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 & 홍대광 - 연애하고 싶어
"한 잔 받아."
"괜찮아."
"너 지금 동기 성의 무시하냐?"
무시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반존대 연하남이 설레는 이유
16
w. 갈색머리 아가씨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끌려오게 된 걸까.
지금까지 한 번도 개강파티네 종강파티네 참여를 해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술집이었다. 그래. 종강하고 바로 집으로 가려했었는데 잡히고 만 것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바쁜 일이 있다며 빠져나왔을 텐데 어쩐 일인지 오늘따라 다들 집요했다.
과대는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나에게 교수를 앞세워서 거의 빌다시피 했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기들이 우르르 달려와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나는 잡혀있었다. 이 인간들에게.
"이름이가 종강파티 온 거는 처음이지?"
"매 학기마다 내가 교수들한테 둘러대느라 얼마나 고생한 지 알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교수들은 학생들이 종강파티에 참여를 하던 말던 상관을 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좀 자주 오고 그래. 동기 좋다는 게 뭐냐?"
"..."
"혹시 연애하느라 과활동 제대로 안하는 건 아니지?"
우리 과가 과활동이라는 걸 따로 했었나.
대놓고 똥씹은 표정을 하며 앞에 놓인 땅콩 하나를 깨물었다.
아니. 절대로. 우리 과처럼 개인 플레이가 철저하게 이뤄지는 과도 드물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예체능 계열 치고' 였지만 그게 어디야.
무슨 일인가 했더니 왜 나를 이렇게까지 잡아뒀는지 알 것 같았다.
왜긴 왜야. 너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너는 내가 생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유명한 모양이었다.
"근데 어쩌다가 만난 거야?"
"뭐가?"
"황민현! 걔 입학하자마자 대나무 숲 올라오고 완전 난리도 아니었는데."
대나무 숲이 뭐지.
대충 sns 겠거니 생각하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너는 입학을 하자마자 여자애들 사이에서 알게모르게 인기가 많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랑 연애를 한다는 소문 때문에 한 바탕 뒤집어졌었다.
가 그들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인 듯 했다.
근데 그걸 나한테 왜 말하냐고.
"황민현 걔 철벽 쩔었잖아."
"맞아. 패디과에 김미영? 걔도 그냥 까였다며."
"술자리 불러도 안나온다고 선배들한테 개까였는데 여자선배들이 그럴 수도 있다면서 감싸다가 더 난리나고."
"하여튼 철벽들끼리 잘붙었어."
말없이 잔을 내려놓았다.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실례인 일이었다.
그 이야기가 칭찬이던 험담이던 불문하고. 칭찬이어도 실례인 일이었고 험담이면 무례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자리가 술자리라면 더더욱.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은 그런 기본적인 예의도 지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가 앞에 있으니 마음껏 떠들어도 자신들에게 면죄부가 생긴다고 착각을 하고 있거나.
내가 또 이런 말들을 가만히 들을 성격이냐고?
아니었다.
"야."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나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민현이 이 자리에 없어. 말 그만해."
"지금 남자친구라고 편드는 거?"
"와. 민현이래."
"알았어. 그만할게. 우리가 너무 심했다."
"..."
"근데 이름아."
"..."
"진짜 황민현 어떻게 꼬신 거야?"
말없이 말을 꺼낸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는 듯이 바라보는 눈빛이 거슬렸다.
눈치가 어느정도 있다면 저 질문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아챌 것이다.
황민현에 비해 수준도 딸리는 네가 어떻게 황민현을 꼬여내서 사귀게 된 거야? 정도의 의미겠지.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진짜 한심하다. 연애처럼 개인적인 일이 어디있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왈가왈부를 하는 걸까.
막말로 내가 진짜 마음 먹고 너를 꼬여내서 사귀게 되었다고 해도 이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왜."
"..."
"이름이 예쁘잖아. 몸매도 그렇고."
"하아..."
"연주 너는 속도 좋다."
"응?"
"야. 솔직히 황민현 네가 먼저 좋아했잖아."
"에이. 사람 좋아하고 그러는 거에 순서가 어디있어."
그리고 이름이는 내가 민현이한테 관심있는지 몰랐잖아.
아까부터 궁금했던 오늘 이들의 컨셉과 이 술자리가 갖고 있는 의미를 이제야 알아냈다.
황민현 어장관리의 피해자 + 동기에게 뒤통수 맞은 착한년 코스프레 를 위한 밑거름이 되는 자리였다.
