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0214, 더 파라디(The paradis) # 07.
w.규닝
07. 태풍의 눈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일찍이 눈이 뜨이는 날, 그게 아니면ㅡ 애초에 잠이 오지 않아 유난히도 수십번 자리에서 뒤척이게 되어 뜬 눈으로 새벽을 지새우는 밤. 딱히 불면증이라고 정의할 순 없지만, 정말이지 뜬금없이도 그런 날은 갑작스레 누군가를 찾아온다. 미처 내리지 못한 블라인드 새로 스며오는 새벽의 찬 공기와 어스름한 기운이 내내 눈꺼풀 위로 내리앉은 그런 밤이었다.
그 날은 여섯시, 성규의 방에 불이 켜졌다. 기분이 내키면 오후까지 자는 게 버릇이던 성규가 붉게 충혈된 눈을 천천히 치켜떴다. 유독 잠이 오지 않던 새벽, 그 날이 꼭 그런 날이었다. 사실 그런 날은 새벽 전후로 느껴오는 낌새가 어딘가 불안하기 마련이다. 몸을 뒤척이던 내내 베개 맡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으로 울어대던 휴대폰이 뜨겁게 달아올라 뒤집어져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됐다. 성규가 천천히 일으킨 몸을 끌어 문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날짜를 기억하려 고개를 든 달력에는 어제까지도 그려져 있는 빨간 동그라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칸의 네모 안에 두개의 동그라미. 지난 달 달력은 온통 저가 그려온 하나의 동그라미로 도배가 되어있었다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1월의 달력은ㅡ같은 크기의 동그라미 두개가 칸을 가득 채워오고 있었다.
남우현이 곁에 머무른 흔적. 눈을 뜨자마자 우현을 생각한 건 아마 오늘이 처음. 거기까지 생각한 성규가 도무지 올라가질 않는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전화나 받고 일어난 새벽ㅡ가장 먼저 생각해 낸 사람이 고작 남우현이라니.
고요한 집 안에서 펜 뚜껑을 여는 소리만 적막하게 들려왔다. 성규가 오늘의 칸에 하나의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넣은 후, 25라는 숫자 위로 빨간색을 덧칠했다.
문은 열어두기로 했다. 그 녀석은 며칠이고 계속 찾아올 게 뻔하니까.
* * * * *
"남우현이 숨기고 있는 여자, 우리 동네 사는 것 같다."
호원이 입 안에 든 만두를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아까 저 앞에서 봤거든, 그새끼. 저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든 동우에게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뭐? 진짜?
"우와. 예뻤어?"
"아니 같이 있는 거 말고. 남우현 혼자 걸어가던데, 지 몸통만한 이불 들고."
"이불?"
엉. 호원이 입 안 가득 쑤셔넣은 만두를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젓가락으로 교묘하게 만두피만 벗겨내고 있던 동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이불을 들고있었다고? 호원이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좀 바보같았어.
"이불까지 들고 찾아가는 거 보면 보통사이가 아닌가봐."
"우리 둘보다 진도 빠르네."
"그러게."
난 지금 수연이랑 키스까지. 호원이 남은 손가락으로 저의 입을 툭툭 쳤다. 그런 호원의 모습을 관찰하던 동우가 입을 쩌억 벌리며 혀를 내둘렀다. 우와 빠르다. 난 아직 손! 동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어보이자 호원이 난데없이 풉,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만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손이래. 장동우답다. 호원이 어느새 집어들었던 만두를 크게 벌어진 동우의 입 안으로 쑤셔넣었다.
"자랑이냐?"
"아, 읍! 나 만두피 안먹,"
"그러니까 니가 쑥맥이라는거야. 남우현 봐라. 이민서랑 깨진지 며칠이나 됐다고 한지연 간보더니 지금은 또 다른 여자로 갈아탔잖아. 심지어 이번엔 갈 데까지 간 여자."
