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BLUE NIGHT
A
惡夢
- 악몽 -
센티넬들이 반론을 일으킨다는 무근거 소문이 들,
딱히 상관없는데. 그냥 이대로 차라리 지구가 멸망이나 했음 좋겠다. 너랑이는 무료하게 타자를 두드리다 티브이를 껐다. 너랑이는 항상 그랬다, 인생이 따분하고 무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인간관계도 굉장히 복잡하다고 생각해 스스로 왕따를 자초했다. 지금 너랑이 하고있는 과제마저 너랑이는 귀찮고 할 게 못 된다 생각했다. 드디어 과제를 다 끝낸 너랑이는 피곤해진 눈을 손으로 문질렀다. 센티넬, 가이드따윈 나와 관계 없을 줄 알았던 ##너랑은 매일같이 방송해주는 센티넬, 가이드 소식에 이젠 그 글자만 들어도 질색팔색을 했다. 사실은 ##너랑은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니었다. 지구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센티넬이든 가이드든 하나씩 정해진다던데, 너랑이는 놀랍게도 검사결과에 따르면 가이드도 센티넬도 아니었다. 그러니깐, 너랑이는 애초에 자기자신이 왕따를 자초한 것도, 세상을 따분하게 생각한 것도, 저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을 했다.
어릴 적 예닐곱의 너랑이는 그래도 자기와 다른 세상사람들과 어울려 놀기 위해서 이모저모 노력을 많이 했었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책도 읽었고(어린이용 센티넬, 가이드에 관한 책이었다.), 부모에게 많이 물어보기도 물어봤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격차를 따라잡기엔 너무 벅찼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뛰어갔지만 다달았을 때엔 또 멀찌감치 그들이 떨어져있었다. 그렇게 수백번을 반복한 너랑이는 패배감, 절망감 등을 수없이 느꼈고, 더이상은 자신이 힘들기 싫어 그때부터 노력따윈 안 하도록 했다.
무료한 오후, 너랑이는 얼마 전 친구가 사준(너봉의 인생에서 정말 몇 없는 친구 중 한 명이다.) 책을 읽고 있었다. 딱히 끌리는 소재의 책은 아니었다. 로맨스 소설책이었는데, 센티넬과 평범한 사람이 만나서 연애를 하다가 평범한 사람이 알고보니 가이드였다는 내용. 여기에 나오는 센티넬은 맹목적인 사랑을 하는 성격을 가졌었다. 거기서부터 너랑은 따분함을 느꼈었다. 내용이 점점 막바지에 닿을 때 유리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 최민기 진짜......
왠 남성의 소리었다. 별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줬나보다. 드디어 죽는 날인가. 책만 꼭 쥐고있던 너랑이는 소리의 근원이 되는 방 쪽을 쳐다봤다. 문이 천천히 열리며 사막여우처럼 생긴 남성이 나왔다.
괜찮으세요?
......
많이 놀라셨죠, 친구랑 장난치느라요.
......
창문이랑 부셔진 곳은 제가 수리해드릴,
안 죽여요?
네?
남자는 당황했다. 얼굴이 단 번에 들어났다. "뭐, 뭐라고요?" 죽여주세요. 남자가 되물었지만 너랑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남자는 그런 너랑을 쳐다봤다가, 살짝 미간을 지푸렸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남자였다.
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을 죽이진 않아요.
.......
뜬금없지만 제 이름은 황민현이에요.
민현은 책상 위에 있던 공책과 연필을 아무렇게나 쥐더니 무언갈 끄적였다. "정말 죽고 싶을 때, 여기로 연락해요." 공책에 민현이 적은 건 다름이 아닌 자신의 번호였다. 휘갈겨 쓴 필체가 눈에 띄었다. 민현은 그러더니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민현이 전화를 건 곳은 수리센터였다.
여보세요? 여기 xx동 큰 사거리 은행 앞 주택인데요, 창문이랑 벽이 부셔지는 바람에 전화 드렸습니다.
