알았어! 더 멋진 걸로 사줄게.”
“평생은 무슨! 마음에 안들면 뻥 차버릴거야. 흥.”
“그럼 내가 우리 준홍이 또 졸졸 쫓아다니면 되지.”
그럼 커플링이 문제가 아니라는거네. 그래도 커플링은 일단 미안해. 네가 도라에몽 좋아한다고 대현이가 그랬는데. 도라에몽 반지가 없어서 도라에몽이랑 비슷한 뽀로로반지 샀어. 그래도 귀여운데. 그 반지 값이 2000원이라는 건 비밀로 해두자. 알겠지? 그래도 준홍이는 좋아했다고! 귀엽다고.
“너, 왜 내 이름 부, 부르는거야?”
“그럼 이름 부르지 뭐 불러?”
“…이, 이씨이. 그럼 예전에는 왜 그랬는데에.”
“응?”
“예전에는 왜 여우라고 불렀냐고! 이 멍청아!”
“흐응, 우리 준홍이 여우라고 안 불러줘서 삐진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알았어, 불러줄게. 불러줄게. 여우야.”
“…돼, 됐다니깐.”
우리 여우는 왜이렇게 귀여운지 몰라, 응? 그것 때문에 내내 입삐죽 내밀고 툴툴댔다 이거지? 진짜 귀여워서 어떻게해. 응? 진짜 우리 여우 너무 사랑스럽다. 여우야, 자주 불러줄게. 여우야, 나만의 예쁜 여우야.
진짜로 Fin
다..달달해영 ? ㅋㅋㅋㅋ 항상 분위기 잡는 글만 쓰다가 이런거 쓰려니까 웃기닼ㅋㅋㅋㅋ 용구기형이 연하면 어떨까해서 써봣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똑같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