이불 들고 간 거 봤다니까. 그럼 게임 끝난거지 뭐. 호원이 장난스러운 입꼬리를 올려 킥킥댔다. 동우는 호원이 멋대로 입에 넣은 만두를 손바닥 위로 가까스로 뱉어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만두피 안 먹는다니까 왜그래. 울상을 지으면서 입에 들어갔다 나온 만두를 접시에 내려놓은 동우가 제 말은 들은척도 않고, 틀어놓은 DVD화면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호원의 옆모습을 쳐다보며 입을 삐죽였다. 만두피 맛없어. 그렇게 동우가 다시 젓가락을 집어들며 세밀하게 만두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끊임없이 궁시렁거리기를 시작하면서. 진도 좀 느리면 어때,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거지. 간간히 호원의 옆모습을 노려보다가 만두에게로 시선도 돌렸다가, 마음속으로 꿍하게 변명을 늘어놓던 동우가 야,하고 불러오는 호원의 목소리에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왜,왜?"
"우리 여름에 다같이 바다나 갈래?
"바다?"
바다라는 말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동우의 시선이 자연스레 티비 화면을 향했다. 그럭저럭 보고 있던 영화는 동우가 만두피를 빼내는 데에 신경을 쏟은 사이에 어느새 바다가 나오는 장면으로 전환이 되어버린 듯 하다. 멀뚱멀뚱하니 화면만 쳐다보고 있던 동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좋지. 너랑 나랑 남우현, 이성열? 아님 성종이까지?"
"미쳤냐? 이성종을 왜 데려가? 이성열은 또 뭔데? 걔도 빼."
"…너 성열이 싫어해?"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너네 커플이랑 우리랑, 남우현네 커플 모여서 놀러 가자는거지. 거기다 솔로들을 왜 집어넣어."
"……아."
"눈치없기는."
호원이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으로 동우의 머리통을 아프지않게 꾸욱 밀었다.
"근데 우린 남우현 여자친구, 얼굴도 모르잖아."
"알면되지."
호원이 다시금 팔짱을 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새끼 약싹바르게도 지금,소개도 안 시켜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ㅡ우연히 동네에서 만나면 몰랐던 척 하고 연기하면 되는거야. 호원이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었다.
"감추니까 더 존나 궁금하잖아."
호원의 눈빛은 동우에게 무언의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맞아. 그에 동우가 멍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 *
성규의 옥탑방 대문 앞에 멈춰 선 우현이 품 안 가득 안고 있는 이불이 눈에 닿아 젖지 않도록 까치발을 들었다. 자꾸만 흘러내려와 바닥에 끌리게 될까 노심초사하며 이불을 운반한 우현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도착. 애초부터 상자에 담아올걸 하는 바보같은 후회가 머릿속에 가득찼다. 여기까지 들고 오느라 얼마나 민망했는지. 버스에서부터 저를 따라다녔던 뻘쭘한 시선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비실비실 웃은 우현이 녹슨 철문을 조심스레 밀어보았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대문. 우현의 입가에는 어느새 싱글벙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늘도 집에 있네. 아마 이불을 들고 온 저를 본다면 성규가 제 아무리 차가운 천사라고 해도 아주 조금은 웃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맨날 홑이불에, 춥게만 자니까 잔기침을 달고 살지. 제가 가져온 이불로 성규가 따뜻하게 지낼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벼워진 것만 같은 발걸음에 사뿐사뿐히 계단을 오른 우현이 이윽고 눈 앞에 나타난 옥탑방 현관에 우뚝 멈춰섰다.
"큼, 흠흠."
품에 안아 든 이불을 한번 더 고쳐 안고, 택배를 배달하는 택배원처럼 목을 가다듬은 우현이 언제나 그랬듯 문 위로 두세번 노크를 했다.
우현이 제 가슴 속에서 두근거리며 뛰어오는 심장을 느끼며 눈 앞에 보이는 불투명한 유리 앞에 성규의 실루엣이 보이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셋 하고 문이 열리면 짠!선물이야! 하고 말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그 작전을 바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한걸음 더 문 쪽으로 다가와 붙었다.