민현의 목소리는 꽤나 다정한 목소리였다. 수리센터와 통화를 하며 너랑이 지켜본 민현은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너랑이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건지 민현은 통화하면서 너랑. 쪽을 바라보며 짐짓 웃음을 보여줬다 민현의 웃음에 너랑이는 눈만 연신 깜빡였다.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그저 눈만 연속적으로 깜빡였을 뿐이었다. 통화를 끝마친 민현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더니 이젠 지갑을 꺼내어 돈을 책상 위에 얹었다. 다름이 아닌 수리비였다.
이거 수리비예요. 수리공 아저씨 오신다니깐요, 그때 드림 돼요. 알겠죠?
......
죽여달라는 말 외엔 말을 안 하시네요.
...센티넬이에요?
충동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너랑도 모르게 말이 나와버렸다. 민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센티넬이에요. 그나저나 목소리도 예쁘신데 왜 그런 부정적인 말 밖에 안 하세요." ...그냥, 죽고 싶으니깐요. "또, 그러신다. 혹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해요. 못 말 할 거 같아요. 너랑이의 말에 민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민현이 본 너랑의 얼굴엔 수만가지의 고민들이 듬뿍 담겨있는 거 같았으니깐. 민현은 알겠다며 너랑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쭈구렸던 무릎을 펴고선 짧게 목례를 했다. 너랑이는 무릎을 잔뜩 오므려 고개만 민현을 따라갔다. 민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복도가 왜인지 서늘하게 느껴저 몸을 잔뜩 움츠린 민현이었다.
민현이 나간 후, 수리까지 전부 끝낸 너랑이는 자신이 왜 그 이유를 말하지 못하였는지 생각했다.(평소대로라면 자신은 센티넬도, 가이드도 아니라고 잘만 말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진 너랑이는 그저 잠을 자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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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방 안 히죽거리는 웃음 소리만, 서늘한 웃음 소리만 들려왔다. 눈을 뜬 너랑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검다, 앞을 잘 볼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휩쌓인 너랑이는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어느 여성과 남성이 너랑을 향해 걸어와 손을 꼬옥 잡아준다. 따스함을 느낀 너랑이는 그들에게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눈을 떴을 땐 온통 피로 범벅된 세상 뿐이었다.
허억, 헉. 숨이 가파르게 쉬어졌다. 어깨가 들썩 거리고 얼굴은 땀으로 범벅됐다. 악몽을 꿨다. 손과 눈 밑이 파르르 떨려왔다. 왜인지 몸에 한기가 서렸다. 입술은 말라있었다. 너랑이는 이불을 꼬옥 쥐곤, 마음을 진정시켰다. 피로 범벅된 세상은 말로 듣는 거보다 더 참혹했으며, 잔인했다. 요즈음엔 꿈을 꾸지 않아 잠자리가 좋았는데... 너랑이는 왜 악몽을 다시 꾸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저번과는 다르다. 여성과 남성이 너랑을 잠시나마 보듬어줬다는 면에서 내용이 달랐다. 또다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너랑이었다. 이런 꿈을 꾸게 된 이유가 자신은 이 세상사람들과 달라서라고 생각한 너랑이다.
DEEP BLU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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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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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검붉은 빛으로 가득찼다. 달 역시도 검붉은 빛을 띄우는 듯 했다. 민현은 자꾸만 제 머릿속에 흐릿하게 생각나는 너랑에 미간을 찌푸렸다. 절 보며 자꾸 죽어달라는 말을 하는게, 유난히 누군가를 떠올렸다. 저릿해오는 머리에 민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앞서가던 민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민현이 괜찮다며 웃어보았다.
또 생각나?
...뭐가?
네 표정 보니깐 그러는 거 같아서.
......아니야.
그래, 그러면 됐지. 생각 하지마, 걔.