-
"그래. 사람 좋아하고 그러는 거에 순서가 어디있겠어. 그치?"
"그럼. 내가 막 이름이랑 그렇게 친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지. 나는 지금 네 이름도 모르는데 이렇게 술자리까지 끌려왔고 말이야."
연주라고 했나.
성은 모르고 이름은 부르고 싶지 않으니 그냥 개년이라고 불러야지.
개년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잠시 당혹감으로 물들어있었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돌아갔다.
오히려 난리가 난 것은 주변이었다. 어떻게 동기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등등 본인들이 더 열심히 따져대고 있었다.
지들이 무슨 상관인데.
"너 동기한테 말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뭐가?"
"어떻게 이름도 모를 수가..."
"내가 니들이랑 밥을 먹기를 했어, 술을 먹기를 했어?"
"뭐?"
"얘들아. 그만해..."
"집 잘가던 사람 잡아놓고 한다는 말이 다른 사람 이야기고."
"성이름 너 진짜 썅년이구나?"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는데 이런식으로 막말하는 것도 그렇고."
"여친 있는 남자한테 들이댔다는 소문도 완전 구라는 아니었네. 이런식으로 뒤통수 치는 거 보면."
"... 자기 머릿속에서 나온 망상 그대로 믿고 나한테 지랄하는 것도 그렇고."
"너 진짜..!"
"나 이만 가봐야할 거 같은데."
"연주한테 사과하고 가."
"아까부터 니들이 그렇게 찾아댄 민현이 만나러 가야해서."
"성이름!"
"아. 방금 네가 말한 그거. 웬만하면 글로 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너무 진부하잖아. 클리셰 돋고 주인공은 착하기만 하니 재미도 없고.
주인공이 저 연주? 맞지? 연주가 아니라 나라면 좀 재미있을 수도 있겠네. 근데 막장이라 욕 좀 먹을 거 같다.
김교수 막장 싫어하잖아.
"그리고 종강파티 치고 사람 너무 없는 거 같네."
"..."
"앞으로도 난 여기 참여할 일 없으니 특히 과대 잘들어. 안그러면 교수들한테 쓸데없는 군기 잡는다고 꼰지를 거니까."
"..."
"나 간다. 방학 잘보내."
조금이라도 빨리 이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핸드폰을 꺼내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선배?)
"어디야?"
(저 지금 종강파티요. 애들이랑 같이 있는데.)
"... 나 가도 돼?"
(지금요?)
"응."
(진짜? 진짜 올 거에요? 괜찮아요?)
"안괜찮을 게 뭐가 있어. 너 불편하면 안..."
(아니에요! 와요! 지금! 당장!)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눈을 감았다.
하여튼. 그렇게 호들갑 안떨어도 되는데. 잠깐 지끈거렸던 머리가 말짱해지는 기분이었다.
어두컴컴했던 술집과 다르게 밖은 아직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
"선배!"
"응."
너는 나와 다르게 이런 활동을 꽤나 잘하는 모양이었다.
술집 특유의 어두컴컴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같았지만 아까와는 기분이 확연하게 달랐다.
옆에 네가 있어서 그런 건가. 비록 아직 친하다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정도 얼굴을 알고 지내던 최민기도 건너편에 앉아있었다.
사이가 애매한 사람들 사이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것과
마음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는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차이가 훨씬 컸다.
"민현이가 하도 숨겨놓고 안보여줘서 몰랐는데."
"네?"
"지 여친 이야기 해달라고 해도 절대 안했거든요."
"..."
"저 처음에 여친이신지 몰랐잖아요. 연상이라고 이야기 들었어서."
"아..."
대충 너도 나랑 별 다를 거 없는 상황인것 같았다.
결국 너도 술자리에서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보고 있었구나.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대놓고 네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거랑
너는 그나마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는 거고.
테이블 아래로 네 손을 겹쳐잡고 토닥여주었다.
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고생 많았어 라는 의미였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네.
네가 내 손에 깍지를 껴 잡아왔다. 푸스스 웃으며 손에 힘을 줘 네 손을 조금 더 세게 그러쥐었다.
"안주 뭐 다른 거 시킬까요?"
"아니요. 민현이 데릴러 온 거라."
"네?"
"얘 술 약한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종강했는데 오랜만에 데이트 좀 할까 하는데..."
안될까요?