"…문 안 열어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렇게 한참을 서있고 난 후였다. 원래 이렇게 노크를 하면 10초쯤 후에ㅡ 별로 달갑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반가운 성규의 얼굴이 문을 열고 나와줘야 정상인데, 어쩐지 너무 오래 걸린다 싶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멀뚱멀뚱 문 앞에 서 있던 우현이 인기척 없는 문을 당겨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
문이 열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잠시 화장실에 간 것이라 생각했던 우현이 잠시 후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나 스스럼없이 열려버리는 현관문과는 달리 침침하게 불이 꺼진 옥탑방 내부는, 쌀쌀한 공기로 우현의 방문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디갔어."
텅 비어있는 공기 속에서, 느린 동작으로 현관 앞에 이불을 내려놓은 우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중얼거렸다.
*
성열은 아까부터 유제품 코너 앞쪽에 우뚝 서서 미동조차 없어 보이는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뭐야."
자그마치 20여분 전, 느닷없이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남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새까만 사람이었다. 급하게 갖춰입기라도 한 듯, 입고 있는 정장은 약간 흐트러져있는 티가 물씬 났으며 넥타이마저 삐뚤어져 가슴께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성열은 카운터 뒤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남자를 살펴보았다. 사실, 좀 잘생긴 강도같은 게 아닐까ㅡ하고 노심초사 했었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남자는 마치 고장난 로봇처럼 같은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얼핏 봐서는 뚫어져라 우유를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허공에 초점을 맞춘 채 하염없이 넋을 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열이 괜히 카톡 창을 열었다 닫았다. 저러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칼이라도 휘두르면 어쩌지. 하지만 그렇게 불안한 손을 어색하게 놀리던 성열은 금새 자세를 바로잡고 앉게 되었다. 제가 핸드폰에 너무 집중해버린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귀신같은 사람인건지는 몰라도 인기척 하나 없이 카운터 앞 쪽까지 다가온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성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성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보루 레드 하나."
20분 가까이 유제품 코너에 서 있었던 주제에 남자가 결국 찾은 건 담배였다. 생긴 것 만큼이나 지독하게 차가워보이는 목소리가 뱉은 것은 저의 뒤편에 위치한 담배의 이름이었다. 아, 말레. 갑작스러운 남자의 움직임에 얼어있던 성열이 허둥지둥 담배를 꺼내들었다. 발이 안 달린 것도 아니고, 인기척도 없이 나타나고 난리야. 강도처럼. 성열이 남모르게 툴툴대며 포스기를 만지려 들 때였다. 낮았던 목소리는 다시 한 번 성열의 손을 묶어두었다.
"아니, 일곱개 더."
성열이 바코드를 집어들던 손을 멈추고 남자에게 물었다. 총 여덟개요? 그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좀,"
많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남자의 고개가 편의점 문 밖을 향해 돌아갔다. 아무리 집요하게 달래고, 달래줘도ㅡ형한테는 그저 담배가 전부가 될 것 같아서. 남자의 쓴 눈동자가 편의점 밖 계단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또다른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그나저나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말이야. 왠지 모를 패배감에 인정하긴 싫었지만, 완벽하게도 잘생겼던 남자가 편의점을 나간 후에 제 손바닥에 남은 잔돈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잔돈은 됐어요. 이번에도 삼천원이 넘는 거금을 됐다고 말하며 나가버리는 남자에, 지난번 트라우마가 겹쳐 보여 잡지 않았던 성열이 남은 돈을 포스기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은 저렇게 돈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 많나보다. 이 동네에는 죄다 부자들만 사는 건가. 성열은 그 뒤로 한적해진 편의점 안에서, 그대로 카운터에 엎드려 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성열의 외로운 아르바이트 생활은 쭈욱 이어졌다. 기분이 참 이상했던 검은 정장의 남자가 다녀갔던 이후로는 그다지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전에는 그나마 저랑 떠들어대던 남우현도 요 며칠 사이에는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어딘가로 달려가곤 했고ㅡ 매일 만나는 호원과 동우에게는 이미 신물이 나 버린 탓에 재미도 없다. 그저 그런 기계처럼, 매일같이 물건들에 바코드를 찍어다 팔고 일이 없을 때면 가만히 앉아 문 밖이나 구경도 하고. 그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성열의 손은 바코드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성열은 모처럼 일이 끝나면 지긋지긋한 남우현이라도 불러서 술이라도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카운터 위로 엎드렸다. 이미 남우현 때문에 파토가 나버린 과생활이지만ㅡ이렇게 외로울 때면 그래도 좀,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성열이 쓴 침을 삼키면서 편의점 문 밖을 내다보았다.
