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응달
김작가, 대본 수정 다 마쳤어요? 재촉하는 듯한 말투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거의 다 끝나간다고 답했다. 방송국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메인작가언니였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이실직고 했다면 나의 일자리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가, 등골이 오싹해왔다.
" 내일 오전 내로 대본 보내줄 수 있죠? "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한 거였는데 어색한 나의 표정에서 아직 대본 수정을 마치려면 한참 남은 걸 알아차렸는지, 오늘 밤까지였던 대본 마감을 내일 오전으로 늘려준다. 감격에 벅찬 눈빛으로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작가 언니는 나를 곁눈질로 살짝 째려보곤 작업실에서 나간다. 무서울 땐 정말 말도 안 되게 무섭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량을 베풀어주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 존댓말 하면서 조곤조곤 화내는 건 무섭다.
밤새도록 대본만 붙잡고 있으니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으. 눈앞이 아찔했다. 다행히 동이 트기 시작할 때쯤 대본 수정을 다 끝내서 출근하자마자 대본을 제출하고 소품실 침대에 누워 한숨을 돌렸다. 눈을 감았다 뜨니 우스 광스러운 가발들과 옷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게 보인다. 우리 프로그램은 소품이 많이 필요 없지만, 타 방송사에서 막내 작가인 친구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비교적 소품이 많이 필요해서 촬영이 끝나면 하루 종일 소품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매일 대본 수정하느라 죽어나도 이럴 땐 우리 프로그램이 토크쇼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 김작가님? "
내가 피곤하긴 했나보다. 형형색색의 가발들을 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듣고 제 곁으로 다가온 김작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 …아. 놀래키려고 했던 건 아닌데.... "
놀랐다면 미안해요. 목덜미를 긁적이며 사과를 건네는 김작가, 그러니까 우리 프로그램 유일 남자 작가인 김재환 작가였다. 얼빠진 표정으로 김재환 작가를 올려다보고 있으면 소품실에 콘티를 놓고 와서 가지러 온 거였다며 오히려 내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온다.
" 큼, 그래서 이번 게스트는 누구래요? "
괜히 어색해진 분위기에 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질문을 던졌다. 원래는 내가 최종 대본을 수정하는 일을 하는데 이번 최종 대본은 메인작가 언니가 직접 맡았다. 덕분에 일은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최종 대본을 보지 못해서 이번 게스트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프로그램 특성상 게스트가 누구인지는 비밀로 유지되어야 했기 때문에 회의실이 아닌 곳에서는 게스트에 대해 궁금해도 언급하지 못하고 있었다.
" 워너원이라는 신인 남자 그룹이라던데, 알아요?
워너원…, 어딘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어디서 본 이름이었지, 하고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번뜩 떠오른 얼굴에 김재환 작가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며 다시 되물었다. 사실 되묻기 전, 떠올라버린 그의 얼굴과 네 글자의 이름이 내가 어디서 워너원이라는 이름을 본 건지 정확히 기억나게 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 워너원이요. 워너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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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라고 하기엔 참 별 거 없는 프롤이네요ㅠㅠ 아무도 안 읽어줘도 전 쓸거에요, 쓸겁니다. (눈물 ♡ 그래도 읽어줘서 고마워요 ♡ 근데 왜 벌써 프롤로그 브금부터 우울한거죠ㅠㅠㅠㅠㅠ우울하고 싶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