앞에서 최민기 표정이 대놓고 '나 이따가 너 집에서 놀릴거임' 이라고 씌여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우선 나는 이런 술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너랑 둘이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너도 꽤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었던 거 같고 말이야.
사람은 자기의 외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지 내가 무슨 표정을 짓거나 무슨 말투로 말을 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먹히는지 알기 쉬우니까.
객관적으로 나는 둥글둥글 순둥순둥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입생인 남자들. 적당히 배실배실 웃으면서 나올 필요가 있었다.
네! 일어나세요!
역시나 심하게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뭐. 내가 선배라는 것도 여기서 크게 한 몫 한 거 같지만 말이야.
네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물론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형식적인 인사는 잊지 않았다.
나랑 다르게 너는 앞으로 3년이라는 시간동안 더 저 사람들과 부대껴서 지내야 하니까.
그리고 패디과는 우리 과랑 다르게 군기도 좀 심하고 그러니까. 내 평판은 떨어져도 네 평판은 떨어져서는 안된다.
라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
"오늘 무슨 일 있어요?"
"뭐가?"
"나 선배가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거 처음보는데."
그런가?
앞으로 많이 웃던지 해야겠네.
"사실 삐치고 싶었는데."
"뭐래."
"선배가 왜 그랬는지 알 거 같아서 티 안내려고요."
"말을 하는 거 부터가 티나거든요."
"내가 지금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 라는 걸 티내는 중입니다."
"하여튼 말은 잘해요."
그럼요. 누구 남친인데.
네가 내 어깨 위에 팔을 올렸다.
날씨 때문에 조금은 더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아 그냥 그대로 두었다.
막상 너랑 데이트 한다고 나오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떠오르지 않아 무작정 온 공원이었다.
지난 번에 너랑 그냥 걷자 해서 떡볶이를 먹고 아무생각 없이 걸어다녔던 그 공원이었다.
벤치에 앉아 네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댔다.
뭔가 많은 일들이 벌어진 거 같아 졸음이 밀려왔다.
여기서 자면 안되는데. 아까 조금씩 마셨던 술기운이 이제서야 올라오는 것 같았다.
"졸려요?"
"조금."
"벌써 1학기 끝났어요."
"그러게..."
"여행 어디로 갈지 생각해봤어요?"
"나는 다 괜찮은데..."
"그런게 어디있어요."
"근데 언제 갈지는 정했어."
"언제요?"
"8월 9일."
"..."
"그때 가자."
8월 9일은 네 생일이었다.
그냥 그런 거 있잖아. 처음으로 맞는 네 생일날은 뭔가 너랑 같이 있고 싶다는 그런 거.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다 고개를 들어 너를 보았다. 너는 물끄럼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선배."
"응."
"나 지금 키스할거에요."
"..."
"그니까 눈 감아요."
"병신."
"왜요?"
"그런 건 말하고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먼저 다가가 네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너는 잠시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으며 내 목덜미를 그러쥐었다.
차가운 내 손과 다르게 네 손은 따듯했다.
입술로 맞닿아오는 네 입술마냥. 따듯하고 부드러웠다.
살며시 눈을 뜨고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네 귀가 퍽이나 귀여워서. 그리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나온 웃음이었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인지 기분이 좋았다.
곁에 같이 있는 사람이 좋으니 더더욱 그랬다.
-
〈암호닉>
짱요 / 응 / 뿜뿜이 / 책상이 / 너우리 / 0713 / 모기 / 아몬드 / 황제님충성충성 / 책민현 / 샘봄 / 붐바스틱 / 아가베시럽 / 다녜리
수 지 / 과자 / 민현29 / 윙팤카 / 0846 / 슬 / 융융 / 댕댕민현 / 애정 / 숨 / 뿌얌 / 하핫
레인보우샤벳 / 사이다 / 쟈몽 / 하나 / 짐느러미 / 사용불가 / 3536 / 루케테 / 마카롱 / 돼지바
현 / 나라빛 / 나침반 / 윙크장인 / 사용불가 / 집요정 / 배코 / 슈팅 / 월이 /valeny / 옵티머스 / 초록보꾸 / 장뚜 / 챰새
다별 / 민꾸꾸 / 루케테 / 마카롱 / 코알루 / 캬마 / 하람 / 03330 / 99 / 파이 / 센터 / 홍시 / 필소 / 파요 / 0303
오늘따라 연하미 낭낭한 민현이입니다.
메일링 신청 많은 분들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편 더더욱 잘 쓰도록 노력해야겠네요. 하핫.