한동안 그쳤던 눈이 또다시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빨리 개강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쉰 성열이 가려운 볼을 긁적였다.
*
한동안 그쳤던 눈은 옥탑방에도 다시 내려오고 있었다. 천사의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그 때 그 평상처럼, 지금은 텅텅 빈 평상 위에 얇게나마 눈송이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현관 앞에 쭈그려 앉아 있던 우현이 멍청한 시선만 허공으로 보내다가ㅡ 옥탑방 안으로 느린 발걸음을 옮겼다.
성규가 집을 비운지 이제 5일정도 되는 날이었다. 내일이면 6일. 무기력하게 소파에 드러누운 우현이 아까까지도 가지고 놀고 있던 달력을 주워들어 동그라미가 텅 빈 네개의 칸을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옆에 놓인 펜을 집은 우현이 26, 27, 28, 29 안에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려 놓았다. 이건 내꺼. 성규를 만난 뒤로 갖게 된 혼잣말이라는 습관이었다. 내 동그라미. 작게 중얼거린 우현이 비어있던 칸을 채운 네개의 동그라미를 쳐다보다 한숨섞인 웃음을 뱉었다. 이제껏 한 칸에 두개였던 동그라미들을 보다 보니, 한 개씩 그려져 있는 네 칸은 마치 4일동안 혼자 남겨진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너 어두운 거 싫어하니까 올 때까지 옥탑방 안에 불 켜놓고 기다리고 있을건데. 그러니까 되도록 빨리 돌아왔음 좋겠는데. 우현이 달력을 집어든 손을 높이 올려 손장난을 쳤다. 4일동안 사다놓은 반찬거리도 되게 많은데. 딱히 칭찬을 받고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맛있는 거 해주고 싶어서 사 놓은 거. 우현이 달력을 허공 위에서 빙글빙글 돌려보았다.
며칠동안 안 오던 눈도 다시 오고 있는데, 너는 왜 안와. 우현이 불퉁하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어디 가겠단 말도 없이 사라져놓고, 게다가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문까지 열어놓은 성규가 괘씸하지만 그래도, 천사가 다시 오면 며칠동안은 화장실 불도 끄지 않고 쓸데없이 깐죽대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언제 와."
이미 '어디 갔어'라는 물음은 우현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천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싶다기보단 그냥ㅡ 이런 말밖에 이제 떠오르지 않으니까.
빨리 와.
우현이 오늘자 칸 안에 삐뚤삐뚤한 못난 글씨를 끄적였다.
*
달력에 걸어놓은 주문은 이상하게도 엉뚱한 곳에 작용했다.
우현은 다음날 아침, 옥탑방 대문 앞에 쭈그려 앉아있다가 우연하게도 호원,동우와 조우하게 되었다. 오라는 김성규는 안오고 왜 저새끼들이. 우현의 미간은 보기좋게 구겨졌음에도 멀리서 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오는 동우의 눈은 지나치게 붕붕 떠 있었다.
"어, 엄청난 우연이다! 이런데서 만날 줄이야!"
우현이 제 앞까지 걸어온 호원과 동우에 곱지 않은 눈길을 올려보냈다. 우현의 그런 썩은 표정 따윈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듯, 특유의 웃음소리로 하하하 웃은 호원이 오버스러운 동작으로 우현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놓았다. 요새 얼굴도 그렇게 안 비춰주더니 니가 이 동네엔 왠일이냐?
제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어트리는 호원의 손을 쳐낸 우현은 이윽고 어이없는 실소를 내뱉었다.
뭔데, 저 짠 것 처럼 기계적인 말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