민기는 발걸음을 멈추곤 느릿하게 걸어오는 민현을 기다렸다. "아마도, 그날도 이런 날이었다지?" ...응, 맞아. 민기는 제 옆에 온 민현에게 짐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날도 오늘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었던 날이었다. 딱 보아도 민현의 얼굴엔 걱정이 드러나 보였다. 그걸 알아챈 민기는 민현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줬다. 그날에 그 일만 없었다면, 완벽한 날이었을 것이다. 민현은 한숨을 푹 쉬곤 민기와 같이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날에도 운수가 안 좋았다. 민기와 장난을 치다가 한 집의 유리를 깨트린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도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었다. 근데, 너랑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죽여달라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 애의 주변에 검붉은 빛으로 가득 차더니, 그 애의 눈은 초첨없는 눈으로 변했다. 자신은 맞는 센티넬을 찾지 못하는 가이드이니, 최하등급의 가이드이니깐 자신은 죽여달라는 말이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 민현이 그 집을 도망치듯 나온 그 순간 그 집은 불에 휩싸인듯 보였고, 그 애의 집 창문에선 검은 그림지가 이글거렸다. 검붉은 빛이 그 집을 삼켜먹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그날 이후로 민현은 1주동안 악몽에 시달렸고, 밤엔 잘 나가질 못했다.
민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또 떠오르는 기억을 민현은 잊으려 고개를 저었다. 그런 민현을 바라보던 민기는 민현의 손을 잡았다. 자신이 지금 민현의 옆에 있는 유일한 가이드이니깐,(센티넬들은 불안에 떨 때, 능력이 발현 될 수 있어 가이드들은 그런 때에도 가이딩을 해야한다.) 민현에게 안정을 주기 위해서 그랬다. 가이딩을 통해, 민현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
괜찮아, 민현아.
......
네 잘못이 아니었잖아.
...내가 죽인 거 같아. 내가 그때 보듬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니야, 네 잘못.
또다시 떠오르는 기억에 민현은 식은땀을 흘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이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짐작도 안 갔다. 집에 도착해서야 진정되는 마음에 민현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쉬어, 오늘 고생 많이했잖아." 응... 먼저 잘게. 민현은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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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달이 호수에 잔잔히 비춰졌다.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달빛이 반짝였다. 잔잔하게 일렁이던 물결이 점차 파동이 세지더니 호숫가에 비춰지던 달이 반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곤 민현 주위로 괴상한 그림자가 모여들어 민현의 그림자를 삼켰다. 민현의 그림자가 있던 자리엔 진한 농도의 끈적이는 피가 고여있었다. 민현은 그대로 그쪽으로 넘어졌고, 민현의 몸엔 피로 범벅이 되었다. 허공에 죽여달라는 말이 울려퍼졌고, 민현이 바라보는 하늘에는 붉은 빛으로 가득찼다.
허억!
악몽이다, 또 악몽을 꾸었다. 민현은 상체를 일으켜 식은땀을 닦았다. 민현의 소리를 들은건지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오는 민기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민기가 보였다. 많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민현의 방의 불을 키곤 민현의 옆으로 갔다. "무슨 일이야?" 또 꿨어, 악몽 말이야. "...하아. 너가 잘못한 거 아니라니깐." ...그래도, 자꾸만 죄책감이 드는 걸 어떡하냐고. 민현의 목소리에 물기가 머금어졌다. 울컥했다. 제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악몽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도대체 왜인지 몰랐다.
나도 알아, 안다고... 내 잘못이 아닌 걸.
.......
근데 어떡해, 자꾸 생각이 나잖아. 내가 그때 잠시 도움을 줬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겠지.
......
...나는, 나는 말야, 평생 이 기억을 못 떼어낼 거 같아.
민현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악몽을 꾸고 나선 늘 그랬다. 늘 그렇듯 민현은 울었다, 펑펑. 민기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민현의 옆자리를 지켜줄 뿐이었다. 민기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민현을 악몽에서 꺼내줄 기량이 없기 때문이었다. 민현의 방 안은 민현의 울음 소리로만 매꿔졌다.
그날은 유난히 밤이 깊고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